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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43)화 (43/177)

43화

뭐지?

엄마의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날뛰기 시작했다.

정신 나간 귀족의…… 가짜 딸?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들려오는 단어와 문장이 표면적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이 남자는 왜 날 공녀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지?

어째서 엄마는 귀족의 가짜 딸이라는 표현으로 날 지칭하고 있는 거지?

그러나 그 누구도 나의 혼란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사샤, 어서 도망쳐라!”

엄마는 꽉 안겨있던 나를 뒤로 왈칵 떠밀었다.

“집으로 가, 어서! 여긴 엄마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집에 가서 당나귀 타고 남작님이 있는 곳으로 가!”

“싫어요!”

“억지 부리지 말고, 어서!”

“안 돼요! 지금 뛰어도 어차피 저 말 탄 아저씨 못 이겨요!”

나는 등 뒤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목검을 빼어냈다.

어떻게든 나를 이 남자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심정은 이해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가 말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 남자를 이기는 건 무리다.

아니, 이기는 건 둘째치고, 당장 5분 정도 시간 끌기도 부족할 테다.

‘그러니까 차라리 여기서 버티고 시간 끌다가 마을 사람들이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어.’

두 손으로 목검을 든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말 위에 탄 남자를 세차게 노려보았다.

남자는 이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공녀님, 고작 나무 막대기로 뭘 하겠다고요?”

“나무 막대기가 아니라 목검인데요?”

나는 일부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검술 실력 엄청나게 뛰어나거든요? 비웃지 마세요! 큰 코 다치게 될 거예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렇게 고의적으로 크게 소리를 내면, 아직 밭으로 나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던 누군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오지 않을까.

그러나 남자는 내 얄팍한 수를 단숨에 읽어 버렸다.

“시간 끌 생각입니까? 포기하시지요. 그 전에 제가 먼저 공녀님을 낚아채고 말을 출발시키면 그만입니다.”

젠장.

남자의 말에 나는 이를 갈며 목검을 더 세게 움켜잡았다.

무작정 죽치고 시간 끌면서 도움을 기다리는 건 안 된다, 이 말이지?

안 되겠다. 작전 변경이다.

그렇다면.

“이야아아아압!”

쓸데없이 큰 기합 소리와 함께 나는 무작정 목검을 들고 남자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말 위에 타고 있던 남자의 인상이 움찔거렸다.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게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설마 무식하게 돌진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물론 이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사샤야, 그만해! 그건 미친 짓이야!”

등 뒤에서는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미안, 엄마.

엄마 딸 미친X이야.

“고작 목검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나를 본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고삐를 들어 올렸다.

고삐를 쥐어흔들자 놀란 말이 고개를 흔들며 휘청거렸다.

“공작님이 계신 곳으로 갑시다, 공녀님!”

“응, 안 가!”

니나 가라, 공작가!

머리 위로 목검을 든 나는 그대로 남자를 향해 검을 날렸다.

문자 그대로 날렸다.

내 손을 떠난 목검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낸 궤적에 따라 목검이 남자를 직격했다.

퍽!

“아악!”

목검으로 일격을 맞은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고삐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틈을 정확히 노렸다.

탕! 탕!

나는 가방 안에서 끄집어낸 총으로 말의 굽을 노렸다.

발아래 따끔따끔한 것이 날아들자 말이 크게 놀랐다.

히이잉!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말이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악!”

중심을 잃은 남자는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계획대로다!’

나는 그 짧은 찰나를 노렸다.

흙먼지가 지저분한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남자가 움찔거리는 사이, 나는 날뛰고 있는 말 위로 훌쩍 달려갔다.

다람쥐보다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등 위에 사람이 올라탄 것을 느낀 말이 긴장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옮기려 했다.

나는 말의 고삐를 꽉 쥐고 말을 진정시켰다.

“으, 으윽…….”

그때, 바닥에 버려진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천천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만요. 댁은 더 누워 계세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든 내가 남자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하나님, 한 놈 더 올라갑니다.’

탕!

“악!”

정확히 급소를 당한 남자가 기함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툭 쓰러졌다.

그는 마치 선이 끊긴 목각 인형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총을 챙겨오길 잘했어.’

말을 최대한 진정시키는 동시에 나는 내 손에 들린 총을 흘끔 바라보았다.

지난가을 토끼 사냥을 하려고 케쉬키 네 사냥 도구 상점에서 구매한 총이었다.

아쉽게도 금속으로 된 총알이 생각보다 비싸서 그건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꿩 대신 알이라고, 가볍고 살상력이 덜 강한 코르크로 만들어진 총알로 총을 장전한 상태였다.

‘앞으로 실탄을 가지고 다녀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말의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다시 원래대로 잠잠해진 말이 푸르릉 소리를 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간 인페르나 남작가에서 승마를 배운 건 정말이지 최고의 선택이었다.

“엄마! 아빠는 괜찮아요?”

나는 그대로 말을 이끌고 엄마와 아빠가 쓰러져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으…… 사샤야…….”

엄마의 품에 안겨 쓰러져 있는 아빠의 입에서 어눌한 말이 흘러나왔다.

다행히도 정신이 드는 듯했다. 그러나 목청에서 쥐어 짜내듯 나오는 목소리는 고통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아빠의 이마에는 꽤나 큰 상처가 있었다.

깊게 팬 상처에서는 아직도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상태가 좋지 않다.

엄마의 안색은 비 오는 날의 달보다 더 창백했다.

“이를 어쩌면 좋아, 사샤. 네 아빠가, 아니, 이레사 공작이, 지금 당장 널……”

아연실색한 엄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엄마, 잠깐만요.”

물론 나도 지금 이 상황에 크게 당황한 상태였다.

갑자기 모르는 남자가 찾아와 날 이레사 공녀라고 부르지 않나.

그래 놓고 이레사 공작이 날 찾고 있다는 둥 이상한 말을 늘어놓질 않나.

거기다가 엄마는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분명히.

분명히 내가 모르고 있던 어떤 비밀이 있는 거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은 내 궁금증보다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집에 가서 마차를 끌고 올게요.”

“뭐라고? 사샤, 네가 어떻게 마차를…….”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 줄 잘 알았다.

고작 열 한 살인 내가 무슨 수로 마차를 몰 수 있겠냐는 뜻일 테다.

그러나 나는 더더욱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전 작년이랑 올해 봄에 계속 데클란이랑 승마 연습을 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아, 알고 있어. 그렇지만…….”

“당장 아빠를 데리고 인페르나 남작가로 가야 해요.”

고삐를 꽉 쥔 내가 침착하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마을에는 제대로 된 의사가 없어요. 여기서 가장 가까운 의사는 인페르나 남작가의 딘 선생님밖에 없어요.”

지금 여기서 엄마와 마찬가지로 당황하거나 울먹거려선 안 된다.

“그러니까 지금 마차를 타고 남작가로 가도록 해요.”

그랬다간 나도 모르게 감정에 휩싸이게 될 테니까.

“제가 집에 가서 마차를 끌고 다시 돌아올게요.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죠?”

“그, 그래. 으흑. 네 말대로 하자.”

나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의식이 완전히 없는 것을 보니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저번에 강도들을 놓쳤던 기억이 있었다.

마침 말의 둔부 부근에 밧줄이 걸려 있었다.

나는 당장 그것을 잡고 엄마에게 넘겼다.

“엄마, 이 밧줄로 저 아저씨를 묶어 둬요.”

“무, 묶으라고?”

“다시 정신을 차리면 도망갈 수도 있잖아요. 엄마와 아빠에게 다시 덤벼들면 어떡해요?”

반쯤 정신 나간 것처럼 내 말을 듣고 있던 엄마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에게 단단히 당부한 나는 급히 말을 몰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집의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우리 집 당나귀가 낯선 말을 보며 푸르릉 울었지만, 그대로 무시했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나는 말과 마차를 연결하기 위해 급히 고리를 잡고 움직였다.

다행히 아빠가 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말에 마차를 연결한 나는 그대로 말 위로 올라탔다.

그때였다.

“사샤?”

등 뒤에서 데클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목검을 든 데클란이 눈에 들어왔다.

베실의 연락을 받고 막 내 집에 도착한 모양이다. 숲에서 열심히 검술을 연습했던 모양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습 도중에 불려온 데클란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너 뒤에 뭐야? 처음 보는 말인데. 그리고 갑자기 왜 마차를……”

그러나 나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여력이 없었다.

“데클란.”

나는 내 친애하는 친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타.”

“뭐……?”

“마부석에 타. 지금 당장.”

진지하기 짝이 없는 내 목소리에 데클란은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 우리 아빠가 앉던 마부석에 데클란이 앉은 것을 확인한 나는 고삐를 휙 잡아당겼다.

히이잉!

우렁찬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 바퀴가 세차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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