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 화 (49/132)

49 화

멜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숨을 가늘게 내뱉었다. 그의 온몸이 간헐적으로 떨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렇게나 나를 붙잡고 떠나지 말라 애원하면서도 그는 절대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멜. 나를 봐. 응?”

멜의 머리칼을 쓸며 두 손으로 그의 뺨을 붙잡았다. 그러자 멜이 서서히 내 몸에서 얼굴을 떼어 냈다.

기껏 얼굴을 떼어 냈지만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감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자 긴 속눈썹이 내 손가락에 닿아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다정하게 말했다.

“꿈이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반응을 보니 알겠다.

이때까지 도대체 무슨 이유나 음모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역시나 멜은 내가 죽은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는 세르베인을 사랑하니까. 차마 세르베인의 시체를 저택에 두고 바라볼 순 없었겠지.

별다른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그의 방식대로 치른 장례식일 뿐이었다.

“눈 좀 떠봐. 응? 나 안 볼 거야?”

멜의 감은 눈에서 샘물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창백한 뺨이 축축하게 내 손에 닿아 왔다.

나는 무심코 그의 눈물을 맛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내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멜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의심했다.

그 의심조차 사랑스러운 투정으로 여겨진다면 내가 너무 이성적 판단을 잃어버린 것일까.

“싫어……. 그러면 또 떠날 거잖아…….”

“꿈 아니라니까. 어떡하면 믿어 줄 거야?”

나는 계속 그의 양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투정이 조금도 귀찮지 않았다. 그러자 멜의 떨림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도 눈을 뜨고 싶은지 눈꺼풀이 움찔거렸지만 그는 계속 눈을 뜨지 않았다.

이상한 데서 고집이 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마음 놓고 그의 얼굴을 감상하기로 했다.

흰 상아처럼 아름다운 피부, 예쁜 눈동자를 숨긴 눈꺼풀, 긴 속눈썹, 아름다운 콧날.

그의 사랑스러운 뺨을 한도 끝도 없이 바라봤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애처롭고, ……씹어 삼키고 싶은 존재인가.

“멜, 네 눈동자가 보고 싶어.”

“세르베인…….”

“안 보여 줄 거야?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그 말에 멜이 용기를 내어 눈을 살며시 떴다.

물기에 젖어 더욱 예쁘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은 마치 일렁이는 바다를 담은 보석 같았다.

나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그의 눈동자를 만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상하다. 호수에 빠진 이후로 그와 잠시 떨어져 있었던 탓일까.

기이한 소유욕이 들끓었다.

한 번도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을 품은 적이 없었기에 당혹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그저 묻어 두려 했던 말을 입에 올렸다.

“멜. 왜 나를 호수에 빠뜨렸어?”

순식간에 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의 눈빛이 정신을 잃을 듯 흐릿해졌지만 내 입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나 죽지 않았거든. 그래서 굉장히 곤란했어.”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런 말을 하면 멜이 상처를 받을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상대를 농락하듯, 내 말투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네가 날 호수에 빠뜨렸잖아. 나 살아 있었는데.”

“아, 아니야. 그거 꿈이야. 세르베인…… 잊어버려. 그거 꿈이야!”

멜이 덜덜 떨며 귀를 막았다.

그 표정을 보니 스스로도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눈에 띄게 불안정해진 상태로 말했다.

“그, 그게 말이야…….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또 너를…… 너를……! 어떡하지? 아아……! 너는 물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멜의 말에는 이상한 요소들이 많았다.

이번이 처음인데 ‘또’라든가, 대뜸 내가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든가, 그런 것들.

하지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그가 처절하게 애원하는 모습에서 이상한 충족감을 느꼈다.

“세르베인. 용서해 줘.”

멜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내 두 발목을 잡고 애원했다.

분명 인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가 정상적인 삶을 되찾도록 노력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지금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게 기쁜 걸까.

나는 멜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쭈그리고 앉았다.

멜이 절박한 시선을 내게 보냈다.

나는 사근사근한 말투로 물었다.

“멜. 나를 봐. 다시는 그러면 안 되겠지?”

“응, 응!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다시는 날 혼자 호수에 두고 떠나지 않을 거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제발 용서해 줘…….”

그래. 이건 분명…….

“세르베인.”

그때 문가에서 미나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미나엘을 바라봤다.

방문이 열려 있는 줄도 몰랐다. 멜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미나엘을 이제야 발견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친구에게 못 볼 꼴을 보인 것 같아 귀가 화끈해졌다.

“어…… 언제 왔어?”

“방금 전에 왔다.”

문틈에 살짝 기대어 서 있던 미나엘은 멜을 찬찬히 분석하듯 살폈다.

그건 명백히 희귀 생물을 해부하는 듯한 학자의 눈빛이었다.

미나엘의 시선은 멜 쪽에 있었지만, 그녀의 입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주 내 존재를 잊었던 모양인데.”

“그건 아니야. 곧 데리러 가려 했어.”

나의 쪽으로 잿빛 눈동자가 굴러오듯 돌아왔다.

나는 그 시선을 의식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멜은 나를 보호하듯 내 앞을 살짝 막으며 물었다.

“세르베인. 저 사람 누구야?”

아무래도 나와 안면이 있어 보이니 미나엘을 극도로 경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굉장히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사람 가라고 하면 안 돼……?”

멜이 애처롭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멜을 데리고 미나엘과 함께 수도로 가야 했다.

이번 기회에 그가 미나엘과 안면을 익히고, 가능하다면 친하게 지내는 편이 좋았다.

“멜. 그럴 순 없어. 저쪽은 내 친구야. 이름은 미나엘 헥사바임.”

“일단은 반갑다고 말해 주지.”

미나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인사를 해 왔다.

말과 달리 명백히 반갑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 자기소개에 멜이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헥사바임……이라고?”

이 저택에 갇힌 채 누구와도 교류하지 못하던 그가 ‘헥사바임’이란 가문명을 알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헥사바임 가문은 남작가로, 유명하지도 않았다.

왜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미나엘이 다시 멜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되도록 인어를 보지 말라고 했는데…….’

걱정돼서 말을 걸려 할 때 미나엘이 다시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그녀는 이내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기 시작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비웃음이었다.

“세르베인.”

“왜?”

“네가 인어를 보면 홀린다고 말했었지.”

미나엘은 기가 차다는 듯 피식 웃다가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네 애인은 네 눈에나 예쁘단다.”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었다.

* * *

응접실로 이동한 후 우리는 차라도 마시기로 했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기다려. 내가 차라도 가져올게.”

“아니야!”

멜이 주방으로 향하던 나를 다급히 막아섰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곧 그 행동의 이유를 짐작했다.

“아직도 신경 쓰여서 그래? 난 괜찮아. 안 다치게 조심할게.”

“……응. 그래도 내가 갈래. 세르베인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멜은 내가 부엌에 갔다가 발을 다쳤던 게 아직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어이 막아 내고서 자신이 차를 가지러 갔다.

미나엘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 멜에게 홀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멜에게 사람을 홀리는 능력은 없는 건가?’

내가 잘못 추측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여태껏 생각에 잠겨 있던 미나엘이 물었다.

“저 인어를 네 배필로 삼을 생각인가?”

“뭐?”

“네가 연애는 처음이라 부끄러워하는 건 이해하겠다. 하지만 이런 건 빨리 말해야 내가 조치를 취할 수 있어.”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전에 더 의아한 게 있었다.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조치를 취할 건데?”

“인어의 신분을 세탁해야지. 기껏 쌓아 올린 네 가문의 명예를 평민을 들여 훼손시킬 수는 없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현실감이 찾아왔다.

그렇다. 멜이 수도로 간다면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그를 편하게 살도록 하려면 신분도 귀족으로 조작해야 하고, 그가 인간인 척할 수 있도록 사회화 교육도 해야 한다.

그의 불안정한 정신을 치료하기 위한 의사도 찾아야 한다.

“멜에 대한 건 내가 책임질게. 그런데 멜과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그러면 왜 그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는 거지?”

“이 저택에 그를 계속 둘 수는 없잖아. 그건 인간의 도리로 당연한 일이야.”

“인간의 도리라…….”

미나엘이 설핏 웃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금방 사라져서 왜 그런 반응이냐고 물을 수 없었다.

미나엘의 시선은 나를 넘어, 내 뒤를 향했다.

“그렇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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