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검술 교사는 데클란이 디저트 접시를 다 비울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데클란 군.”
“네, 선생님.”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데클란은 기분이 한결 좋아 보였다.
행복해하는 데클란의 얼굴을 보자 검술 교사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 데클란 군.’
자신의 아랫입술을 꾹 깨문 검술 교사는 후,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데클란 군, 자네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나?”
“제 진로요?”
식사 후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데클란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연히 좋죠.”
데클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검술 교사는 데클란을 이끌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두 사람은 다시 말을 타고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마구간에 말을 도로 묶어둔 검술 교사는 데클란과 함께 그의 숙소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데클란 군이 이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지 얼마나 되었더라?”
“이제 반년이 다 되어 갑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군.”
검술 교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 정도 했으면 많이도 했다. 이제 그만 둬도 되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영문을 알 수 없는 교사의 말에 데클란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검술 교사는 그에게 아무런 틈도 주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데클란 군, 이번 학기만 하고 아카데미를 그만두는 건 어떻겠나?”
우뚝.
앞으로 걸어가던 데클란의 발걸음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뭐라고요?”
데클란은 찬찬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옆에 선 검술 교사를 바라보았다.
데클란의 두 눈동자가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데클란을 주시하며, 검술 교사는 속으로 이를 꽉 악물었다.
‘날 용서해라, 데클란 군.’
이건 다 너를 위해서다.
“솔직히 말하자면 데클란 군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재능이 없어.”
검술 교사가 억지로 독설을 내뱉어냈다.
“난 첫 수업 때부터 데클란 군을 눈여겨보고 있었어. 데클란 군처럼 실력이 형편없는 학생은 처음이었거든.”
“그게 무슨—.”
“데클란 군과 수업을 계속할수록 이런 생각이 들더군.”
검술 교사는 재빨리 데클란의 말을 끊었다.
“이런 가망 없는 학생이 인페르나 남작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아카데미를 다니는 건 너무하다, 라고.”
“선생님…….”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 서 있는 데클란의 얼굴은 핏기 없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검술 교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데클란 군이 아카데미를 계속 다니는 건 그야말로 거대한 돈 낭비, 그리고 시간 낭비다. 인페르나 남작가에서는 차라리 다른 학생을 후원하는 게 더 나아.”
“…….”
“그러니까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아카데미를 그만두도록 하렴. 그게 너와 널 후원하는 인페르나 남작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런 악의 가득 찬 말을 쏟아낸 검술 교사는 데클란을 흘끔 바라보았다.
“선생님…….”
데클란은 이미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공허하게 죽어 있었다.
적나라하게 쓰라린 감정이 담긴 그의 눈가는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선생님…… 갑자기 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데클란의 숨이 여러 번에 걸쳐 짧게 터져 나왔다.
검술 교사는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데클란 군. 이건 갑자기가 아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선생님께선 분명히…….”
울음을 억지로 삼킨 듯한 목소리가 검술 교사를 향해 터져 나왔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마력만 있으면 왕실 기사단에 갈 수 있을 실력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검술 교사는 어깨의 떨림을 막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싫었다.
해맑고 순진한 이 아이에게 새빨간 거짓말로 상처를 주는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렇지만 이 외에 이 아이를 살릴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검술 교사는 자신의 방식대로 데클란을 구하려고 했다.
“설마 내 말이 진짜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런 잔혹한 거짓말로 말이다.
“……예?”
“그걸 정말로 믿었나? 그 누가 봐도 이번 기수 신입생 중 데클란 군 자네가 제일 형편 없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만하게.”
검술 교사는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턱을 치켜들었다.
“이래서 젖비린내 나는 어린놈들이 제일 싫다니까.”
그런 신랄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검술 교사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망가뜨린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이런 형편없는 선생이라 정말 미안하다.
고작 이런 방법밖에 생각해내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렇게 검술 교사는 데클란을 향해 속된 용서를 빌며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나갔다.
“…….”
홀로 남겨진 데클란은 오도카니 그 자리에 굳어 섰다.
그는 눈꺼풀조차 깜빡거릴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울부짖고 싶었다. 고함을 지르며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새하얀 눈이 계속해서 내렸다. 살을 벨 것처럼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쳤다.
데클란은 달조차 뜨지 않은 깜깜한 밤의 어둠 속에 갇힌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저 멀리에 있는 기숙사 건물이 보였다.
아직 소등 시간이 되지 않아 등불이 켜져 있었다.
저 희미한 빛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면 되는데.
그러면 이 매서운 추위를 피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가서 따듯한 물로 몸을 녹이고 난로 앞에 앉아 피로를 풀다가 침대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털썩.
데클란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쓰러졌다.
옷자락 너머로 눈이 녹아 스며들었다. 차갑게 식은 옷감이 체온을 앗아갔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생히 느껴지던 추위가 이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검술 교사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말이 아직도 귓가에 앵앵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억누르고 있던 기분 나쁜 기억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더러운 사생아 주제에.’
자신을 향해 따가운 눈길을 보내오던 마을 사람들.
‘거지새끼 주제에 어디서 우리랑 같이 놀려고 해?’
자신에게 발길질하며 침을 뱉던 동네 아이들.
데클란은 항상 혼자였다.
그 누구도 데클란의 곁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데클란은 홀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책 속에서 데클란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그는 기사가 나오는 이야기를 제일 좋아했다.
데클란은 가끔 자신이 기사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에 불과했다.
데클란은 자신이 절대 기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항상 다르게 말했다.
‘데클란, 넌 커서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그 아이 옆에 있으면, 데클란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 옆에 있으면, 데클란은 그 누구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아이 옆에 있으면, 데클란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 아이와 같이 있으면, 데클란은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보고 싶었다.
“사샤.”
새파랗게 얼어붙은 데클란의 입술에서 기어코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아이가, 지금 당장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그 아이의 흑진주처럼 반짝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그리웠다.
숲의 녹음처럼 빛나는 녹색 눈동자를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 아이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지금 당장 듣고 싶었다.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보고 싶어졌다.
그 아이는 나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믿고 존경하며 따랐던 검술 교사에게 비참하게 거절당한 지금의 자신을 보며 뭐라고 말할까…….
그때였다.
“……데클란?”
저벅, 저벅.
눈을 밟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데클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태양처럼 강렬한 빛이 그의 두 눈을 덮쳤다.
데클란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데클란! 세상에, 너 여기서 뭐 해?”
사샤는 황급히 들고 있던 등불을 눈 위에 올려두고 데클란을 향해 달려왔다.
데클란 앞에 무릎을 꿇은 사샤는 두 손으로 데클란의 어깨를 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선생님이랑 밥 뭐 먹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왜 숙소 바깥에 나와 있어?”
“사샤…….”
그 뒤로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두 눈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어째선지 사샤의 얼굴을 보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바싹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이 절로 늘어졌다.
“데클란? 저기, 데클란!”
화들짝 놀란 사샤는 축 처진 어깨를 흔들며 외쳤다.
“이 바보야, 여기서 잠들면 얼어 죽어! 어서 일어나!”
그러나 데클란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수렁에 빠진 것처럼 스르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부엉이가 우는 늦은 밤.
인페르나 남작가 저택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가 잠든 저택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방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인페르나 남작의 집무실이었다.
“…….”
인페르나 남작은 찻잔에 든 허브차를 홀짝 마시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이미 취침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인페르나 남작은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파수꾼 중 한 명이 인페르나 남작을 찾아왔다.
“남작님, 최근 인페르나 영지에 사제가 나타났습니다.”
사제?
파수꾼의 말을 들은 인페르나 남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제가 인페르나 영지에 왜 찾아와?”
“신성력을 쌓기 위해 순방 중이라고 하더군요.”
“마물들이 판치는 인페르나 영지에서 신성력이 퍽이나 쌓이겠다. 요즘 개들도 그렇게 안 짖을 텐데.”
인페르나 남작은 투덜거리며 파수꾼에게 또 물었다.
“그래서, 그 사제란 놈이 사칭일 가능성은?”
“낮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마법을 사용하더군요.”
“흠.”
남작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시큰둥이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귀하신 사제께서 이곳 영지에 왜 오셨다느냐?”
“어떤 아이를 찾고 있답니다.”
우뚝.
찻잔을 만지던 인페르나 남작의 손이 그대로 멈춰 섰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