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화
저택이 있는 숲을 빠져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사는 번화가가 보였다.
녹시렐 가문은 망하고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았지만, 마을은 이미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번화가로 나오자마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저택에 잘 도착했어요. 프로셴과 미나엘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또한 저택에 살던 사람과 지위 상속 문제도 잘 해결되었어요.
인어의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나는 편지의 마무리에 곧 돌아가겠노라고 적으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곧 내 손은 제멋대로 다른 말을 적었다.
다만 이곳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어요. 심각한 건 아니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상심한 인어를 이대로 두고 수도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어가 원한다면 공작 지위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그를 데리고 살 의향이 있었다.
그는 이제 내 목숨을 해칠 것 같지 않았고, 그를 억지로 내쫓기에는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어가 이곳에서 계속 살길 바라는 게 정상일까?’
이제는 그분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 텐데 이곳에 지내겠다고 말하면, 그게 정말 그가 바라는 게 맞을까?
나는 인어가 정상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거나, 바다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래야 인어가 행복해질 것 같았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은 찾아봐야지.’
프로셴의 일은 당분간 저 대신 신경 써주세요. 작위 수여식 날짜가 잡힌다면 알려 주세요. 그 시기에 맞춰 돌아가겠습니다. 대신 편지는 자주 쓸게요.
편지는 부모님께만 썼다.
귀족이 보낸 편지가 아니면 왕궁이나 귀족가에 전해지지 않는다.
즉 여기서는 평범하게 프로셴과 미나엘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다.
우리 가문의 비밀 조직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나 할 필요성이 아직은 없어 보였다.
편지를 부치고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나는 해산물을 제외한 식재료들로 목록을 작성했다.
저택에서 보인 반응을 고려하면 그는 해산물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목록을 가게 주인에게 주며 말했다.
“숲속의 저택 아시나요? 옛 녹시렐 공작가 저택이요.”
“그럼요.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 알죠.”
“그쪽으로 이 물품들을 정기적으로 배달해 주세요.”
내 말을 들은 가게 주인이 눈을 부릅떴다.
놀랄 것이라고는 이미 예상했다. 수도의 귀족들도 살인귀가 산다는 소문을 듣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은 오죽하랴.
예상대로 가게 주인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 저주받은 저택에 사는 거예요?!”
“네.”
“지금이라도 나오세요! 돈도 많은 것 같은데 차라리 다른 집을 알아보지 왜……!”
“저택에 흉흉한 소문이 도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사람들 속에 섞여들기 위해 사용하던 나긋나긋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서 대답했다.
하지만 내 반응에 아주머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대하듯 더욱 답답해하며 외쳤다.
“소문이 아니라 진짜로 사람이 죽었어요!”
공포에 물든 외침이 주변을 쓸고 지나갔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멈춰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말했다.
“30년도 전에 그곳에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어요. 제 또래였죠. 그 애가 갔으리라 의심되는 곳은 딱 그 저택뿐이었어요.”
“…….”
“여기는, 이 지역을 관리하는 귀족이 없어 수색해 달라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지만, 모두가 알아요. 그 애는 거기에 있던 누군가에게 죽었어요.”
나는 예전부터 꾸준히 녹시렐 저택에 관한 보고서를 받아 왔다.
그래서 여러 적대 가문에서 그곳에 사람을 보냈고, 살아 나온 사람이 없다는 것을 통해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일반인이 저택에 겁 없이 접근한 적은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망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다들 손에 피를 묻히고 살던 인간들이 죽은 것일 테니까.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니…….’
나는 멜이 민간인만큼은 해치지 않았기를 바랐지만 내 이성은 그가 그러지 않았으리라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내게는 멜을 단죄할 자격도 없다.
이기적이게도 흐린 눈을 하고서 그를 안쓰럽다고만 생각하려 드는 것일지도 모르지.
가증스럽게도 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사장님. 이제는 괜찮아요. 며칠 전, 왕성에서 온 기사들 여러 명이 그곳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지 않으셨나요?”
“보긴 했지만…….”
“네. 기사들이 조사를 마쳤어요. 옛날 사건으로 인해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많았지만, 어떤 무리가 그곳을 차지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았어요. 저택은 비어 있었어요.”
“그, 그래요……?”
“네. 정 걱정되신다면 배달은 그냥 저택 근처까지만 해주셔도 돼요.”
“아니에요. 문제가 없단 게 확인됐는데 고객에게 그러면 안 되죠…….”
“그렇다면 감사해요.”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조금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많이 안정되어 보였다.
근처에서 우리를 힐끔힐끔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안심하는 게 보였다.
곧 이곳에는 저택에 위험한 괴물은 없다고 소문이 돌 것이다.
나는 인간 심리를 잘 안다.
사람들은 계속 그곳에 괴물이 살 것이라고 의심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보다, 부족한 증거더라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쪽을 좋아한다.
그게 더 편하니까.
양심에 찔리긴 했다.
하지만 나의 이성은 이 상황에서도 치밀하게 모든 의심의 여지를 끊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직접적으로 피해자가 된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지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나는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혹시 그 실종된 분의 가족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건 왜요?”
“가족들은 계속 불안해할 테니까요. 가서 안심시켜 드리고 싶거든요. 그리고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어떻게든 위로해 드리고 싶어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감동받은 얼굴을 하다가 다시 침울하게 말했다.
“어쩌죠. 없는데.”
“예?”
“원래부터 부모가 없던 아이였어요. 참 명랑하고, 똑똑했죠. 몇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아가씨?”
“그렇군요……. 일단 거래는 이렇게 해주시고,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시선에 황급히 인사하고 자리를 피했다.
나는 도덕적 관념이 그리 투철한 편은 아니었다.
프로셴을 왕좌에 앉히기 위해 손에 꽤 많은 피를 묻혔다. 더러운 수작질도 많이 펼쳤다.
사실 그래서 인어가 인육을 먹는 것을 보고도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것일 테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정말 별거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인어가 그렇게 된 것은 결국 나의 재종조할머니의 탓이지만, 제삼자가 그걸 알까?
“……또 이런 일이 안 생기면 되는 거잖아.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자.”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진 숲길은 흉흉한 분위기를 내었다.
멜은 아침을 먹고 지금까지 굶었을 테니 배가 고플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그 스테이크로 배를 채웠을 가능성도 있지만 왠지 그가 그러진 않았을 것 같았다.
어서 가서 정상적인 요리를 만들어 줘야지.
그는 이 저택에 유폐된 동안 계속 그런 것들만 먹고 살았을 테니까.
저려 오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끼익.
“저 왔어요.”
잠겨 있지 않은 대문을 열고 저택에 들어갔다.
고작 머문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풍경이 익숙해졌다.
그런데 마중 나오는 이가 없었다.
……정정한다. 단어 선택이 이상했다.
그가 나를 마중 나올 리 없고, 마중을 기대한 적도 없다.
다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조금 당황스러웠다는 뜻이었다.
나는 주저하다가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다.
“멜 씨?”
이 저택에서 그가 내 시야에 없다는 이 상황이 낯설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기억 속에서 멜은 늘 내 시야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저택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저벅저벅.
나는 먼저 식당으로 가봤다.
식당의 풍경은 내가 나갔을 때와 똑같았다.
식탁 위에는 치우지 않은 음식이 그대로 식어 있었다.
나는 가져온 식재료를 대충 식당에 두고 그곳에서 나왔다.
“어디 있어요?”
1층에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멜은 그분의 방에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다.
똑똑.
노크를 했지만 답이 없었다.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이라도 자는 건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익.
“혹시 자는-.”
철벅!
무심코 내디딘 바닥이 축축했다.
나는 문을 열고 발을 들이자마자 밟게 된 물웅덩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피가 섞인 물웅덩이였다.
방 전체가 수해라도 맞은 듯 물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