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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77)화 (77/177)

77화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숨기며, 데클란은 아무런 말 없이 사샤와 로지에를 따라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그 뒤로 데클란은 매일 밤 연무장에서 검술 연습에 목숨을 걸었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을 다져놓아야 해.’

마력을 사용하려면 힘이 많이 든다.

당장 비실거리는 로지에를 봐라. 체력이 어찌나 약한지 마력을 사용할 때마다 픽픽 쓰러진다고 했다.

반면 인페르나 남작은 마력을 원할 때마다 끌어내어 사용할 수 있었다.

데클란은 인페르나 남작처럼 되고 싶었다.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인페르나 영지로 돌아가자.’

매일 밤늦게까지 계속해서 검술을 갈고 닦고 단련하며, 데클란은 생각했다.

이곳 아카데미의 검술 교사는 실력이 형편없는 자였다.

아카데미의 교장은 실력 좋은 검술 교사를 귀족 학생들에게 붙여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평민 학생들은 아카데미 생활 내내 변변찮은 검술 실력을 갖춘 교사에게서 배워야 할 테다.

여기서 이렇게 남아서 검술을 훈련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물론 사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좋았다.

그렇지만 사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데클란,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도 검술 연습을 해보면 어때?’

사샤가 검을 잘 못 쓴다는 게 아니었다.

사샤 본인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다만 데클란이 사샤의 검술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간 사샤는 데클란의 유일한 검술 상대였으니까.

인페르나 영지에 있을 때부터 데클란은 사샤와 함께 검술을 익혔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온 뒤로 두 사람은 늘 같이 검술을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데클란은 사샤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검을 휘두르고, 얼마나 강하게 검을 찔러 들어오는지 전부 다 꿰고 있었다.

‘가끔 사샤가 내 검을 맞춰주느라 다른 시도를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데클란은 더 강해지고 싶었다.

더 화려한 검술을 익히고, 더 꼼꼼하게 검을 다루고, 보다 더 확실한 일격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아카데미를 떠나야 했다.

자신을 무시하며 조롱하는 검술 교사 밑에서 더 이상 검술을 배울 수 없었다.

데클란에게는 제대로 된 교사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인페르나 남작님.”

—과 같은 사람 말이다.

“데클란.”

인페르나 남작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앞에 선 데클란을 내려다보았다.

장소는 인페르나 남작가 저택의 집무실.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데클란은 자신의 집에 잠시 들러 어머니와 재회했다.

그러고 나서 데클란은 인페르나 남작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인페르나 남작가로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 인페르나 남작은 꽤 화가 난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잘하는 짓이다. 아카데미 교사에게 검을 휘둘러?”

인페르나 남작이 데클란에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오스첸스 아카데미에서 교장이 직접 친필로 보내온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인페르나 남작가에서 후원하시는 데클란 학생이 본교의 교사에게 검을 휘두르며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교사의 정신적 상해는 물론이고, 현장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크나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데클란 학생이 인페르나 영지에 도착하거든, 당장 이와 관련하여 조치를 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인페르나 남작가가 후원하는 평민 학생은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이미 입학해 있는 엔리 학생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일단은 봐주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편지는 하인이 전달해 온 것이 아니라, 값비싼 마법을 써서 하루 만에 아카데미에서 인페르나 남작가로 도착했다.

편지의 내용이 얼마나 급박한 건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인페르나 남작은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 자신의 눈이 삐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데클란이 검을 들고 교사를 위협했다고?

‘하긴, 애초에 그 자식은 자기 친구 등을 찌른 놈인데…….’

인페르나 남작은 데클란을 아카데미로 보낸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남작이 데클란을 아카데미로 보낸 건 딱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 로지에가 데클란을 좋아했다.

만일 데클란 혼자 인페르나 영지에 남게 되면, 로지에가 슬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데클란을 아카데미로 보냈다.

그리고 두 번째. 데클란은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아카데미로 그를 보내어 보다 더 체계적인 검술을 배우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데클란 이놈이 난데없이 아카데미를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나.

‘그래, 인페르나 영지에 혼자 있는 제 어미가 보고 싶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인페르나 남작은 별다른 생각 없이 데클란의 퇴학 계획에 찬성표를 던졌다.

검술 공부를 못하게 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오겠다는 아이를 막을 수 있을 리가.

그랬는데.

“입이 있으면 뭐라고 좀 말을 해 봐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검술 교사한테 검을 휘두른 거냐?”

인페르나 남작은 데클란에게 엄하게 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인페르나 남작가를 모욕했습니다.”

“뭐?”

“저같이 재능 없는 학생을 아카데미로 보낸 인페르나 남작가가 돈 낭비를 했다고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검술 교사에게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사실이었다.

데클란이 검술 교사를 향해 검을 휘두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교사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그 교사가 지껄이던 말을 다시 생각하니 아직도 분노가 차올랐다.

“헛소리.”

인페르나 남작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이에 데클란의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

억울했다.

“남작님,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마부에게도 물어보세요.”

그 현장에는 인페르나 남작가의 마부도 있었다. 그가 데클란의 무죄를 변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차 정거장에서 데클란을 기다리고 있던 마부는 시끌시끌한 소리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마부는 검술 교사와 데클란의 대화를 들었고, 데클란이 교사를 향해 검을 겨누는 것과 그 뒤의 사건 경위를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인페르나 남작이 조금은 야속해지려던 순간.

“누가 네 말을 못 믿겠다더냐? 내 말은, 그 검술 교사란 놈이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게다.”

남작이 다시 혀를 차며 데클란을 빤히 주시했다.

“데클란 네가 재능이 없다? 개소리도 참 신선하게 지껄이는군. 그 검술 교사는 뭐하던 자식이냐? 세상을 보는 눈이 아주 쥐구멍보다 작은 모양이로구나.”

“남작님…….”

자신을 두둔해주는 남작의 말에 데클란은 감동하고 말았다.

데클란은 줄곧 인페르나 남작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작은 간혹 이렇게 데클란을 지지하곤 했다.

이런 작은 친절이 데클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래서, 데클란 네가 그 검술 교사한테 결투를 신청했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느냐?”

데클란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하는 인페르나 남작의 두 눈이 번뜩거렸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래?”

데클란의 대답에 남작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잘했다.”

남작의 입에서 그런 짧은 칭찬이 흘러나왔다.

그게 다였다.

아무리 그래도 교사에게 검을 휘두를 수 있냐는 질타도 없었고,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결투를 신청했냐는 타박도 없었다.

“……절 혼내지 않으시나요?”

“왜, 혼나고 싶으냐?”

데클란의 질문에 남작이 그를 흘끔거리며 반문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혼날 줄 알았다.

아무리 인페르나 남작가의 명예를 위한 행동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 누구도 아닌 교사를 향해 검을 겨눈 행위인데.

“만약 네가 졌으면 혼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겼으니 그걸로 됐다.”

“…….”

데클란은 인페르나 남작의 도덕관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인페르나 남작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쨌든, 인페르나 영지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 보통 이 영지를 떠난 사람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으려고 하는데…… 넌 참 이상한 놈이구나.”

그러면서 남작은 데클란에게 자신 앞에 놓인 다른 집무실 의자를 권했다.

데클란은 그녀의 권유를 사양하지 않았다.

“그래서, 멍청한 교사한테 검 좀 휘두르고, 아카데미도 화끈하게 때려치웠겠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인페르나 남작이 데클란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넌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할 계획이냐?”

사실 이건 인페르나 남작이 아주 예전부터 데클란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클란이 아카데미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부터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건 서면이 아닌 대면으로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제 데클란과 면대면으로 만났으니 물어볼 수 있다.

‘이제 그냥 제 어머니와 조용히 지내겠다고 하려나?’

인페르나 남작이 아는 데클란은 제 어머니를 끔찍이 아끼는 효자였다.

아카데미로 가서 어머니와 떨어져 살다 보니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데클란과 동갑인 아들이 있는 입장에서 남작은 그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니 인페르나 남작은 데클란이 이대로 검술이고 뭐고 전부 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데클란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인페르나 남작가의 파수꾼이 되고 싶습니다.”

“……뭐?”

인페르나 남작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이 녀석이 뭐라고 한 거지?

“파수꾼? 네가?”

“네.”

“파수꾼이라니, 갑자기 왜?”

“파수꾼이 되면 영지의 경계를 지킬 수 있잖아요.”

데클란이 아무런 스스럼도 없이 대답했다.

“전 인페르나 영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사는 귀족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안위를 위해 산다.

그러나 데클란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데클란이 지키고 싶은 존재는 귀족 따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사샤를 노리고 있어.’

비록 구체적인 앞뒤 사정은 모르지만, 데클란은 사샤가 누군가를 피해 아카데미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샤는 데클란에게 자신이 방학 동안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분명히 사샤를 뒤쫓고 있는 누군가 때문일 테다.

알 수 없는 위협 때문에 사샤가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건 싫었다.

안전하지 못한 환경 때문에 사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싫었다.

데클란은 사샤가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을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염려 없이 숲으로 가서 나무를 타고, 계곡으로 놀러 가 수영을 하고, 야생에서 채취한 신선한 채소들로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사샤가 지금까지 인페르나 영지에서 누렸던 평화로움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데클란은 그녀의 곁에서 그 평화로움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데클란이 아카데미에서 배운 검술은 전부 귀족들을 지키기 위한 기술이었다.

데클란이 정말 배우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데클란이 시간 낭비를 한다고 했던 검술 교사의 비꼼은 정적으로 작용했다.

데클란은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인페르나 영지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습니다. 절 견습 파수꾼으로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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