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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78)화 (78/177)

78화

“…….”

인페르나 남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데클란을 바라보았다.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이 아이는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파수꾼이란 영지를 순찰하며 수상한 외부인을 조사하고 범죄 활동을 단속하는 직업이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동경하는 기사직과 달리, 파수꾼은 주로 평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파수꾼이 워낙 험하고 고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온종일 말을 타고 영지를 순찰하거나, 수상한 자가 나타났다는 제보에 따라 숲에 숨어 잠복하며 범죄자를 솎아내는 일을 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바깥을 쏘다녀야 했다.

직업의 특성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임무에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간혹가다 일손이 부족해지면 휴일도 반납하고 일해야 했다.

대부분 귀족 출신으로 이루어진 기사들은 이런 파수꾼의 의무를 꺼렸다.

그래서 대부분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은 돈을 주어 용병을 고용해 그들이 파수꾼 역할을 하도록 했다.

당장 인페르나 영지의 파수꾼들 모두 평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인페르나 남작은 데클란이 아직 어려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말을 타고 다니는 파수꾼을 보고 그들을 동경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특히 데클란은 승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차를 좋아하는 것이지만…… 인페르나 남작은 거기까지는 잘 몰랐다.

“데클란, 다시 생각해봐라.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파수꾼이 되고 싶은 거지?”

“말씀드렸잖아요. 영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전보다 더더욱 굳건해진 어조의 음성이었다.

아무래도 데클란은 마음을 제대로 굳힌 것 같았다.

“그래, 네가 파수꾼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이해했다.”

인페르나 남작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넌 이제 겨우 11살짜리 꼬마다. 내년에 성인식을 치르고 견습 파수꾼이 되어도 늦지 않아.”

“아니요, 지금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데클란은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그대로 빼어냈다.

“왜냐하면 전 이런 걸 할 수 있거든요.”

그러자 검이 웅웅거리며 찬란한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건……!”

인페르나 남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력과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남작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데클란은 검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어떻게?

“너…… 마력을 쓸 수 있는 게냐?”

“네.”

“허.”

남작은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데클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귀족이었나?”

데클란은 검을 도로 검집 안으로 집어넣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맞으면 맞는 거고, 틀리면 틀린 거지. ‘그런 것 같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저도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 말해주신 적이 없어서요.”

“흠.”

손등으로 아래턱을 괸 인페르나 남작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사실 인페르나 남작은 마음만 먹으면 데클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찾을 수 있었다.

인페르나 남작은 이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이었다. 그런 그녀는 이 영지에 사는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비롯한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데클란의 어머니에 대해 자료를 찾아달라고 집사에게 간단한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번에 사샤에 대해 조사할 때와 같이 말이다.

“네 아버지가 누구인지, 내가 알아봐 줬으면 좋겠느냐?”

인페르나 남작의 질문에 데클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남작은 의외라는 듯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어째서? 네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 게냐?”

“궁금하긴 해요.”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데클란은 여태껏 일평생 자신의 출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이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아빠도 없는 것’이라고 조롱할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그는 어째서 나를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걸까.

어머니는 왜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아주 어렸을 때 데클란은 얼굴 모를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려두고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그 이름 모를 남자를 증오했다.

만일 자신의 곁에 아버지가 있었더라면 자신이 조금 더 용감하고 멋진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데클란은 점점 깨달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였다.

‘사샤.’

그 아이만으로 족했다.

그 외에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찾고 싶지는 않아요.”

데클란이 말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믿고 기댈 수 있는 친구와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데클란의 세계에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를 남자가 들어올 공간은 더 이상 없었다.

인페르나 남작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은 참 희한한 놈이구나.”

참 이상한 아이였다.

아직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부릴 법도 한데, 데클란은 그러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필요 이상으로 의젓했다. 게다가 의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당장 이 영지의 주인인 인페르나 남작을 대하는 이 태도를 봐라.

아무리 안면을 튼 사이라지만, 이렇게나 긴장감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니.

“그래서, 절 견습 파수꾼으로 받아주실 건가요?”

데클란은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 만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득했다.

“오냐.”

인페르나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를 볼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현 파수꾼 중 마력을 쓸 수 있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마력을 쓸 수 있는 데클란이 파수꾼에 합류하게 되면 분명히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남작이 순순히 자신의 요구를 승낙하자, 데클란이 손깍지를 끼며 지그시 힘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견습 파수꾼이 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뭐?”

이 말에 남작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데클란은 지금 남작에게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남작이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조건을 걸겠다니.

‘발칙한 것.’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다는 듯이 이렇게 당당히 나올 줄이야.

그렇지만 어째선지 남작은 그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데클란이 건방지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완고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인페르나 남작은 속는 셈 치고 데클란의 말을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무슨 조건이냐?”

그리고 데클란의 입에서 나온 조건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었다.

“견습 파수꾼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게 마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내가 왜 너에게 마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지?”

남작은 일부러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나는 이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이다. 너 같은 평민 아이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다.”

“후회하실 텐데요.”

남작이 말을 마치자마자 데클란이 입을 열었다.

마치 남작이 그런 말을 할 것을 모두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남작의 눈썹이 호선을 그리며 휘었다.

“후회? 내가 뭘 후회한다는 거지?”

“전 남작님보다 더 강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저처럼 강한 마력을 보유한 인재를 이렇게 쉽게 놓치실 건가요?”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믿고 싶지 않으시면 믿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남작님은 손해를 보고 계신 겁니다.”

“하.”

데클란의 말에 남작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보라지.’

남작은 데클란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데클란은 작고 여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는 불안감에 상시 시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입술을 꾹 닫고 있던 게 바로 데클란이었다.

이를테면 어두운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남작을 마주하고 있는 데클란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녀와 같은 선상에 서서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래, 좋다.”

잠시 뒤, 인페르나 남작의 입술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놈에게 마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의자 양팔에 팔을 느슨히 걸친 인페르나 남작이 데클란을 지긋이 주시하며 말했다.

“대신 제대로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넌 파수꾼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 알겠느냐?”

“네, 꼭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클란의 두 눈망울에 광채가 띠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품어온 진주를 선보이는 조개와도 같은 환한 눈빛이었다.

인페르나 남작은 그렇게 환히 웃는 데클란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네놈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한 번 해보도록 하자.’

데클란이란 이 녀석은 생각보다 더 물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대단한 녀석이 되겠지.

인페르나 남작은 자신의 직감에 믿음을 걸기로 했다.

* * *

[데클란에게.

데클란 넌 바보야. 이 멍청이. 말미잘!

그래서, 인페르나 영지에는 잘 도착했니?

어떻게 나와 로지에 도련님에게 틀린 출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어?

그리고 도대체 마차 정거장에서 무슨 짓을 하고 간 거야?

아까 저녁 식사를 가지러 식당에 갔는데 다들 네 이야기를 하고 있어!

슬프게도 난 너와 로지에 도련님 외에 친한 사람이 없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어볼 수 없었어.

그런데 배식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너 마차 정거장에서 검술 선생님에게 시비 걸었다면서?

그것도 모자라 선생님에게 결투 신청을 했다니!

그리고 심지어 검술 선생님을 이겨버렸어?

너 도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해! 안 그러면 네가 나한테 마차 출발 시간 잘못 말해준 거 영원히 용서 안 해 줄 거야!

참고로 로지에 도련님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셨어. 너랑 작별 인사 못 했다고 서운하다고 말이지.

내가 도련님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고생한 거 알면 어서 좋은 말할 때 빨리 답장해. 안 그러면……]

쾅쾅!

거기까지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나는 만년필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왔어?”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훌쩍거리고 있던 로지에가 맹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요? 제가 나가서 볼게요.”

로지에는 한참 동안 엉엉 우느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그런 로지에더러 문을 열고 밖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와 로지에가 지내는 숙소의 문을 열자, 한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엔리 군?”

여자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물었다.

“네, 제가 엔리인데요. 무슨 일이죠?”

“마담 쟈니에트께서 널 찾고 있단다.”

여자가 내게 불쑥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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