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 화 (38/132)

38 화

그러다가 생각을 마쳤는지, 멜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계속…… 네 눈앞에 있어서 미안해.”

“…….”

“나 이만 나가 볼게…….”

불쌍한 척 굴지 마.

너도 결국 내가 이 저택에 유폐된 채 죽길 바라서 이러는 거잖아.

왜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굴어?

나쁜 건 내가 아니다. 나는 분명 처음에 그를 걱정하고,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자신이 기다리던 ‘세르베인’이 아닌 걸 알았으면서, 이상한 변명을 대며 나를 이곳에 묶어 두려 했다.

그가 보인 제스처를 분석했을 때 그건 분명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 것이다.

그를 포기하고, 이 저택에서 나 혼자 온전히 도망칠 것이다.

나는 방문을 잡은 멜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멈춰.”

내 말에 멜이 조금 밝아진 얼굴로 뒤돌았다.

뭔가를 기대했겠지만, 나는 그 얼굴을 최대한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신발은 주고 가야지.”

멜의 얼굴이 순식간에 절망에 처박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우는 것인지 그의 몸체가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알……겠어. 미안해.”

“…….”

“정말로 미안해. 그러니까 나 미워하지만 마…….”

여기서 더 싸늘하게 굴면 그가 완전히 나를 포기하지 않을까?

나는 그 일렁이는 눈빛을 비껴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인어라는 종족은 어떻게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걸까.

멜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니 생각하고 있는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미워한 적 없어. 애초에 좋아한 적도 없으니까.’

그 한마디면 인어를 무너트릴 수 있을 텐데.

그가 나를 그냥 보내 줄 게 분명한데.

하지만 인어는 죽겠지. 내가 그날에 봤던 것처럼, 바닷물이 되어 가면서.

이 순간까지도 인어의 안위를 생각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를 버리고 떠날 것이지만, 내 행동이 그의 목숨을 끊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는 건 여전히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안 미워해.”

“…….”

“그러니까 빨리 나가 줘.”

멜이 덜덜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달칵.

“흑, 흐윽…….”

평소에 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닫힌 방문 너머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의 울음소리는 어린 시절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고 들었던 바다 소리와 비슷했다.

그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베개에 고개를 처박고 귀를 막아도 울음소리가 멎지를 않았다.

밤새도록 울음소리는 내 귓가를 맴돌았고, 결과적으로 밖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울 생각이야? 사람을 양심에 찔려서 죽고 싶게 만드는 게 목적이야?”

이성이 반쯤 사라진 채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그가 실신할 정도로 운다고 해도 매몰차게 뭐라 말할 생각이었다.

달칵.

“도대-…….”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을 여니 예상대로 멜이 보였다.

다만 그는 문 옆에 쭈그려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울다 지쳤는지 뺨에는 눈물이 마른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언제부터였지?”

결국 방금까지도 들려왔던 울음소리는 내 환청이었던 것이다.

충격에 빠진 채 그의 얼굴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그가 눈물을 닦았을 소맷자락은 바싹 말라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멜이 울었던 게 맞겠지.

하지만 그걸 계속 신경 써서 이후에 들려온 바람 소리조차 그의 울음소리라고 착각한 건 내 탓이다.

그러니까…… 그 눈을 보지 않아도 나는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넌 정말.”

기껏 밖으로 나왔지만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그의 앞에 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뭐라도 깔고 있지. 아니면 조금은 편하게 앉아 있든가…….”

그는 차갑고 먼지가 가득한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하게 두 다리를 접어 끌어안고 무릎 위에 뺨을 대고 자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 방에 지낸 이후부터는 계속 이렇게 잤겠지.

머물 방이라면 많을 텐데. 그에겐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게 그리도 필사적인 일이었을까.

사락-.

잠을 깨울 수도 있단 걸 아는데도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그의 뺨을 쓸어 보았다.

한번 시작된 손길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강둑 밖으로 흘러넘친 물처럼, 나는 계속 의미 없이 그런 시간을 보냈다.

복도의 창문으로 어느새 깨끗한 하늘이 보였다.

손이 내려갔다.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던 손은 그의 창백하고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눈물을 훔쳐 보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맺힌 눈물을 내 입술로 가져갔다.

“……짜다.”

그럼 눈물이 짜지. 바보 같고 변태 같은 짓을 해버렸다.

나는 이만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렸다.

멜의 옆에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가 이 저택에 올 때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신을 신었다. 그때 나는 멜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치챘다.

“일어났지?”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멜이 천천히 눈을 떴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물빛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봤다.

안쓰러운 사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도 당신을 사랑할 텐데.

왜 하필 당신은 이미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는 걸까.

“가려는 거야?”

멜이 신을 신은 나의 발을 보며 물었다.

이제는 그가 나와 눈을 맞추려 하지를 않았다.

“어디로 갈 거야?”

목소리에는 체념이 가득했다.

마치 내가 어디로 간다고 하든 보내 줄 것처럼.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내가 마을에 나갈 때 그가 순순히 보내 줬던 순간이 떠올랐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그때와 같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또 후회할 짓을 했다.

“같이 가자.”

그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우연히 내가 입은 옷의 소매 장식에 멜의 팔찌가 걸렸다.

낡을 대로 낡아 있던 팔찌 줄은 허무할 만큼 쉽게 끊어졌다.

투둑!

또르르르…….

아끼던 팔찌일 텐데. 겉으로는 담담한 척 멜을 바라봤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멜은 제 발밑을 바라보지 않았다.

소중히 여기던 팔찌가 흩어졌는데도 오로지 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그가 내게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나도 그에게 집중하자.

그 생각에 나는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말했다.

“내가 어딜 가든, 같이 가면 되는 거잖아.”

네가 나를 감금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떠나는 게 무서웠던 것이라면 함께 가면 되는 것이다.

설령 홀렸다면 어떤가.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그는 안타깝고, 순수했고,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또한 나의 조상의 죄니, 내가 책임져야 할 당위성도 충분했다.

“진……심이야?”

멜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살짝 웃어 버렸다. 그냥 이 상황이…… 결국은 이렇게 흘러 버린 것에 대한 체념의 웃음이었다.

“그래. 진심이야.”

그는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시선으로 한참 동안 나를 올려다봤다.

바라던 답을 줬는데도 그는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윽고 창백한 얼굴에 위태로운 불안이 떠올랐다.

“못 믿겠어. 넌 늘 이런 식이었어.”

“…….”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 마. 난…….”

그는 꽤 차분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그의 말을 더 절박해 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이번에도 거짓이라면 못 견딜 거야.”

“거짓 아니야.”

멜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증명할 방법은 눈을 맞추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인어에게 인간 세계의 추잡한 계약과 강제로 부여된 의무 따위를 들이밀고 싶지 않았다.

눈이 마주쳤음에도 멜은 여전히 두려워하며 주저했다.

“그런데 난, 나는…… 저택 밖으로 못 나가. 나가면 아파…….”

“괜찮아. 어떻게든 같이 나갈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마음을 준 대상에게 대가를 바라고 애정이나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정도쯤은, 불완전한 너를 돕는 것 정도는 정말로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설령 멜이 괜찮아져서 내가 그분이 아님을 알고 떠나겠다고 말해도 그냥 보내 줄 수 있었다.

혹시 내가 그에게 완전히 홀리는 날이 와, 그분처럼 멜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그를 가두지는 않을 것이다.

벌컥!

멜을 달래던 도중 별안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내 방이 아닌, 등 뒤의 다른 문이었다.

“윽!”

갑자기 열린 문에 피할 틈도 없이 등을 부딪쳤다.

반사적으로 멜이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그를 밀어냈다.

“세르베인!”

“멜, 위험해!”

내게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잊고 있었다. 나는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수도에 없는 걸 안 순간 적대 가문들이 이곳에 암살자를 보낼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문에 밀린 덕에 등 뒤를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심한 순간에 뒤에서 심장을 뚫렸으리라.

덜커덕!

멜에게 외치던 도중에 나의 손은 이미 벽에 걸린 텅 빈 액자를 붙잡고 있었다.

쇠 프레임이니 무기로 쓸 만할 것 같았다.

나는 액자를 벽에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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