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 화 (29/132)

29 화

인어도 식사를 하네.

조금 신기한 마음으로 멜의 맞은편에 앉았다.

드르륵.

“직접 차린 거야?”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꺼내고 보니 너무 당연한 질문이었다.

무시해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숨 쉬는 것도 멈춘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멜이 곧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하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응.”

“솜씨가 좋네.”

“고마워.”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방금 전 잠에서 바로 깰 수 있었던 것은 멜의 목소리에 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기에 예민했다.

만약 예민하지 않았다면 프로셴을 왕위에 앉히기 전에 죽었겠지.

달칵.

식기를 조심스레 들고 스테이크를 썰었다.

멜이 독을 탔을 가능성을 생각해 봤지만 내가 그 방에서 지내도록 안내까지 한 마당에 바로 그런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멜은 인어지만 요리에 능숙한 듯했다.

식기에 닿는 고기의 촉감은 부드러웠고, 예상대로 입에 가져갔을 때도 그러했다.

‘일반인이 스테이크의 굽기를 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지 않아도 할 말이 없었는데, 칭찬이나 해주면 어색하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

꿀꺽

그리 생각하며 고기를 삼켰을 때, 나는 독특한 풍미를 느꼈다.

“…….”

그때 멜과 눈이 마주쳤다. 멜은 식사를 멈추고 반응을 살피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불안감이 미미하게 엿보였다.

또한 이해할 수 없게도, 비틀린 묘한 환희까지.

‘혹시.’

……바보같이 그 이유를 뒤늦게 짐작했다.

저택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가 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려웠으리라.

챙그랑!

나는 곧장 식기를 내려놨다. 다소 거친 행동에 예의에 어긋난 소음이 생겼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거 먹지 마.”

멜은 포크로 찍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려다 멈췄다.

나는 그의 옆으로 걸어갔다.

“나가자. 이걸 먹고 있을 필요 없어.”

멜은 생기 없는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은 마치 끝없는 구렁텅이 같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심해 같은 눈동자를 하고서 그는 입꼬리만 올려 웃은 채 물었다.

“이런 게 뭔데?”

“몰라서 묻는 거 아니잖아.”

나는 인어를 혐오스럽게 바라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인간들 역시 육류, 어류 등을 섭취하지 않던가.

나는 멜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나가자. 나가서 식당에 가자. 여기서 조금만 멀리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어.”

“손 놔.”

“이것 말고 먹을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어. 내가 사줄 테니까-.”

“손 놓으라고 했잖아!”

멜이 내 손을 쳐냈다.

이해할 수 없게도 멜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악을 쓰듯 외쳤다.

“왜?! 혹시 내게 실망했어?! 내가 네 기대와는 다른 존재인 것 같아?”

“…….”

“끔찍하지? 너도 느껴 봐.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을지-”

발악하는 멜의 모습을 보며 울지 않기 위해 눈가를 찡그렸다.

나는 평소에 공감 능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어의 감정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울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가 겨우 감정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네가 역겹다고 느끼지 않았어.”

“……뭐?”

“살기 위해서 그랬잖아.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네가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누구도 널 원망할 수 없고, 누구도 널 역겹다고 말해서는 안 돼.”

멜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어안이 벙벙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 얼굴이 혼날 것을 예상했다가 혼나지 않은 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멜의 손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나가자.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더 이상 여기에 묶여 있을 필요 없어.”

드르륵.

멜은 내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 힘을 풀고 순종하는 어린 양처럼 나를 따라 걸었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대문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대문과 불과 다섯 걸음도 남지 않았을 때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안 돼. 나는 나갈 수 없어.”

뒤를 돌아보니 창백해진 얼굴이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멜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손목만 잡고 있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덜덜 떨며 말했다.

“저택 밖으로 나가면 안 돼.”

“뭐?”

“나가면 아파. 나가면 안 돼. 아프기 싫어.”

털썩.

멜이 주저앉았다. 그의 손목을 잡고 있던 탓에 나도 덩달아 앉고 말았다.

멜의 눈은 초점이 나간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세르베인, 세르베인. 너도 이렇게 아팠던 거였어? 너는 이렇게 아팠던 거였구나. 그랬던 거구나.”

멜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제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쳤던 그 눈빛이었다.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 듯, 동공이 풀린 눈동자였다.

“나가지 마. 세르베인. 그냥 여기에 있어.”

“무슨-.”

불길한 예감이 들어 멜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그 순간 푸른 눈동자에 붉은 안광이 서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멜의 눈은 핏줄이 터져 흰자가 붉게 변해 있었다.

눈물이 바싹 말라 버린 얼굴로 멜이 고개를 기울였다.

“계속 어딜 가려는 거야?”

“어디를 가려는 게 아니라…… 같이 나가자는 거잖아.”

다급히 말했다. 변명이 아니라 진실이건만 멜은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나가면 아픈데. 아프더라도 나를 떠나고 싶은 거야? 그만큼 내가 미워?”

“나가면 아프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같이 나가자고 말하고 있잖아.”

“거짓말하지 마. 늘 너는 그랬지. 언제나 뒤통수를 치고 나를 나락에 빠뜨리곤 했어…….”

멜이 덥석 나의 손목을 잡았다.

눈빛이 너무 무서웠기에 그 손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멜은 내 손을 가져가 제 뺨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살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는 어린 짐승처럼 나를 나약하게 올려다봤다.

그 태도 변화가 소름 끼쳤다.

“세르베인…… 그래도 괜찮으니까 여기 있어.”

“…….”

“설령 네가 나를 개처럼 버렸어도, 나는 너를 사랑해.”

본능적인 감각이 있다.

인어가 아침에 내 방에 찾아왔을 때, 그는 내가 그 세르베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왜 나를 그 세르베인이라고 착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사람인 척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손을 억지로 빼내며 외쳤다.

“난 그 세르베인이 아니야.”

“세르베인…….”

“그러니까 이 손 좀 놓고-.”

“세르베인.”

인어가 억지로 쥔 내 손등에 입을 맞췄다.

손등에서 시작한 키스는 손가락 마디 마디에 전부 이어졌다.

“흣, 그만 좀…….”

멜의 행위는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붙잡힌 손은 빠져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올가미에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손의 감각을 최대한 무시하고 이를 악물었다.

얼마 후 멜이 키스를 멈췄다. 그는 화사하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냥 우리 같이 죽을까?”

“뭐?”

“그러자, 내 사랑. 이번에는 우리 같이 죽자.”

멜이 내 목으로 두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아주 천천히 보였다.

힘도, 속도도 그를 이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인어 쪽으로 몸을 던졌다.

콰당!

인어가 눈을 크게 뜬 채 내 아래에 깔렸다. 내 목을 잡으려던 손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그는 놀란 채 나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 틈을 타 나는 그의 손목을 움켜잡고 체중을 실어 눌렀다.

“정신 차리고 날 똑똑히 봐.”

“…….”

“내가 그 세르베인이 아닌 거 알고 있었잖아.”

이를 악물고 인어의 이마에 내 이마를 겹치며 말했다.

그가 똑똑히 나를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살면서 누군가의 눈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다.

나는 하려던 말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그 눈동자를 탐했다.

사락.

그때 별안간 멜이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팔락이며 아름다운 눈을 가리었다.

키스를 기다리는 연인처럼 묘한 얼굴이었다.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눈앞의 멜이 갑자기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입술이 닿기 직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눈 떠.”

“…….”

“똑똑히 보라고 했잖아. 나는 그 세르베인이 아니야.”

내 말에 인어가 서러운 눈을 떴다.

그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천천히 나의 얼굴을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얼굴을 만지는 것처럼 느린 시선이었다.

멜은 곧 정신을 차리고 차갑게 나를 밀쳐 내겠지.

나는 몸을 긴장시켜 곧 밀쳐질 것에 대비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울음기가 북받친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사실…… 기억나지 않아, 세르베인. 나 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

푸른 눈동자에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둑을 넘어 쏟아져 버리는 물처럼, 멜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

“미안해. 내가 멍청해서 미안해…….”

아니다. 인어가 멍청한 게 아니었다.

10년만 못 봐도 가물가물해지는 게 사람 얼굴이다.

더군다나 인어에게는 그 사람의 사진이나 그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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