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 화 (40/132)

40 화

넌 내가 죽고 나서도 계속 이 저택에 머물겠지.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앞으로의 네가 걱정돼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넌 분명 스스로를 탓하겠지. 뻔한 말인 걸 알면서도 난 네 과실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 이 저택에 네가 갇힌 것도, 암살자들이 찾아온 것도, 무엇 하나 네 탓인 게 없었으니까.’

그의 삶은 너무 불행했다.

나의 재종조할머니는 그를 애완동물로 기르기 위해 잡았고, 그를 놓아주기 전에 생을 마감했다.

나는 그를 이 저택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멜은 이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할까. 얼마나 기다려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려 하자 멜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눈 떠! 세르베인!”

“…….”

“제발 날 떠나지 말란 말이야!”

멜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 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절규가 너무 멀게 들렸다.

* * *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 주면 내가……!”

멜은 황급히 뒤돌아 열린 문으로 뛰쳐나갔다. 늦었지만 의사를 부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멜은 저택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바로 주저앉았다.

“흑, 아악……! 으윽……!”

온몸이 녹아내리는 둣한 통증이었다.

쓰러진 기억도 없는데 정신을 차리니 바닥에 넘어진 상태였다.

“안…… 돼…… 일어나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숨을 쉬는 것이 어려웠다.

멜은 한 손으로 목을 긁어내듯 쥐어뜯고, 다른 팔로는 몸을 지탱해 기었다.

기어서라도 마을로 가야 한다.

세르베인이 나에게 마을로 가서 의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하지만-,

마을이 어디에 있지……?

어디로 가야 마을이 나와?

의사는 어디서 찾아야 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야?

무서웠다. 사람이 무서웠다.

멜은 이제 그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무서웠다.

이때까지 모든 인간은 저를 보면 죽이려 하거나, 가지려고 했다. 오직 두 선택지뿐이었다.

세르베인만이 자신을 놓아주겠다고 했었다.

‘그런 야만인들과 이제 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무엇을 믿고……?’

시야가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막혔던 숨이 더욱 턱턱 막혀 왔다.

온몸이 녹는 것 같았고,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끊임없이 생각했다. 정신 차려. 네가 이대로 쓰러지면-.

“……아?”

하지만 눈을 뜨니 저택 안이었다.

언제 저택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싸늘했다. 저택 내부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차갑고, 음울하고, 무거웠다.

분명 열린 문 너머로 쨍쨍히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이 보이는데도 그랬다.

……분명 저택을 나설 때는 아침이었는데.

“세르……베인……?”

저택으로 돌아온 몸은 매우 멀쩡했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숨은 잘 쉬어졌고 몸이 녹아내릴 것 같던 고통도 사라졌다.

차라리 아직도 아팠다면 좋았을 텐데.

멜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사람의 형체를 향해 기어갔다.

“자는 거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멜은 세르베인의 산호빛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곧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코 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아악!”

그 몸을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 마주 안아 주지 않고 떨어지는 팔이 가늘고, 또 차가웠다.

생각했다.

나는 왜 매번 이런 식으로 망쳐 버리는 걸까.

나는 늘, 왜 이런 식의 결말을 맞는 걸까.

이번에는 너를 한 번에 알아봤는데.

네가 나를 위해 그렇게나 똑같은 얼굴로…… 그럼에도 다시 찾아왔는데.

“같이 가자.”

세르베인이 내게 손을 내밀어 줬다. 이번에도 세르베인은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이전부터 계속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듣지 않았던 것은, 또 나였다.

“내가 어딜 가든, 같이 가면 되는 거잖아.”

……그럴까. 이번에야말로 너를 따라갈까.

멜은 창백하고 지친 얼굴로 세르베인을 내려다봤다.

더 이상 보여 주지 않는 따스한 햇살 같던 눈동자가 너무 보고 싶었다.

멜은 조용히 자장가를 불러 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낮게 속삭였다.

“세르베인…….”

“…….”

“나…… 날씨가 추워지면 너와 무엇을 할까 생각했어.”

멜은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했다. 불과 며칠도 되지 않던 날의 기억이었다.

행복했다. 그저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족되어 기쁨이 마르지 않던 날들이었다.

비록 너를 억지로 방 안에 감금했지만, 드디어 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이 내겐 중요했었다.

“나도 너와 같은 걸 바랐어……. 미리 치워 둔 난로에 불을 붙이고, 너와 함께 책을 읽을 생각을 했어. 넌…… 책을 참 좋아했잖아.”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가 되면, 창밖으로 정원을 보여 주고 싶었어.”

“…….”

“지금의 넌 모르겠지만 그때쯤이면…… 네 눈을 닮은 노란 수선화가…… 참 많이…… 예쁘게 피거든.”

아직 하지 못한 게 많다.

널 따라가기엔, 아직 너와 함께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아.

그 생각에 멜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품에 세르베인을 안았다. 다리가 녹아내리고, 숨을 잃더라도 세르베인을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다.

“호수……. 호수로 가자. 우리 함께 호수로 가자.”

저벅저벅…….

멜은 세르베인을 안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그녀를 눕히고 옷을 벗겼다. 피가 묻고, 더러워진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혔다.

이후에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다. 발목에 생긴 상처에는 천을 감아 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조심스럽게 빗질했다. 산호빛 머리칼이 물속에서 너울 치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함께 가자, 세르베인.”

품에 안긴 세르베인의 몸이 따뜻한 것 같았다.

멜은 그 입에 다시 입을 맞추고 말했다.

“우리, 호수로 가자.”

멜은 계단을 내려왔다. 다시 열린 문 앞에 섰다.

몇십 년 동안, 몇천 번도 더 나서려고 노력했던 문이었다.

혼자서는 저택을 둘러싼 철제 담장도 지나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하지만 또다시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끔찍한 통증이 찾아올 것을 예견하고도 그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결국엔 너와 함께여야만 이 저택을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아악……!”

멜은 주저앉았다.

기껏 저택 밖을 나왔는데, 아프지도 않은데 차마 걸을 수가 없었다.

“세르베인, 세르베인…….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듣지 못할 존재에게 계속 사과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너무 많았다.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 * *

약 100년 전.

비록 무서운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 멜에게 세르베인은 바다 속에서 봤던 예쁜 빛깔의 작은 산호가 되었다.

깊고,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꿋꿋이 예쁜 빛깔을 자랑하던 나의 산호.

멜은 매일같이 그 산호를 들여다보며 매우 아꼈었다.

육지로 끌어 올려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 오지 않는 거야?”

멜은 호수에서 물장난을 치다가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서려 있었지만 멜은 애써 웃음을 유지했다.

“이틀째야. 왜 오지를 않는 거야…….”

세르베인이 오지 않았다. 저와 마음을 확인한 바로 다음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 애가 오지 못할 때 대신 소식을 알려 주던 사용인들의 존재 역시 없었다.

어차피 세르베인이 보낸 사람이라면 호숫가에 편지만 내려 두고 갈 것이다.

그래서 멜은 호수 표면에서 계속 세르베인을 기다리다가도, 인간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서둘러 호수 바닥으로 숨었다.

“그쪽에--------없어?!”

“후계의 증표------분명---!”

“---그 간교한-------!”

저택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숲속까지 들릴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세르베인을 마지막으로 봤던 밤부터 그랬다.

이때까지 이곳에 지내면서 이토록 커다란 소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멜은 조금 의아했다.

“바쁜 일이 있는 걸까?”

무리 지어 오가는 작은 물고기 떼에게 말을 걸었다.

물고기는 말을 하지 못한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멜은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종종 말을 걸었다.

“하핫…… 너희가 대신 나랑 놀아 주는 거야?”

멜은 제게 몸을 부벼 오는 조그마한 물고기들을 보며 웃었다.

“그래. 바쁜가 봐. 사람이 저렇게 많이 온 걸 보니 바쁜 일이 있나 봐.”

그 순간 푹신해 보이는 뭔가를 먹던 도중 토하러 달려갔던 세르베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걱정스러운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아픈 건 아니겠지?”

다음에 보면 그게 뭔지 물어봐야겠다. 그걸 먹으면 세르베인은 몸이 아픈 것 같았다.

세르베인에게 몸에 안 좋은 건 먹지 말라고 말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만 더 보러 가보자.”

그 잠시를 못 참고 멜은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저택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세르베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멜이 세르베인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좀 있으면 하인이라도 와서 소식을 전해 줄 거야.”

멜은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괜히 물고기에게 알려 주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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