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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63)화 (63/177)

63화

“와아, 시내로 떠난다! 너무 즐겁고 기쁘고 그래!”

나는 일부러 왁자지껄 떠들며 마차 위로 훌쩍 올라타려고 했다.

그러자 로지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자.”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뭐지? 악수하자는 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로지에의 손을 멀뚱멀뚱 바라았다.

그러자 로지에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차까지 에스코트해 주려고.”

“어…… 딱히 필요 없는데요?”

이상한 눈으로 나와 로지에를 쳐다보고 있는 하인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후다닥 마차 위로 올라탔다.

로지에가 이렇게 내게 필요 없는 배려를 해줄 때마다 하인이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시내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내내 입에 지퍼를 꾹 채웠다.

반면 로지에는 데클란을 오래간만에 만나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오랜만이야, 데클란 군. 잘 지냈어?”

“네.”

“다행이다. 수업은 어때? 재미있어?”

“네.”

“그렇구나! 역시 데클란 군은 머리가 똑똑해서 뭐든지 다 잘할 것 같았어. 아 참, 검술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네.”

“데클란 군은 정말 멋져. 그나저나, 우리 시내로 가서 같이 점심 식사 먼저 하자. 뭐 먹고 싶어?”

“네.”

저기요, 마지막 질문은 ‘네’, ‘아니요.’로 대답하는 질문이 아닌데…….

나는 퀭한 눈으로 데클란을 흘겨보았다.

아무리 로지에와 라이벌이라고 해도 그렇지, 대답할 때 성의를 좀 보이면 어디 덧나나!

그러나 로지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마차 안에서는 로지에와 데클란의 대화 소리가 오고 갔다.

물론 로지에가 데클란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면, 데클란이 무조건 ‘네’라고 말하는 형식의 대화였다.

그렇게 시내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평민 중 꽤 부유한 상위층을 주 고객층으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아하고 정갈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오늘 점심은 당연하지만 내가 계산할 거야.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먹고 싶은 걸 골라.”

로지에가 나와 데클란에게 말했다.

“네? 그렇지만 이렇게 도련님에게 얻어먹으면 조금 미안한데요.”

“미안하면 나와 함께 음식을 맛있게 먹어 줘. 난 엔리 군과 데클란 군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도련님…….”

가슴 한쪽이 찡하게 울렸다.

로지에는 정말 천사인 게 분명했다. 어떻게 이런 순둥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감동하는 나와 달리 데클란은 무덤덤했다.

“그럼 제일 비싼 거 시킬게요.”

야.

데클란의 도발에도 로지에는 그저 후후 웃기만 했다.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결국 로지에는 가볍게 샌드위치와 수프를 먹었고, 나는 양심 있게 파스타를 시켰다.

그리고 데클란은 아주 당당히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럼 먼저 마도구 상점으로 갈까?”

배불리 식사를 마친 로지에는 나와 데클란은 마도구 상점으로 이끌었다.

‘드디어!’

나는 들뛰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데클란이 마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렇지만 작중에서는 남자주인공인 데클란이 얼마나 출중하고 빼어난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러 분량에 걸쳐 묘사했다.

독자들의 소중한 페이지를 그렇게나 많이 잡아먹었으니, 어마어마한 실력자가 분명했다.

그런 데클란에게 마력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데클란은 분명히 마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마력도 없이 어떻게 왕실 부대의 최정예 엘리트로 인정받았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나 정작 마력 검사를 받는 본인은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였다.

“분명히 시간 낭비라니까.”

데클란은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 난 데클란 네가 마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너 내 아버지 만난 적 있어?”

“감이란 게 있잖아! 자자, 일단 검사받으러 들어 가실게요~!”

나는 데클란의 두 손을 잡고 호호 웃으며 앞장섰다.

뒤에서 한숨 소리가 따라붙었다.

“나 참…… 넌 왜 이렇게 신나 하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데클란은 일단 로지에를 따라 마도구 상점으로 향했다.

물론 마력 검사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일단 한 번 검사를 받고 내 성가신 재촉을 그만 떨치려는 의도가 더 다분해 보였다.

나야 어쨌든 좋았다.

“어서 오십시오.”

마도구 상점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카데미에서 붙여준 하인을 본 상점 주인은 단번에 로지에가 귀족 자제인 것을 알아보았다.

“어떤 물건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요즘 귀족 영식들 사이에 유행하는 보호 마법이 걸린 브로치는 어떠십니까?”

“아, 물건을 구매하려는 게 아니라.”

로지에는 대신 뒤에 멀찍이 서 있던 데클란을 가리켰다.

“내 친구가 마력 검사를 받으려고 해.”

상점 주인이 단번에 데클란에게 고개를 틀었다.

“마력 검사! 알겠습니다! 마력 감지기를 바로 가지고 오도록 하죠!”

비록 고객이 로지에에서 데클란으로 바뀌었지만, 주인의 태도는 시종일관 친절했다.

상점 뒤편으로 잠시 사라진 주인은 커다란 기구를 가지고 왔다.

로지에가 내게 설명해 준 그대로 생긴 기구였다.

“검사받으시는 분, 여기 와서 앉아 주십시오.”

주인의 말에 나와 로지에는 데클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데클란은 한숨을 내쉬며 상점 주인 앞으로 다가섰다.

“조금 아플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주인이 데클란의 손가락을 바늘로 살짝 찔렀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검사지를 이용해 피를 채취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내가 주인에게 물었다.

“만일 검사받은 사람이 마력이 있다면 몇 분 내에 검사지에서 바로 반응이 올 겁니다.”

데클란에게 피를 닦을 천을 한 장 내밀며 주인이 말했다.

“만일 몇 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요?”

제 손가락을 천으로 싸매며 데클란이 물었다.

“그러면 검사받은 사람이 마력이 없는 겁니다. 아니면 마력이 너무 강해서 일반 검사지로는 반응을 얻어낼 수 없던가. 하지만 이 검사지는 웬만한 마력을 검증해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의 말을 들은 데클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검사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상점 주인은 다른 손님을 상대하러 갔다.

‘데클란은 분명히 마력이 있을 거야.’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기대의 눈길로 마력 검사기를 주시했다.

“…….”

데클란은 그런 나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은 내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상점 주인이 손님 둘에게 마도구를 파는 내내 검사지에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왜 반응이 없는 거야?’

두 눈을 부릅뜬 나는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는 검사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주인이 말한 ‘몇 분’은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검사지는 반응을 보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급기야 상점 주인은 세 번째 손님의 계산을 마친 뒤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마력이 없는 것 같군요.”

주인의 선언을 들은 데클란과 로지에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반응이 없으니,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순순히 그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혹시 검사받은 분이 마력 혈통을 이은 분인가요?”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흘러나온 혼잣말을 용케 들은 상점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주인의 말에 나는 말을 어물거렸다.

데클란은 그런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괜찮아, 엔리.”

“데클란.”

“마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그냥 검술이 좋은 거야. 왕실 기사단은 꿈도 꾸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는 데클란의 손끝이 조금 떨려오고 있었다.

‘떨고 있어?’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려 데클란을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년을 같이 자라온 사이였다. 그러니 그가 언제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의 데클란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멍하니 데클란을 응시하고 있는데, 뒤에서 로지에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클란 군은 검술 실력이 뛰어나니까 마력이 없어도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왕실 기사단은 못 가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그렇지, 데클란?”

“네.”

데클란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저 같은 평민이 어떻게 왕실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 * *

그 뒤로 우리는 각자 상점가에서 필요한 물품을 샀다.

외출 허락받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발걸음을 빨리 움직여야 했다.

덕분에 나는 무기 상점에서 검을 구경하고 있는 로지에와 데클란을 몰래 따돌릴 수 있었다.

‘데클란이 보는 앞에서 선물을 살 수 없잖아!’

나는 내 지갑을 꼭 잡았다.

베시풀과 실을 엮어 만든 그 지갑은 허름하다 못해 조악해 보였다.

이 안에는 부모님이 매달 내게 조금씩 보내준 귀중한 생활비가 모여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서 쓰라면서 보내주신 돈이었다.

물론 인페르나 남작가가 내 학비와 경비를 지원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은 직접 내게 무언가 주고 싶어 하셨다.

어떤 마음을 품고 내게 이 돈을 주셨는지 잘 알았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돈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데클란이 좋아하는 거 사줘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은 나는 당당히 한 상점 안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무얼 사러 오셨나요?”

친절한 미소를 띤 점원이 나를 맞이했다. 역시 귀족 자제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모두가 공손했다.

나는 점원에게 당당히 고했다.

“마차 모형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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