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 화 (115/132)

115 화

가테 부인이 갇힌 감옥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녀가 상당히 이성을 되찾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

멍하니 벽만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생기는 없었지만 아까 봤던 수준의 광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삶을 포기한 것처럼 실실, 웃음기를 흘리며 물었다.

“저는 이제 죽는 것인가요……? 공작님의 애첩을 납치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대에게 물어볼 게 있다.”

“아……. 아쉬워라. 이렇게 빨리 눈치채실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다과회에 오셨더라면…… 오시지 그러셨어요.”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평소처럼 돌아오려면 멜을 어느 정도 잊을 만큼 상당 기간 격리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내 질문을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하는 가테 부인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가족애를 통해 조금이라도 이성을 끌어내 보려는 전략이었다.

“그대의 아들이 불쌍하지도 않나? 그는 그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제 발로 녹시렐 저택으로 왔다.”

“…….”

“그 탓에 지금 당신의 아들은 녹시렐 저택의 감옥에 갇혀있지.”

“……아들.”

가테 부인이 조금 이성이 돌아온 눈을 하고서 작게 중얼거렸다.

내 전략이 어느 정도 먹힌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당신의 아들이 빨리 자수한 덕분에 가테 일가가 목숨을 잃을 일은 막았지.”

“…….”

“그대의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감옥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어쩌면 내가 예상한 기간보다 훨씬 빨리 가테 부인이 멜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안심하고 이제 5년 전의 일에 대해 심문을 진행하려 한 순간, 나는 너무나도 큰 고함에 놀라고 말았다.

콰앙!

“누가……! 누가 내 아들이라는 거지?!”

“!”

“그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이! 그놈이 내 아들이라고?!”

쾅! 쾅!

가테 부인이 미친 듯이 철창을 두 주먹으로 내리치고, 붙잡고 흔들기를 반복했다. 누가 보았다면 발작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해 의사를 부르고도 남을 만큼 야만적이며 광기에 젖은 모습이었다.

“알테슈메그 가테. 그자가 당신의 아들이-.”

“그 이름을 그딴 놈에게 갖다 붙이지 마! 그러지 말란 말이야!”

털썩!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테 부인이 절규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그녀는 얼굴이 흠뻑 젖을 만큼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말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나오는, 망상과 거짓을 얼기설기 섞어 만든 위증은 아닌 것 같았다.

“흐으윽……! 내 아이…… 나의 알테…….”

“…….”

“다…… 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야. 내 아이를…… 어떻게 그놈을 위해 내 아이를 죽일 수가 있어…….”

나는 가만히 무릎을 굽혀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호통을 치거나, 위협을 하지 않았다. 경멸하거나 놀란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가테 부인은 서서히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긴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해 스스로의 정신을 무너뜨렸던 일들을 처음으로 꺼내며…….

* * *

어디선가 남편이 데려온 아이. 가테 부인은 어느 날 갑자기 알테슈메그, 아니…… 정체 모를 남자아이를 거둬들이게 되었다.

“남편…… 가테 백작이 말했죠. 불쌍한 아이니 우리가 거둬야 한다고…… 그게 신의 뜻이라고.”

“…….”

“하지만 신의 뜻 따위가 아니었어. 신성력이 있으니 데리고 온 것이었어……!”

가테 부인 역시도 열렬한 신도였다. 그러니 신성력이 있는 어느 고아를 데려와 키우는 것은 조금도 껄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쁜 일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귀족들이 고아들을 후원하며, 간혹 입양하는 것은 제법 흔한 일이었다. 다른 귀족들에게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으며 교황청에서 장려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테 백작은 길에서 데려온 그 아이를 고아로 후견하자는 것에 반대했다.

“사람이 어떻게 제가 낳은 자식보다 길에서 주워온 아이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거죠?”

“…….”

“가테 백작은 내 아이를 쫓아내고 그 빌어먹을 남자를 자식으로 삼았어요……! 게다가…….”

한동안 가테 부인은 입만 벙긋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통해 가테 자작이 부모가 자식에게 저질러서는 안 되는 짓을 했음을 예측했다.

“내 딸을…… 죽였어요. 죽었다고 했어……! 타국으로 보내서 잘 공부하고, 잘 자랄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 그 애를 죽게 했어!”

나는 내가 알던 알테슈메그 가테를 잠시 떠올렸다.

붉은 머리칼의, 어설픈 검술 솜씨를 가지고서 낙하산으로 왕실 기사단의 일부가 된 그 남자. 흉계를 꾀했던 주제에 어느 면모에서는 나약해 빠진 것처럼 보였던 그 인간.

내가 알던 알테슈메그 가테는 진짜 알테슈메그 가테가 아니었다.

진짜 알테슈메그 가테는 성별 또한 그와 반대였다. 5년 전 자신의 어머니에게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도망치듯이 가테 저택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택으로 들어온 고아에게 이름과 자리를 빼앗기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낯선 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던 가여운 여자였다.

* * *

“그대. 진짜 이름이 알테슈메그 가테가 아니라더군.”

녹시렐 저택으로 돌아온 뒤, 나는 내가 알던 알테슈메그 가테를 만나러 감옥에 들어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지만 그는 잠들지 않은 채, 감옥에 앉아있었다.

“결국…… 들켰네요.”

체념 어린 얼굴로 쓸쓸하게 웃었다. 그가 취하기에는 제법 이상한 행동이었다.

둥지를 차지해 어미 새의 진짜 새끼를 죽게 하고 제 배를 불린 뻐꾸기 새끼가 그런 표정을 지을 자격이 있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지적하며 비웃지 않았다. 어쩌면 저 남자는 그 일들을 원치 않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대가 말했지. 내 손으로 범인을 잡는다면 범인을 즉시 죽일 것을 알기에 자수를 하러 왔다고. 그 말이 맞아.”

“…….”

“분노에 눈이 먼 내가 그녀를 찾아내자마자 죽게 하도록 놔둘 수 있었다. 가테 부인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일이니 어차피 가테 자작과 그대는 목숨을 건졌겠지.”

“……그랬겠죠.”

“그런데 왜 굳이 자수를 했지?”

나는 팔짱을 끼고 그를 싸늘히 내려다봤다. 그러자 알테슈메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왜 가테 부인을 살리려 했냐고요. 어떻게…… 그 사람을 죽게 합니까.”

“…….”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닌걸요.”

그 말을 꺼내는 알테슈메그의 얼굴이 설움과 수치로 붉어졌다.

그 역시도 모순을 아는 것이다. 애초에 정말 도리가 아닌 것은, 진짜 알테슈메그의 이름과 지위를 빼앗고 자식 노릇을 하며 그 집에서 사는 것임을.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첫 만남에 내게 증오를 드러냈으며, 그런 인간치고 평소의 됨됨이에서는 무르고 허술한 점이 있었다.

가테 부인은 이 남자를 그저 ‘어느 날 가테 백작이 길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그대. 교황의 자식이지?”

“!”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순결해야 하니 자식을 낳아서는 안 돼. 그러니 자식이 있더라도 내쳤거나, 다른 가문에 숨기게 했겠지.”

“그, 그걸 어떻게……!”

“평범한 고아라면 아무리 신성력이 있다고 해도 가테 자작은 후원하거나 입양하는 방법을 택했을 거다. 하지만 제 자식을 버리고 그대의 신분을 세탁해 자식으로 삼았지. 그건 반드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감춰서 그대를 살려둬야 했던 거다.”

“…….”

“가테 자작의 광신도급 신앙이라면 이해가 가. 그리 찬양했던 교황의 아들이다. 설령 교리를 어겨 생긴 존재지만 신성력이 있다는 것 자체로 신에게서 용서받았다는 것의 증거가 되지 않겠나?”

알테슈메그의 얼굴은 경악을 넘어 이제 숨이 뒤로 넘어가기 직전처럼 보였다. 그는 덜덜 떨며 금방이라도 내가 자신의 목을 벨 것이라 여기는 것처럼 숨으려 했다. 나는 그런 그의 심정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귀족파가 왕의 핏줄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나? 그날, 사교 클럽에서 그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야기를 나누더군. 그들은 어차피 그대를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어.”

“히끅!”

“단순히 신성력을 가진 것만이 아니라, 교황의 아들이기까지 하니 계획의 초기에 귀족파가 그대를 반란의 주축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완벽히 이해가 되는 군.”

그가 가테 부인을 살리려고 했던 점은 퍽 가상하나, 나는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가테 자작에게도.

“그대가 죽는 것은 자명해. 차라리 내가 마지막으로 더 숨기는 것이 없느냐 물었을 때 다 말하지 그랬나.”

“…….”

“뭐…… 변하는 것은 없으려나. 어차피 그대가 진짜 알테슈메그의 목숨을 빼앗아 안락한 삶을 누린 것은 변치 않으니.”

정작 멜을 납치한 건 가테 부인이지만 나는 그녀를 처벌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그 상황까지 몰고 간 원인은 가테 자작과 저 남자에게 있었다.

설령 본인이 원하는 일은 아니라고 해도, 가만히 있었던 이상 저 남자는 변호의 여지를 잃었다. 그 순간 그가 외쳤다.

“그 사람은! 그 사람…… 실은 죽지 않았습니다!”

“……뭐?”

“아, 아…….”

남자는 그 이름을 제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말은 곧, 제 존재가 부정당함을 의미하니까.

“알테슈메그 가테…… 그 여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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