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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33)화 (33/177)

33화

인페르나 남작은 계속 두 사람을 몰아붙이기로 했다.

“왜 대답이 없지?”

“…….”

“마침 인페르나 영지에 살던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만.”

한참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마로크의 무거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왜 저희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남작님?”

‘허.’

남작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자신에게 말대꾸하며 반문할 줄이야.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남작은 능숙하게 대처했다.

“우리 인페르나 영지는 토질이 나쁘고 땅이 척박하여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지. 그래서 혹여나 그대의 친척이 생전 어려움을 겪다 먼 길을 간 게 아닌지 궁금해서이다.”

“아…….”

“아무래도 내 영지에서 벌어진 사정이니 나도 알아야 할 게 아닌가.”

능청스럽게 말을 돌린 인페르나 남작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반대편에 앉은 부부를 바라보았다.

마로크와 샤네리는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반응을 본 남작은 더더욱 집요히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알려주게나. 영주로서 영지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은 것뿐이니까.”

“…….”

“정말 궁금해서 그런 거야. 나는 그대들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어.”

계속 침묵을 지키는 마로크와 샤네리를 달래듯 남작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샤네리가 결심한 듯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한스란 분입니다. 제 외가 쪽의 먼 사촌입니다.”

한스. 한스라.

그 이름을 들은 남작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한스라면 이곳 영지에서 제일 흔한 남자 이름이었다.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아무 이름이나 댄 건가?’

그러나 남작은 그런 자신의 의구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영지민의 말을 귀담아듣는 영주의 모습을 보였다.

“한스라니…… 그렇군. 그는 어느 마을에 살았었지?”

“그게…… 센레이나 마을에 사셨습니다.”

‘하!’

그 대답에 남작은 또다시 얕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센레이나 마을이라면 이곳 영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마을이다.

이를테면 인페르나 남작령의 대도시였다.

‘센레이나 마을에는 한스라는 사람이 아주 많겠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남작은 이들이 집무실을 나가는 즉시 집사에게 센레이나 마을에 있는 모든 한스에 대해 조사해오라고 시킬 생각이었다.

‘조사해보면 이들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겠지.’

아무리 센레이나 마을에 한스라는 사람이 많아도, 딸 하나를 두고 죽은 한스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페르나 남작은 마로크와 샤네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레사 공작가의 브로치를 가지고 있던 강도들은 사샤라는 아이에게서 브로치를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들은 남작은 파수꾼들을 시켜 사샤에 대해 뒷조사하도록 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사샤의 출생기록이 없어.’

그랬다.

인페르나 영지에는 사샤라는 아이의 출생기록이 전혀 없었다.

이에 남작은 사샤의 양부모인 마로크와 샤네리에 대해 추가 조사를 명령했다.

그리고 입수하게 된 정보는 남작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했지.’

마로크와 샤네리는 본래 아이 없이 살던 부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한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먼 친척 딸이라던데요?’

‘저희도 굳이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남작의 파수꾼들이 마을 사람들을 탐문 했을 때 들은 답이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여자아이. 그런 아이를 자신의 딸로 삼은 부부.

어딘가 수상했다.

‘혹시나 마로크와 샤네리가 이레사 공작가와 관계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그러나 조사 결과, 마로크와 샤네리는 이레사 공작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페르나 영지 바깥으로 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레사 공작가에 들어가 브로치를 훔쳤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가난한 농부였다.

그런 그들에게는 브로치 따위의 사치품을 구매할 돈이 없었다.

그런 마로크와 샤네리가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공작가의 도둑맞은 브로치를 구매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사샤는 어떻게 브로치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마 사샤가 브로치를 가질 수 있었던 위치의 아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달리 말하자면.

‘사샤는…… 이레사 공작의 잃어버린 딸이 아닐까?’

인페르나 남작은 차분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 잔뜩 굳어 있는 마로크와 샤네리의 모습이 닿았다.

그 모습을 보자, 남작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이들은 알고 있을까?

사샤가 실은 이레사 공작이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잃어버린 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 * *

이레사 공작의 외동딸인 이레사 공녀.

그 공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드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전대미문의 추문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레사 공작의 외동딸 있잖아요, 사실 진짜 딸이 아니래요.’

‘저도 그 소문 들었어요. 듣자 하니 어릴 때 잃어버린 친딸과 비슷한 아이를 데려와서 대역으로 세워둔 거라면서요?’

귀족들 사이로 알음알음 전해지는 기괴한 소문이었다.

이레사 공녀의 출신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레사 공작부인은 일찍이 이레사 공녀를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이레사 공작은 일부러 아이를 멀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작은 자신의 아이를 피했다.

아이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가 죽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작은 아내의 생명을 빼앗아 간 아이가 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내를 닮은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졌다.

그래서 이레사 공작은 아이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이레사 공작에게 거부당한 아이는 유모와 시녀들의 손에서 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레사 공녀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공녀는 유모와 시녀들과 함께 숲으로 소풍을 하러 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레사 공작은 그 소풍에 따라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이레사 공작은 자신의 딸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이레사 공녀가 제 아빠와 같이 가고 싶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고 했다.

이레사 공작은 매정한 아빠였다. 그리고 이레사 공녀는 그저 그런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이레사 공작은 끝내 자신의 딸에게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공녀는 하는 수 없이 울면서 제 유모와 시녀들과 함께 쓸쓸한 소풍을 떠났다.

그리고 그게 이레사 공작이 기억하는 공녀의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레사 공녀가 실종되었다.

유모와 시녀들이 간식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한눈을 팔던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큰일 났어요! 도와주세요! 공녀님이 보이지 않아요!’

‘아무리 찾아도 공녀님이 없어요!’

한참 동안 숲을 뒤지던 유모와 시녀들이 다급히 공작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라진 이레사 공녀를 찾기 위해 많은 병사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기나긴 수색이 지나고도 이레사 공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딸을 잃은 이레사 공작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제아무리 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공작은 자신의 딸의 존재를 부정한 적은 없었다.

공작부인의 죽음으로 얻은 딸이었다.

그런 귀중한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분노에 눈이 먼 이레사 공작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풍에 갔었던 유모와 시녀들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큰 실수였다.

이레사 공녀에 대해 잘 알던 이들이 전부 죽어버렸다.

그 때문에 이레사 공녀를 찾는데 필요한 정보가 모두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공작은 평소 제 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그는 이레사 공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그나마 어릴 적 남겨둔 공녀의 초상화가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공녀를 본 적이 있는 사용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밝혀진 이레사 공녀의 외모는 이러했다.

‘진홍색 머리카락. 녹색 눈동자. 전 공작부인을 닮은 아름다운 외모.’

광대하고 모호한 묘사였다.

덕분에 이레사 공녀를 찾는 데는 더더욱 지장이 생겼다.

그러나 이레사 공작은 막무가내였다.

‘내 유일한 딸이다! 내게는 그 아이 말고는 아무도 없단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공녀를 찾아내라!’

이레사 공작은 아이를 잃고 나서야 후회했다.

왜 그동안 아이를 냉안시하며 살았던 것일까.

아무리 제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아내의 절반을 물려받은 소중한 아이인데.

그런 아이를 왜 여태껏 들떠보지 않은 걸까.

그리고 왜 아이를 잃은 뒤에서야 그 아이를 찾기 시작한 걸까.

이레사 공작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다가 이레사 공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한때 붉은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이레사 공작가의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레사 공작은 자신의 딸을 되찾았다고 선포했다.

공작이 선보인 이는 적발과 녹안을 가진 어린 여자아이였다.

대외에 알려진 이레사 공녀의 외모에 부합하는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여자아이가 진짜 이레사 공녀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진짜 이레사 공녀를 아는 이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작이 데리고 온 아이는 귀족 영애로 보기에 어딘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아이의 손에는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마치 험한 노동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평생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이레사 공녀의 손이 그렇게 투박할 리가 없다.

게다가 아이의 몸에는 귀족의 점잖은 태도가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아이는 제대로 인사하는 것은커녕, 식탁 예절도 지키지 못했다.

이레사 공작은 자신의 딸 아이가 숲속에서 혼자 길을 잃은 충격에 빠져 기억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하다니까요. 그냥 자기 딸이랑 비슷한 아이를 어디서 데려온 거예요.’

‘이레사 공작도 정신이 단단히 이상해진 게 분명해요. 어떻게 근본이 확실치 않은 아이가 제 친딸이라고 억지로 우길 수 있죠?’

귀족들 사이로 이레사 공작과 그의 딸에 대한 이런저런 말이 오고 갔다.

그러나 이레사 공작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레사 공작은 그 아이가 자신의 진짜 딸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그 아이가 자신의 진짜 딸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 * *

여기까지가 인페르나 남작이 아는 이야기였다.

수도의 귀족들과 큰 연이 없었던 인페르나 남작은 그 뒤로 이레사 공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사샤가 이레사 공작가의 브로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부터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사샤가 이레사 공작이 잃어버린 진짜 딸이 아닐까?’

남작이 그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 남작님!”

급박한 노크 소리 뒤로 집사가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다분히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남작은 그만큼 집사가 급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지?”

“큰일 났습니다! 아이가 다쳤습니다!”

집사의 말에 남작과 사샤의 부모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로지에가?”

“우리 사샤가요?”

집사는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네? 아, 아닙니다. 갈색 머리 남자아이가 다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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