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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10)화 (10/177)

10화

“저기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힘이 없고 싸울 의지도 없는 약한 아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덜덜 떨어주었다.

“저, 이, 이거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저희 잡아가지 마세요.”

일부러 겁에 질린 듯이 말을 더듬으며, 나는 내 호주머니에서 붉은 브로치를 꺼냈다.

“아니, 그건!”

반짝거리는 브로치를 본 두 강도의 눈이 당장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뜨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진 브로치는 딱 보아도 모조품이 아닌, 진짜 보석으로 만들어진 비싼 물건이었으니까.

‘이게 왜 내 옷장에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니까.’

출처가 어떠하든, 일단은 상관없었다.

지금 이 브로치를 나는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생각이니까.

“그 비싼 건 어디서 난 거야?”

“그거 당장 이리 내!”

욕심에 눈이 뒤집힌 강도들이 당장 내 손에 있는 브로치를 뺏기 위해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재빨리 브로치를 등 뒤로 감췄다.

“야, 약속해 주세요! 이거 받는 대신 저희 놓아주는 걸로요!”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두려움에 떠는 여자아이를 연기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강도들은 내 연기에 홀라당 속아 넘어갔다.

“놓아줘?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강도들의 얼굴 위로 비열한 조소가 어렸다.

“브로치를 준다니까요!”

“그래서 뭐? 어차피 우린 널 잡아서 브로치를 뺏을 수 있는데?”

“고작 브로치 하나 따위로 도망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나 봐?”

강도들은 백치를 바라보듯 나를 내려다보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

이 상황을 지켜보던 데클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혀가 바싹 마르기라도 한 것인지 나를 보며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정말 브로치로 그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니다.

브로치는 그저 미끼일 뿐!

“자, 어서 이리 내놔!”

강도 중 키가 작은 남자가 내게 쿵쿵 다가왔다.

“시, 싫어요!”

계속해서 벌벌 떠는 연기를 하며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도는 이런 내 도주가 우습다는 듯이 내 뒤를 바싹 뒤쫓기 시작했다.

이때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나는 브로치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반대편으로 그것을 내던졌다.

휙!

“이, 이런!”

줄곧 내 브로치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강도는 거의 본능적으로 브로치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는 허겁지겁 모래 아래 반쯤 파묻힌 브로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은 더 이상 내가 아닌 보석 브로치에 빠져있었다.

원하던 바였다.

“더러운 새끼들.”

브로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강도를 내려다보며, 내가 직설했다.

“뭐?”

브로치를 제 호주머니 안에 쑤셔 넣고 있던 강도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그를 잔뜩 쏘아보았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잡아다 파는 더러운 새끼들이라고 했다!”

퍽!

내 발이 강도의 두 다리 사이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쳤다.

“악!”

중심부를 제대로 걷어차인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다른 강도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건 이 장면을 지켜보던 데클란도 마찬가지였다.

“으, 으윽…… 이 빌어먹을 꼬마가……!”

제 다리 사이를 붙들고 꺽꺽거리고 있는 강도는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있는 힘껏 걷어차기 잘한 것 같다.

그의 몸에 힘이 잠시 풀린 틈을 노렸다.

푹!

나는 다시 한번 인정사정없이 발길질했다. 일부러 같은 곳을 노리는 센스를 발휘하며.

“아악!”

두 번째 일격을 받은 강도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그러나 내겐 자비 따윈 없었다.

애초에 아이와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은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오물이었으니까.

당황한 다른 강도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던 그 순간, 나는 또다시 강도의 급소를 노렸다.

연달아 내려친 통각에 강도는 꺽꺽거리며 그대로 축 늘어졌다. 그는 등이 들썩거리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냉랭한 눈으로 그를 흘려보았다.

좋아, 한 명 처리했고.

“이, 이 빌어먹을 년이!”

제 동료가 쓰러진 것을 본 다른 강도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감했다.

고작 꼬마에게 이렇게 당할 줄을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계집 주제에 숙녀답게 굴지 못하고, 어디서 감히!”

지랄하네. 지는 아이들을 팔아다 빌어먹는 개새끼 아니랄까 봐, 개소리만 지껄이고 난리야.

인상을 팍 찌푸린 나는 잽싸게 몸을 틀었다.

나를 붙들려던 강도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허둥거렸다.

나는 데클란을 향해 눈짓했다.

‘어서 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던 데클란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움직였다. 쓰러진 강도의 몸을 넘어 밧줄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는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억지는 부리지 않았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은, 자신이 먼저 도망쳐 도움을 구하는 것이라고.

이를 본 남은 강도가 두 눈을 호랑이 눈망울처럼 부릅떴다.

“어딜 도망치려고!”

대머리 강도는 잽싸게 달아나려던 데클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디 감히 데클란을!

눈을 사납게 굴린 나는 대머리 강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무릎 바로 뒤쪽을 맞은 강도가 악,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휘청거렸다.

이크!

그를 피해 몸을 굴린 나는 바닥에 모래 한 줌을 쥐었다.

“이 빌어먹을 년이!”

성난 강도가 몸을 일으켜 나를 향해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기다렸던 바다.

촤악!

나는 주먹에 쥐고 있던 모래를 그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으아아악! 내 눈!”

순식간에 두 눈이 모래로 뒤덮인 대머리 강도는 주춤거리며 두 팔을 휘저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한 그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 이 빌어먹을 년! 죽여버릴 거야!”

“아오, 그놈의 빌어먹을 년! 욕 좀 창의적으로 못 하세요?”

모래 위로 쓰러져 버둥거리고 있는 대머리 강도를 향해 입을 이죽거린 나는 그대로 그의 위로 뛰어올랐다.

물론 내가 노리는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악!”

내 신체적 폭력이 정의를 구현하는 순간, 쓰러져있던 강도의 입에서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물론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계속 걷어차고 짓밟고, 무게를 실어 타격했다.

“끄, 끄으윽……”

징그러운 소리를 흘린 대머리 강도는 결국 조금 전 자신의 동료처럼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개자식들.”

퉤, 하고 침을 뱉은 나는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강도들이 고맙게도 설치해 준 밧줄을 타고 구덩이에서 탈출하자, 창백한 안색의 데클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쓰러져 있던 내 아빠를 부축하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사, 사샤…….”

내 이름을 중얼거린 데클란은 그 뒤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굳이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데클란이 부축하고 있는 아빠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나는 그의 흉부에 귀를 대보았다.

다행히도 심장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서 마을로 돌아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낭떠러지 아래를 흘끔 바라보았다.

내가 중심부를 밟은 충격이 꽤 큰지 두 강도는 그대로 끙끙거리며 쓰러져 있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지만, 언제 다시 기력을 되찾아 나와 데클란을 덮치려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브로치가 아깝긴 하지만.’

강도 중 한 명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간 브로치를 생각하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굳이 그의 옷을 뒤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강도가 내게 달려들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지금은 재물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걸 지키도록 하자.

나는 아무런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밧줄 먼저 끊자.”

“어?”

“저 새끼들이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 없잖아?”

나는 강도들이 낭떠러지 위에 남겨둔 가방을 뒤적거렸다.

강도질을 하려면 여러 장비가 있어야 할 테니, 그중에 칼이나 가위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가방 안에 단도 하나가 들어 있었다.

단도를 꺼내든 나는 강도들이 설치해 둔 밧줄을 끊어버렸다.

후두둑.

지탱점을 잃은 밧줄은 머리카락처럼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됐다. 이렇게 하면 저 구덩이에 빠진 강도들이 도망쳐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와 데클란은 아직도 기절해 있는 아빠를 끌고 마부석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나는 새삼 내 힘이 얼마나 센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샤 정말 괴력이잖아?’

물론 데클란도 돕긴 했지만, 아빠를 옮긴 건 대부분 내 공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어린 내가 다 큰 성인을 쉽게 옮길 수 있다니.

다행히 당나귀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 말처럼 똑똑하지 않아서 멀뚱멀뚱 서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멍청한 당나귀라서 다행이야…….’

그제야 당나귀가 끌던 이 수레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나는 속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아빠를 마부석에 대충 앉힌 나는 당나귀의 고삐를 붙잡았다.

“너 마차 몰 줄 알아?”

내 아빠를 붙든 데클란이 급히 물었다.

“몰라.”

“그럼 마차를 어떻게 몰려고?”

“잘.”

그렇게 짤막하게 대꾸한 나는 무작정 고삐를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화들짝 놀란 당나귀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당나귀가 마을 쪽으로 몸을 틀 때까지 그렇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다 마침내 내가 원하던 대로 당나귀가 방향을 돌리자, 나는 단번에 당나귀의 엉덩이를 살짝 걷어찼다.

—히이잉!

놀란 당나귀가 무작정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고삐를 쥔 나는 옆에 앉은 데클란을 흘끔 쳐다보았다.

내 아빠를 부축하며 앉아있는 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떡하니 벌어진 그의 입은 고장 난 것처럼 닫힐 줄을 몰랐다.

나는 고삐를 쥐지 않은 한 손으로 데클란의 턱을 꾹 눌렀다.

“입 닫아.”

“어, 어?”

“흙먼지 들어가잖아.”

“……아, 응.”

데클란이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서 쉽사리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마치 여러 감정을 뒤섞어 놓은 병이 그의 얼굴 위에서 깨져버린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데클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마차 태워줬으니까, 사망 플래그 좀 없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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