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화
“뭐?”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인어가 감금당한 사건은 나도 참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상의 죄를 내가 대신 뒤집어써야 하는가?
그것도 단지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그 본인이라 오해받으면서……?
일단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멜이 잠깐 미쳐서 내게 증오심을 은은하게 드러내지만, 그는 여전히 세르베인을 사랑한다.
즉, 나를 세르베인이라고 착각하는 한 죽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담담하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멜은 내 말에 조금도 웃지 않고, 싸늘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 정도로 양보할 때 받아들여. 네가 그랬듯 나도 마음만 먹으면 널 침대 위에만 묶어 둘 수 있는데 참는 거야.”
“안 나갈게.”
그 말을 듣고는 바로 항복했다.
조금 모양 빠지긴 하지만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멜은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이젠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반쯤 체념한 상태로 침대에 앉아 있는데 뜻밖에도 그는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는 괜찮잖아. 나는 이것도 하면 안 돼? 내가 널 24시간 지켜보길 했어, 좁은 통에 가둬 두길 했어, 가둬 놓고 방치하길 했어……?”
처음에는 침울하고, 안쓰러운 모습으로 말했지만, 마지막에는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다.
그 흐름이 조금 무서웠다.
‘조상님. 당신은 무슨 짓을 하셨기에 후손을 힘들게 하시나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슬그머니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가 이불 속에 몸을 넣었다.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는 암묵적 표시였다.
그러자 멜은 기분이 풀린 듯 활짝 웃었다.
조금 속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지켜 줄게, 세르베인.”
글쎄요. 지금 제 신변에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당신 같은데요.
“이 집에 있으면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할 거야.”
‘이 집에 있으면’이라는 부분이 상당히 꺼림칙하지만, 일단 나를 해치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기에 꽤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만이 널 보고, 아무도 널 탐내지 못하게 할 거야.”
나는 천장만 바라봤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 * *
감금 생활이니 어느 정도 삶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리고 그건 식사 시간 때 가장 처음 드러났다.
“세르베인, 배고팠지?”
멜은 방 안에 티테이블이 있는데 굳이 침대 위에 음식을 차렸다.
“왜 침대 위에 음식을 차리는 거야? 굳이 방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저기 티테이블에서 먹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늘 이렇게 먹었잖아.”
의문을 제기했지만 예상대로 멜과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이제 사소한 건 그냥 무시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차린 음식을 봤다.
메뉴에는 스테이크가 있었는데 제발 저 고기가 소고기이길 바랐다.
“…….”
매도 먼저 맞자는 주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스테이크를 썰어서 먹어 보았다.
다행히 스테이크는 평범했고, 꽤 기대 이상이었다. 굽기가 완벽했으니.
다만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멜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무표정했지만, 그 눈에는 기대와 설렘이 어려 있었다.
“맛있어?”
……정말로 자기가 맛있게 차렸다고 생각해서 내 반응을 기대하는 건지, 아니면 이 괴식을 먹은 나의 반응을 기대하는 건지.
“응.”
나는 억지로 안면 근육을 움직여 웃었다.
그러자 멜은 조금 기쁜 듯 무심코 웃을 뻔하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귀 끝이 빨개져 있었다.
……세상에. 나를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라, 본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겨우 표정 관리를 하며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봤다.
‘그러면 진짜로 이걸 다 먹어야 하나…….’
다행히 멜은 내가 사놓은 식재료로 요리를 해서 주었다.
문제는 스테이크를 제외한 모든 요리가 상당히 도전적이라는 점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통후추를 뿌린 샐러드를 봤다.
……그러니까, 통후추를 갈지 않고 그냥 넣었다.
그라인더로 갈지 않고 내용물을 빼내서 뿌린 모양이었다.
나는 최대한 완곡어법을 사용해 멜에게 물었다.
“멜. 혹시 약간 검은색의 찰랑이는 소스 못 봤어?”
멀쩡한 발사믹 식초가 있는데 왜 굳이 통후추를 넣었냐는 뜻이었다. 하다못해 후추를 좀 갈아 넣었다면 몰라. 그래도 내 취향은 아니다.
“아, 그거.”
바로 옆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멜이 평이하게 답했다.
“상했던데? 그래서 버렸어.”
“……응?”
“신 냄새가 나더라고. 음식에서 신 냄새가 나면 상한 거래. 책에서 읽었어.”
‘아니, 그거 식초라서 원래 신 냄새가 나는 건데…….’
하지만 인어에게는 신 냄새나, 쉰 냄새나 똑같게 느껴졌겠지.
나는 해탈한 기분으로 그냥 ‘잘했어.’라고 답하고 말았다.
후추는 내가 알아서 빼 먹었다.
나는 배가 불러서 이만 식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먹었어. 배가 부르네.”
“더 먹어야지.”
사실 음식이 꽤 많이 남긴 했다. 도저히 못 먹을 맛이라서 그랬다.
통후추 샐러드는 그렇다 치는데, 익히지 않은 감자를 그저 갈기만 해서 만든 수프는 도저히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처음 대접했던 요리와는 다른 의미로 비위를 상하게 했다.
‘한번 끓여 보기라도 하지 그랬니…….’
사실 끓인다고 해도 그냥 감자를 간 걸로는 정상적인 음식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세르베인은 갈아 만든 음식을 좋아하잖아.”
그 말을 들으며 생감자 수프를 조용히 한 숟갈 떴다.
이미 수프는 변색이 되어 거무튀튀해져 있었다.
‘……100년 전에는 이런 음식이 유행이었나?’
의외로 맛은 괜찮을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며 일단 입에 넣어 봤다.
하지만 예상대로 차갑고, 비리고, 역한 맛이었다.
이쯤 되니 그냥 빵을 주지, 왜 굳이 직접 요리를 했을까, 라는 원망이 들었다.
내가 빵도 잔뜩 사놨는데.
‘그래도 차려 준 성의가 있으니 반 이상은 먹어야겠지.’
달칵.
나는 미각을 향하는 모든 신경을 차단하고 싶었다.
울렁이는 속을 참고 어느 정도 더 먹은 후에 더는 후퇴할 수 없어 말했다.
“멜. 잘 먹었어.”
“……왜 다 안 먹어?”
멜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차갑고 무관심해 보이는 얼굴에서 유독 그의 눈빛은 여리고 나약해 보였다.
물론 감금 생활이 녹록지 않으리라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구나.
‘그래. 이 정도는 귀엽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달칵.
별다른 말 없이 싱긋 웃으며 식기를 다시 들었다.
억지웃음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멜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반 이상이 남은 통후추를 뿌린 샐러드와 익히지 않고 내놓은 감자 수프를 아득아득 씹었다.
그나마 지금이 아침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런 걸 두 번 더 먹어야 했을 테니까.
나는 억지로 음식을 삼키다가 물었다.
“넌 안 먹어?”
“난 배가 안 고프네.”
……본인도 먹어 보고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거 아닌가?
꽤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어쨌든 음식의 맛과는 별개로 식재료가 건전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내 비위가 강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는 생감자 수프를 마지막에 마시듯 먹어 버렸다.
그게 제일 끔찍했기에 숨을 참고 마셔서 맛을 느끼지 않으려 함이었다.
“…….”
멜은 그걸 말없이 지켜보다가 빈 접시들을 가지고 나갔다.
떠올려 보자면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맹세코 그가 저녁에 생감자 수프를 또 만들어 올 것을 알았더라면 그딴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세르베인. 저녁이야.”
멜은 점심때보다 더 양이 많아진 생감자 수프를 내 앞에 두었다.
이번에도 빵은 없었다.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음식이 또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보라색과 연두색이 오묘하게 섞인 수프가 있었다.
도대체 그가 왜 이렇게 수프인지 주스인지 알 수 없는 음식을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뭘로 만든 거야?”
나는 내 미각으로 그 식재료를 맞히기가 두려워서 멜에게 물었다.
계속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멜은 당당하게 답했다.
“가지야.”
“생으로 갈았어?”
“응.”
“그래…….”
나는 생으로 간 가지를 스푼으로 떠먹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짓이었다.
멜은 아주 자연주의인 모양이다…….
아니, 그런데 고기는 잘만 굽잖아?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멜. 다음번에는 말이야, 수프를 끓이기라도 해줘.”
“맛없어서 그래……?”
“그……게 아니라, 그냥 그런 방법도 있겠다, 싶어서.”
억지로 혀를 깨물어 ‘그래’라고 답하는 걸 참았다.
이 정도의 피드백은 괜찮은지 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염이 생길 것 같은 감금 생활의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 * *
감금 생활의 문제는 또 생겼다.
나는 어제 씻지 못한 것이 찝찝해서 씻으려고 했다.
그런데 방문을 아무 때나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던 멜이 생각나서, 혹시 몰라 당부했다.
“나 씻을 거야. 함부로 욕실 문 열지 마.”
아무리 상식이 없어도 그런 짓은 안 하겠지.
그런데 멜은 또다시 기상천외한 말을 했다.
“씻는 거 도와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