110화
인정사정없이 발사된 총알은 정확히 쟝과 베센을 노렸다.
“윽!”
쟝은 다급히 몸을 굴려 총알을 피했다.
그러나 쟝처럼 순발력이 뛰어나지 않았던 베센은 그대로 과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아악!”
베센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온몸을 찌르는 듯한 아픔에 베센은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걸 잊고 그대로 펄쩍펄쩍 날뛰었다.
사샤는 그런 베센은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나무로 만든 총탄인데 뭐가 그리 아프다고…….”
“이…… 이 미친 여자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방바닥에 꼬꾸라진 베센이 악을 쓰며 고함을 내질렀다.
“뭐 하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
사샤는 그런 베센을 향해 거침없이 다시 총탄을 발사했다.
탕!
참고로 근거리에서 발사된 총알은 아무리 가벼운 소재로 만든 것이라 해도 꽤 아팠다.
“끄아악!”
“이제 내가 뭐 하는 줄 알겠지?”
여전히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사샤가 덤덤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베센은 이를 악물며 주먹으로 바닥을 쾅쾅 내리쳤다.
“이, 이 빌어먹을……!”
탕! 탕!
경쾌한 총탄 소리가 연이어졌다. 그 뒤로 고통에 젖은 베센의 비명이 코러스처럼 이어졌다.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더 알려줘?”
“아…… 아닙니다아…….”
베센이 영혼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흐음.”
사샤는 자신의 방 안을 쭉 둘러보았다.
사샤의 시선은 바닥 위에 쓰러진 베센을 향하다가, 이제는 벽에 딱 달라붙어 서 있는 쟝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의 총구도 덤으로 쟝을 향했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서 일어나 봤더니,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안 그래도 오늘 종일 똥개 훈련해서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사샤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리듯 고했다.
쟝은 사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발소리를 듣고 깼다고?’
쟝과 베센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곳까지 이동했다.
옷가지 소리가 날까 봐 차림도 일부러 가볍게 했다.
거기다가 복도 타일을 끄는 소리가 날까 봐 신발을 벗는 치밀함까지 선보였는데.
그런데 이 여자는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고?
‘보……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쟝이 그대로 두 손을 들었다.
애초에 둘이서 급습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따로 가지고 온 무기도 없었다.
게다가 몽둥이나 목검 따위를 가지고 왔다고 해도, 총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저, 저기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희는 그쪽을 죽이러 온 게 아니에요.”
쟝은 이대로 있다간 정말 사샤에게 죽임을 당하겠다는 마음에 냅다 입을 놀렸다.
사샤는 여전히 총을 쥔 채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예예. 준비물이 노끈과 헝겊이라…… 딱 봐도 사람 해치러 온 나쁜 놈 표본인데요?”
“아닙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쟝이 황급히 손에 든 헝겊을 바닥 위로 내던졌다.
그는 그대로 무릎 관절을 잃은 사람처럼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베센 저놈이 시킨 대로 하기만 했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베센은 ‘저 배신자 새끼……’라고 중얼거리며 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친구 한 명 팔아서 목숨 부지하는 거면 제법 이윤이 남는 장사 아닌가?
쟝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사샤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시키는 대로 했다고요?”
“예, 예예! 맞습니다! 전 무죄예요!”
“그럼 그쪽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머리조차 없는 나쁜 놈이네요. 에휴…… 어쨌든 나쁜 놈 맞네.”
사샤는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잡아당길 것처럼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쏠 것 같은 사샤의 움직임에 쟝은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게는 미래를 약속한 애인이 있습니다!”
“그럼 더더욱 용서할 수 없어요.”
사샤의 말에 쟝은 멍해졌다.
“예?”
“당신 같은 놈과 미래를 약속한 애인이 너무 불쌍해요. 당신 같은 범죄자 새끼랑 평생 살아야 한다니, 그 여성분은 도대체 무슨 죄야.”
“아, 아니, 그건…….”
“애인 분을 사랑하신다면 하루빨리 헤어지시는 게 어떤가요?”
사샤가 진지한 목소리로 직설했다.
그와 동시에 총구가 정확히 쟝의 이마를 노리며 올라갔다.
“악!”
쟝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대로 총알에 맞게 된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지만, 총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며 나는 클릭 소리도 없었다.
대신 사샤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쐈는데 왜 비명을 질러요?”
그 말에 쟝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탁한 눈동자에 일말의 희망이 돌기 시작했다.
“저, 저는 안 쏘실 거예요?”
“아뇨. 이제 쏠 건데요.”
탕!
“아아악!”
총알에 제대로 맞은 쟝은 그대로 바닥 위로 쓰러졌다.
먼저 쓰러져 있던 베센은 그런 쟝을 향해 ‘꼴 좋다, 이 의리 없는 자식……’이라고 중얼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사샤는 그 두 사람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래서, 뭐 하러 오셨어요? 좋은 꿈 꾸라고 인사하러 오신 걸 아닐 테고…… 설마, 절 죽이시려고?”
쟝과 베센은 기겁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닙니다! 어찌 그런 잔인한 짓을!”
“그럼 저 노끈은 뭔데요? 빨랫줄 묶어주러 오셨어요?”
“저, 저희는 그냥 그쪽을 제압해서 묶어두기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쟝과 베센은 이제 변명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실직고했다. 이대로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다간 사샤가 또 총으로 어디를 어떻게 쏠지 모르는 일이었다.
쟝과 베센의 말을 들은 사샤는 총부리로 두 사람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툭툭 쳤다.
“묶어서 뭐 하려고요? 결국은 묶어서 나쁜 짓 하려고 했던 거잖아요. 예컨대 그대로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다던가?”
사샤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필사적으로 가로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흰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벌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사샤 씨 묶어둬서 내일 훈련 못 가게 하려고 했다고요!”
쟝과 베센의 말을 들은 사샤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아하! 소리를 냈다.
“그러셨어요? 그냥 절 묶어서 내일 훈련에 못 가게 하려고 하셨다?”
“예예, 그렇습니다! 부디 저희의 진심을 깨달아주세요!”
“네네,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순순히 계획을 자백하는 쟝과 베센을 보며 사샤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웃어?
상황에 걸맞지 않은 그녀의 표정에 쟝과 베센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두 사람은 어째서 사샤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뭐, 뭐 하시는…… 으아아!”
“사샤 씨, 잘못했습니다! 이러지 마…… 아아악!”
2층에서 터져 나오던 단말마 같은 비명은 이내 가라앉았다.
그리고 숙소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하게 변했다.
부엉, 부엉—.
숙소 주변에는 야밤을 활보하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 * *
원래 인페르나 영지의 숲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밤, 그런 고요함을 깨는 발소리가 있었다.
누군가가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툭, 툭!
바닥에 떨어진 자잘한 나뭇가지들이 그 발걸음에 밟히며 끊어졌다.
발길에 챈 흙먼지가 일어났다.
늦은 시각을 틈타 활보하던 작은 마물들은 침입자의 발소리를 듣고 황급히 땅 밑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앞으로 달리던 그는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서야 질주를 멈췄다.
땅바닥에 쓰러진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이내 다시 쓰러졌다.
남자의 입에서 급박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데클란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땅에 쓰러지면서 피부가 쓸렸는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살갗이 쓰라리며 아팠다.
그러나 지금 데클란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팔린 상태였었다.
조금 전, 집에서 어머니가 해준 한 마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데클란, 사실 네 아버지는…….’
그 뒤로 이어진 어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데클란은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내 아버지가…….
날 단 한 번도 찾으러 온 적 없는 그 빌어먹은 아버지가…….
“……국왕이었다고?”
데클란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어머니는 말했다.
데클란의 아버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데클란은 자신이 미쳤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미쳤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여러 차례 의심했다.
물론 데클란은 자신의 친아버지가 어느 정도 지위가 높은 사람인 건 직감하고 있었다.
인페르나 남작이 말했었다. 데클란이 가진 마력을 두고 보자면 최소한 후작 정도 되는 귀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그래도 데클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설마,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데클란이 말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제 아버지가…… 국왕이라니. 하, 하하…….”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줄곧 인페르나 영지에 사셨던 거 아닌가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홀연 갓난아기인 자신을 데리고 이곳 인페르나 영지에 나타났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어떻게 국왕 폐하를 만났다는 거예요…… 안 그런가요, 어머니?”
“…….”
데클란의 어머니는 떨리는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장성한 아들.
그에게 언젠가 꼭 말하려고 했던 비밀이었다.
그에게 여러모로 충격과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꼭 알려줘야 했다.
그가 왜 수도에 가면 안 되는지. 특히 왜 왕궁 사람들과 엮이면 안 되는지.
데클란은 꼭 알고 있어야 했다.
“데클란. 나는…… 원래 라이렌 왕자 전하의 보모였단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보모로 일하던 데클란의 어머니는 왕자를 찾아온 국왕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국왕의 침실로 불려가게 된다.
그 하룻밤의 결과가 바로 데클란이었다.
데클란의 어머니는 회임한 것을 깨닫자마자 자신의 고향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당연히 그녀의 가족은 놀라 발칵 뒤집혔다.
그녀의 가족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집요히 물었다.
그러나 데클란의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만일 이 아이의 아버지가 국왕인 것을 밝힌다면, 이 아이는 절대 안전하지 못할 거다.
사생아 따위에게 차기 왕위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다른 왕족들이 이 아이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들 테다.
그래서 데클란의 어머니는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도주했다.
‘어머니…….’
데클란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가 왜 홀몸으로 갓난아기인 자신을 안고 이곳 인페르나 영지로 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이렇게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도망쳐 온 것이다.
국왕의 사생아를 데리고. 국왕이 찾을 수 없는 이 변방 지역까지.
국왕이 사는 왕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보잘것없는 시골로.
그중에서도 국왕이 제일 싫어하는 영주가 다스리는 이곳 인페르나 영지로.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데클란은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자신이 어디로 달리는지 몰랐다. 그저 무작정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도무지 가만히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가 이 깊은 숲속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내 아버지가 국왕이라면…….’
바닥에 쓰러진 데클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쿵쿵 날뛰었다.
‘만일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 아버지가 정말 국왕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모두가 잠든 그 밤에, 데클란은 홀로 차디찬 밤공기를 마시며 이를 꽉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