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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7)화 (7/177)

7화

‘보석 브로치……잖아?’

내 손바닥 위에 놓은 그것은 큼지막한 보석 브로치였다.

브로치의 한 가운데는 체리만큼이나 커다란 알의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붉은 보석은 옷장 사이로 스며들어온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각도가 바뀔 때마다 그 안에 스며든 광채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조각상처럼 멍하니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화려한 브로치가 왜 내 옷장에…….’

세밀하게 세공된 브로치였다. 길거리 장터에 굴러다니는 싸구려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묵직한 무게가 나가는 것으로 미뤄보아 붉은 보석 역시 진짜 보석일 테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이건 옥수수밭을 하는 농부 집에 있을 법한 물건이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동상처럼 굳은 채 보석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사샤!”

끼익, 소리와 함께 방문이 활짝 열렸다.

“뭐 하는 거니? 밑에서 아빠랑 데클란이 기다리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불쑥 들어온 이는 엄마였다.

“네, 네에!”

예상치 못한 엄마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나는 급히 내 손에 쥐고 있던 브로치를 내 바지 호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내가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기가 무섭게 옷장 앞으로 엄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사샤! 너 옷장 안에서 뭐 하는 거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린 나는 하하하, 웃음을 흘리며 옷장 밖으로 기어 나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엄마에게 브로치를 들킬 뻔했다.

“하아, 사샤…… 네 방은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 거니.”

내 방을 둘러본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엄마랑 아빠가 바빠서 네 방을 자주 청소해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지 않니?”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대답은 잘해요! 어휴, 이제 어서 내려가 보렴. 방은 나중에 돌아와서 치우고.”

“네.”

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사샤의 엄마는 평소 제 딸의 방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옷장에 보석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을 테다.

‘이건 어쩌지?’

엄마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바지 주머니 속에 숨긴 브로치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지가 두꺼운 소재라는 것이다. 하여 호주머니가 불룩 튀어나오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시 거실로 내려오자, 그곳에는 이미 나갈 채비를 다 마친 아빠와 데클란이 서 있었다.

“옥수수 잘 팔고 와요, 여보.”

“걱정하지 마요. 옥수수 잘 팔고 닭 한 마리 잡아 올게.”

“그러면 좋겠네요. 당신, 마차 운전할 때 제발 조심해요! 낭떠러지 지나갈 때 특히나!”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아 참! 그리고 요즘 아이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먹는 나쁜 강도들이 극성이라잖아요. 조심해요!”

“걱정도 참! 그런 강도들은 우리 같은 깡촌에 안 와요!”

엄마의 잔소리에 아빠는 그저 허허 웃어댔다.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봅시다! 자, 얘들아, 가자!”

아빠는 나와 데클란을 이끌고 마차를 향해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데클란과 함께 마차의 짐칸 위로 올라탔다.

짐칸에는 어제보다 훨씬 많은 양의 옥수수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옥수수 밟지 말렴. 오늘 다 팔 물건들이야.”

아빠의 말에 나와 데클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한다!”

고삐를 쥔 아빠가 당나귀를 다그쳤다.

푸르릉, 소리와 함께 당나귀가 느릿느릿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데클란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서 조용히 밥을 먹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데클란에게 말을 걸었다.

“너 마차 정말 좋아하는구나.”

“어.”

“왜 좋아해?”

“……그냥.”

그렇게 말을 얼버무린 데클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주시했다.

나 역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괜히 데클란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가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차에 기대어 앉은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노랗게 익어가는 작물들. 드넓은 하늘 위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가끔 쏴아아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나뭇가지의 노래.

평화로웠다.

하지만 내 마음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나도 빙의한 김에 좀 제대로 된 마차 타보고 싶었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마차를 타는 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마차는 매우 후졌고, 설상가상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길이 험해졌다.

덜컹, 덜컹.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돌부리 따위에 바퀴가 걸리는 경우가 더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러다 마차 부서지는 거 아냐?’

그런 걱정이 덜컥 들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훅 불어왔다.

참고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비포장도로 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흙먼지가 쌓여있었다.

후드득.

머리 위로 자잘한 모래가 떨어졌다.

“…….”

졸지에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친 식재료가 된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이고, 흙이 마구 날리는구나!”

마차를 운전하던 아빠는 혀를 차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느릿느릿 기어가던 당나귀가 끼잉끼잉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마부석에서 내려온 아빠는 나와 데클란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뒤에 흙먼지가 많이 날리니?”

아빠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아주 세차게 끄덕였다.

“네, 엄청나게 날려요!”

그러니까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래? 거참 큰일이네!”

나와 데클란을 번갈아 본 아빠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쯧, 찼다.

“흠.”

흙먼지가 이리저리 내려앉은 짐칸을 면밀히 살펴보던 아빠는 우리를 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마부석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짜잔!”

아빠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둘둘 말려져 있는 그것은 제법 두꺼워 보이는 천 조각이었다.

연한 황색과 짙은 갈색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그 천은 매우 이질적인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제법 낯선 그 물건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예요?”

“이거? 베시풀과 토끼털을 섞어서 만든 마포란다. 자, 그럼 머리 숙이렴!”

휙!

아빠가 들고 있던 마포를 풀며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덮쳐왔다. 

“……?”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를 향해 떨어지는 마포를 바라보았다.

푹, 소리와 함께 두툼하고 무거운 마포가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마포가 뒤덮인 머리 위로는 쨍쨍하던 햇살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나와 데클란이 앉아있던 짐칸이 완전히 마포로 덮여버리고 말았다.

“짠! 이렇게 하면 옥수수 위에 흙먼지가 달라붙지 않을 거야!”

마포 너머로 아빠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딸이 흙먼지에 나뒹구는 것보다 옥수수의 청결함을 더 소중히 하는 건가?

‘하아…… 이게 뭐야…….’

한숨을 절로 푹푹 나왔다.

마포의 끝자락으로 엉금엉금 기어간 나는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바로 옆에 먼저 마포에서 벗어나 있던 데클란의 얼굴이 보였다.

“헉.”

순간 나는 숨을 거꾸로 삼키고 말았다.

너무나도 가까웠다. 당장이라도 콧잔등이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딱 달라붙어 있는 거리였다.

“…….”

데클란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 아래 데클란의 머리카락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석들을 빻아 머리 위로 흩뿌린 것처럼 아름다운 색이었다.

이 근방의 아이들과 달리 고운 그의 피부가 이질적으로 돋보였다. 금화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름다운 눈을 가진 데클란은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뭘 쳐다봐?”

“미, 미안!”

황급히 고개를 돌린 나는 데클란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다.

까드득!

발아래서 뭔가 신선한 소리가 났다.

실수로 발로 옥수수를 밟아버린 것이다.

“사샤! 너 방금 옥수수 밟은 거 아니지?”

마부석에서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같이 옥수수가 단명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풉.

데클란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얘 지금 웃었지? 나보고 비웃은 거지?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데클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와 두 눈이 닿자마자 또다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맥이 탁 풀려버렸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싫은 거야?’

이 꼬인 관계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러다가 정말 데클란에게 죽임당하는 거 아냐?’

나는 담배 연기처럼 짙은 한숨을 연신 푹푹 내쉬었다.

이러한 내 복잡한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차는 다시 여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나무 하나 없는 평지를 지나고 있었다.

바퀴가 굴러가면서 모래를 걷어차자, 주변이 다시 먼지투성이로 변해갔다.

“콜록, 콜록!”

흙먼지가 계속 흩날렸다.

내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지 아니면 먼지 입자를 삼키고 있는지 제대로 구별조차 되지 않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왜 이렇게 흙먼지가 많아요?”

모래 때문에 눈물을 찔끔거리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마부석에 앉아있는 아빠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야 낭떠러지 때문에 그렇지.”

낭떠러지?

그 말을 들은 나는 흘끔 마차 주변을 바라보았다. 

과연 아빠의 말대로 마차가 지나가고 있는 길옆으로 낭떠러지가 보였다.

깊이는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당장 가장 바닥에 있는 돌이 눈에 훤히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낭떠러지보다는 구덩이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 같았다.

아주 커다랗고 깊은 구덩이.

“보이니? 저 낭떠러지 밑이 온통 모래투성이란다.”

아빠가 내게 덧붙여 설명했다.

“흠.”

나는 낭떠러지 아래를 구경할 생각으로 몸을 조금 더 일으켜 세웠다.

낭떠러지 아래는 정말이지 작은 사막처럼 보였다.

“먼지를 피하려면 마포 안으로 들어가렴.”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아빠가 내게 손짓했다.

나는 순순히 아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마포 안으로 다시 기어들어 가자, 눈앞에 겹겹이 쌓여있는 옥수수 묶음이 보였다.

이 옥수수들만 없으면 이 마차의 짐칸에 누워서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젠 옥수수도 지겹다.’

속으로 골골 앓는 소리를 낸 나는 조심스럽게 옥수수를 밀어내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자리에 바짝 엎드렸다.

마포 아래에 숨으니 흙먼지가 들지 않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부스럭 소리가 났다.

데클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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