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화
“…….”
고개를 들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계속 시선을 바닥에만 고정했다.
피가 섞인 물은 투명하게 붉었다.
이상한 냄새였다. 피비린내와 소금물의 짠 내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 순간 출처가 불분명한 아름다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있잖아. 인어는 죽으면 바닷물이 된대. 그래서 인어는 죽어도 바다에서 만날 수 있어.”
누가 말해 주었는지, 내가 어디서 그 말을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기억난 그 한마디는 곧 내 사고를 전부 지배하고 말았다.
인어는 죽으면 바닷물이 된대…….
인어는죽으면바닷물이된대인어는죽어도바닷물이된대.그래서인어는죽어도바다에서만날수있어.그래서인어는죽어도바다에서만날수있어.바닷물.바닷물.바닷물이된다고.죽으면말이야.
……응. 죽으면.
나는 내 신발을 적시는 투명한 핏물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소금의 향기가 났다.
기분이 어떻냐면, 딱 죽을 만큼. 그만큼 초조했다.
“멜……?”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었다. 인어는 침대의 맞은편인 텅 빈 바닥에 누워 있었다.
차라리 침대에 누워 있었다면 덜 마음이 아팠을까.
그는 카펫조차 닿지 않는 딱딱한 바닥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핏기없는 몸은 바닥의 물로 온통 젖어 있었다.
그 물의 근원이 멜일 것이라고 머리는 추측했다.
방 전체가 피 냄새와 소금 내가 나는 반투명한 물에 잠겨 있었다.
“멜!”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반사적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는 멜을 미친 듯이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멜!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피와 눈물이 섞인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린 흔적이 보였다.
멜은 마치 관속에 누운 것처럼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누워 있었다.
창백한 흰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가 죽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고 말았다.
‘아, 그래. 네가 인육을 먹었든, 사람을 얼마나 죽였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나는 그 도덕적 잣대가 너와 관련되면 다 소용없단 걸 깨닫고 말았다.
네가 이보다 더한 괴물이 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그저 네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설령 네가 나를 죽이더라도 나는 네가 살아 있기만 하면 괜찮다.
차라리 나를 원망하고, 나를 죽이려고 손을 뻗고, 내게 복수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네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눈을 떠, 멜…….”
“…….”
“내가, 내가 세르베인이야…….”
그렇게 말한 순간 인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숨조차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멜이 천천히 눈을 떴다.
멜이 눈을 뜨고 나서야 나는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푸른 눈동자 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멜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도록 놔두었다.
“아.”
멜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구나…….”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미처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던 손이 어느새 내 목 뒤를 강타한 탓이었다.
* * *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인어가 바닷물이 되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랬다.
사실 인어의 존재는 내게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러니 그대로 사라지는 게 내게는 좋은 일인데 왜 그랬을까.
같잖은 동정이었을까.
“세르베인.”
나는 나를 세르베인이라고 믿게 된 인어가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마주한 현실은 또 예상과 정반대였다.
“기분이 어때?”
눈을 떴을 때 익숙한 구도가 보였다. 어제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멜이 싸늘한 안색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그게 다 꿈이었나.’
나는 멍청한 얼굴로 멜을 바라봤다.
너무 심한 데자뷰가 느껴진 탓이었다.
하지만 내가 입고 있는 흰색의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보고 그 일이 꿈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멜이 화가 난 건 어제 내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나는 일단 이 서늘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먼저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몸은 괜찮아요?”
“무슨 말이야? 아직까지 왜 살아 있냐고 비꼬는 거야?”
반응이 이상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뾰족하게 굴지?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어제 당신 여기서 쓰러져 있었잖아요. 바닥이 물에 잠겨서…… 어?”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방 안을 살폈다.
분명 그 물난리가 났는데도 바닥은 뽀송했고, 가구들 역시 젖었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을 맴돌던 바다 냄새와 피 냄새도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은 못 하지만, 어제 그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안다.
내가 당황할 때 멜이 의아한 기색으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 아니에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리 생각할 때 멜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존댓말을 하는 거야?”
“아니, 그 이야기는 어제 끝난 거 아니었나요? 제가 그분의 손녀뻘이라고 말했잖아요.”
처음 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들었던 말을 또 듣게 되니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데 그는 마치 내 말이 귀에 닿지 않는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이제는 다리가 있어서 싫어?”
“도대체 무슨…… 무슨 말이에요?”
이건 도저히 그냥 무시하면 안 되는 말 같았다.
갑자기 다리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늘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그의 화제 선정과 사고의 흐름은 늘 갑작스러웠다.
“이젠 모르는 척까지 하는 거야?”
멜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이상했다.
나는 강렬한 예감을 느꼈다. 왜인지 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또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내가 다리가 생겨서, 이젠 희소성이 없으니 날 모르는 체하는 거냐고 묻는 거잖아.”
새파란 증오가 어린 눈이 코앞에서 멈추었다.
잘 벼려진 칼처럼, 눈앞의 상대를 상처 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멜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네가 유기한 애완동물이 이제야 기억나?”
‘……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그에게 그분과 나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했고, 그는 분명 납득했었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는 책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을 타의로 겪고 있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나는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고 차분히 말했다.
“어제 제가 그분을 사칭한 건 죄송해요. 안 하면 멜 씨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근데 정말 저는 그분이 아니에요.”
거짓말을 한 대가는 나중에 받더라도, 일단 겨우 푼 오해와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멜은 내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다는 듯, 오히려 저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그분’이라니? 아까부터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네?”
“……보고 싶었어.”
멜이 손을 뻗어 내 머리칼을 만졌다.
그는 나긋나긋한 손질로 내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또 사랑 고백을 하려는 건가.
그리 짐작할 때 예상과 달리 들려오는 말에 나는 안색을 하얗게 굳혔다.
“네가 내게 준 고통의 절반만큼이라도 돌려주고 싶었거든.”
그것은 내가 처음 인어를 본 순간에 떠올린 미래였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가능성이 큰 미래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저택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가설은 지금 현실이 되었다.
처음부터 그가 복수를 하려고 들었다면 덜 무서웠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껏 보였던 애정과 매달림은 무엇이었지?
“매일 기도했어. 네가 이곳에 오게 해달라고. ……드디어 기도가 이뤄졌나 봐.”
“…….”
“나, 계속 너를 기다렸어.”
맥락과 어울리지 않게, 멜은 아름답고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은 금방이라도 내 목으로 다가와 내 숨통을 억죌 것 같았다.
……인정했다. 나의 착오였다.
나는 인어가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혹 나를 그 세르베인으로 착각할 뿐 다른 인지 요소들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내가 어찌 손대지 못할 정도로.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감금당했다.
“……망했네.”
천장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미쳤었지. 깔끔하게 내 볼일만 보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어쭙잖게 가진 동정심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가.
이전까지는 멜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 수 있는 상태는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분은 제 재종조할머니예요.”
“아까 전부터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제가 어제 설명했잖아요. 약 100년쯤 전에-.”
“우리가 어제 만났다니……? 꿈꿨어?”
대충 이런 식이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결론은 ‘네가 세르베인이잖아.’가 되었다. 이것만큼은 일관적이었다.
정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멜은 내가 기가 차서 마른세수만 할 때 제멋대로 만든 규칙을 내게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어쨌든 이제부터 넌 이 방 밖으로 나오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