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 화 (68/132)

68 화

바다에 빠져 기절한 탓에 일주일이나 허비하고 말았다.

나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원래라면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했을 일이었다.

“부모님은 잘 만나고 왔나?”

“뭐, 그렇지.”

나는 꽤 무심하게 답하며 외투를 벗었다.

하녀는 외투를 받아 들고 빠르게 나의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어째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미나엘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고 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누가 들으면 가정불화라도 겪는 줄 알겠어. 그런 거 아니야.”

나는 푸핫, 가볍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미나엘의 시선은 나를 끈질기게 살폈다. 이내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 넌 네 가족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딱히 말할 게 없어서 그랬어. 정말 평범하거든. 아버지랑 어머니, 그리고 나. 이게 끝이야.”

정말로 우리 가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해봐야, 나의 현재 부모님은 자식보다 자신의 부모를 더 사랑한다는 것 정도일까.

내가 끝내 이야기를 하지 않자 미나엘은 더 그 주제에 대해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찻잔을 내려놓더니 미나엘은 내게 꽤 두꺼운 서류를 밀어 보냈다.

즈레이카 신성 왕국 기사단 명단

“벌써 자료 조사가 끝났어?”

나는 희희낙락하며 서류 봉투를 뒤집어 내용물을 탁자 위로 끄집어냈다.

기사 단원들의 얼굴이 있을 앨범부터, 그들의 가문과 현재 생존한 후손들에 대해 조사한 자료가 있었다.

후손들의 명단보다도 가장 먼저 앨범에 손을 가져갔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신성 왕국’이라는 호칭이 적힌 가죽 앨범이었다.

그런데 그 앨범을 잡은 순간, 팔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왜 그러지?”

“……나중에 확인할게.”

가까스로 숨을 갈무리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얼른 감싸 쥐어 숨겼다.

고작 사진일 뿐이다.

그 당사자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일 것이고, 나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의 얼굴을 확인한다는 것만으로도 인정하기 싫지만…… 겁이 났다.

창백하게 질린 내 얼굴을 미나엘이 눈치챈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그녀의 회색 눈동자를 외면했다.

눈치가 빠른 미나엘은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대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성에 소문이 퍼졌더군.”

“무슨 소문?”

“네가 의부증, 아직 혼인하지는 않았으니 남편은 아니지. 아무튼 그것 비슷한 거라고 소문이 났다.”

“저런…….”

나는 멋쩍게 웃었다.

어제 멜을 방으로 옮기라고 할 때 눈을 가리게 시킨 탓인 것 같았다.

어쩐지 하녀들이 내 시선을 피하더라니.

어색하게 웃는데 미나엘이 말했다.

“프로셴에게 한 말을 들었다. 그를 바다로 돌려보낼 것이라며. 정말로 그럴 수 있겠나?”

“못 보낼 건 또 뭐야.”

“보통 그런 존재를 다른 사람이 보지도 못하게 눈을 가려 버리지는 않지.”

“눈을 가린 건 멜의 얼굴을 보면 홀리니까 그랬어.”

“아직도 그 이야기인가.”

“내가 콩깍지가 씌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사실이야.”

나를 게슴츠레 바라보는 미나엘의 시선에 그동안의 일들을 설명했다.

프로셴이 데리고 온 기사들을 그날에 내가 몇 명만 빼고 저택 밖으로 내쫓았던 이유.

멜을 데리고 배를 타러 오는 길에 겪었던 일.

내 말을 듣고도 미나엘은 조금 미심쩍은 기색이었다.

“그 인어가 잘생겼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무턱대고 마음을 뺏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내 생각에는 홀리는 대상이 따로 있는 것 같아.”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나의 아버지던 녹시렐 공작은 멜에게 홀린 기색이 없었다.

멜을 버리고 도망친 기사들도 그에게 홀리지 않은 것이겠지.

멜에게 홀렸던 사람은 전생의 나와 사용인들. 이번 생에서는 홀릴 뻔했던 기사들과 길가의 부랑자.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대상을 특정할 수 없으니 일단은 전부 다 경계해야지.”

멜을 바다로 돌려보내기 전까지 그를 완벽하게 보호할 것이다.

나는 미나엘이 준 자료를 제일 위의 책상 서랍에 넣고 닫았다.

내가 집무실을 나갈 듯하자 미나엘이 말했다.

“인어를 만나러 가나?”

“……응.”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고 들었다.”

“그래도 언제 눈을 뜰지 모르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눈을 뜨지 않고 있기에 이토록 자주 보러 갈 수 있는 것이다.

미나엘은 내가 왕성에 있는 동안 거의 30분 간격으로 멜을 만나러 가는 것을 이미 목격했다.

그녀는 혀를 차며 내게 충고했다.

“세르베인. 그냥 그 인어를 네 곁에 두도록 해라. 인어도 널 떠나고 싶지 않은 눈치인데 괜히 강요해서 저렇게 사흘 동안 눈도 못 뜨고 병이 난 거 아닌가.”

블미에도 그런 말을 했었다. 멜을 그냥 내 곁에 두라고.

너무나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는 게 신기해서 나는 바람이 빠진 듯이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미나엘에게 물었다.

“미나엘. 이건 그냥 묻는 건데, 전생이나 환생을 믿어?”

“죽음이 다가오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유유자적하게 차를 마시며 답하는 목소리는 망설임도 고뇌도 없었다.

미나엘은 그런 식으로 별것 아니게 넘길 수 있는 질문에 의문스러운 답을 종종 내놓곤 했다.

“이상한 답변이네. 그런데 어차피 사람은 태어난 이상 죽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거잖아.”

“그런가.”

미나엘이 웃었다. 딱히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 지어진 웃음이기에 굉장히 의아했다.

“나는 너를 만난 후 죽어 가는 과정에 가까워지는 걸지도 모르겠어.”

미나엘은 빈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내 집무실에서 이만 나가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사람은 죽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꺼림칙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믿을 수 없을 얼굴이었다.

미나엘은 온화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네가 없는 동안 인어는 프로셴에게 맡기는 게 낫겠군. 그런데 조심하도록 해.”

문고리를 돌리던 미나엘이 짓궂게 웃었다.

“그도 인어에게 홀릴지 모르니.”

* * *

“너는 멜에게 홀리지 않는 것 같으니 부탁 좀 할게.”

나는 미나엘의 말을 애써 잊어버리려 노력하며 프로셴에게 말했다.

프로셴은 달콤한 디저트를 느긋하게 입에 넣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로 가길래 나한테 그 남자를 맡겨?”

“네가 무엇 때문에 작위 수여식도 진행하지 못하게 막았는지 잊었어?”

“아.”

프로셴이 눈알을 도르륵 굴리더니 이내 화사하게 웃었다.

나는 몰라요, 하는 얼굴이었다. 또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꼴을 보니 혈압이 올랐다.

프로셴은 내 눈치를 보더니 웅얼거렸다.

“그러지, 뭐. 별로 어렵지도 않아. 사용인들에게 시키면 되니까.”

“사용인들을 시키지 말고 네가 직접 살펴보라는 뜻이야.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홀릴지도 모르니까.”

“……왕성에 도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는데.”

프로셴은 질린 안색을 하다가 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건이 끝났으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건만 프로셴이 나를 붙잡았다.

“저기, 세르베인. 잠입은 언제 하는 거야?”

“내일.”

“당장 내일? 그런데 설마 그 모습 그대로 가려는 건 아니지?”

프로셴의 말에 내 모습을 살펴봤다. 평소와 똑같았고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자 프로셴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본인이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찔릴 때마다 짓는 웃음이었다.

“귀족들 사이에 네 신상이 퍼졌어. 그러니까…… 네 생김새 같은 거 말이야.”

“뭐?”

“녹시렐 가문의 후손이니, 전대 녹시렐 공작과 닮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원래 있었어. 하지만 최근에는 네 생김새나 이름이 정확하게 퍼졌더라고.”

누구부터 입단속이 안 된 걸까.

성의 사용인들?

혹은 옛 녹시렐 저택에 왔던 기사들?

하지만 내 계획에 크게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정보 유출은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 정도는 됐어.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생각했으니까.”

“또 할 말이 있는데, 네 평판이 꽤 나쁠지도 몰라.”

“여기서 우리가 더 나빠질 평판이 있나?”

전 교황파, 지금은 귀족파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녹시렐 공작의 평판은 좋을 리가 없었다.

굳이 나뿐만이 아니라 그냥 프로셴과 국왕파 귀족들 모두가 그들에게 좋은 평판일 리 없다.

그런데 프로셴은 나를 꼬집어 말했다.

“‘우리’가 아니라 ‘너’ 말이야. 녹시렐 공작.”

“나만? 어째서?”

“전에 말한 거 기억나? 미나엘이 했다는 일들.”

암살자를 보낸 귀족들을 숙청하기 위해 저들끼리 내부 고발을 하도록 만든 일을 말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프로셴이 이어 말했다.

“이제 알았는데, 전부 네 이름으로 했더라고. 귀족들은 이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네가 주도했다고 생각할 거야.”

“허……?”

“이래도 너는 미나엘을 싫어하지 않아?”

저번에 나눴던 대화의 연장선이다.

어차피 암살자들을 추려내고, 귀족들을 숙청하는 일들은 누가 봐도 친국왕파 귀족들이 찬성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다수에 뭉뚱그리듯 섞여 나가면 되는데 미나엘이 굳이 나를 대표로 세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프로셴은 계속해서 물었다.

“이렇게나 네 계획을 어그러뜨렸는데도 그녀와 계속 함께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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