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아마도?”
데클란의 말에 검술 교사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클란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검술 교사를 직시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마력 혈통이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흠, 그렇군…….”
데클란의 말을 들은 검술 교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숙였다.
“혹시 군은 마력 증폭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나?”
마력 증폭 현상?
또 모르는 표현이 나왔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른 학생들과 데클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몇몇 학생들도 마력 증폭 현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모습이었다.
이는 데클란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마력 증폭 현상이란 무엇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군.”
검술 교사는 연무장 근처에 모인 1학년 학생들을 쭉 돌아보았다.
“마력 증폭 현상이란 쉽게 말하면 마력 적응에 실패한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지.”
“후유증이요?”
“그래. 너희들도 알겠지만, 이 왕국은 마법사들이 만든 나라다. 그래서 건국 공신들인 마법사들이 영토를 하사받고 귀족 자리를 차지했지.”
검술 교사가 수업을 하듯 천천히 요점을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의 후예들인 현재 귀족들은 대부분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작위가 높을수록 더 보유한 마력이 강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지. 이 점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
교사의 말에 학생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완전히 처음 듣는 정보였지만, 그래도 너무 모르는 척을 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까 봐 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학생들의 반응을 살핀 검술 교사가 두 손을 펼쳐 설명에 들어갔다.
“마력을 가진 귀족분들은 날 때부터 마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체질로 태어났지. 하지만 마법사의 피가 진하게 섞이지 않은 평민들은 마력이 없다.”
“질문이 있습니다.”
잠자코 검술 교사의 말을 듣고 있던 학생 중 누군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평민 중에 마력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지 않습니까? 당장 제가 있던 영지에는 그런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아까 말했듯이 이 나라는 마법사들이 세운 왕국이다. 그러니 꼭 귀족이 아니더라도 마법사의 피가 어느 정도 흐르고 있다는 뜻이지. 다만 그 혈통의 농도가 옅어서 손쉽게 마력을 운용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그제야 나는 검술 교사가 말한 ‘마력 혈통’이 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귀족이면 마력을 쓸 수 있는 귀한 혈통을 가진 거고, 평민들은 마력을 잘 못 쓰는 평범한 혈통을 가진 거지?’
이 설명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마력도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쓸 수 있는 거구나…….
‘내가 왜 평민에 빙의했는지 알겠다.’
그제야 내 처지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평민 중 간혹 귀족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귀족이었지만 작위를 포기한 사람들, 모종의 사정으로 작위를 빼앗긴 사람들, 혹은 귀족의 사생아 등등…….”
그 말을 한 검술 교사는 최대한 말을 조심하려는 듯이 질문을 했던 학생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들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고 또 사용할 수 있지만, 체질이 잘 따라주지 않지. 그래서 대부분 자신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라난다.”
그런 일이 있구나.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력이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니. 이러니 이 나라가 이렇게나 귀족주의로 이어지지.
아마 강력한 마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급 귀족들 간에 치열한 전쟁이 있을 테다.
반면 비교적 급이 낮은 귀족들은 자신들끼리 이어받은 마력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수준의 가문을 찾아 결혼을 할 테고.
그렇다면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은 얼마나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을까.
이제야 모든 이해관계가 퍼즐처럼 맞춰 들어갔다.
어째서 귀족들이 평민들을 그렇게 얕잡아 보는지.
그리고 반대로 어째서 평민들이 귀족들을 그렇게 우러러보는지.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신분제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검술 교사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하지. 만일 마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체질이 마력에 접합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아는 사람 있나?”
“마력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아닙니까?”
학생 중 또 누군가가 답했다.
교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다. 마력이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고여 있게 되면, 체내에 큰 지장을 주지.”
그러면서 교사는 1학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마력의 원리에 대해 가르쳤다.
줄곧 사용되지 못하고 몸속에 쌓인 마력은 독소처럼 작용하게 된다.
교사는 마력을 영양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영양제는 몸에 좋다.
그렇지만 만일 몸이 영양제를 소화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
게다가 아예 몸 밖으로 배출해 낼 수도 없다면?
아마 쌓이고 쌓인 영양제는 신체 내부를 조금씩 잠식하고 일부를 파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줄곧 사용하지 않고 있던 마력이 어느 순간 증폭해서 터져 나오게 되는 거지. 그러면 마력에 익숙하지 않은 몸은 그대로 충격 상태에 빠지는 거고.”
동반되는 증상은 극심한 어지럼증이나 구토, 오한, 혹은 메스꺼움 등등이 있다고 교사는 덧붙였다.
또한 극심한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에 대부분 그대로 기절해버린다고.
‘오호라…….’
내게는 신세계의 지식이었다.
물론 나는 마력이 없으니 절대로 그런 현상을 겪을 리가 없겠지만.
“그럼 고여 있던 마력은 정확히 언제 폭주하게 되는 겁니까?”
탐구심이 강한 어떤 학생이 또 질문했다.
“흠,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전 사례를 참고하자면 보통 감정적으로 흥분되었을 때나 큰 정신적인 충격에 빠졌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지.”
학생들은 좋은 지식을 배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내가 잡담이 조금 길어졌군.”
검술 교사는 하하, 웃으며 다시 데클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데클란 군은 혹시 마력 증폭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나? 만일 있다면 군도 마력을 운용할 가능성이 있을 텐데.”
교사의 질문에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데클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없습니다.”
과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데클란이 답했다.
“그렇니?”
교사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이내 다음 수업 내용으로 넘어갔다.
“기사도에 대해서 다시 복습하자. 기사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 뭐라고 했지?”
“자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하는 거요.”
“그래. 너희들은 모두 네 주인인 귀족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단다. 귀족들을 위해 죽는 건 크나큰 영광이란다.”
지루한 기사도 이론을 들으면서 나는 하품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데클란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는 어째선지 시선을 내리깔고 교사와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 * *
“도련님은 마력 쓸 줄 알아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내가 로지에에게 물었다.
로지에와 나는 나란히 마주 보고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아침 식사와 비슷하게 시종인 내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받아와 숙소에서 먹는 형식이었다.
스푼으로 토마토 크림수프를 휘적거리고 있던 로지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도 귀족인걸.”
“호오…….”
로지에와 친구처럼 너무 편하게 지내서 가끔 잊고 있었다. 그도 결국 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귀족이라는 사실을.
“마력은 뭐가 좋아요?”
나는 내 접시에 놓인 닭고기를 칼로 조각내어 썰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사샤 양? 마력이 뭐가 좋냐니?”
“그냥, 궁금해서요. 알다시피 전 마력을 못 쓰잖아요. 마력을 쓰면 뭔가 더 편한가요?”
나는 포크로 닭고기 하나를 찍어 로지에의 접시에 전달해주었다.
로지에는 활짝 웃으며 그 고기를 포크로 쿡 찍었다.
“음, 일단 이런 걸 할 수 있어.”
로지에가 손바닥을 뻗었다. 그러자 순식간이 그 위로 밝은 빛이 떠올랐다.
“우와!”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로지에의 손바닥 위에 생겨난 빛을 바라보았다.
마치 요정이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해요, 도련님! 밤에 화장실 갈 때 편하겠네요!”
“음…… 그런 용도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로지에가 후후, 웃으며 손바닥을 도로 거둬들였다.
그러자 빛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쪼개지듯 사라졌다.
“마력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는 거야? 오늘 수업 시간에 배운 건가?”
“네. 검술 시간 때…….”
나는 로지에에게 검술 교사가 데클란을 얼마나 칭찬했는지, 그리고 그에게 마력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흐음…….”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지에는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니 난 데클란 군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이건…… 데클란 군은 나와 친하다고 느끼지 않는 걸까……?”
로지에는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서 시무룩해졌다.
나는 그를 달래기 위해 닭고기를 새로 한 조각 썰어주었다.
“아니에요, 도련님. 데클란은 저한테도 자기 아버지 얘기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래? 그럼…… 데클란 군은 우리를 둘 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전보다 더 비관적인 사고에 빠진 로지에는 더더욱 우울해진 표정을 지었다.
이 순박한 도련님은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데클란은 로지에 도련님 엄청 존경하고 있거든요? 걱정 마세요.”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포크로 찍은 닭고기를 그대로 로지에의 입에 넣어 주었다.
“나르 조견(나를 존경)?”
입 안 가득 맛있는 걸 담으며 우물거리던 로지에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네, 데클란이 표현하지 않아도 도련님 검술 실력을 매우 높게 사고 있어요.”
입 안을 비운 로지에는 냅킨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러면 내가 더 노력해야겠네.”
“노력이요? 왜요?”
“데클란 군은 곧 내 실력을 따라잡을 것 같으니까. 게다가 교사의 말대로 만약 마력까지 사용할 수 있으면 정말 막강해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로지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도련님?”
갑자기 침묵에 사로잡힌 로지에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샤 양, 우리 데클란 군과 함께 이번 주말에 시내로 나가지 않을래?”
“시내로요?”
“응. 내가 가서 외출 허가증을 받고 마차 한 대 빌려올게. 같이 갈래?”
“저야 좋지만…… 갑자기 왜요?”
“데클란 군 때문이야.”
로지에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시내에 가면 마력 감지기가 있는 마도구 상점이 있어. 거기 가서 데클란 군에게 마력이 있는지 검사를 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