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이 곱하기 구는 십팔! 삼 곱하기 육도 쉽팔! 둘 다 씨이팔!’
나는 마치 욕설을 제외한 모든 어휘를 망각한 사람처럼 머릿속으로 계속 욕설을 뇌까렸다.
내 옆에 선 다른 사람들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이곳 훈련소에서는 왕국의 방방곡곡에서 선발된 대표들 50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500명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머릿속으로 아주 신물이 나게 욕을 내뱉고 있었다.
나 역시 이를 꽉 악물고 목검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젠장 젠장 젠자아아아앙—!’
사실 휘두른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손목을 움직인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었다.
연무장에 들어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두 시간 째 계속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사실 검 휘두르기 300회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두 시간 동안이나 붙들고 있을 훈련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네 왜 휘두르는 자세가 엉성한가? 팔 제대로 펴란 말이다! 전원, 앞으로 검 휘두르기 100회 추가!”
“움직임이 그렇게 둔해서 쓰겠나! 그런 비실비실한 움직임으로 어떻게 국왕 폐하를 지키겠다는 건가! 전원, 오른쪽으로 검 휘두르기 100회 추가!”
“눈빛이 탁한 게 죽은 생선 대가리 같구나! 그런 흐리멍덩한 눈으로 적군을 기선제압 할 수 있겠는가! 전원, 왼쪽으로 검 휘두르기 100회 추가!”
훈련관들이 단체로 약을 먹고 돌아버렸는지 온갖 트집을 잡으며 횟수를 추가했다.
‘아오, 씨!’
이 훈련관 놈들은 악마의 종자가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늘 처음 정식으로 군사 훈련을 받아보는 초짜들을 이렇게 굴릴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나를 더 분노하게 만든 부분은 바로 주어진 횟수를 다 해내기 일보 직전에 횟수를 추가한다는 점이었다.
사탄도 일거리를 잃게 할 정도의 악랄함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검술을 배울 때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를 꽉 악물고 검을 훅훅 휘둘렀다.
처음 반 시간 정도는 버틸 만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무리였다.
팔과 어깨 근육이 ‘주인님 전 더 이상 안 되겠어요.’라고 외치며 하나둘씩 파업하기 시작했고, 다리가 트위스트라도 추듯 휘청휘청 떨려왔다.
이마에서 비처럼 떨어진 땀방울이 연무장의 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두 시간 동안 휴식 없이 검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그냥 죽고 싶어진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외로 목숨이 질긴 존재였다. 고작 두 시간 검 휘두르기 훈련을 한다고 죽지 않는다.
세 시간 경과, 나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도 기절하고 싶다!’
연무장에 선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처음 이 연무장에 들어온 건 500여 명 정도.
그러나 지금 남은 이들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대부분 이미 과도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해 쓰러진 지 오래였다.
‘아무리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장사라 할지라도 이런 폭력적인 훈련 강도를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이를 꽉 악물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쿵!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그대로 쓰러졌다.
‘저런…….’
이렇게 또 한 명 갑니다.
나는 안타깝다는 듯이 내 앞에 쓰러진 남자를 보며 애도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훈련관 중 한 명이 쓰러진 남자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흐음…….”
한 무릎을 꿇은 훈련관은 한 손으로 남자의 숨과 맥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자네, 기절 안 했지?”
훈련관이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어?
예상치 못한 발언에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앞쪽 상황을 지켜보았다.
“…….”
쓰러진 남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훈련관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남자의 뺨을 찰싹찰싹 쳤다.
“기절한 척하지 마라. 그대로 들어서 호수에 처박기 전에 일어나! 명령이다!”
“……네, 네에.”
맨바닥 위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입에서 대답이 기어 나왔다.
어어?
그 장면을 목격한 내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뭐야, 기절한 척한 거였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는 느릿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대로 휘둘러라. 이 버러지 같은 것! 국왕 폐하를 위한 충성심이 그것밖에 되지 않더냐!”
훈련관이 날카로운 어조로 명령을 내리며 남자에게 목검을 도로 내밀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다시 강제로 끌려온 남자는 죽을 듯한 얼굴로 다시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훈련관 이 X 같은 놈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사골 국물보다 더 진한 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훈련관들이 악마 같은 인간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놈들은 그냥 인간 같은 악마였다.
‘기절한 척해도 안 봐준다 이거야? 제기랄!’
진짜로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오랜 훈련으로 단련된 체력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진짜로 기절하는 것을 보며 계속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쓰러질 때마다 연무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마법사들은 기절한 사람들에게 응급처치해 준 뒤 그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이를 갈았다.
‘제기랄, 이건 그냥 양민 학살 현장 아니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훈련을 받기 위한 연무장이 아닌 것 같다.
그냥 고문관들이 자기 입맛대로 평민들을 괴롭히다 죽이려고 만든 고문 시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 사샤 누님…….”
옆에서 헉헉거리는, 고통에 젖은 신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같은 인페르나 영지에서 온 키오가 절망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님은…… 괜찮아…… 보이시네…… 커, 커헉……!”
당장이라도 피를 쏟고 죽을 것만 같은 목소리가 키오의 목청에서 기어 나왔다.
그 와중에도 그는 아주 모범적으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참고로 키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의 잿빛 머리카락은 땀에 흠뻑 젖은 것이 마치 물에 빠진 생쥐를 연상시켰다.
제법 튼실해 보였던 그의 다리는 당장 철거하기 직전의 다리처럼 후들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은 핏기 하나 없었고, 입술은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당장 다음 순간 꼴깍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키오 오빠, 이제 그만 하세요!”
걱정된 내가 급히 그에게 속삭였다. 그러면서 행여나 훈련관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괜히 횟수를 추가할까 걱정돼서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
키오는 아주 미묘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제 와서…… 포, 기할…… 수 없어요…….”
“그러다가 죽어요! 그만 하세요!”
“전…… 약속했……단 말이에요…….”
“약속은 무슨 약속이요?”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이 있어요…….”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며, 키오가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이 전쟁이 끝나면…… 크윽……! 바, 반드시…… 그녀에게 청혼을…….”
자자자자잠깐만!
“그만! 말 그만 해요!”
그만해! 그 문장을 끝까지 완성했다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고!
내 다그침에 키오는 입을 다물고 숨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사실 키오가 지금까지 버틴 것도 어찌 보면 기적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키오는 그렇게 힘이 세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일찌감치 마차에서 걷어차 낸 무뢰한—이름이 크로이였던가—보다 체구가 작았고, 근육이 특히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키오는 원래 감자 농사를 짓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밝히지 않았던가.
평생 농사만 짓던 일반인이 이렇게 오래 훈련을 버틴 것도 용했다.
참고로 키오 외에 인페르나 영지에서 같이 왔던 나머지 두 사람은 진작에 나가떨어졌다.
‘데클란이 왔으면 이런 훈련은 누워서 케이크 먹기 수준이었겠지?’
이제는 감각이 사라진 팔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새삼 남자주인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이런 지옥 같은 고난도 훈련을 버티고 살아남다니!
그때였다.
—땡!
커다란 종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기진맥진한 상태로 검을 휘두르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종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훈련 종료!”
청동으로 만든 종을 든 훈련관 한 명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선포했다.
대략 두 시간 반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후우!”
“살았다!”
연무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일제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바닥 위로 검이 나뒹굴었다.
옆에 서 있던 키오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사, 사샤 누님……! 저희가 해냈어요……!”
그는 검을 지팡이 삼아 서 있었다.
“저희 둘 다 여태껏 안 죽은 게 용하네요.”
나는 자리에 선 채 그대로 검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사실 마음만 같으면 당장 이 검을 반으로 부순 뒤 훈련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예전에 인페르나 남작이 귀에 딱지가 내려앉도록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검을 손에서 내려놓다니. 실전이면 벌써 죽었다.’
인페르나 남작은 내가 검술을 가르칠 때마다 손에서 검을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빈손은 즉, 적에게 날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전이면 목이 그대로 베일 테다.’
그러면서 인페르나 남작은 가장 방심할 때 적이 기습하는 법이라고 내내 강조했다.
어릴 때 그런 얘기를 수두룩하게 들어서 그런지, 고된 훈련이 끝난 지금도 쉬이 검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으, 아카데미 졸업한 게 벌써 언제 이야기인데…….’
그렇게 속으로 작은 한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땡!
다시 한번 종소리가 연무장 내부의 공기를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훈련 종료를 선포했던 훈련관이 일갈했다.
“전원 동작 금지!”
사람들은 화들짝 얼어붙었다.
“뭐, 뭐야?”
“또 무슨 일이야!”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또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는 건가?’
젠장!
만약에 정말 또 바로 다음 훈련을 하는 거면 그냥 훈련관 멱 따고 이웃 나라 황국으로 망명할 거다!
—따위의 폭력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훈련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