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당연한 얘기지만, 그날 뒤로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소식 들었어요? 옥수수밭 하는 집 딸내미가 강도 둘을 혼자 쫓아냈다네요!”
“듣자 하니 맨손으로 놈들을 때려잡았다는데! 세상에, 힘이 정말 천하장사라니까요!”
“맞아요! 어찌나 야무지게 팼던지 거시기가 터졌던데!”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수군했다.
내게 욕하는 게 아니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를 볼 때마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푹 숙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니까 내가 깡패라도 된 것 같잖아.’
나를 바라보는 시선 중에는 공포로 질린 시선이 더러 뒤섞여 있었다.
그게 억울했다.
난 정말 선량한 마을 아이 1인데!
그날, 마차를 끌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나는 무작정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을 붙잡고 외쳤다.
“강도를 만났어요!”
처음에 마을 어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강도를 만났다니, 그게 무슨!”
“어른에게 거짓말하면 못써!”
그러나 이어서 데클란이 나를 두둔하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절해 있던 아빠도 신빙성을 추가해 주었다.
이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기(라고 해봤자 대부분이 농기구였다)를 들고 숲으로 향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우리가 강도를 만났던 곳으로 향했다.
타박상을 입었는지 온몸의 근육이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반드시 강도 놈들을 잡겠다는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도착한 현장의 모습은 내 맥을 탁 풀리게 했다.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히 낭떠러지 아래 떨어져 있을 강도들이 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짐칸과 추락한 옥수수, 그리고 강도들이 썼던 밧줄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강도들의 가방과 장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도망친 건가.’
내가 분명 놈들의 급소를 여러 차례 밟았는데.
그런데도 용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일어난 모양이다.
‘아예 터뜨릴 걸 그랬어.’
강도들은 놓친 게 아쉬워 나는 혀를 찼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이니 어쩔 수 있겠는가.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해 보았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낭떠러지에 처박힌 옥수수와 짐칸 파편들을 주워 올렸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아빠가 울먹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샤야!”
나를 꽉 끌어안는 아빠의 품에서 나는 켁! 하고 숨을 멈췄다.
“세상에, 사샤야! 널 잃는 줄 알았구나…….”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감긴 눈꺼풀 아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비록 내 진짜 아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날 걱정하며 우는 모습을 보자 마음 한쪽이 뭉클해졌다.
다행히 아빠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그저 목각으로 얻어맞기 전 몇 분간의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잡아다 팔아먹는 강도 놈들은 도망쳤고, 아빠가 이웃 마을에 가져다 팔려던 옥수수는 우리가 다 씻어서 먹게 되었다.
덕분에 옥수수 요리를 아주 질리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망 플래그에 사로잡힌 악역 엑스트라로 돌아왔다.
‘……데클란이랑 어서 하루빨리 친해져야 하는데.’
집 앞에 쭈그려 앉은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강도 사건이 벌어진 뒤, 데클란은 줄곧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데클란의 어머니는 온통 모래투성이로 돌아온 데클란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세상에, 데클란!”
소란 소리를 듣고 집에서 뛰쳐나온 데클란의 어머니는 데클란을 향해 맨발로 달려갔다.
데클란을 꽉 끌어안은 그녀는 나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사샤, 네가 또 내 아들을!”
예?
나는 두 눈을 멀뚱멀뚱 뜬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데클란의 어머니는 내가 또 데클란을 괴롭혔다고 오해하고 만 모양이다.
많이 억울했다.
어떻게 반박해야 잘 반박했다고 소문이 날지 짧게나마 고민하고 있던 그때.
“……아니에요.”
제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데클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사샤는…… 오히려 절 구했어요.”
데클란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마치 영웅담이라도 술회하듯 잔잔한 목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 들은 데클란의 어머니는 그제야 자신이 나를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대단히 미안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내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고 하고 또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했다.
“…….”
데클란은 내게 연신 사과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우리를 도와주러 나왔던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려오는 근육에 연고라도 바를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음?’
뒤에서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데클란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 그래?”
“…….”
그 자리에 선 데클란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내 옷자락을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있던 데클란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그의 얼굴은 읽기 힘든 전공 도서와도 같았다. 아무리 열심히 시간을 써서 들여다보아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고마워.”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 서 있던 데클란의 입에서 결국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잠시 멍하니 굳어 섰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지금…… 뭐라고 했어?”
“……고맙다고. 귀먹었어?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듣고 그래.”
세상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데클란은 분명히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싫다고 말했던 그가, 내게 고맙다고 말하다니!
심장의 구석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데클란과 나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너 이제 나랑 진짜 친구 하는 거야?”
잠시 머뭇거리던 내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부메랑처럼 답이 단번에 되돌아왔다.
“싫어.”
그럼 그렇지.
사망 플래그가 이렇게 쉽게 지워질 리가 없지.
허탈해진 나는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나는 계속 데클란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같이 쑤시는 몸을 이끌고 데클란을 만나러 갔다.
그렇지만 데클란은 좀처럼 얼굴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어째선지 그는 매번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
‘누가 남주 아니랄까 봐, 나 같은 엑스트라는 얼굴도 보기 힘드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희망을 품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데클란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이른 시간이면 아직 집에 있겠지?’
그러나 문을 열어 준 데클란의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구나, 사샤. 데클란은 집에 없단다.”
“아…… 어디 갔는지 혹시 아세요?”
“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네.”
아쉬운 대답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없다는데 어떻게 하겠나.
그나마 다행인 건 데클란의 어머니가 더 이상 나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데클란도 이렇게 내게 호감을 보이면 좋을 텐데.
나는 땅이 꺼져라 푹푹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텅 빈 거실과 부엌에 눈에 들어왔다.
본래 가난한 평민 아이들이 다 그러하듯, 나 역시 원래대로라면 부모님을 도와 옥수수밭에서 일해야 했다.
그러나 강도 사건 이후 부모님은 나더러 계속 휴식을 취하라고 강권했다.
‘그냥 집에 가만히 있으렴, 응?’
‘엄마 아빠가 걱정돼서 그래.’
그렇게 나를 다독인 부모님은 내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도록 강요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좋았다. 안 그래도 낭떠러지에서 추락했던 바람에 몸이 쑤시고 아파왔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내 몸은 다른 이유로 쑤시기 시작했다.
‘심심해.’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워있자, 온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전생의 세상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도 없고, 게다가 SNS도 없다.
도대체 뭘 하고 시간을 때워야 할지 막막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조상님들은 뭘 하고 지냈을까?’
방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도 귀찮아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 짓을 찾아 나섰다.
하다못해 어지럽혀진 방을 싹 치우고 밀대로 밀고 빗자루로 쓸고 별짓을 다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생겨난 지루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빈둥거리던 나는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옷장 안에 쌓인 무더기 옷들을 하나하나 접던 나는 생각했다.
‘그때 그 브로치는 뭐였을까.’
커다란 붉은 보석이 박혀 있던 브로치.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강도들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값어치가 상당할 물건이라고.
그 누구도 아닌 도둑질 전문가인 강도 놈들이 말했으니, 그 브로치는 분명히 진짜 물건이었다.
‘그 강도들에게 빼앗긴 건 분하긴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브로치는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정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감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강도 사건이 있던 이후, 나는 혹여나 부모님이 브로치에 관해 이야기를 할까 싶어 귀를 쫑긋 세우며 기다렸다.
그러나 부모님은 브로치에 대한 언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부모님을 떠보듯이 ‘보석이 있으면 좋겠다’는 식의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은 평민이 무슨 보석이냐며 내게 핀잔을 주었다.
이상했다.
만일 부모님이 내 브로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분명히 내게 브로치 하나로 부족하냐는 투의 말을 했을 테다.
그러나 요 며칠간 내가 아무리 간접적으로 보석에 대해 언급해도, 내 부모님은 브로치에 대한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부모님은 브로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브로치의 정체 때문에 나는 끙끙거렸다.
‘혹시.’
혹시 빙의하기 전의 진짜 사샤가 어디선가 훔쳐 온 게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진짜 사샤는 그다지 인성이 좋은 아이 같지 않았다.
일단 바로 옆집에 사는 또래 친구를 놀려먹고 때리고 두드려 팼다는 점에서 마이너스 100점이다.
그런 아이라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도 남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만약 사샤가 그 브로치를 어디선가 훔쳐 온 것이라면, 과연 어디서 훔쳐 온 걸까?
‘이 영지는 부자가 사는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이곳에 빙의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간 내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 영지는 찢어지게 가난한 평민들밖에 살지 않았다.
‘이 영지를 다스리는 남작의 물건이라도 훔친 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빙의 전의 진짜 사샤의 기억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데클란의 집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바로 데클란 본인이었다.
‘데클란이다!’
데클란을 보자마자 온 사고가 정지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데클란!”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간 나는 데클란을 향해 두 팔을 휘휘 내저었다.
“사, 사샤?”
데클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 내가 이렇게 갑자기 툭 튀어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그의 손에는 작은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손수건으로 덮여있어 그 바구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하길래 아침부터 집을 나섰던 거지?
호기심이 생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데클란의 바구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뭘 봐?”
데클란이 얼굴을 확 붉히며 바구니를 등 뒤로 감췄다.
아무래도 안의 내용물을 내게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