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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40)화 (40/177)

40화

[친애하는 사샤 양과 데클란 군에게.

그간 잘 지냈니?

나는 도시에 잘 도착했어. 마차를 타고 장장 사흘이나 걸렸어.

덕분에 엉덩이가 많이 아프네.

사샤 양과 데클란 군 덕분에 올해 여름은 외롭지 않았어.

이제 나는 매일 가정교사들에게 수업을 듣고 가끔 다른 귀족들의 파티에 얼굴을 내비치는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어.

수업하는 건 정말이지 재미가 없네. 그리고 파티에 가는 건 너무 지겨워.

다시 인페르나 영지로 돌아가 사샤 양과 데클란 군과 같이 매일 매일 낮잠을 자고 싶어.

사실 사샤 양과 데클란 군을 저택에서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나는 아직도 우리 셋이서 목검으로 대련하던 기억이 생생해.

이제 겨우 가을이지만, 어서 겨울이 오고 봄이 지나 여름이 왔으면 해.

어서 내년이 되어 너희들을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사샤 양과 데클란 군도 같은 마음일지 모르겠네.

그럼 이만 짧게 쓰도록 할게.

검술을 연습하는 것을 잊지 말고, 또한 체력도 잘 관리하도록 해.

그럼 답장 기다릴게. 이 편지를 전해준 하인에게 며칠 뒤에 답장을 받으러 오라고 말하면 올 거야.

- 그대들의 친구 로지에 인페르나]

* * *

[로지에 도련님!

편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와 데클란 모두 감동했어요!

저희야 늘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 곧 가을 추수가 시작돼요. 덕분에 저는 부모님의 밭일을 도우러 나가고 있어요.

데클란도 저희 집 농장 일을 도우러 나왔어요.

사실 데클란이 계속 저희 집에서 아침밥을 먹었거든요. 그래서 데클란이 자기가 그동안 먹은 만큼 일하겠다고 자원해서 나섰어요.

데클란 정말 장하지 않아요?

그리고 데클란은 요즘 힘도 엄청 세졌어요.

예전에는 호박 하나도 낑낑거리며 못 옮기던 애가 지금은 양손에 호박을 들고 날아다녀요!

아, 물론 진짜로 날아다닌다는 건 아니고요. 그 정도로 가볍게 뛰어다닌다고요.

최근에 데클란은 석궁 쏘는 걸 연습하고 있답니다.

저는 총을 가지고 연습하고 있어요.

가을이라 숲에 사냥감들이 꽤 많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잘하면 고기를 얻을 수 있거든요.

아, 물론 검술도 열심히 하는 중이고요!

어쨌든. 저희는 계속 즐겁게 지내고 있답니다.

저도 도련님과 함께 지낸 여름이 그립네요. 남작가 저택에서 먹은 초콜릿 무스 케이크 정말 맛있었는데…….

저도 어서 내년 여름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도 이만 짧게 쓸게요. 데클란이 또 숲으로 사냥하러 가자고 하네요.

그럼 이만 총총!

- 사샤 올림]

* * *

[친애하는 사샤 양에게. 그리고 어쩌면 데클란 군에게도.

사샤 양. 지난번 편지에 온통 데클란 군의 자랑만 늘어놔서 조금 슬펐어.

그리고 데클란 군은 어째서 내게 한 마디도 쓰지 않은 거지?

게다가 여름이 그리운 이유가 고작 초콜릿 무스 케이크 때문이라니!

누가 봐도 초콜릿 무스 케이크보다 치즈 케이크가 객관적으로 더 맛있는걸.

그나저나.

지난번에 사샤 양이 보낸 편지에는 온통 데클란 군 자랑뿐이었으니, 나도 내 자랑을 해볼까 해.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자랑할 게 별로 없네.

그나마 자랑할 만한 건 내 건강이 조금 나아졌다는 거야.

도시에 돌아온 뒤 조금 쉬고 나니까 몸이 좋아졌어. 아무래도 내 체질은 선천적으로 인페르나 영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래도 난 사샤 양과 데클란 군을 보기 위해 내년 여름에도 꼭 돌아갈 거야.

아, 그리고 나는 요즘 후계자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

좋든 싫든, 앞으로 난 인페르나 남작이 될 것 같아.

참 우습지. 난 인페르나 영지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인데, 결국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처지라니.

그래도 인페르나 영지는 사샤 양과 데클란 군이 사는 곳이니, 조금이나마 좋아해 보려고 해.

봐, 벌써 좋아졌어.

- 데클란 군도 한 줄 써주길 간절히 바라는 로지에 인페르나]

* * *

[안녕하세요, 도련님.

사샤가 한 줄 쓰라고 해서 억지로 답장을 쓰는 중입니다.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벌써 겨울이 다 지나가네요.

저와 사샤는 최근에 승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물론 진짜 말은 아니고요, 당나귀로 연습하는 중입니다.

검술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요.

도련님이 돌아오면 저와 1:1로 한 판 승부를 내도록 하지요.

이제 할 말이 더 없으니 그만 적습니다.

- 데클란 올림]

* * *

[내가 매우 좋아하는 데클란 군. 그리고 사샤 양.

승마를 배우기 시작했다니, 그것 참 재밌겠네.

만일 본격적으로 승마를 배우고 싶다면 내 어머니를 찾아가도록 해.

우리 마구간에 조세핀이란 말이 있어.

그 아이는 순한 아이니까 처음 승마를 배우기에 적합할 거야.

어머니에게도 미리 말씀드렸어. 너희들이라면 흔쾌히 승마를 가르쳐주겠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데클란 군.

내 생각에는 1:1 대결은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아.

나는 자칫 잘못해서 데클란 군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1:1 대결은 한 삼 년 뒤로 미뤄두자.

그리고 사샤 양.

이건 우연한 기회로 구매하게 된 목걸이야. 사샤 양의 녹색 눈동자와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네.

- 언제나 그대들을 그리워하는 로지에 인페르나]

* * *

로지에의 편지를 읽은 데클란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로지에 그놈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다시 호칭이 놈으로 돌아왔네.’

속으로 한숨을 내쉰 나는 데클란을 다독였다.

“로지에 도련님이 뭘 어땠는데? 그냥 순수하게 널 걱정하고 있는 거잖아.”

“사샤 넌 이게 날 순수하게 걱정하는 걸로 보여?”

그 말을 하며 데클란은 편지의 한 문장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러니까 1:1 대결은 한 삼 년 뒤로 미뤄두자.]

“이건 내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뜻이잖아. 아니야?”

“그야 당연한 거잖아.”

내 방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있던 내가 몸을 일으켰다.

“데클란, 로지에 도련님은 인페르나 남작님 아들이잖아. 그리고 지난여름 때 우린 도련님을 한 번도 이겨본 적 없잖아.”

내 합리적인 말에도 데클란은 승복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랑 너랑 겨울 내내 열심히 연습했잖아. 나 실력 꽤 늘지 않았어?”

“늘기야 엄청 늘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클란의 말이 맞았다.

지난여름 이후, 데클란과 나는 매일 매일 체력 단련을 하며 검술을 연마했다.

우리들은 또 도서관에서 빌려온 검술 교본을 참고해 새로운 기법과 보법을 배웠다.

그리고 최근에 나는 아무래도 나 자신이 데클란의 상대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나와 데클란의 실력은 어느 정도 비등했다.

물론 데클란의 검술 실력은 언제나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그렇지만 나와 데클란 사이에는 기본 체력 차이가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데클란보다 더 셌는데.’

데클란이 검술 능력이 더 뛰어났어도, 기본 체력이 조금 부족했다.

반면 나는 검술 실력이 조금 부족했지만 넘치는 체력으로 그것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데클란은 여태껏 얼추 비슷한 수준에서 대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그간 데클란이 골고루 섭취했던 영양소는 폭풍 성장으로 되돌아왔다.

데클란은 이제 나보다 키가 더 컸다. 그리고 왜소하던 체구도 이제 다부지게 보였다.

점점 힘이 세지는 데클란을 보면서 나는 흐뭇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이러다 나 데클란이랑 더 이상 검술 연습 못하는 거 아니야?’

로지에가 돌아오면 나와 데클란은 그의 놀이 상대로 인페르나 남작가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테다.

그러면 인페르나 남작은 다시 우리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겠지.

그런데 내가 데클란에 비해 실력이 훨씬 부족해서 남작이 일부러 쉬운 동작만 계속 가르치면?

‘데클란의 진도를 늦출 수 없어!’

어떻게든 데클란을 강한 남주로 키우고 싶었던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앞으로 더 분발하도록 하자.

데클란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힘내서 수련에 전진하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편지와 함께 딸려 온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로지에가 내게 선물한 것은 녹색 보석의 목걸이였다.

보석은 새끼 손톱만한 크기로, 가볍게 메고 다니기에 적합했다.

‘보석 목걸이는 난생처음 가져보네.’

목걸이의 보석이 마냥 신기해서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데클란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렇게 봐?”

“너 그 목걸이 하고 다닐 거야?”

“어? 당연하지. 선물 받은 거잖아.”

나는 데클란에게 뭔 당연한 질문을 하냐며 되물었다.

그러자 데클란이 대뜸 말했다.

“안 어울려.”

“뭐?”

“그 목걸이, 너랑 잘 안 어울린다고.”

그런가?

데클란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다지 특징 없는 얌전한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아무래도 로지에는 내가 아무 옷 위에나 편히 목걸이를 착용할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런 심플한 목걸이를 선물한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착용해도 그렇게 이상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하여튼, 사샤. 우리 검술이나 연습하러 가자.”

데클란이 내 어깨 위로 팔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덕분에 나는 들고 있던 목걸이를 침대 위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깐만, 데클란. 도련님에게 답장 써서 드려야…….”

“됐어. 곧 여름이잖아. 로지에 그놈이 알아서 올 텐데, 왜 굳이 답장을 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데클란은 자신의 목검을 잡았다.

오래 전 내가 그에게 선물해 준 목검이었다.

어째선지 그는 인페르나 남작이 준 목검 대신 내가 선물한 목검을 사용했다.

분명히 남작이 준 목검이 훨씬 더 견고하고 품질이 좋은 것일 텐데.

‘얜 이상한 곳에서 고집이 세단 말이지.’

속으로 얕은 한숨을 내쉰 나는 데클란과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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