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화
다폴샤가 자신을 데리고 간 곳은 실내 정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내 정원이 있는 건물이었다.
“너는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청소를 하다가, 안에서 부르면 그때 귀족들 심부름을 하면 돼.”
“네.”
“귀는 안 들리는 척해야 한다. 안에서 종을 울리면, 눈을 못 쓰는 다른 사람이 네게 종이 울렸다고 알려 줄 거야.”
얼마나 위험한 일을 계획 중이기에 이렇게까지 보안에 신경 쓸까.
하지만 일한 지 고작 며칠 되지도 않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걸 보면 나름대로 신경 썼지만 허술한 점이 많아 보였다.
‘귀족이 운영하는 살롱이 아니라서 그런가.’
프로셴이 왕위에 앉은 후, 대부분의 사교 클럽을 없애며 귀족들은 이쪽 사업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사교 클럽이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었고, 이제는 아주 부유한 평민들의 사업이 되었다.
실내 정원으로 꾸며진 방이 여럿 있는 탓에 복도에도 식물이 많았다.
식물이 많다는 건, 죽은 잎들도 바닥에 계속 떨어진다는 것이기에 청소할 게 많았다.
스륵, 슥, 슥.
또각또각.
빗자루로 바닥을 쓸 때 멀리서 귀족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바닥에 울리는 소리가 구두를 신은 남자의 것이었다.
‘대놓고 얼굴을 보면 안 되는데.’
어떻게 얼굴을 확인할지 고민할 때 반질반질한 대리석 벽에 사물들이 반사되어 흐리게 보이는 걸 눈치챘다.
나는 곧장 귀가 안 들리는 척, 고개를 숙이고 등을 진 채 빗자루질에 열중한 척했다.
‘저렇게나 붉은색 머리라. 흔치 않은데.’
나는 곧장 알테슈메그 가테를 떠올렸다.
그 남자의 머리색 역시 그러했다. 제 산호색 머리칼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을 정도로 강렬한 붉은색 머리칼이었다.
‘하지만 실루엣이 전혀 다리를 절지 않아.’
알테슈메그 가테와 배를 타고 수도에 온 지 2주 정도 흘렀다.
2주 만에 부러졌던 다리가 나을 리 없었다. 그러니 저 남자는 알테슈메그가 아닐 테지.
또각.
그때 남자의 발소리가 제 뒤에서 멈췄다.
나는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이고 빗자루질을 했다.
“……거슬리게. 이쪽 복도에서 치워 놓으라고 해야겠군.”
발소리에 예민하지 않으니 청각 장애를 가진 사용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남자는 하대하는 말투를 감추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번쩍 고개를 들고 뒤돌았다.
“뭐야. 왜 갑자기-. 헉!”
그 귀족 남성은 알테슈메그 가테였다.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가, 곧 얼굴을 알아본 알테슈메그가 사색이 되었다.
“왜, 왜, 당신이- 읍!”
나는 손을 뻗어 알테슈메그의 입을 막았다.
그가 입을 다물자 그의 손목을 잡고 세게 끌었다.
알테슈메그는 다리에는 붕대를 감지 않았으면서 오른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입 다물게.”
철컥!
쓰지 않는 창고로 알테슈메그를 처넣고 문을 잠갔다.
가뜩이나 창백해졌던 알테슈메그의 얼굴은 이제 졸도라도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나는 그를 바닥에 무릎 꿇게 하고 물었다.
“이제 자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말을 들어 볼까?”
“공작님이야말로 왜 그런 모습으로 여기 있습니까?”
“내가 먼저 물었을 텐데.”
“……그냥 친목 활동을 하러 온 것뿐입니다!”
사실 귀족들이 사교 클럽에 오는 건 그 목적이 다가 맞긴 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냥 살롱이 아니었다.
“자네가 이쪽 건물이 아니라 다른 건물로 왔다면 그 말을 믿어 줬을 거야.”
“……!”
내가 일하는 쪽이 아닌 미나엘이 일하는 건물로 갔다면 진짜 단순한 사교 목적이 맞을 것이다.
거기는 귀족들이 성격이 나쁘니 몸조심하라고 말은 해도, 청각 장애인이나 시각 장애인만 일하도록 하지는 않으니까.
스릉!
나는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던 단도를 뽑아내고 알테슈메그의 목을 노렸다.
“어째서 여기에 왔냐고 물었을 텐데.”
“…….”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알테슈메그를 보니 화가 났다.
눈동자를 굴리는 꼴을 보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면 여기서 보내줄 것이라고 믿는 게 뻔히 보였다.
내가 자신을 단도로 찌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는 모양이지.
그러니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지.
그 모습을 보니 살심이 치솟았다.
“적당히 기어 주면 이번에도 그걸로 기분이 풀려서 선처해 줄 것 같은가?”
“……!”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으면 자네는 그 저택에서 명을 다했을 텐데.”
화가 나서 머리가 몽롱했다.
풀린 동공으로 알테슈메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자도 기사였지. 나를 죽인 기사의 후손일지도.’
저 목을 뚫을 자신이 아주 많았다.
죽인다, 죽인다, 해도 결국에는 맘이 약해서 정작 별 위협은 하지 못하던 라헨의 증손녀, 세르베인 녹시렐과는 달랐다.
“손은 아직 다 안 나았군?”
나는 히죽 웃었다. 그러자 알테슈메그는 서둘러 다리를 가리려는 듯 움찔 떨었다.
본능적으로 ‘다리는 그새 나았네?’라고 묻는 의미를 눈치챈 까닭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인지, 그가 서둘러 말했다.
“다리가 나은 건…… 그게…….”
그래도 꼴에 기사라고, 떨어질 때 제법 자세를 잘 잡았나.
제 입으로 ‘사실 다친 걸 과장해서 말했습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창피한지 알테슈메그는 좀처럼 말을 잇질 못했다.
“자네가 손이 다 낫지 않아 기뻐.”
내 말에 알테슈메그가 다시 한번 흠칫 떨었다.
나는 그에게 싱긋 웃어 주었다.
“같은 장소를 다시 뚫려 봤자 내가 했다고는 생각 안 하겠지.”
나는 칼을 빙글 돌려 쥐고 있는 방향을 틀었다.
개에게 애교로 손을 내밀라고 하는 것처럼 다른 한 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툭툭 움직였다.
알테슈메그는 원치 않아도 내게 손을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비명은 삼키게. 손바닥 신경만 건드릴 걸, 실수로 손목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사실 그걸 실수할 리는 없었다.
그냥 비명 듣고 기분 나빠지면 의도적으로 손목으로 가는 거지, 뭐.
알테슈메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사로서의 생명이 끊길 걸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한 모양이었다.
쉬익!
칼을 내리꽂으려는 순간, 알테슈메그가 손을 빼내고 넙죽 엎드렸다.
“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시시한 항복이었다.
그래도 배가 해일에 덮쳐지기 직전에 나와 멜을 부르러 왔던 걸 생각해 더는 험하게 다루지 않았다.
알테슈메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내가 꽉 쥐어 상처가 터진 손을 숨겼다.
“사실 공작님과 국왕 폐하의 눈에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살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입을 열 때마다 거짓말이군.
조금 더 지루해지면 다시 단도를 꺼낼 거라는 의미로 툭툭 손끝으로 단도집을 두드렸다.
“애초에 잘 보일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혀를 그리 놀리는군.”
“아니, 정말로……!”
“그대 성격이 그리 담이 크지가 않은데 말이지. 어째서 녹시렐 저택에서 그리 오만방자하게 굴었는지 때때로 의문스럽곤 했어.”
그 이야기를 꺼내자 알테슈메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나는 그 변화를 똑똑이 눈에 담아 두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있던 사람 중 누가 녹시렐 공작인지 알아보기 위해 애 좀 썼겠군.”
“아닙니다! 저는 국왕 폐하의 눈에 들고 싶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날에 끼쳤던 무례는 다시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래. 내 신변을 팔아 귀족파 사이에서 자네의 평판은 조금 나아졌는가?”
알테슈메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만 용서해 주시면 이 사교 클럽에 온 귀족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스파이 노릇이라도 하겠습니다.”
“자네와 가문을 살리겠다고 같은 교황파들을 밀고했던 자네 아버지가 딱하군. 아니다. 같이 굴린 머리인가?”
‘세르베인’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되도록 피 흘리지 않는 세력 교체를 원했다.
프로셴을 왕위에 앉혔지만, 국왕파와 귀족파가 균형을 이루길 원했다.
그래서 교황파 귀족이 교황을 따르지 않겠다고만 선언하면 모르는 척 속아 주곤 했다. 그러니 이 사달이 나는 것이다.
“역시 그쪽에 몸담았던 귀족들은 전부 죽여야 했어. 자비는 아무에게나 베풀면 스스로에게 비수가 되는 꼴이지.”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내가?”
이 상황에서 제 목숨이 위태로운 줄도 모르고 혀를 놀리는 알테슈메그가 황당했다.
그 반응이야말로 나의 행동이 심하지 않다는 반증 아닌가?
“신이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풉.”
“신이 없다고 여기는 겁니까?”
이제 종교가 죄가 되어 버린 시대가 왔다는 걸 잊은 모양이지.
나는 알테슈메그를 즉결 처형하는 대신 그 질문에 조금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것의 진위 여부는 내 관심사가 아니야.”
“…….”
“내게 필요하다면 신은 존재해야 하고, 내게 필요하지 않다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거지.”
가테 백작은 기껏 가문을 살리기 위해 교황파를 밀고했지만, 그의 아들이 이 사달을 벌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앙심. 교황이 추락하고, 그를 따라 순교하겠다며 그 뒤를 따르던 몇몇 귀족들과 같은 이유였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교황이 한 일은 옳았나?”
“…….”
“녹시렐 저택 주변에 산다는 이유로 그곳의 주민들은 고립된 채, 가난과 핍박에 허덕였다.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지.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죄가 있었는가?”
알테슈메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를 리 없었다. ‘부정한 땅’이라는 명칭이 사라진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