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데클란과 검술 교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숨을 거꾸로 삼켰다.
‘어, 어떻게 교사에게 저런 말을!’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도대체 뭐야?’
전후 상황을 모르는 학생들이 보기에 지금 데클란은 교사에게 막말하며 대드는 것으로 보였다.
“데클란 군!”
발끈한 검술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올렸다.
“말버릇이 없구나, 데클란 군! 내가 널 특별히 생각해서 말을 하는 건데!”
데클란을 향해 한 발자국 성큼 다가선 검술 교사가 그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인페르나 남작가는 돈이 썩어 넘쳐나는 모양이로구나. 너 같은 것을 후원하….”
“선생님.”
데클란이 다시 한번 검술 교사의 말을 막아섰다. 한 치의 거침없는 움직임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전 선생님 때문에 아카데미를 그만두는 게 아니에요.”
“뭐?”
“아, 그렇다고 선생님의 말씀이 다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선생님 말씀대로 제가 이대로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건 시간 낭비가 맞아요.”
데클란은 검술 교사를 향해 또박또박 고했다.
“그래서 제 소중한 시간을 더 귀한 곳에 사용하려고요.”
데클란은 자신의 짐가방에 매달아 둔 검을 꽉 잡았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 위로 데클란의 짐가방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데클란이 검을 쥐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의 장갑을 벗어 던졌다.
—툭.
데클란이 던진 장갑은 그대로 검술 교사의 어깨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데, 데클란 군……!”
검술 교사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장갑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행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결투 신청합니다, 선생님.”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땅을 밟아 선 데클란이 견고한 목소리로 선포했다.
순간 마차 정거장이 시끌시끌하게 달아올랐다.
“세, 세상에! 저 자식, 검술 선생님에게 결투를 신청했어!”
“미친 거 아니야? 저 어린 녀석이 도대체 뭘 하겠다고!”
학생들이나 마부들이나 모두 상관할 것 없었다. 정거장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데클란에게 모여들었다.
마차에 올라타 출발하려던 찰나의 학생들은 급히 마부에게 마차를 멈추라고 아우성쳤다.
그 누구도 이런 재미난 구경을 함부로 놓치려 하지 않았다.
‘쯧.’
끓어오르는 수프처럼 달아오른 분위기를 실감하며, 데클란은 혀를 찼다.
결국 저질러버렸다.
이래서 검술 교사를 최대한 피하려고 했던 건데.
검술 교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데, 데클란 군!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선생님이 수업 시간 때 직접 가르쳐주셨잖아요. 상대방을 향해 장갑을 던지는 건 결투 신청이라고.”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꽉 잡은 데클란이 이죽거렸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요, 선생님. 인페르나 남작가의 돈 낭비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데클란 군, 정말 머리가 어떻게 돌아버린 게 분명하구나.”
검술 교사는 땅 위로 떨어진 데클란의 장갑을 들어 올렸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아무리 데클란의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그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런 그가 교사를 이길 수 있을 리가.
데클란을 얕잡아 본 검술 교사는 한숨을 내쉬며 데클란에게 장갑을 내밀었다.
“이건 못 받은 걸로 쳐주….”
그러나 검술 교사는 제 말에 온점을 찍지 못했다.
쾅!
데클란이 서 있던 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공기가 폭발하는 듯한 소음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륵—.
검술 교사는 자신의 볼을 따라 무언가 뜨끈한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얇게 배인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주변에 서 있던 인파들이 입을 틀어막으며 숨을 삼켰다.
검술 교사는 천천히 자신의 발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땅 위에 깊은 구멍이 움푹 패어있었다.
검술 교사의 발과 불과 한 손바닥 거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마, 마력!”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마력?
검술 교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그의 맞은편에 선 데클란이 손에 검을 쥔 채 교사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검 드세요, 선생님.”
데클란이 교사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데클란 군, 자네……!”
교사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데클란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 * *
검술 교사가 데클란에게 저녁 식사를 사 주었던 그 날 이후.
데클란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검술 교사는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처음에는 자신의 실력이 정말 형편없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클란은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사샤가 분명히 말했다.
‘데클란, 넌 커서 아주 훌륭한 기사가 될 거야.’
그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사샤와 검술 교사는 상반된 말을 했다.
사샤는 데클란에게 그의 검술 실력이 그 누구보다 빼어나다고 말했다.
반면 검술 교사는 데클란의 검술 솜씨가 형편없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두 번 고려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지.’
사샤가 옳았다.
데클란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사샤였다.
데클란이 믿어야 할 사람은 사샤였다.
왜냐하면.
데클란은 사샤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자신을 믿고 독려하고 지지해준 그 아이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데클란은 인페르나 남작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카데미를 그만두겠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사샤의 말이 맞았다.
데클란은 그날 이후 더더욱 검술 훈련에 매진했다.
방과 후, 데클란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샤와 함께 검술 연습을 했다.
날이 저문 뒤, 사샤는 로지에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며 숙소로 돌아갔다.
홀로 남겨진 데클란은 학생 식당으로 가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해결한 데클란은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해가 진 후의 연무장은 암흑처럼 깜깜했다. 등불 없이는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데클란은 그 점을 이용했다.
데클란은 모두의 눈을 피해 혼자 검술을 연습했다.
‘확실해. 난 마력을 쓸 수 있어.’
로지에가 선물로 준 진검을 휘두르며, 데클란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번에 케쉬키와 마주쳤을 때 내가 나무를 부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어.’
데클란은 자신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온 케쉬키에게 주먹을 날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나무 몸통 위에 데클란이 날린 주먹이 그대로 박혀 들어갔다.
그건 결코 아이의 몸에서 나올 법한 힘이 아니었다.
그 뒤로 데클란은 온몸에 강렬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난 뒤, 데클란은 자신이 겪었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학기 초반 검술 수업 때 교사가 마력 혈통을 이어받은 평민들이 겪는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교사의 설명을 들은 데클란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그때 겪은 건 마력 증폭 증상이었어.’
모든 설명이 맞아 들었다. 교과서 그대로였다.
틀림없었다.
데클란은 마력 혈통을 이어받은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항상 내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걸 꺼리셨지.’
어머니는 데클란에게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의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소문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가 원래 수도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셨어.’
데클란의 어머니는 본래 인페르나 영지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왕국의 수도에서 태어나 살던 사람이었다.
한 여자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인페르나 영지로 내려왔다. 단 하나의 짐가방을 들고.
그 갓난아기는 데클란이었고, 그 여자는 데클란의 어머니였다.
마을 사람들은 수도에서 살던 데클란의 어머니가 왜 이런 변방 지역으로 내려오게 된 것인지 늘 궁금해했다.
게다가 데클란의 어머니는 묘하게 기품이 있고 우아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투박하고 거친 마을 사람들과는 이질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데클란의 어머니는 할 일 없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저 여자 차 따르는 솜씨가 아주 수준급이던데. 내가 보니까 귀족들 모시던 여자 같아.’
‘게다가 바느질도 잘하잖아. 바늘 하나로 문양 하나 뚝딱 만들어내는 거 봤어? 분명 귀족 가문에서 일하던 하녀였을 거야.’
‘게다가 남편도 없이 아들 하나 달고 이곳에 내려왔다니. 분명히 어느 명망 높은 귀족 나리의 정부였던 모양이지.’
그런 마을 사람들의 뒷담화를 듣게 된 데클란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귀족의 사생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수업이 끝난 이후, 데클란은 아카데미의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는 마력 증폭 현상에 관한 문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평민들의 마력 증폭 현상을 다룬 책들은 모두 이렇게 보고했다.
[마력 혈통이 강할수록 마력 증폭 현상이 더 늦게 나타난다.]
마력 증폭 현상은 보통 대여섯 살 때 나타났다.
그러나 데클란은 11살이 되어서야 그 현상이 나타났다.
‘어쩌면 난 꽤 강력한 마력 혈통을 이어받았을지도 모르겠군.’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던 데클란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로지에와 사샤와 함께 마도구 상점으로 갔을 때였다.
사샤가 데클란에게 마력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을 때, 데클란은 일부러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괜히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로지에가 자신을 귀찮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도구 상점에서 검사를 받은 뒤, 데클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상점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데클란의 검사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점 주인을 이를 두고 ‘아마 마력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데클란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검사지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데클란이 가진 마력이 너무나 강해서이다.
‘내 아버지는 최소 후작, 아니면 공작 정도 되는 귀족이었을 거야.’
데클란은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