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마담 쟈니에트는 오스첸스 남학교의 교장이었다.
마담 쟈니에트의 아버지는 수도 근방에 있는 도시에서 상업회를 운영하는 부유한 상인이었다.
수도 부근에서 지내던 그녀의 아버지는 귀족들과 종종 사업을 진행하곤 했다.
그랬기에 마담 쟈니에트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귀족들의 다과회나 소모임에 따라가곤 했다.
그러던 와중 그녀는 보에힘 자작가의 차남과 눈이 맞아 결혼하게 되었다.
보에힘 자작가의 차남은 자신의 형에게 자작 작위를 양보했다. 그래서 쟈니에트는 ‘자작 부인’ 대신 ‘마담’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록 신분이 평민이라곤 하지만, 마담 쟈니에트는 자신의 남편을 통해 귀족 사회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귀족들이 축적한 부를 보았다.
‘귀족들을 잘만 이용하면 큰 돈벌이가 되겠는데?’
마담 쟈니에트는 귀족과의 연줄을 이용해 자신의 출신 집안 상업회를 더더욱 크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하급 귀족 자제들을 상대로 아카데미를 열기로 했다.
마담 쟈니에트는 자신의 남편과 그의 출신 집안을 통해 수준이 높은 교사들을 대거 섭외했다.
마침 좋은 가정교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던 하급 귀족들은 마담 쟈니에트가 연 오스첸스 남학교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귀족들은 이 아카데미가 남학교라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
적어도 아카데미에서 만난 수준 낮은 영애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둥 쓸데없는 연애 장난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오스첸스 남학교는 수도 부근에서 가장 유명한 아카데미로 부상했다.
그렇게 오스첸스 남학교가 개교한 지 32여 년이 지났다.
오스첸스 남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줄곧 교장직을 맡았던 마담 쟈니에트는 이제 웬만한 하급 귀족 가문과는 안면이 튼 사이였다.
그리고 마담 쟈니에트는 그 인맥을 통해 제 친정의 상업회를 더더욱 크게 부흥시켰다.
오로지 귀족과의 연줄을 위해 아카데미를 열었던 마담 쟈니에트는 귀족 학생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매주 귀족 학생들을 담당하는 교사들로부터 학생들의 진도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반면 평민 학생들의 수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그녀의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 그녀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누가 보내온 편지지?”
“매티 님입니다.”
“매티가?”
마담 쟈니에트는 모노클을 들어 쓰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매티라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스첸스 남학교 근처에 있는 마도구 상점의 주인이었다.
마도구 상점 주인인 매티는 머리가 제법 빨리 굴러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담 쟈니에트와 그녀 친정 쪽의 상업회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매티는 자원해 나서서 마담 쟈니에트의 수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상점에 온 학생 손님 중에서도 특히나 돈을 많이 쓰는 학생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뒀다가 마담 쟈니에트에게 보고하곤 했다.
마담 쟈니에트는 그 정보를 가지고 학생의 출신 가문이 축적한 재산을 추정했다.
그러한 정보는 마담 쟈니에트가 각 가문에 아카데미 기부금을 요청할 때 아주 유용했다.
‘이번 신입생 중 돈을 많이 쓰는 학생이 있나 보군.’
그렇게 생각한 마담 쟈니에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도구 상점 주인 매티가 보내온 편지 봉투를 뜯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가 보내온 편지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마담 쟈니에트의 표정이 점점 딱딱히 굳어갔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존경하는 마담 쟈니에트.
어제 저의 상점에 한 평민 학생이 방문해 마력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처음에 검사지에서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그 학생이 마력 혈통을 이어받지 않은 줄 알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수 시간 뒤 검사지에서 강렬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이 학생은 최소한 후작가 혹은 그 이상의 핏줄을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담이 모르는 거물급 귀족의 사생아일지도 모르지요.
마담께서 참고하시라고 초상화도 첨부해 드립니다.
매티 올림.]
편지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마담 쟈니에트는 편지와 함께 따라온 초상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점 주인 매티의 그림 실력은 썩 훌륭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물의 이목구비 정도는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
마담 쟈니에트는 초상화 속의 적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학생의 얼굴을 주시했다.
평민 학생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 이 학생의 얼굴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귀족 학생들이야 신입생 환영회 때 가서 눈도장이라도 찍어뒀지만, 평민 학생들의 경우 환영회는커녕 입학식에도 가지 않았다.
‘만일 매티의 말대로 이 학생이 고위 귀족의 사생아라면…….’
꿀꺽.
마담 쟈니에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잘하면 이 건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이 학생의 아버지가 후작가 사람인지 아니면 공작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고위 귀족일수록 부와 명예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대를 두고 ‘당신의 사생아를 찾았다’라고 말한다면?
아마 마담 쟈니에트를 입막음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과 관계망을 보상으로 주겠지.
‘금덩이가 절로 굴러들어온 꼴이군.’
마담 쟈니에트는 그대로 초상화를 들고 교장실 옆에 붙은 비서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비서실에서 서류를 처리하던 비서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급한 일이에요.”
마담 쟈니에트는 비서에게 초상화를 내밀었다.
“어제 외출 허가받은 학생 중 이렇게 생긴 평민 학생이 누군지, 당장 찾아오세요.”
이 초상화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어제 외출한 평민 학생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 중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이름이…… 데클란? 올해 신입생이고. 어느 집안의 후원을 받는 학생이죠?”
“인페르나 남작가입니다.”
“인페르나 남작가?”
마담 쟈니에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인페르나 남작가라면 왕국에서 가장 구석진 변방 영지를 담당하는 가문 아닌가.
이 영지 근처에는 비슷하게 별 볼 일 없는 남작령과 자작령밖에 없었다.
토지의 질이 나빠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들만 모여 산다는 그런 영지 출신이라니.
“이 학생의 입학 서류 가져와 봐요.”
입학 서류에 이 학생의 기본 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테다.
가정 구성원이나 부모의 직업 등 출신 정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학생이 어느 고위 귀족과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담 쟈니에트의 청을 들은 비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민 학생들은 입학 서류가 없습니다, 마담.”
마담 쟈니에트는 두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요? 입학 서류가 없다니, 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 그건 마담께서 평민 학생들의 입학 서류에는 별 영양가 있는 내용이 없으니 아예 받지 말라고 하셔서…….”
“아.”
그제야 마담 쟈니에트는 평민 학생들에게 서류를 제출하지 말라고 했던 게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제가 아무리 그렇게 명령했다고 해도 그렇지, 정말 서류를 받지 않으면 어떡하자는 거예요? 일 처리를 이딴 식으로 하면서 월급은 잘도 받아 가는군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마담 쟈니에트에게 이유 없이 혼나는 게 익숙한 비서는 무조건 고개를 푹 숙였다.
비굴하게 용서부터 구하는 비서에게 몇 마디 더 던진 마담 쟈니에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민 학생도 서류를 제출하도록 할걸.
조금 후회가 됐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와서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면 의심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마담 쟈니에트는 비서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 학생을 담당하는 검술 교사를 불러와 봐요.”
비서는 또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질까 두려워 부리나케 데클란의 검술 교사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마담.”
“이번 학기에 데클란이란 학생을 가르친다고요.”
마담 쟈니에트는 검술 교사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용건부터 꺼냈다.
아카데미에서 오래 근무한 검술 교사는 ‘마담 쟈니에트가 또 돈 되는 건수를 잡았구나’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번에 제가 담당하는 학생입니다.”
“이 학생의 아버지에 대해서 알아 오세요. 검술 수업 때 마력 혈통 이야기를 꺼내면서 티가 안 나게 뒤를 좀 캐와요.”
이에 검술 교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파트는 이미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데클란 학생은 분명히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는—.”
“다시 제대로 해 와요.”
마담 쟈니에트가 검술 교사의 말을 뚝 끊었다.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당연히 모른다고 하겠지요. 학생을 살살 달래든, 끈질기게 꼬치꼬치 묻든, 아니면 혼자 불러내서 협박하든, 여하튼 이 학생의 아버지에 대한 단서를 찾아오세요.”
이에 검술 교사는 난색을 보였다.
“그렇지만 마담, 그건 학생의 개인적인 사생활….”
“시끄럽군요.”
마담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으며 교사의 말꼬리를 잘라냈다.
“귀족 자제분들을 가르칠 수준도 안 되는 주제에 불쌍해서 임용해 줬더니, 이제 제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네요? 일개 평민 주제에 정말 간도 크지.”
“마담, 저는…….”
“이제 그만 은퇴하고 싶으신가 보군요? 아들의 도박 빚은 다 갚으신 건가요?”
마담 쟈니에트의 조롱에 검술 교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 아닙니다, 마담…….”
“무슨 수를 써서도 이 데클란이란 학생의 아버지가 누군지 단서를 캐와요.”
마담 쟈니에트가 날카로운 어조로 검술 교사를 다그쳤다.
“이번 학기 말까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면 그대로 해고에요. 길바닥에 당신 정도 수준의 교사들 넘치고 넘쳐요. 알겠어요?”
“……예.”
검술 교사는 그대로 굽신굽신 허리를 숙였다.
그제야 마담 쟈니에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집무실로 되돌아갔다.
비서실에 남겨진 검술 교사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담 쟈니에트는 도대체 왜 데클란 학생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단 말인가?
‘설마, 데클란이 귀족의 사생아여서……?’
그렇지만 데클란은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저번 수업 때 데클란 본인도 자신이 마력 폭주 현상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마담의 욕심 때문에 애먼 학생 하나 잡아먹게 생겼군.’
검술 교사는 그렇게 푹푹 한숨을 내쉬며 비서실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