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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13)화 (13/177)

13화

며칠 뒤, 내 상처는 다 회복되었다.

최대한 빨리 낫기 위해 밥을 많이 먹고 잠을 많이 잔 덕분이었다.

몸이 괜찮아지자마자 내가 한 일은 바로.

“데클란! 놀자!”

아침 해가 밝기가 무섭게 나는 데클란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아직 잠옷 차림의 데클란이 문을 열었다.

“……너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알아! 아침 5시 12분!”

내가 환한 미소와 함께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반 사람들은 아침이 아니라 새벽이란 단어를 써.”

“아침이든 새벽이든 너를 만날 수 있다면 다 좋아! 어서 놀러 가자!”

“아침밥이나 먹고 와.”

쾅!

그 말을 뒤로 데클란은 문을 닫아버렸다.

바로 얼굴 앞에 문을 닫아버린 꼴이었지만,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데클란이 내 끼니를 걱정해줬어! 밥 먼저 먹고 오래!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해!’

그렇게 나는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고 다시 데클란을 찾아갔다.

“데클란! 데클란! 놀러 가자!”

문밖에 서 있는 나를 본 데클란은 헉, 하고 숨을 거꾸로 들이켜며 문을 쾅 닫아버렸다.

‘부끄럼 많이 타네.’

후후, 수줍음 많이 타는 우리의 남자주인공.

나는 남몰래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데클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데클란은 얌전히 내 옆에 서게 되었다.

“둘이 잘 놀다 오렴.”

데클란의 어머니가 호호 웃으며 나와 데클란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데클란을 데리고 숲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주로 하듯 숲속을 뛰어다니며 하하호호 놀기 시작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나무를 타고 돌을 주워 모으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집에 틀어박혀 있어 봐야 할 일이 없었다. 부모님도 더 이상 농사일을 시키지 않았다. 가난한 촌 동네답게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노는 거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이 마을 옆에 있는 숲을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아무래도 나는 자연인 체질인 게 분명했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서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노니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데클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데클란! 어서 올라와! 여기 나무 위에 열매 달렸어!”

“사, 사샤…… 나…… 더 이상은…….”

먼저 나무 위에 올라가 새콤달콤한 열매를 따 먹고 있는데, 나무 아래에서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데클란이 나무 몸통의 절반쯤에 매달려 있었다.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내가 먼저 훌쩍 앞으로 달려가 데클란을 기다리고 있으면, 데클란은 헉헉거리며 한참 후에 나를 따라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런 중대한 결론에 도달했다.

‘데클란 얘 완전 약골이잖아?’

그랬다.

어린 시절의 데클란은…… 영 쓸모가 없는 놈이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훌쩍 지났다.

‘장차 커서 여주를 모시고 살아야 할 놈이 이렇게 골골 앓아서야…….’

바위 위에 드러누워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데클란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오늘 데클란과 나는 숲 안에 있는 계곡에 수영을 하러 왔다.

계곡이라고 하지만 수심이 얕은 곳이 있어 아이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공간이었다.

“너 수영 잘해?”

아까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 내가 먼저 데클란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조금.”

뭐? 조금?

데클란의 대답에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분명히 원작 소설에서 데클란이 물에 빠진 이레사 공녀를 구출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로맨스 소설 속 약속된 전개답게 데클란은 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이레사 공녀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이레사 공녀는 데클란의 목을 끌어안고 그에게 열정의 키스를 퍼붓고, 두 사람은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 명장면을 위해서라도 데클란이 빨리 수영을 마스터해야 하는데.

‘아니지. 진정하자. 데클란은 아직 열 살이야. 얘가 왕실 특수부대에 입대한 건 열여덟 살 때 일이야.’

아직 8년이란 시간이 있다.

그간 열심히 노력해서 체력을 키우면 되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데클란에게 수영을 연습시키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데클란도 손짓하는 나를 보고 이내 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에 퇴장했다.

그 뒤로 지금 이 상태다.

음, 조금 심각하군.

‘우리 남주는 왜 이리 허약할까…….’ 

바위에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 데클란을 내려다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힘들어 죽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붙들고 고문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 간식 먹자.”

나는 도시락 바구니를 꺼내 데클란에게 내밀었다.

며칠 전 엄마가 시장에서 닭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아빠는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닭고기 수프를 만든 뒤, 남은 고기를 밀가루 반죽으로 뭉쳐 튀겨주셨다.

도시락통을 열자, 구수한 고기 냄새가 바위 주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게 뭐야?”

가만히 바위 위에 누워있던 데클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치킨 텐더.”

나는 튀긴 닭 조각 하나를 집어 데클란에게 내밀었다.

데클란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닭 조각을 바라보았다.

“왜 안 먹어?”

닭 조각을 우물우물 씹고 있던 내가 물었다.

“그냥…… 고기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뭐?”

순간 목이 켁켁 막혀왔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확실한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 체력이 바닥인 이유가 있었구먼?

‘안 되겠다. 얘는 단백질부터 먹어야겠다.’

데클란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데클란의 집에 갈 때마다 녀석이 늘 채소 수프만 먹고 있었던 게 뒤늦게 떠올랐다.

‘한창 먹고 성장해야 할 나이인데…….’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입술을 굳게 닫은 나는 당장 도시락을 통째로 데클란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데클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샤, 넌 안 먹을 거야?”

“나 배불러. 네가 다 먹어.”

“그렇지만…….”

치킨 텐더를 혼자 먹는 게 미안했는지 데클란이 자꾸만 망설였다.

그러나 나는 완강히 먹지 않겠다고 버텼다.

“안 먹으면 싹 다 버릴 거야.”

“너 진짜…… 이상한 애야.”

데클란은 결국 내 고집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그러나 데클란은 닭 조각을 먹으면서도 나를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왜?”

“……너도 좀 먹어.”

데클란이 도시락통 안에서 닭 조각 하나를 집었다. 통 안에서 제일 큰 조각이었다.

“먹어.”

데클란이 내 입 앞으로 닭 조각을 내밀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한 조각 먹으라고 하는 데 입을 열지 않는 것도 도리가 아닌지라, 나는 그 조각을 냠, 받아먹었다.

데클란은 가만히 내가 치킨 텐더를 우물우물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맛있어?”

“고기인데 맛이 없을 리가.”

“그렇네. 사샤 너 하나 더 먹을래?”

“아니, 너 다 먹어.”

입 내용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데클란을 재촉했다.

데클란은 계속 미안해하면서도 도시락통 안에 있는 치킨 텐더를 전부 먹어 치웠다.

매일 묽은 채소 수프로 삼시세끼를 채웠을 데클란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데클란의 어머니는 옷 수선하는 일로 돈을 버신다고 했지.’

수입이 고정치 않은 데다가, 값싼 노동력이었다.

집에 돈이 없으니 분명히 음식도 잘 먹지 못했을 테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두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데클란에게 고기를 먹어야겠어.’

내 새끼, 내 최애가 쫄쫄 굶어서 영양실조가 되는 건 절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지!

* * *

그날 오후, 나는 데클란의 손을 잡고 함께 마을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녀석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데클란을 건드리지 말라고 선포한 이후, 마을 아이들은 최대한 나와 마주치지 않도록 숲이나 계곡 방문을 기피했다.

부모님께 들은바, 아이들은 마을 회관에서 팽이를 치거나 술래잡기를 하며 건전하게 놀고 있다고 했다.

마을 회관을 찾아가니 과연 정보대로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창문 너머로 보였다.

‘찾았다!’

신이 난 나는 회관의 문을 열어젖혔다.

쾅!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회관에 울려 퍼졌다.

‘에구, 괜히 발로 찼나.’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나서 심장이 괜히 쫄렸다.

그렇지만 데클란의 손을 잡고 있느라 손으로 문을 열 수 없었다.

나는 데클란의 손을 꼭 잡은 채 회관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그러면서 반갑고 친근하고 상냥하게 문안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 니네들 잘 지냈냐? 다들 안색이 좋아 보인다?”

“사, 사샤다!”

“끄아악!”

나와 데클란을 본 동네 아이들의 얼굴이 일제히 석고 방향제처럼 굳어버렸다. 몇몇은 당장이라도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들 왜 이래?’

서로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향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녀석들 사이에서 ‘히이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데클란의 손을 놓고 아이들을 쭉 둘러보던 나는 아이들 중 가장 덩치 큰 남자애를 불렀다.

이 녀석은 이름이 케쉬키라고 했던가?

여하튼, 저번에 내게 먼저 시비를 털려다가 나한테 한 방 얻어맞고 뻗은 그놈이었다.

“나, 나 불렀어……요?”

의자 위에 앉아있던 케쉬키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너.”

왜 끝에 어색하게 존댓말을 쓰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케쉬키를 바라보았다.

“너희 집 사냥 도구 장사하는 집이라며? 집에 사냥 도구 있지? 그거 좀 가지고 와 봐.”

“사, 사냥…… 도구요?”

“어. 너희 부모님 몰래 다녀올 거야. 빨리 끝내줄게.”

그러면서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남의 집 장비를 빌리는 일이다 보니 최대한 예의 있게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케쉬키는 내 미소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다.

“사, 사샤! 아니, 사샤 누님!”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케쉬키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마치 무릎 관절이 젤리처럼 녹아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샤 누님, 저 그동안 진짜 데클란 한 번도 안 건드렸어요! 누님 경고 잘 듣고 이상한 짓 하나도 안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어?

난데없는 케쉬키의 속사포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두 눈을 깜빡거렸다.

‘얜 갑자기 왜 살려 달래?’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다른 녀석들도 피차일반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두들 지진이 난 지역의 건물처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왜 이래? 단체로 고장난 거야?’

어처구니가 없이 가만히 굳어 서 있던 그때.

“저기, 사샤…….”

뒤에서 데클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내게 귀를 빌려달라는 그 손짓에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데클란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물론 음성의 부드러움과 전해주는 내용의 부드러움은 별개의 문제였다.

“사샤…… 케쉬키의 말이 맞아. 그날 이후 아무도 날 괴롭히지 않았어. 그러니까 케쉬키를 죽이지 말아 줘.”

엉? 얘 지금 뭐라 씨불이는 거니?

“나 참, 내가 언제 케쉬키 죽인다고 했어?”

나는 깔깔 웃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데클란 너, 농담도 참! 이런 비좁은 시골 마을에서 내가 왜 사람을 죽이겠어? 사람 죽이고 시체 처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랬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일 살인사건이 일어났더라면 범인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잡힐 테다.

그런데 내가 케쉬키를 죽이겠다고?

참 쓸모없는 걱정을.

내 합리적인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어째선지 더 큰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샤 누님! 살려주세요!”

“언니,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회관에 모여 있던 동네 아이들이 이제 전부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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