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 화 (25/132)

25 화

프로셴이 잘못 대답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로 한 명뿐이었어. 그자가 나와 대화하는 동안 기사들이 온 저택을 돌며 확인했는걸.”

“…….”

“그리고 아주 묘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어. 무섭고 소름 끼치는 감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처연한 느낌이 있었어.”

그 서정적 묘사에 썩은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상황 설명을 하라고 했더니 갑자기 서정시를 쓰고 있었다.

미나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와 동시에 프로셴을 비꼬았다.

“한눈에 반했어?”

“왕이 될 게 아니라 시인이 되어야 했군.”

“엄청 잘생기긴 했어!”

우리가 비꼬는 줄도 모르고 프로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눈치가 심각하게 없었다.

어쨌든 저택에 부하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말했다.

“네가 할 일을 알려 줄게.”

“뭔데? 짐 싸는 거 도와줄까?”

이 인간은 아직도 제가 왕좌에 앉은 게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다.

나는 프로셴을 향해 짠한 눈빛을 보냈다.

프로셴의 왕족 같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더 이상 트집 잡지 않기로 했다.

“아니. 나를 녹시렐 가문의 보좌관으로 추천하는 추천서를 적어 보내.”

“뭐?!”

프로셴이 놀라서 소리쳤고, 미나엘도 경직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세르베인. 그건 너무 위험하다. 네 일이니 더 관여하지 않으려 했건만 너는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만드는군. 도대체 저택에 뭐가 있기에 그리 집착하는 거지?”

미나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여태껏 그녀와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였다.

미나엘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행동을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게.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기에 나는 이런 걸까.”

꼭 어딘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털어 버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내가 직접 보고 처리하고 싶어서 그래. 살인귀인지, 친척인지, 정체 모를 놈을 말이야.”

미나엘은 결국 정말로 불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래, 네 멋대로 해라.’라고 말했다. 프로셴은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했다.

결국 프로셴은 원치 않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 *

증조할아버지의 소원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새벽에 조용히 숨을 거두셨기 때문에 유언조차 듣지 못했지만, 나는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소원이리라 짐작했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녹시렐 가문의 목걸이를 남긴 이유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 정체 모를 놈이 먼저 저택에 들어가 살면서 공작 노릇을 하려고 드네?”

내가 저택에 집착하는 것도 집착하는 거지만, 그 사실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나는 육로로 장장 10일의 여정 끝에 녹시렐가에 도착했다.

뱃길로 왔다면 아주 늦어도 이틀 만에 도착할 거리였다.

“와.”

그렇게 도착한 저택은 증조할아버지의 묘사와 거의 비슷했다.

“프로셴 말대로 진짜 귀신 나오게 생기긴 했네.”

음울한 느낌의 저택이었다. 분명 크고 웅장하지만, 아름답다는 느낌보다 어둡고 우울하다는 기분이 드는 집이었다.

별개로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건 증조할아버지께서 내게 이 저택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기 때문이겠지.

이곳저곳을 살필 때마다 증조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애는 인어를 키웠단다. 아주 아름다운 인어라고 했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인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택 뒤의 숲에 호수가 있다고 하셨지.”

내가 열다섯 살일 때 돌아가셨던 증조할아버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후 할아버지는 당신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내 이름이 세르베인인 것도, 그분과 너무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란 걸 그때 알았다.

“인어가 있을 리는 없지. 그래도-.”

분명치 않은 상태로 말씀하셨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나 자주 말씀하셨던 걸 보면 조카분이 뭔가 특별한 물고기라도 키웠던 게 아닐까?

나는 일단 저택을 방문하는 것을 미루고, 저택 뒤쪽 숲속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나는 이곳을 무단점령한 웬 놈을 처리하는 것보다 저택 주변을 탐방하는 것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잘그락, 잘그락

숲을 걷던 중 무언가 이질적인 게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밟고 있던 흙과 자갈의 느낌이 아니었다.

“뭐지?”

허리를 굽혀 내가 밟고 선 땅을 바라봤다.

뾰족하고 인위적으로 생긴 자갈들이 많았다.

자갈들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유심히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자갈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굴러다녀 돌처럼 되어 버린 유리 조각이었다.

“무슨 유리 조각이 이렇게 많이 흩어져 있어?”

단순히 유리잔 같은 게 깨져서 생긴 수준의 양이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깨져야 이렇게 많은 유리 조각이 나오는 걸까.

“저택 창문을 전부 교체하고 여기서 유리를 부수기라도 했나…….”

온갖 상상을 하며 유리 자갈을 만졌다.

그러다 우연히 이 유리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발견하고 말았다.

“와…….”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유리 수조가 있었다.

넝쿨에 가려져 못 보고 지나칠 뻔했던 형체는 절반 이상이 깨져 있었지만 수조임은 알 수 있었다.

“설마.”

저렇게 큰 유리 수조가 있을 이유가 뭘까. 수산물을 파는 식당도 아니고.

“철갑상어라도 키우셨던 건가?”

철갑상어 알은 별미니까 수조에 살아 있는 상어를 넣고 보관했을 수도.

물론 상당히 사치스럽고 ‘굳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행위긴 했지만, 내가 살면서 여태껏 목격한 온갖 귀족들의 기행에 비하면 이 정도는 평범하다.

나는 홀린 듯 깨진 수조로 다가가 나무 넝쿨을 뜯었다.

하지만 이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억……! 깜짝이야.”

해골 두 구가 수조 옆에 있었다.

하나는 아주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하나는 옷마저 없었다. 그 정도로 오래된 해골이었다.

해골이 있는 게 놀랍지는 않았다.

당시 공작가에 소속된 모두가 살해당했다는 건 유명한 사건이었다.

저택 안이라면 몰라도 야외의 시체까지는 수습하지 않았을 테니 숲에서 유골을 더 발견하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호수만 보고 가야겠다.”

넝쿨을 뜯던 걸 멈추고 걸음을 돌렸다.

문득 증조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 가서 마음이 아팠다.

저벅저벅.

오랫동안 발길이 끊겼는지 호수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무성한 잡초들을 밟아 대며 길을 개척했다.

감으로 길을 찾았다. 이상하게도, 감으로.

“찾았다.”

얼마 후 호수를 발견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의 표면이 보였다. 호숫물은 굉장히 맑았고, 예뻤다.

그리고 시시하게도 그게 다였다.

“푸하!”

호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얼굴만 담가 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고기 한 마리조차 없었다.

‘물이 너무 깨끗해서 물고기도 안 사는 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호수 안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하지만 곧장 빼냈다.

“무슨 곳곳에 해골이 있어…….”

호수 가장 깊은 바닥 쪽에, 해골로 보이는 형체가 있었다.

“진짜 기분 찝찝하네.”

나는 젖은 얼굴을 소매로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진짜로 저택으로 들어가 정체 모를 인간을 만나야 한다.

해가 질 시각이 되고 있었다.

결국 호수고, 인어고, 다 지어낸 이야기인 모양이다.

호수에는 특별해 보이는 물고기, 아니 그냥 평범한 물고기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 저택 입구로 향했다.

그러다가 숲에서 내가 헤집어 놓은 넝쿨을 다시 발견했다.

“그렇다면 저 수조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거지?”

* * *

이제 사기꾼을 만날 시간이다.

사기당하긴 했지만, 프로셴도 단둘이서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별로 위험인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 준비한 단도를 코트 안에 잘 숨겨 둔 후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텅! 텅!

“계십니까?”

텅! 덜커덩!

그런데 노크를 하던 도중 문이 열려 버렸다.

사기꾼은 잠금장치도 사용하지 않고 사는 모양이다.

열린 문틈을 보며 고민했다.

‘이건 간이 큰 정도를 넘어서서 상당히 미친놈이 살 것 같은데…….’

꺼림칙했지만 이제 와 돌아가는 것 역시 말도 안 된다.

나는 고민을 멈추고 힘껏 문을 밀어 열었다.

끼이익.

“들어갑니- 어…….”

긴장한 채 문을 열자마자 바로 몇 걸음 떨어진 위치에 사람이 보였다.

그는 무표정하게 선 채 계단 위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맞나?’

우습게도 남자를 처음 본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살면서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게 생겼으니까.

남자의 짙은 남색 곱슬머리는 굉장히 귀족적으로 보였다.

하얀 산호처럼 싸늘하고 핏기없는 피부는 그의 분위기를 날카롭고 말도 붙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홍채의 주름마저 선명히 보이는 옅은 하늘색 눈동자는 방금 보고 온 호수보다 아름다웠다.

“……아.”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던 상태였다.

나야 그쪽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바라보는 거지만 상대는 뭐 볼 것이 있다고 내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지 사실 의문이었다.

사기꾼이 내 얼굴을 살핀다면, 그건 분석하는 시선이어야 더 적합하지 않은가.

마침내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세르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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