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한스 부부는 사라진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동네방네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남자가 사라진 건 어두컴컴한 야밤의 일이었다.
하여 남자가 사샤를 데리고 간 모습을 본 목격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샤네리와 마로크도 한스 부부를 도왔다.
사샤는 그들이 어릴 적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납치당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은 한참 수소문을 한 끝에야 그날 밤 수상한 남자를 보았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스무 살쯤 된 청년이었다.
“그날 가게에 정리할 게 조금 많아서 집에 늦게 들어가고 있었어요. 게다가 날이 하도 깜깜해서 조심해서 가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지요.”
청년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뒤에서 다그닥 다그닥 소리가 나더라고요. 뒤를 돌아보니 어떤 남자가 말을 타고 마을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남자 혼자였어요? 말에 또 누가 타고 있었죠?”
“남자 앞에 조그만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사람인지 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포대처럼 둘둘 말려있어서…….”
그 말을 들은 한스 부부와 샤네리, 그리고 마로크는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에 말을 몰 수 있는 건 보통 사람이 아닐 테다. 적어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 그런 뛰어난 승마 실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게다가 그날은 유난히 날이 어두웠다. 그런데 그 남자는 등불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려갈 수 있었다.
한스 부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 위로 빛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리던 남자를 떠올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그 남자를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찾으러 다른 영지로 갈 거야.”
“나도 함께 갈게.”
한스의 말을 들은 샤네리가 당장 거들었다.
그러나 한스는 의외로 그녀의 도움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샤네리. 넌 오지 마.”
“뭐라고? 왜?”
“이건 우리 잘못이야. 우리가 부주의해서 딸을 잃어버린 거야. 그러니까 샤네리와 마로크 너희에게까지 책임을 지게 할 생각이 없어.”
“오빠!”
샤네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우리가 남이야? 난 사샤의 고모나 다름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도 알아. 그렇지만 너와 마로크는 이미 이 문제 때문에 밭을 며칠이나 돌보지 못했잖아.”
한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샤는 우리가 찾을게. 너희들은 밭으로 돌아가. 올해 농사를 이대로 망칠 생각이야?”
“하지만……”
“기다리고 있어. 나랑 내 아내가 반드시 사샤를 되찾아 올 테니까.”
한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히 그런 약속을 했다.
그리고 한스의 약속은 정확히 절반만 지켜졌다.
* * *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한스 부부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없었다.
그들이 살던 작은 집은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 찼다.
동네 아이들은 그 집을 두고 귀신이 나오는 폐가라고 부르며 멀리하곤 했다.
한 달, 두 달, 그러다 석 달. 나중에는 일 년. 그 뒤로 장장 몇 해가 계속 흘러갔다.
샤네리와 마로크는 이제 사샤보다는 한스 부부가 더 걱정되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사샤의 행방을 쫓아 얼마나 멀리 갔기에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걸까.
두 사람은 매일 한스 부부와 사샤의 안전을 기도하며 잠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갔다.
사샤가 사라진 지 4년째 되던 어느 날이었다.
수확한 옥수수를 다듬고 있던 샤네리와 마로크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의 발신인은 무려.
“……한스 오빠?”
장장 4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한스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샤네리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다.
편지에 적힌 내용은 짧았지만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동생 샤네리에게.
시간이 없으니 짧게 쓸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사샤를 찾았다.
왕국 수도에 있는 이레사 공작이란 귀족이 사샤를 데려갔어. 그는 사샤를 자기 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가 자기 딸을 잃은 뒤 정신이 나갔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샤를 자기 딸로 착각하는 것 같아.
이레사 공작의 딸도 사샤처럼 빨간 머리카락과 녹색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나와 내 아내가 사샤를 되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
이레사 공작가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계속 이레사 공작가 주변을 배회하면서 사샤를 만날 기회를 노리고 있단다.
오랫동안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서 걱정을 많이 했을 텐데, 미안하구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샤를 되찾을 테다.
네 사촌 오빠, 한스가.]
편지가 쓰인 날짜는 보름도 훌쩍 지난 날이었다.
왕국 수도에서 이곳 변방에 있는 인페르나 남작 영지까지 편지 한 통이 오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한스의 편지를 읽은 샤네리와 마로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샤의 행방을 찾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무턱대고 좋아할 수는 없었다.
사샤가 이레사 공작가에 있다니.
그것도, 이레사 공작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둔갑시켜져 있다니.
“어떻게 그런 작자들이 있을 수 있는 건지!”
먼저 반응한 건 샤네리였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나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믿을 수 없었다.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그것도 왕국 수도를 뒷받침하는 공작이란 놈이 감히 남의 아이를 훔쳐다가 제 소유인 것처럼 함부로 대하다니.
“부모가 버젓이 살아있는 아이를 납치해서 뭐 하는 짓인 거야! 사샤가 무슨 죄라고 그런 생이별을 겪어야 하는 건데!”
샤네리는 지금쯤 공작가에 갇혀있을 사샤를 생각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 어린 것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빠는 어디에 있냐며 울고불고 찾았겠지.
“당장 수도로 올라가서 고발해야 해요!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일이 있다니!”
벌써 장장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제 부모도 못 본 체 낯선 곳에서 지낸 사샤를 생각하면 당장 수도로 달려가 이레사 공작가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샤네리에 비하면 마로크는 조금 더 차분했다.
물론 그도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샤네리, 이대로 수도로 올라가서 뭘 하려고?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그야 당장 왕궁의 병사들에게 고발해야지요!”
마로크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스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말했잖아. 분명히 고발하는 일도 했을 거야.”
“그런데 왜…….”
“무려 공작이잖아. 어느 간 큰 병사가 감히 공작가에 쳐들어가 사샤를 빼오겠어?”
마로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귀족에 대해 잘 모르는 샤네리와 마로크조차 공작이 얼마나 크고 높은 직위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벌이고 있는 이 역겨운 일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요? 불쌍한 사샤, 불쌍한 것…….”
샤네리는 그만 자리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마로크는 그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아무런 진전이 없는 몇 주가 또다시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쾅쾅! 쾅쾅쾅!
침대 위에 뒤척이며 밤잠을 이루고 있던 샤네리와 마로크의 집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뭐, 뭐야?”
“누구지?”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샤네리와 마로크가 급히 문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문을 열자 깜깜한 어둠 속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마로크가 급히 등불을 들어 올리자, 상상도 하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스 오빠!”
샤네리는 문 앞에 서 있는 제 사촌 오빠를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샤네리는 지금이 깊은 심야라는 것을 곧 깨닫고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오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샤네리가 숨을 죽이며 자신 앞에 나타난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의 몰골은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먼 여정을 헤쳐 왔는지 옷은 너덜너덜했고, 온갖 진흙과 먼지가 달라붙어 있었다.
게다가 그는 몇 날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눈 아래가 퀭하니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샤네리를 뒤흔든 것은 바로 한스의 팔이었다.
“오빠…… 파, 팔이…….”
샤네리는 부들부들 떨며 한스의 오른팔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 팔을 잡을 수 없었다.
한스의 오른손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샤네리, 잘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스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그는 행여나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 아내가 죽었다.”
“뭐……라고?”
샤네리는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한스의 아내가…… 죽었다고?
그러나 한스는 샤네리에게 그 충격을 흡수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이레사 공작가에서 마차가 한 대 나왔어. 그 안에 사샤가 타고 있었어. 그래서 나와 아내가 함께 그 마차에 덤벼들었다가…… 아내는 죽고 나는 오른손을 잃었다.”
“…….”
아.
샤네리의 숨구멍이 턱 하니 막혔다.
믿고 싶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이레사 공작이, 사샤를 빼앗아 간 그 악한이…… 한스 오빠의 손을 자르고, 오빠의 아내를 죽였다고?
“그래도 사샤는…… 사샤는 구해왔다.”
한스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어갔다.
“잘 들어라, 샤네리. 난 지금 이레사 공작가가 보낸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어. 그들은 곧 날 잡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날 잊어버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말 하지 마, 한스!”
샤네리와 마로크가 동시에 한스에게 외쳤다.
그러나 한스는 자조적인 웃음을 텁텁하게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놈들은 분명히 날 찾아낼 거야. 이러다가 너희들까지 봉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순순히 놈들에게 잡히는 게 나아.”
“오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샤네리, 마로크.”
한스는 두 팔을 뻗어 그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부탁이다. 사샤를 구해다오.”
샤네리는 한스의 손 없는 오른팔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의 팔이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샤네리, 네가 버섯 따러 자주 가는 그 길 알지? 그곳에 있는 거북이를 닮은 바위 옆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사샤가 있을 거야.”
한스는 샤네리를 주시했다.
그의 눈빛은 바람에 휘말린 촛불처럼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샤는 이제부터 네 딸이다, 샤네리.”
그 말을 남긴 한스는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등을 획 돌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샤네리는 멀어지는 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등골에 기분 나쁜 차가운 기운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손가락 끝이 얼음에 파묻히기라도 한 것처럼 아파왔다.
아무리 손을 멀리 뻗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스는 이미 샤네리의 시야에서 벗어나듯 도망치고 있었다.
“가지 마.”
차마 집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한 샤네리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한스를 놓치게 되면,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를 향해 달려가야 했다.
그를 붙잡아 가지 말라고, 나와 함께 이곳에서 지내자고 말해야 했다.
그를 뒤쫓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시하고 이곳에서 사샤와 함께 살자고 전해주고 싶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딸아이에게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해줘야지, 오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라고 했잖아.
그런 아이를 왜 나한테 떠넘기고 가?
평생 아이하고 인연이 없는 나와 마로크에게 왜 그런 아이를 남기고 가는 거야?
안 돼.
가지 마.
사샤에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오빠잖아.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또 다른 가짜 부모가 아니란 말이야.
가지 마.
제발.
제발.
“가지 마!”
비정한 어둠으로 가라앉힌 마을에 샤네리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가지 마, 오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말을 남기고 날 떠나지 말란 말이야! 제발, 제발—”
쾅!
샤네리를 집 안으로 끌어당긴 마로크는 급히 문을 철컥철컥 걸어 잠갔다.
“그만 해, 샤네리!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간 마을 사람들이 다 깨어날 거라고! 한스를 곤란하게 할 생각이야?”
“안 돼, 한스 오빠가…… 오빠가…….”
“사샤를 생각해!”
마로크가 그녀를 다그치듯 외쳤다.
“사샤를, 네 사촌 오빠가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사샤를 생각하란 말이야…….”
뚝, 뚝.
뜨거운 눈물방울이 샤네리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샤네리의 어깨를 꽉 쥔 마로크의 볼 위로 눈물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