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화
그 방의 위치를 기억한다.
멜은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몇십 년이 흘렀지만 정확히 기억하는 방의 문을 열었다.
벌컥!
세르베인의 방은 멜이 지나왔던 어떤 풍경보다도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다.
이미 떠나도 아주 예전에 떠났을 흔적이었다.
“정말로 날 떠난 거야?”
멜은 세르베인이 늘 누워 있던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참 동안 그러고 앉아 있었다. 몇 번 해가 뜨고 졌던 것 같지만 의식하지 않았기에 정확히 며칠이 흘렀는지는 몰랐다.
“……떠났구나. 너, 정말 나를 버린 거였어.”
끝내 결론을 내렸을 때 멜은 그 침대에 풀썩, 옆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이렇게 누우면 자신이 들어 있던 수조를 바라보게 된단 걸 알았다.
그 장소는 텅 비어 있었지만 마치 여전히 눈앞에 수조가 보이는 듯했다.
……그 숲속에 버려진, 깨지고 방치된 수조의 모습이.
“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결국 원하는 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정말로 복수를 원했다면 그냥 네가 비참하게 살길 바랐겠지.
무의식 속 진심을 알았다. 그렇게나 배신당했으면서도 아직도 그 애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서 따위 하지 않을 거야! 네가 거처를 옮겼다면, 그런 것뿐이라면 충분히 시간은 있었을 거 아니야!”
멜은 절규했다. 귓가에 거센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을 삼키고 부숴 버리는 파괴적 소리였다.
“떠나기 전에 내게 인사라도 해주지 그랬어! 나를 바다로 보내 주겠다고 했잖아! 나는! 나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어디로 가야 바다가 나오는지조차 알 수 없단 말이야…….”
멜은 그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 방 안에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낯선 곳이라서 멜은 결국 세르베인의 방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바다로 가는 길은 모르고, 세르베인은 이곳에 없다.
호수에 있을 땐 호수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멜은 더욱더 웅크리고 앉았다.
“네가 죽었을 리는 없어. 넌 죽으면 이곳에 남겠다고 했으니까. 그냥 이곳을 떠나서 잘 살고 있는 게 분명해.”
화가 났지만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리며 방문 앞에서 웅크려 잠만 잤다.
멜은 세르베인을 미워하며 계속 잠을 잤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에.
* * *
“으으…….”
며칠이나 잠을 잤을까. 멜은 낯선 감각에 눈을 떴다.
문 앞에 앉아 웅크리고 잔 탓에 온몸에 근육통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고통이 있었다.
목이 타는 듯하고, 허기가 졌다.
……허기가 졌다.
“배가 고파.”
처음 내뱉는 말이었고,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건 배가 고프다는 느낌임을 알 수 있었다.
“목말라. 배고파. 먹고 싶어. 뭐든, 먹고 마시고 싶어.”
하지만 저택에는 먹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뒤져도 먹을 만한 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멜은 홀린 듯이 호수로 나왔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였지만 본능적으로 다리가 움직였다.
꿀꺽.
처음에는 두 손으로 호수의 물을 떠서 마셨다.
인어였을 때는 아가미로 들어오는 감각이 불편하고, 겨우 적응해야만 했던 물이었는데 지금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하니 이제 목이 마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물을 마셔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몸은 제게 다른 것을 먹으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찰랑찰랑.
팔딱!
호수 안 물고기들은 오랜만에 만난 멜을 보며 반가워했다.
그들은 수면 근처까지 올라와 호수 표면을 물결치게 하며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몇몇은 호수 표면 위로 뛰어오르기까지 했다.
“…….”
하지만 처음으로 멜은 호수 속 친구들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잔혹한 충동이 들었다.
멜은 그런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았다.
물고기들은 멜을 걱정하며 계속 그의 근처를 맴돌았다.
멜이 조금만 손을 뻗어도 바로 닿을 거리에서 무방비하게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저리 가…….”
찰랑찰랑.
힘없이 말했지만, 물고기들은 오히려 더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으로 멜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멜은 호숫가가 춥다고 생각하면서도, 저택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더 추울 것을 알기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참아 볼게.”
멜은 무엇을 참겠다는 건지, 차마 언어로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그저 호수 근처에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하지만 끔찍한 허기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멜은 제 시야 안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았다.
* * *
어두워진 숲속에 달빛이 비추었다.
멜은 어느 순간 눈을 뜨고 호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비척비척 움직이는 몸짓은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그의 반짝이던 푸른 눈에는 총기가 사라져 있었다.
첨벙!
거칠게 손을 넣어도 물고기들은 의심하지 않고 멜에게 다가왔다.
오히려 그 손에 몸을 맡기고 다가와 반갑다는 듯이 몸을 붙여 왔다.
멜은 손에 다가오는 나약한 생명체의 존재를 느꼈다.
매우 미약하고 다정한 움직임이었다.
덜덜…….
손이 간헐적으로 떨리기 시작했지만 물고기는 도망치지 않았다.
마침내 멜은 힘을 주어 물고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장 펄떡이는 물고기의 몸체를 입에 가져갔다.
콰직!
멜은 물고기를 살아 있는 채로 씹어 버렸다.
펄떡펄떡!
끔찍한 고통과 배신감에 물고기가 살기 위해 발악했다.
멜은 정신없이 그걸 먹기 시작했다.
와구와구.
멜은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물고기가 제 손에 다가오지 않아 몇 번이나 허탕질을 쳤을 때에야 정신을 차렸다.
텅 빈 호수에는 제 얼굴만 반사되어 보였다.
“……아?”
물에서 시선을 돌리자 눈앞에는 물고기의 뼈와 머리들이 즐비했다.
아주 끔찍한 광경이었다.
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덜덜 떨며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하지만 입을 틀어막은 그 손에도 뜯어먹힌 물고기가 들려 있었다.
그 순간까지도 먹을 것을 바닥에 버리기 아깝다는 듯, 탐욕스럽게 잡고 있었다.
“우웨엑!”
멜은 정신없이 토했다.
먹은 것을 그대로 토해 냈다. 멀건 위액만 올라올 때까지도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흐윽, 으으윽……. 아아……! 미안해……, 미안해…….”
토를 하느라 고통스러워서 흘리는 눈물인지, 혹은 제 도덕성의 상실로 인한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멜은 덜덜 떨며 제가 토한 것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소화되지 않아 제가 먹은 것의 선명한 형태가 남아 있었다.
“흐윽…… 아아……!”
살면서 그렇게나 울었던 건 처음이었다. 이때까지 충분히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멜은 하염없이 울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비린 향기가 제 코끝을 찔렀다.
“사과…… 사과를 하자.”
첨벙!
겨우 울음을 멈추었을 때 멜은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물고기들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멜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멜은 더 이상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불행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끄륵……!”
아가미가 사라지자 코를 통해 물이 폐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콜록, 콜록! 허억!”
멜은 다급히 호수 밖으로 나와 목을 부여잡고 기침했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진짜로 돌아갈 곳이 없었다.
바다로 향하는 길을 찾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딴 건 지금에 와서 보니 정말로 사소한 것이었다.
“끅…… 흐윽…….”
이제 평생, 정말로 바다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은 무언가를 잡아먹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다…… 세르베인 때문에.
“너를…… 너를 죽여 버릴 거야.”
멜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호수 밖으로 나온 멜이 잔디를 쥐어뜯으며 울면서 말했다.
“너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뒤에 죽여 버릴 거야.”
한참 동안 호수 옆에서 울던 멜은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멜은 저택으로 돌아가며 다짐했다.
“너는 죽으면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지.”
인간이 된 인어는 칼을 갈며 다짐했다.
“그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게.”
* * *
저택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호수에서 지냈던 시간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배가 고팠고, 함께해 주는 존재가 없었다.
“너는 심심할 때마다 책을 읽었지.”
그래서 멜은 세르베인이 하던 대로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때때로 밀려드는 상념 때문에 넋 놓은 듯 행간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
내가 평생 말하지 못할까 봐 손수 글을 가르쳐 주던 그때의 넌 나를 정말로 사랑했을까.
내가 걱정돼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던 너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나 그때 너랑 더 오래 있고 싶어서 말하지 못하는 척했어. 문장을 못 쓰는 척했었어.”
멜은 종종 세르베인의 방으로 가 그 침대 위에 앉아 보았다.
거기서 세르베인이 하던 것처럼 책을 읽고, 세르베인이 하던 것처럼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의 풍경은 늘 똑같았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유일하게 계절의 흐름을 보여 주는 지표는 정원의 꽃들이었다.
노란 수선화를 보던 멜은 누군가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너는 믿지 않았지만 나는 늘 진심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