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 화 (28/132)

28 화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다.

창백하게 얼어 있는 인어의 뺨을 쓰다듬었다.

언젠가 굉장히 갈망했던 촉감이었던 것 같다.

인어는 내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거짓말.”

“…….”

“……진짜, 진짜 세르베인이야?”

인어의 서러움이 가득한 얼굴은 기대와 반가움이 뒤얽혀 있었다.

그의 뺨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절대 증오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인어가 정말 복수를 원했다면, 그는 ‘세르베인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세르베인’을 죽였을 것이다.

‘설마…….’

나는 끔찍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건 한 존재에게 너무 비참하고 잔인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들려온 인어의 말 때문에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하고 말았다.

“사랑해. 기다렸어. 네가…… 네가 보고 싶어서 기다렸어.”

인어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갑자기 인어에게서 피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인어의 체취는 맑은 호숫가에서 맡은 풀 향기 같았다.

눈앞의 인어는 자신을 가두고 죽어 버린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분명 인어는 약 100년 동안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체질에 맞지도 않는 호수에서 지내야 했을 것이다. 다름 아닌 그분 때문에.

그런데도 세르베인을 사랑한다고,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 비상식적인 애정에 차마 ‘나는 세르베인이 아니야.’ 혹은 ‘내가 세르베인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어느 쪽이든 세르베인을 사랑하는 인어에게는 너무 비참할 것이기 때문에.

“세르베인……? 왜 답이 없어?”

아무 대답 없는 나를 끌어안은 인어의 손이 덜덜 떨려 왔다.

인어가 살짝 나와 멀어진 채 내 얼굴을 살폈다.

아름다운 물빛 눈동자가 걱정과 불안함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과 마주쳤는데도 매정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보고 싶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어의 등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때서야 안심한 인어가 내 어깨와 목덜미에 얼굴을 비벼 왔다.

그때 나는 꽤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어가 불쌍하긴 했지만, 그의 손에 죽을 일은 없게 되리라 생각하며 안심했다.

하지만 인생은 기대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나는 살면서 그것을 이 저택에 지낼 때 가장 사무치게 실감했다.

* * *

멜은 나를 안은 채 무작정 세르베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불안불안하게 뒷걸음치며 그 방에 들어갔고, 이내 침대에 눕혀졌다.

풀썩!

“세르베인…….”

……아무리 저를 그분으로 착각했다고 하지만, 그리고 설령 그분이라고 해도 약 100년 만에 만나자마자 침대행은 좀 아니지 않나요?

무서웠고 뭉클했던 감정은 어느새 증발했다.

멜은 점점 더 내 품에 파고들며 나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줬다.

나는 옆으로 누워 그에게 안긴 상태로 뻣뻣이 굳어 고민했다.

인어도 뒷목을 맞으면 기절할지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다행히 멜의 뒷목은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는 내 어깨와 목에 얼굴을 가만히 대고 있었기에 그의 흰 목이 아주 잘 보였다.

그런데 거칠게 내려치기에는 너무 여리고, 아름답고…… 아니, 정신 차리자.

‘눈 딱 감고 한 번에 처리하자.’

정말로 내가 눈을 감고 손에 힘을 줘 거의 실행 직전까지 갔을 때 그럴 필요는 사라졌다.

귓가에서 슬픔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세르베인…… 나 좀 안아 줘. 나 그동안 너무 무섭고…… 외로웠어…….”

“…….”

“너무 힘들었어…….”

순간 인어가 애먼 짓을 할 거라 추측했던 게 미안해졌다.

그의 뒷목을 노렸던 팔을 천천히 내려 멜을 마주 안았다.

따뜻한 타인의 체온이 느껴졌다. 다 큰 남성을 이렇게 끌어안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만큼 안아 줄게.”

천천히 그의 등을 쓸어 줬다. 따뜻한 체온이 맞닿자 긴장이 풀어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바로 직전에 목숨이 노려졌었는데 지금은 또 눈이 감기려 했다.

‘……그러고 보니.’

멍하니 바라본 멜의 뒤로 방의 풍경이 보였다.

이 방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릴 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 저택은 100년 전에 마지막으로 사용된 저택이라기에 너무 깨끗했다.

나무에 묻은 오래된 핏자국 같은 건 지우지 못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인어가 이 저택을 청소한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불조차 낡지 않았네.’

특히나 이 방은 더더욱 그랬다.

바로 살에 닿는 이불의 감촉은 뽀송했고 부드러웠다.

거의 유물로 여겨야 할 시대의 물건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인어가 말을 걸어왔다.

“세르베인. 너무 보고 싶었어. 나 늘 네 생각을 하며 버텼어.”

“……그랬어?”

할 수 있는 대답이 마땅히 없었다.

미안한데 나는 그분이 아니야.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후로 인어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백 년 동안 부르지 못했던 이름을 한 번에 부르려는 것처럼, 모든 문장의 처음을 꼭 이름으로 시작했다.

지겹거나 듣기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잔잔한 심해의 울림 같은 그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는 서서히 밀려오는 졸음을 느끼며 그의 말에 가만히 대답해 주었다.

그는 조곤조곤하게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뭘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말했다.

“세르베인. 나 네가 없는 동안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 너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랬어.”

“그랬구나…… 잘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감겨 오는 무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을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만나게 된다면 이런 것들을 물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동안 뭘 했어?’같은.

사실 연인은 사귄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집에 가족이 늦게 들어오면 

‘어디야?’, ‘어디에 있었어?’, ‘왜 늦었어?’, ‘뭐 했어?’ 이런 걸 묻곤 하니까.

……멜.

너 왜 그런 건 안 물어봐?

* * *

“세르베인, 인간으로 사는 건 너무 춥고, 무섭고, 외로웠어. 네가 나를 호수에 빠뜨렸을 때 그보다 나쁜 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힘들었어.”

“응. 미안해.”

“세르베인. 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어. 그냥 호수에서 바닷물이 되어, 영원히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았어.”

“……응.”

“……세르베인.”

“…….”

“자……?”

“…….”

“나…… 배가 고팠어. 그래서…….”

......을 먹었어.

* * *

멜은 좀처럼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세르베인의 방 침대에 앉아 계속 매달려 오는 멜을 쓰다듬어 주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가 먼저 잠들었던 것 같다.

잠들기 전까지 속으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인어를 이 저택에서 쫓아내고 모르는 체할까, 라는 파렴치한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매정해질 수 없었다.

‘언젠가는 정석대로 멜에게 내가 당신이 찾던 그 세르베인이 아니라는 것은 꼭 말해야지.’

그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사라졌다.

“일어나.”

언뜻 증오심이 느껴지는 서늘한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밖은 이미 환해져 있었고, 나는 침대에 똑바로 혼자 누워 있었다.

“아.”

서둘러 몸을 일으키니 멜이 방 한가운데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당황스러운 태도였다.

어젯밤에 나를 끌어안은 채 쉼 없이 울고, 불안에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당분간 이 방에서 지내도록 해.”

멜은 나와 시선을 빗겨 맞춘 채 말했다.

애정과 매달림이 서려 있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매서운 칼날만이 남아 있었다.

“이 방에 있는 옷을 입어. 그리고 이 방의 물건들은 되도록 네 손때가 타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뤄. 하나라도 망가뜨리지 마.”

“…….”

“옷 갈아입으면 식당으로 내려와.”

멜은 그 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갔다.

그건 분명 나를 ‘그 세르베인’으로 착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허.”

그는 내가 여기서 당분간 시간을 보낼 것이라 가정하는 모양인데, 나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그냥 작위 수여에 대한 분쟁만 사라지면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진심으로 지금이라도 창문을 깨고서라도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끼익.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 안의 옷장을 열었다.

옷장 안에는 약 100년 전 옷답지 않게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깨끗하게 보관된 옷들이 보였다.

“옷들이 왜 이래?”

귀족 아가씨의 옷장답게 레이스가 잔뜩 달린 하늘하늘한 드레스만 있을 것은 예상했다. 문제는 온통 흰색 옷들이 대다수라는 점이었다.

여태껏 평민의 신분으로 온갖 험한 일을 하고 사느라 입지 않았던 드레스였다.

치마를 간혹 입긴 하지만 살아생전 이렇게 나풀거리는 옷은 처음 입어 봤다.

게다가 고인의 옷…….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중 하나를 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터벅터벅.

식당에는 이미 멜이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침으로는 과할 것 같은 스테이크가 차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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