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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68)화 (68/177)

68화

데클란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검술 교사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과 식사 자리라니!’

데클란은 마음만 같으면 사샤랑도 같이 가자고 권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샤는 로지에의 저녁 식사를 꼭 챙겨줘야 한다며 같이 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 도련님은 자기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왜 혼자서 밥을 못 챙겨 드시는 거야?’

로지에의 숙소로 떠나는 사샤의 뒷모습을 보며, 데클란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데클란은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데클란은 검술 교사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별말을.”

검술 교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마구간으로 갔다.

그 안에는 검술 교사의 개인 말이 있었다.

“말을 타본 적 있나?”

검술 교사가 자신의 말의 고삐를 풀며 물었다.

데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승마를 할 줄 안다는 뜻인가?”

“네, 인페르나 남작님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렇군.”

인페르나 남작가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라더니, 남작과 직접적인 연이 있는 모양이구나.

이에 검술 교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의 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검술 교사는 데클란을 꽤 좋아했다.

데클란은 수업 시간 외에도 검술 교사를 자주 찾아왔다.

그는 검술 교사에게 수업 시간 때 배웠던 동작과 검술 기법에 대해 상세히 물어보거나, 자신이 생각해 낸 기술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검술 교사는 그런 데클란이 기특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술 교사가 담당하는 모든 학생 중 데클란처럼 열정이 넘치고 학구열이 강한 학생이 없었다.

오스첸스 남학교의 평민 학생들은 검술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검술을 배운 자들이라면 누구나 왕실 기사단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평민 학생들은 자신들이 어차피 왕실 기사단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왕실 기사단에 들어가려면 검술 실력에 빼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마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평민 학생들은 마력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찌감치 검을 포기했다.

그런 무기력하고 동기가 없는 학생들 가운데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바로 데클란이었다.

그런 데클란을 검술 교사는 마찬가지로 아꼈다.

검술 교사는 배움의 열정이 있는 데클란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수업 시간 외에 데클란에게 추가 교습을 해 주었고, 그에게 유용한 검술 교본을 빌려주곤 했다.

이를테면 데클란은 검술 교사의 애제자였다.

하지만 검술 교사는 최근 데클란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데클란 군의 아버지에 대해 알아 오라니.’

검술 교사는 교장인 마담 쟈니에트가 자신에게 내린 명령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마담 쟈니에트가 교사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건 처음이 아니었다.

돈 욕심이 많은 마담 쟈니에트는 학생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평민 학생 중 귀족의 사생아로 생각되는 자가 있으면 교사들을 시켜 신상 정보를 상세히 캐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정보를 이용해 귀족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곤 했다.

‘나는 당신이 배우자 몰래 낳은 사생아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만일 내 입을 막으려거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마담 쟈니에트는 이런 식으로 겁도 없이 귀족을 협박했다.

아무리 귀족들이라도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명성 높은 마담 쟈니에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쌓아놓은 부와 인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이 돈을 줄 테니 내 사생아의 존재에 대해 아무에게도 떠벌리지 마시오.’

귀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담 쟈니에트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러면 마담 쟈니에트는 만족하며 그들의 사생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곤 물러섰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마담 쟈니에트와 일을 해결한 귀족들의 행동이었다.

‘내 젊은 날의 실수로 태어난 사생아 놈 때문에 또 약점을 잡힐 수야 없지.’

귀족들에게 사생아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만일 자신의 배우자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점을 발각당하면 파혼당할 수 있었다.

이때 파혼의 사유는 100% 사생아를 둔 이에게 있으므로 위자료를 전부 부담해야 했다.

게다가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다른 귀족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기에 십상이었다.

‘혼외 자식을 두다니,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군.’

‘그렇게 안 보였는데 참 저질인 이로군. 앞으로 절대 같이 사업하지 않겠어.’

결론적으로 사생아를 가진 귀족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 쉬웠다.

그랬기에 귀족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사생아를 지우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들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자신의 사생아를 찾아다가 먼 곳으로 쫓아내 버렸다.

아니, 먼 곳으로 쫓아내는 건 정말 좋게 끝난 것이다.

몇몇 귀족의 사생아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정황상 국외로 추방당했거나, 아니면 불법 노예상에게 팔려 간 게 분명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여름 방학 이후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걱정이 된 검술 교사는 사라진 학생을 찾으러 나섰다.

그는 예전에 학생이 자신에게 알려준 집 주소를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자, 반쯤 정신이 나간 여자가 울부짖으며 튀어나왔다.

“내 아들! 내 아들 돌려줘! 내 아들을 어디로 데리고 간 거야!”

여자는 검술 교사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마침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급히 달려와 검술 교사에게 달려든 여자를 떼어냈다.

마을 사람들에게 제압된 여자는 계속해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내 아들 내놔! 내 아들이라고! 고작 네 잘난 혈통을 이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뺏어 갈 수 있는 아이가 아니야!”

이후 검술 교사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을 설명 들었다.

몇 주 전 괴한들이 찾아와 여자의 아들을 납치해갔다는 것이다.

괴한들은 모두 검으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게다가 하나 같이 체격이 크고 힘이 장사인지라 현장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손도 쓰지 못했다.

여자는 그대로 낯선 이들이 자신의 아들을 끌고 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아무래도 노예 상인 같았소.”

검술 교사에게 그날 있었던 사건을 들려주던 마을 사람이 그렇게 덧붙였다.

“노예 상인이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이 마을 촌장님이 젊었을 때 파수꾼이었거든. 그 괴한들 전부 팔에 특이한 문신이 있었는데, 노예 상단에 몸담은 놈들이 하는 징표라더군.”

그 이야기를 들은 검술 교사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이후 몇 명의 학생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카데미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은 검술 교사는 이러한 정황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마담 쟈니에트가 교사들을 불러서 특정 학생의 뒷조사를 요구할 때마다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뗐다.

‘마담의 돈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 학생들을 팔아넘길 수 없지.’

검술 교사가 입을 꾹 다물 때마다, 마담 쟈니에트는 그를 향해 삿대질하며 막말을 해댔다.

그렇지만 마담 쟈니에트가 아무리 검술 교사를 폭언으로 갈구고 협박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검술 교사는 결코 자신의 학생을 팔아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술 교사가 자신의 학생을 지킬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마담 쟈니에트는 검술 교사 대신 다른 담당 교사를 불러 학생의 뒤를 캐도록 했다.

검술 교사는 다른 교사들에게 제발 학생의 뒤를 캐지 말라고 빌었다.

그렇지만 다른 교사들은 두 눈을 꾹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가 마담 쟈니에트가 우릴 해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면 자네가 책임질 건가?”

검술 교사는 한때 도시의 치안대에게 마담 쟈니에트를 고발할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담 쟈니에트는 도시의 치안대를 돈으로 매수한 상태였다.

그렇게 마담 쟈니에트의 물욕에 의해 희생당한 학생이 벌써 6명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검술 교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검술 교사는 그런 자신이 싫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눈앞에서 학생을 잃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면서도 그들을 구할 수 없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번에도 내 학생을 잃을 수 없어.’

검술 교사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데클란이 이대로 아카데미에 계속 다니는 건 너무 위험했다.

마담 쟈니에트는 이미 데클란이 귀족의 사생아라고 단정 짓고 뒷조사를 지시했다.

분명히 타당한 근거가 있으므로 그런 명령을 내렸을 테다.

지금 검술 교사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마담 쟈니에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데클란의 출신에 대해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데클란은 어떻게 될까?

검술 교사가 줄곧 봐왔던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되겠지…….

“선생님?”

순진한 소년의 목소리가 의식의 흐름을 깨트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검술 교사는 자신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데클란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미안하네, 데클란 군.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어.”

그대로 말 위에 올라탄 검술 교사는 데클란에게 손짓을 했다. 자신의 뒷자리에 앉으라는 뜻이었다.

데클란은 제법 능숙하게 말을 올라탔다.

“시내까지 15분 정도 달릴 거다.”

“예, 선생님.”

“겨울바람이 추우니 목도리를 단단히 하려무나.”

“예.”

씩씩하게 답하는 데클란의 목소리에 검술 교사의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졌다.

이렇게 천진난만하며 활기찬 아이다.

앞으로 미래가 창창하고 밝은 아이다.

단지 귀족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

검술 교사는 손에 쥐고 있던 말고삐를 강하게 붙들었다.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본 척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6명의 학생을 잃은 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검술 교사는 데클란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원하는 걸 아무거나 주문하렴.”

“그렇지만, 선생님…….”

메뉴판을 한 번 둘러본 데클란은 망설이는 듯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높은 가격대에 놀란 모양이었다.

검술 교사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정도 돈을 못 벌 것 같나?”

사실 벌지 못했다.

귀족 학생들도 아닌 평민 학생들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봉급은 변변찮았다.

그렇지만 검술 교사는 데클란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를 사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후 그가 데클란에게 할 이야기는 정말 속이 쓰라릴 내용이었으니까.

데클란은 메뉴판을 보면서 한참이나 망설였다.

검술 교사는 결국 그런 데클란 대신해 요리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급 소고기 부위를 사용한 필레미뇽 스테이크가 데클란 앞에 놓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급스러운 요리에 데클란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검술 교사는 그를 재촉했다.

“뭐하나? 어서 먹으렴.”

“……감사합니다, 선생님.”

데클란은 부담감을 가지면서도 맛있게 저녁을 해치웠다.

검술 교사는 그가 스테이크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뒤 웨이터를 불러 디저트를 추가 주문했다.

호화스러운 식사에 데클란은 당황했다.

“디, 디저트까지 필요 없어요, 선생님.”

“내가 데클란 군을 아껴서 특별히 사주고 싶은 거야.”

“선생님…….”

“정말 괜찮으니까 먹어라. 네게 이 정도 해줄 돈은 있단다.”

그런 말을 하는 검술 교사의 머릿속에는 제 아들의 도박 빚이 떠올랐다.

이대로 가다가 아마 평생 아들의 도박 빚을 갚아내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검술 교사는 이제부터 자신이 데클란에게 할 행동을 떠올렸다.

자신이 데클란에게 저지를 잘못을 생각하면 저녁 한 끼를 사주는 것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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