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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79)화 (79/177)

79화

마담 쟈니에트?

그 이름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담 쟈니에트라면 바로 이 오스첸스 아카데미의 교장이잖아?

“마담 쟈니에트가 저를 찾는다고요? 로지에 도련님이 아니라요?”

“그래. 지금 기다리고 계시니까, 어서 날 따라와.”

여자는 다짜고짜 내 팔목을 잡고 끌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당황한 나는 엉겁결에 크게 소리를 쳤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이거 놔요!”

“누군데 제 시종을 데리고 가려는 거지요?”

뒤에서 로지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가에서 들려오는 소란 소리를 듣고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직선적인 눈빛을 보냈다.

“로지에 도련님!”

“제 시종에게서 손 떼시죠.”

내 곁으로 저벅저벅 다가온 로지에가 여자에게 고했다. 그의 눈매는 날카롭게 올라가 있었다.

평소 부드러운 미소만 짓고 다니는 로지에가 저런 표정도 할 수 있었구나.

나는 낯선 로지에의 모습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저렇게 정색하는 것을 보니 정말 인페르나 남작을 쏙 빼닮은 것 같기도 하고.

로지에를 본 여자는 허겁지겁 내 팔에서 손을 떼어냈다.

“인페르나 영식, 죄송합니다. 안에 계신 줄 몰랐습니다. 다른 귀족 영식들과 라운지에 계신 줄 알았…….”

“제가 안에 있든지 없든지 간에 제 시종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하실 수 없습니다. 참으로 무례하군요.”

로지에는 그러면서 내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갔다. 마치 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쪽은 누구신데 이 늦은 시간에 제 숙소에 마음대로 들어오시는 거죠?”

로지에가 딱딱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물었다.

이에 여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는 마담 쟈니에트의 비서입니다.”

비서?

여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담 쟈니에트의 비서가 여긴 무슨 일이지?

아니, 애초에 마담 쟈니에트가 왜 날 찾는 거지?

마담 쟈니에트는 귀족 학생들만 편애하기로 아주 유명했다.

그녀는 가끔 교내를 지나다니곤 했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귀족 학생들에게 아첨을 늘어놓으며 알랑방귀를 뀌곤 했다.

반면 그녀는 평민 학생들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했다. 그들이 인사를 올려도 못 본 것처럼 무시하며 지나치곤 했다.

그런 마담 쟈니에트가 평민 학생인 나를 찾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마담 쟈니에트가 엔리 군을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엔리 군을 데리고 가겠습…….”

“누구 마음대로?”

로지에가 다시 한번 비서의 말을 뚝 끊었다.

‘헉.’

나는 소리 없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만 하던 로지에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른 이를 다그치는 로지에가 낯설기만 했다.

비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그게, 마담 쟈니에트가 엔리 군을 불러오라고 하셔서요.”

“아무리 마담 쟈니에트라도 내 사람을 함부로 불러갈 자격이 없습니다.”

로지에가 땅땅 못을 박듯 그렇게 굳건히 고했다.

“이 아이는 내 사람이에요. 마담 쟈니에트의 소유가 아니라, 내 소유라고요.”

“인페르나 영식, 그게…….”

“벌써 시간이 늦었습니다. 용건이 있거든 내일 다시 찾아오도록 해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한 로지에는 비서를 향해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비서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가고 말았다.

로지에는 비서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숙소의 문을 쾅 닫아버렸다.

철컥, 철컥.

숙소 문을 두 번이나 걸어 잠근 로지에는 그제야 나를 향해 물었다.

“괜찮아, 사샤 양?”

“아, 네에…….”

“아까 그 비서가 사샤 양의 팔을 세게 잡아서 아프지는 않았어? 어디 보자.”

“그, 그러세요…….”

얼떨떨하게 굳어 있던 나는 로지에에게 순순히 내 팔을 내밀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머리가 빙빙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아까 로지에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내 사람.

로지에는 분명 나를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 말 자체에는 의미심장한 뜻이 없었다. 그저 문자 그대로 ‘자기 사람’이란 뜻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로지에의 시종이니까.

그렇지만 그 말을 직접 두 귀로 듣자니 기분이 묘했다.

뭔가…… 가슴 한구석에 깃털 하나가 팔랑팔랑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던가?

어딘가가 이상하게 기분 좋게 간질간질한다던가?

“사샤 양? 왜 말이 없어?”

“아.”

로지에의 목소리에 나는 공상에서 깨어났다.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진 거야?”

“아, 그게…….”

기분이 나빠진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째선지 자꾸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 그 비서가 했던 일에 대해서 내가 마담 쟈니에트에게 공식적으로 항의하도록 할게. 그리고 이 늦은 시간에 사샤 양에게 함부로 오라 가라 한 것에 대해서도.”

로지에는 내가 비서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야. 아무리 마담 쟈니에트라도 이렇게 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그나저나, 마담 쟈니에트가 왜 저를 찾는 걸까요?”

아까 비서가 떠나기 전에 물어볼 걸 그랬다.

마담 쟈니에트는 무슨 이유로 나를 부른 것일까? 그것도 이 늦은 시각에?

“아마 데클란 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내 의문에 대신 대답하듯 로지에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데클란 때문에요?”

“그래. 아까 사샤 양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내게 그랬잖아. 데클란 군이 떠나기 전에 무언가 사고를 치고 간 것 같다고.”

“흐음, 그렇긴 하죠…….”

로지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지금 온 아카데미는 데클란의 이야기로 들썩했다.

아카데미에 남은 학생들은 데클란이 검술 교사에게 결투를 신청한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만일 사건의 진위를 가리고 싶은 거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검술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들을 불러서 물어보면 되는 거잖아요. 왜 저를 부르는 거죠?”

“그러게. 그건 조금 이상하네…….”

“으음…….”

나와 로지에는 둘 다 깊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던 나는 ‘에라, 모르겠다!’를 외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 일단 데클란에게 줄 편지나 완성할게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내 방으로 가자.”

“네!”

그렇게 나는 로지에와 함께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쩐지 자꾸만 로지에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기분 탓이려나.

* * *

다음 날 아침.

로지에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기고 있는데, 또 누군가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바로 어제 그 비서가 또 얼굴을 내밀었다.

어째선지 비서의 눈가가 조금 퉁퉁 부어있었다. 마차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밤사이에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 건가?

“……엔리 군을 데리러 왔습니다, 인페르나 영식. 마담 쟈니에트가 엔리 군을 뵙고자 합니다.”

비서는 이번에 무식하게 내 팔을 붙잡는 대신 로지에에게 먼저 꾸벅 인사를 올렸다.

“무슨 일로 데리고 가는 거죠?”

팔짱을 낀 채 문가에 선 로지에가 비서에게 물었다.

그러자 비서는 무책임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마담 쟈니에트가 시키는 대로만 할 뿐입니다.”

“흐음…….”

모호한 대답에 로지에는 불만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곧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엔리 군, 마담 쟈니에트와 이야기 끝내고 바로 돌아와야 해.”

“알겠어요, 도련님.”

그렇게 나는 비서를 따라 마담 쟈니에트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마담 쟈니에트, 엔리 군이 도착했습니다.”

“어서 들어와요.”

비서가 내 도착을 알림과 동시에 집무실 안에서 칼칼한 여자의 목소리가 곧장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마담 쟈니에트는 목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앉아라.”

집무실 안으로 발을 한 걸음 들이기가 무섭게 마담 쟈니에트가 나를 재촉했다.

“네가 엔리라고?”

마담 쟈니에트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자마자 질문이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엔리’라는 이름도 제법 익숙해진 터였다.

“엔리, 넌 데클란과 어떤 사이지?”

“친구인데요.”

이어지는 마담의 질문에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마담 쟈니에트가 나를 왜 여기로 불렀는지 조금은 예측할 수 있었다.

‘로지에 도련님의 말이 맞았어.’

아무래도 어제 마차 정거장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나를 부른 모양이다.

“넌 인페르나 영지에서 왔다고 했지? 데클란도 마찬가지고. 그럼 둘은 여기 오기 전부터 알던 사이였나?”

“네, 원래 이웃사촌이었어요.”

“그래? 그럼 두 사람은 갓난아기 때부터 서로 알던 사이인 건가?”

“어…… 그건 아니에요. 저희는 친구 된 지 2년 정도 됐는데…….”

이어지는 마담의 질문에 나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듯이 묻는 거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책상 위로 팔꿈치를 대고 앉은 마담 쟈니에트가 나를 향해 예리한 시선을 던졌다.

“같은 마을 출신에, 그것도 바로 옆집에 살던 사이라면서? 그런데 왜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

왜 이렇게 따지듯이 묻는 거야?

마담의 무례한 질문 세례에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무슨 자기 부하라도 되는 줄 아나?’

빈정이 상한 나는 일부러 마담이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녀에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실직고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그녀에게 저렴하게 이용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부모에게 입양되어 마을을 옮겨왔다고 이야기하는 대신, 이렇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친해지기 싫어서요.”

이러한 내 성의 없는 대답에 마담 쟈니에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녀의 기분이 상하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녀가 내 기분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너, 어제 마차 정거장에서 있었던 일 들었지?”

잠시 나를 찌릿 노려보던 마담 쟈니에트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오기가 돋은 나는 또다시 대충 대답하기로 했다.

“아니요. 못 들었는데요.”

“데클란은 네 친구 아니니? 설마 마중 나가지도 않은 거야?”

마중 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데클란이 자기 출발 시간을 이상하게 알려주는 바람에 계획이 꼬여버리고 말았지만.

하지만 나는 마담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담 쟈니에트는 나와 데클란이 얼마나 친한 사이인지 가늠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반대로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저 사실 데클란이랑 별로 안 친해요.”

“거짓말하지 마라. 선생들 말로는 네가 데클란이랑 딱 붙어 다닌다며?”

뭐야, 설마 교사들에게 나와 데클란에 대해 캐묻기라도 한 건가?

마담의 말에 나는 더더욱 기분이 상한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죽거렸다.

“그거야 저나 데클란이나 같은 고향에서 와서 그런 거예요. 사실 별로 안 친하다니까요.”

그러자 마담 쟈니에트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야, 그럼 넌 데클란이 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몰랐단 말이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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