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마담 쟈니에트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마력이라니.
데클란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아무리 친하지 않은 친구라지만, 설마 이것도 몰랐다고 말할 셈이냐?”
마담 쟈니에트가 가시 돋친 어투로 내게 물었다.
그녀는 사람의 기분을 살살 긁어내는 데 참으로 도가 튼 사람이었다.
나는 아예 얼굴을 팍 찌푸리며 대꾸했다.
“네, 몰랐는데요.”
이건 진실이었다.
데클란이 마력을 쓴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저번에 데클란이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도구 상점에 가지 않았던가.
거기서 마력 검사를 받았을 때 상점 주인은 분명히 데클란이 마력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데클란이 마력을 썼다고?
혼란감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려던 찰나였다.
“넌 데클란의 아버지가 누군지 아니?”
마담 쟈니에트가 또 다른 폭탄 질문을 던졌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담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여자가 나한테 뭘 묻는 거지?
“데클란의…… 아버지요?”
“그래. 데클란이 마력을 쓰는 걸 보니, 그 애는 아무래도 어느 귀족의 사생아 같은데. 혹시 아는 거 있어?”
하아…….
한숨만 절로 흘러나왔다.
데클란이 마력을 쓴다는 사실을 불과 32초 전에 알게 된 내가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담 쟈니에트가 다시 나를 독촉하듯 질문을 내던졌다.
“어서 대답해. 교장인 날 감히 기다리게 할 테냐?”
“데클란 아버지가 누군지 저도 모르는데요.”
“확실해? 교장에게 거짓말하면 퇴학인 거 모르니?”
“아니, 정말 진짜로 진심으로 모른다니까요!”
마담의 계속된 무의미한 질문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
마담 쟈니에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콧등을 찡그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나를 쏘아보았다.
“……알았다. 이제 나가 봐.”
한참이 지나서야 마담 쟈니에트가 나를 향해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처분이었다.
마담 쟈니에트가 평민 학생들을 개처럼 무시한다는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나는 마담에게 인사조차 올리지 않고 집무실을 걸어 나섰다.
* * *
사샤가 집무실을 떠나가기가 무섭게 마담 쟈니에트는 비서를 호출했다.
“어떻게 된 거야?”
마담 쟈니에트가 비서에게 물었다. 얼음장과도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방금 저 애가 데클란이랑 제일 친한 학생이라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던데?”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이번 학기의 평민 신입생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확인받은 건데요.”
비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마담에게 답했다.
그러자 마담이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저기 내 책장에 꽂혀있는 녹색 커버의 책. 그 책은 몇 페이지지?”
“네, 네에?”
“가서 저 책이 몇 페이지짜리인지 확인해 봐.”
뜬금없는 지시였다. 그렇지만 비서는 달리 군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마담의 심기가 더 거슬리게 될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초, 총 586페이지입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네. 그 책 나한테 줘 봐.”
비서는 영문도 모른 채 마담이 시키는 대로 그 두꺼운 책을 내밀었다.
마담은 다짜고짜 그 책을 들고 비서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퍽, 퍽!
“아악! 마, 마담! 잠깐만요!”
“내가 분명히 이번 학기 말까지 데클란이 어느 귀족의 사생아인지 알아 오라고 했잖아!”
마담이 계속해서 비서를 내려치며 외쳤다.
“코흘리개 꼬마들한테 정보 캐오는 게 그렇게 어려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자, 잘못했어요, 마담!”
비서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봉급은 돼지처럼 꼬박꼬박 처받아가면서, 정작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네.”
마담은 후, 하고 깊은숨을 내뱉으며 들고 있던 책을 던져버렸다.
“흐윽, 죄,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알면 일 좀 제대로 해 와!”
마담이 다시 한번 비서를 향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마담 쟈니에트는 지금 심기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검술 교사에게 데클란의 아버지에 대해 알아 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인페르나 남작이 데클란을 더 이상 후원하지 않겠다고 연락을 취해왔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마담 쟈니에트는 마음이 급해졌다.
만일 이대로 데클란이 인페르나 남작령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의 뒷조사를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래서 마담 쟈니에트는 검술 교사 외에도 다른 교사들을 불렀다.
“가서 데클란이란 학생의 가정사를 알아 와.”
그러나 그 누구도 마담 쟈니에트가 원하는 정보를 가져오지 못했다.
“마담, 데클란이란 이 학생은 자기 가족 얘기만 나오면 아예 말문을 돌려버립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데클란은 수업이 끝나면 어딜 쏜살같이 도망치는지 도통 붙잡아서 뭘 물어보기도 힘듭니다.”
다른 교사들도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마담 쟈니에트는 급기야 학생들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데클란과 같은 수업을 듣는 평민 학생들부터, 그와 같은 방을 쓰는 기숙사 룸메이트까지.
마담 쟈니에트는 교사들을 이용해 그 학생들에게 데클란에 대해 물어보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렇게 데클란은 베일 뒤에 숨겨진 채 가정사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갔다.
‘그냥 그만 알아보도록 할까?’
데클란의 뒤를 캐는 데에 질려버린 마담 쟈니에트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마담 쟈니에트는 여러 명 학생의 사생아 신분을 드러냈다.
학생들이 아무리 자신의 출신에 대해 숨기려 들어도, 그들은 마담 쟈니에트의 아카데미 안에서 지내고 있었다.
마담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마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담 쟈니에트는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이 데클란이 어느 귀족의 사생아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랬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갔군.’
마담 쟈니에트는 신경질적으로 이를 아드득 갈았다.
어제 데클란은 검술 교사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데클란은 다른 이들에게 보란 듯이 마력을 선보였다.
당시 마차 정거장에는 많은 학생이 모여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마력을 보였으니, 이제 모두가 데클란의 마력 혈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테다.
어쩌면 마담 쟈니에트 외에도 다른 이들이 데클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발 벗고 나설지도 모른다.
당장 인페르나 남작이 그렇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가장 먼저 데클란의 아버지에 대해 알아내서 그 귀족을 협박하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돈 좀 뜯어내 보려고 했는데.
결국 그러지 못하고 이 꼴이 나게 되었다.
“너 때문에 큰 손해를 봤잖아!”
쾅!
마담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비서에게 괜히 화풀이했다.
비서는 또다시 마담에게 얻어맞을까 봐 두려워 벌벌 떨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
마담은 조금 전 집무실에 들어왔던 학생을 떠올렸다.
이름이 엔리라고 했던가.
남자아이치고 제법 곱게 생긴 녀석이었다. 속눈썹이 길고 목소리의 톤이 높은 것이 여자처럼 느껴졌다.
이를테면 기생오라비 같은 아이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보았던 학생의 외양을 떠올리던 마담은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레사 공녀.”
“예, 예에?”
“방금 그 애, 이레사 공녀를 제법 닮지 않았어?”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안절부절못한 채 마담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비서는 일단 무작정 마담의 말에 동의했다.
여기서 아니다, 혹은 잘 모르겠다, 라고 말해봤다 마담의 심기만 거슬리게 할 뿐이었다.
마담은 그런 비서를 냉안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레사 공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마담 쟈니에트는 예전에 자신이 만났던 이레사 공녀를 떠올렸다.
마담 쟈니에트는 예전부터 귀족들과의 연줄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사교계 파티에 나섰다.
그녀는 특히 후작이나 공작 정도 되는 높은 귀족들이 참석하는 파티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비쳤다.
그리고 몇 년 전, 마담 쟈니에트는 이레사 공작을 만나게 되었다.
“보세요, 이레사 공작님이에요. 그 옆에 공녀님도 같이 오셨네요.”
마담 쟈니에트와 친한 백작 부인이 그녀에게 속닥속닥 귓속말했다.
그 당시에 귀족들 사이로 이레사 공작과 그의 딸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지금의 이레사 공녀는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것이다.
“마담도 그 소문 들어보셨죠? 이레사 공녀님이 실종된 뒤로 공작님이 반쯤 실성하셨다는 거. 그래서 공녀님과 닮은 평민 여자아이를 잡아와서 자기 딸 노릇을 하게 시켰다는 거?”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마담 쟈니에트는 그 누구보다도 귀족들 사이에 퍼지는 소문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저 붉은 머리카락을 보세요. 그리고 녹색 눈동자도요. 누가 봐도 이레사 공녀님과 똑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백작 부인의 말을 들으며, 마담 쟈니에트는 이레사 공작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대여섯 살이 된 아이였다.
석류처럼 매혹스럽고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은 이레사 공작 가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특유의 징표였다.
거기다가 아이는 전 공작부인처럼 에메랄드를 닮은 두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 누가 봐도 아이는 이레사 공작의 딸처럼 보였다.
소문을 들어 아는 귀족들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이레사 공작이 정말 실성한 게 아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몇몇 귀족들은 이레사 공작이 해선 안 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마담 쟈니에트는 그런 도덕적인 관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남녀 공학 아카데미를 세울 걸 그랬어. 그러면 이레사 공녀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아이를 이레사 공작에게 팔아먹을 수 있었는데.’
평민 출신으로 추정되는 가짜 이레사 공녀를 바라보며, 마담 쟈니에트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이레사 공녀가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군.’
안 그래도 최근 사교계에서 이레사 공녀와 관련해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바로 이레사 공작이 가짜 공녀를 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레사 공녀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지 한 반년이 넘었나?’
만일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레사 공작은 지난 반년 동안 이레사 공녀 없이 지내왔을 테다.
아마 자신의 잃어버린 딸을 떠올리며 반쯤 미쳐가고 있었겠지…….
‘잠깐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순간 마담 쟈니에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생각이 있었다.
만일 이레사 공작이 자신의 딸을 대체할 대역을 찾고 있다면.
만일 그렇다면.
‘……내가 이레사 공작에게 공녀의 대역을 구해다 주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