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 화 (109/132)

109 화

“그래. 상당히 약한 처벌이지만 일단 그렇게 되었지.”

“그렇다면 알테슈메그 가테 공자에 대한 심문 역시 이미 진행되었다는 뜻이겠지요. 혹시-.”

나는 헤론시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자마자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편지 혹은 네게 그 편지를 전해준 사람의 이야기를 묻고 싶은 건가?”

“!”

“안타깝게도 알아낼 수 없었다. 다방면으로 유도 신문을 했지만 알테슈메그 가테는 정말로 모르는 기색이라.”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색이 편치 않았지만, 그는 감사 인사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내가 용건을 꺼낼 차례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최근에 수업 중 멜에게서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나?”

“……! 저는 홀리지 않았습니다!”

“…….”

“정말입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잔잔하고 온화하게 반응하던 남자가 맞나?

나는 당황한 채 헤론시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연약한 몸이 파들파들 떨리는 수준이 되자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런 의도로 한 질문이 아니네.”

그도 성안의 소문을 듣고 저렇게 반응하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제는 평생 안고 가야 할 반응일 듯했다…….

* * *

“세르베인.”

헤론시와의 대화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멜이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그는 헤론시를 견제라도 하듯, 서둘러 그가 있는 방에서 빠져나와 복도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확실히 생각보다 헤론시와의 대화 시간이 길어지긴 했다. 하지만 고작 그걸로 멜이 이렇게나 불안해할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등을 쓸어주려는 순간, 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네 말에 답을 해주지 않아서 그래? 그래서 내게는 아무것도 묻지도, 알려주지도 않기로 결심한 거야?”

“뭐? 겨우 그런 걸로 네게 매정하게 굴 리가 없잖아.”

나는 다급히 멜의 두 뺨을 감싸며 시선을 맞췄다.

그동안 안정적으로 보였던 멜이 갑자기 왜 이렇게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불안정한 정서를 갖게 된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내 진심이 닿지 않은 듯, 멜이 더듬더듬 횡설수설하듯이 말을 이었다.

“맞아. 내, 내가 그랬어. 내가 찢어서 바다에 던져버렸어. 내가 잘못한…… 거야? 자, 잘못했어…… 네가 싫어할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이 순간에 갑자기 들으리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토록 내가 그에게서 캐내려고 했던 진실이었다.

“멜. 나는 널 탓하려는 게 아니었어……! 그냥 네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또 그로 인해 네게 어떤 문제가 생길까 걱정돼서……!”

“나쁜 사람들이잖아. 널 아프게 했잖아. 그렇다면 똑같이 당해야 하는 거잖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멈췄다.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건, 내가 그 행위를 똑같이 당했다는 걸 알아야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과거였다. 나의 죽음이 어땠는지 그가 알게 된다면 분명 괴로워할 테니까.

멜에게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나만 말하지 않으면 평생 드러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네가 궁금한 건 다 말할 테니까 나를 떠나지 마. 다른 사람에게서 답을 알아내려고도 하지 마. 조금이라도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나한테는 이제 시……!”

갑자기 멜이 말을 멈추었다. 

그는 흐릿하게 몽롱해진 눈빛을 하고서 바닥을 바라봤다.

“나한테는 이제…….”

서서히 비틀거리던 몸은 이내 내 품속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멜!!”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끌어안았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 * *

‘열이 조금 높아 해열제를 투여했습니다. 그 외에 신체에 이상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가 그런 처방을 내린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럼에도 이틀째 멜은 눈을 뜨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당장 작위 수여식이 내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저벅, 저벅.

하루종일 초조하게 멜이 누워있는 침대 주변만 빙빙 돌았다. 그 어떤 의사를 불러 진찰을 시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결국 인간의 의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증상이라는 말이었다.

“…….”

나는 수시로 그의 뺨을 만졌다. 셔츠를 풀어 해쳐 몸을 살피기도 했다.

‘바닷물로 변하려는 기미만 없으면 돼.’

그의 신체가 투명해진다던가, 옷에 묻어나오는 땀이 그저 땀의 수준이 아니라 물처럼 흥건해지는 기미가 있을까 봐.

그것이 죽을 만큼 불안해 눈을 붙일 수도 없었다.

“멜…… 제발, 제발 눈을 떠줘. 내가 잘못했어……”

또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었다. 곧 있으면 작위 수여식이 진행된다.

하지만 나는 오늘 역시 잠들지 못했고, 결국 멜의 손을 꼭 쥔 채 눈물을 터트렸다.

조금이라도 너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됐다. 네가 나를 대신해 복수를 하려는 낌새를 미리 눈치채고 제지해야 했다.

미나엘의 말이 짐작이 맞았다. 인어에게도 대가는 존재했다.

해일처럼 내게 쏟아지는 후회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

문득, 다시 불안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 이틀 동안 수도 없이 반복했던 짓이었다.

나는 서둘러 멜의 몸 위에 올라타 셔츠를 풀어 해쳤다. 초조함에 손이 덜덜 떨렸다.

“세르베인……?”

그 순간 기적처럼 멜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멜!!”

창백한 안색을 한 주제에 멜이 베시시 웃으며 내 목에 팔을 감았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을 보는 것처럼 녹아내릴 듯 다정한 눈빛이었다.

“음…… 내가 하다가 잠든 거야? 그럴 리 없는데……”

내 뺨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다가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울화를 느꼈다. 농담이나 던지는 태평한 반응에 왈칵, 눈물이 흘렀다.

“태평하게 그런 말이 나와……?”

“……울지마.”

“네가 이틀 동안 눈을 안 떴어. 갑자기 네가 사라질까 봐…… 그럴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멜의 품속으로 무너져 안겼다. 나를 감싸 안아오는 이 품이 흔적도 없이 바닷물로 사라질까 봐 끔찍이 두려웠다.

“…….”

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나를 안심시키거나, 단순히 너무 피곤했다는 등의 허술한 거짓말조차 하지 않았다.

잠잠한 태도였다. 타인이 본다면 그 모습은 마치 꾸준히 계획했던 것들을 실행하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으로 보일 터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나는 반대로 그가 굉장히 충동적인 선택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라면 절대 내게 알려주지 않으려던 진실을 조금을 들춰 내줄 것처럼.

멜은 마침내 울 것 같은 얼굴로, 하지만 끝내 울지 않은 채 편안한 낯을 하고서 내 뺨을 제 손으로 훑어냈다.

그 큰 손이 내 얼굴을 전부 가릴 듯이 뺨을 감쌌다. 멜은 나와 시선을 맞췄다.

“세르베인, 예전에 네가 말했잖아.”

잔잔한 물결 같은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내 심장은 불길함에 빠르게 뛰었다.

“…….”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러니 네가 아닌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들려올 답이 두려워서, 차마 소리 내어 물을 수 없었다.

“너 역시 마찬가지야. 너도 앞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나는 서둘러 이어질 말을 끊어내며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곁에 너는 늘 있을 거야.”

“……응. 네 곁에 있을 거야.”

빙긋, 웃는 네 미소에 안심했다. 그 대답을 듣자 마법처럼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멜은 나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상냥히 속삭였다.

“얼른 자자. 곧 아침이야.”

* * *

번쩍, 다급히 눈을 떴다. 어제 새벽의 일들이 꿈일까 봐, 혹은 멜이 다시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일어났어? 세르베인.”

이런 내 불안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멜이 먼저 일어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가로누운 채, 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오늘이 네 작위 수여식이라며. 내가 오늘 깨어나서 다행이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를 대하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나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멜. 몸이 많이 안 좋은 거야?”

“…….”

“어떻게 하면,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나아……?”

다급히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멜도 나처럼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멜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렴풋이, 그를 바다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그때 짐작했던 것 같다.

“걱정 마, 세르베인. 나는 아프지 않아.”

하지만 멜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의 어설픈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새벽, 진실만이 존재하던 시각에는 하지 않았던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건…… 그래. 나는 원래 종종 잠을 오래 자곤 했어.”

“정말……?”

“응. 이번에도 조금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그랬던 것뿐이야. 예전에도 그랬던 적 있잖아. 하하…….”

“…….”

“음……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또 이러더라도 너무 놀라거나 불안해하지는 말아줘.”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와 달리 멜은 담담했다. 나는 서둘러 그의 두 손을 붙잡고 말했다.

“내가 다시는 널 불안하게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또 이럴 일은 없을 거야.”

“고마워.”

하지만 원했던 답, ‘응. 그러면 또 쓰러지는 일은 없을 거야.’ 같은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순간 바깥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린 탓에 더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공작님. 이제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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