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 화 (93/132)

93 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나는 다급히 프로셴을 바라봤다. 미나엘 역시 동일했다.

즉 그 말은 우리 중 누구와도 전혀 합의된 사항이 아니었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방금 전까지 죄인 취급하던 사람에게 누군가의 스승 역할을 맡기다니.

‘하지만 확실히 혐의를 벗었다고 인정해주는 셈이기도 해.’

결국 프로셴은 헤론시를 내치지 못한 것이다.

그 사실을 나와 미나엘에게 직접 밝히기에는 부끄러워서 간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건가.

‘하지만 그 이전에, 누구를 교육하라는 거지?’

헤론시 역시 나와 똑같이 생각했는지, 기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주저하며 물었다.

“제, 제게 교육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어느 분께 어떤 것에 대해 말입니까?”

“인간 세계의 관습에 대해 알려줘. 귀족은 아니야.”

……귀족의 예법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관습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라.

나는 실소를 내뱉었다.

‘우리 주변에 그런 교육이 필요한 이는 한 명뿐이지 않은가.’

나는 싸늘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프로셴에게 물었다.

“프로셴. 무슨 짓이지?”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한 척, 헤론시에게 말했다.

“일단 자네가 교육시켜야 할 대상의 상태가 괜찮아지면 소개해 주도록 하지.”

그 순간, 더 참을 수가 없어서 프로셴의 손목을 붙잡고 나와버렸다.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헤론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를 벽에 밀어붙였다.

콰앙!

“! 세르베인, 손……!”

“입 다물어. 지금 그게 문젠가?”

사람 속을 긁어놓고 이제 와 걱정하는 척을 한다. 나를 바보로 보는 것인가.

나는 붕대 밖으로 피가 스며 나오는 손으로 프로셴의 멱살을 쥐었다.

“무슨 의도지? 한 번 더 묻게 했다가는 저 연약한 남자가 왕관을 쓰게 될 거다.”

구체적인 협박으로 변질되자 프로셴이 당황하던 표정을 바꿨다. 그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상처 받은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은 프로셴이 나를 회유하듯 입을 열었다.

“세르베인, 냉정하게 생각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잖아.”

“뭐가 말이지? 내 기준에서는 아주 불쾌한 선택인데.”

“너는 어차피 인어를 보내지 않을 거잖아.”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프로셴이 상황을 알 것이라고 짐작하긴 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두 손이 넝마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미나엘과 프로셴은 내게 어찌 된 이유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헤론시 공을 심문하러 가자고 했을 뿐.

그들은 내가 멜을 그 방에서 빼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필요한 일이었어. 그 남자가 상식이 부족하다는 점은 너도 인정하잖아.”

프로셴의 말이 맞기는 했다. 멜에게 인간 세상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의아한 건, 왜 프로셴이 이 일을 신경 쓰냐는 것이다.

“네 행동이 상당히 주제넘은 짓이라는 걸 아나?”

내 말이 이어질수록 프로셴의 얼굴이 굳어갔다.

“저번부터 의아했지. 네가 멜의 일에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

“내가…… 뭐가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옅게 떨리는 목소리는 꽤 상처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해버렸다.

“첫 번째. 너는 멜에게 공작위를 주려고 했었지. 실수라고 하지 말아. 그건 고의였다. 너는 그가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말한 것까지 듣고도 그런 선택을 했어.”

“! 그건……!”

“두 번째. 너는 내가 멜을 바다로 보내겠다고 할 때 명백히 기뻐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행동이지?”

“……”

“내게 그를 바다로 보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을 하지 않나. 이제는 손수 교육까지 시켜주려 하는군.”

나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명백히 비웃었다. 그의 술수는 전혀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왜. 멜이 내 곁에 있으면, 그런 불완전한 존재가 내 곁에 있으면 내게 흠집이 생길 것 같아서 그러나?”

프로셴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이런 식이지. 내가 꼭 나쁜 사람인 것처럼 굴어.’

하지만 명백히 과실은 프로셴에게 있다. 그가 해온 행동은 의심스러운 일이 많았다.

‘미나엘도 그래서 녹시렐 저택에 무작정 찾아온 것이지.’

그럼에도 나는 여태껏 중립을 지키며, 프로셴을 믿어 주려 했었다.

하지만 더는 그럴 여유가 없다.

“……두 번째는 단순히 호의였어.”

그 순간, 내게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릴 것이라 생각했던 이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프로셴은 웃었다. 빙긋, 백치처럼 웃더니 과하게 억울한 얼굴을 하며 장난스레 외쳤다.

그 웃는 얼굴이 왜 오히려 더……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헤론시에게 그 일을 맡긴 건 미리 상의하지 않아서 미안!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인어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 않아!”

“……뭐?”

나도 모르게 황당한 어조로 물었다.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려버렸다.

“큼!”

프로셴은 과하게 목을 가다듬더니, 제 목깃을 바로 했다. 그러더니 쌓인 게 많았는지 한 번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너는 분명 사용인들을 못 믿겠다고, 앞으로도 시시때때로 내게 저 남자를 보살피라 시키겠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모르고!”

프로셴은 내게 손바닥을 쫙 펼쳐 보였다.

도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서 미간을 찌푸리니, 그가 손가락 사이에 있는 작은 생채기를 가리켰다.

아주 하찮은 상처였다.

“네가 없는 동안 그 남자를 보살피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저 남자는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하지, 방 안은 깨진 접시로 엉망이지. 저 남자가 안 나갔는데 사용인을 들일 수 있을 것 같아?”

“……들이지 그랬어. 눈만 조금 가리면-.”

“너 다음으로 나한테도 의부증 소문을 붙일 일 있어? 게다가 너는 여자기라도 했지, 나는 남자라고!”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멍청히 프로셴의 억울함 가득한 얼굴을 볼 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

“확실히 왕에게 남색 의혹이 붙으면 꽤 치명적이긴 하겠군.”

어느 순간 뒤에서 나타난 미나엘이 상황을 옹호했다.

프로셴은 자신을 이해해준 미나엘에게 반가움을 느낀 듯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곧바로 내게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내가 저 남자가 벌인 짓을 다 치웠어! 그 고생을 하느라 다치기까지 했다고! 아직도 손가락이 아파서 펜을 잡을 수가 없어!”

나는 여전히 프로셴의 손가락 사이에 난, 0.5mm 정도 길이의 얕은 생채기를 봤다.

……다시 말하지만, 고작 0.5mm였다.

하지만 프로셴은 정말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힘들었다는 듯, 울먹일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떨떠름하게라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힘들었겠네.”

“그래! 그러니 내 말대로 해!”

나는 주저하다 조심히 프로셴의 앞을 비켜섰다. 그때서야 벽에 붙잡힌 듯 몰려있던 프로셴이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나는 상황에 휩쓸려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뒤늦게 반박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헤론시가 멜에게 홀릴지도 몰라.”

“그럼 데려와서 보게 하면 되지 않나.”

예상치 못하게, 미나엘이 프로셴의 제안에 협력적으로 굴었다.

그 결과, 멜이 이 자리에 왔다.

멜은 처음에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다가, 내 주변의 타인들을 보게 표정을 굳혔다.

또한 그 시선이 프로셴에게 닿았을 때는 살짝 초점이 나간 듯했다.

‘조금 불안한데……’

프로셴 역시 불안감을 느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멜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마침내 헤론시까지 발견했을 때는, 멜의 얼굴이 황당해져 있었다.

“세르베인…… 저 남자는 뭐야?”

“그게…….”

“그 새…… 새로 사귄 친구가 생겼어?”

……? 여기서 친구로 오해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멀뚱멀뚱 멜을 바라볼 때, 프로셴이 서둘러 헤론시에게 말했다.

내가 철회하지 못하게 선수를 친 셈이었다.

“어떻지? 자세히 봐라. 한, 30초 동안 계속 바라봐!”

어렴풋이 상황 설명을 들은 헤론시는 상당히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향한 공포나 불안감 역시 사라진 듯했다.

‘사람을 홀린다느니 그런 말을 들어 봤자…… 미치광이 왕과 의부증 공작의 과한 반응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지.’

하지만 대뜸 저를 보자마자 친구냐고 묻는 멜을 본 탓인지, 그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크게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헤론시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멜을 바라봤다.

나는 속으로 30초를 세었다. 사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거의 정확히 30초 만에 헤론시가 입을 열었다.

“……그, 잘생기셨네요.”

아무래도 귀한 혈통의 후손이라 그런지 그는 아부를 못했다.

저 어정쩡한 표정이 증명했다.

‘저 정도면 믿고 맡길 수 있지?’

‘저 남자는 정상인가?’

프로셴과 미나엘은 마치 내가 제정신 감별사라도 되는 양,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 남자를 신뢰할 수는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헤론시는 정말 여의치 않다는 얼굴을 했다.

“아주…… 예, 뛰어난 미모로군요.”

“……”

“호, 홀릴 만큼 잘 생기셨습니다…….”

……설마 제 입에서 나온 감탄사가 부족해 내 심기를 거슬렀다고 생각한 건가.

짝, 짝, 짝…….

영혼을 끌어내 감탄하는 척하는 헤론시의 박수 소리가 공허하게 방 안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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