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화 (16/132)

16 화

그 탓에 삼촌은 아버지와 공작가 가주 자리를 놓고 조금이라도 맞서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았고 끊임없이 멸시했다.

삼촌이 집을 나가고 나서야 그를 분란의 씨앗으로 보던 시선들이 멎었다.

그보다 어린 내가 말하기에는 조금 웃길지 모르지만…… 그런 이유에서 삼촌은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는 공작가의 핏줄이라기에 여렸고, 순진했고, 착했으며, 멍청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삼촌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세르베인…… 흐윽……!”

“……돌아왔어?”

“왜 이렇게…… 왜 이렇게 더 야윈 거니…….”

무덤덤한 아버지의 반응만 보다가 마주한 삼촌의 눈물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나를 껴안고 한참 동안 울던 삼촌은 눈물을 닦고 말했다.

“답답하진 않아? 많이 아프진 않아?”

그의 말대로 답답하고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대로 말했다가는 삼촌이 한참 동안 울 것이 분명해서 무던히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내가 선물을 줄게.”

삼촌은 커다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귀족의 체면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여행 가방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온 왕국을 돌아다니며 가져온 듯한 잡동사니들을 펼쳐 보여 주었다.

“어렸을 때 너는 내가 선물을 가져오면 참 좋아했잖니.”

확실히 기억이 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저택에 있는 나를 찾아와 주는 건 삼촌뿐이었다.

그때는 삼촌이 정원에서 작은 벌레를 잡아 와도 즐거워했다.

나는 여러 잡동사니 중 하늘색의 작은 돌들이 꿰여 있는 팔찌를 보았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의 알록달록한 돌과 작은 조개, 소라 껍데기로 만들어진 팔찌였다.

진짜 보석 하나 달려 있지 않은 싸구려였지만, 그 푸른 돌과 조개, 소라 껍데기들은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이걸 주면 멜이 조금 기뻐하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로 그 팔찌를 잡았다.

“이거…… 갖고 싶어.”

“네가 팔찌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예쁜 것으로 많이 가져오는 건데! 다른 건 원하는 거 없니?”

“다른 건 괜찮아. 이 팔찌는 그냥……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원래라면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으로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삼촌에게는 말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흘리듯이 말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삼촌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주고 싶은 사람이라니?”

“내가 키우게 된 인어가 있거든.”

삼촌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음…… 이름이 인어인 친구니?”

“아니. 진짜 인어.”

“아하. 특별한 물고기라서 인어라고 부르는 거구나?”

“아니. 진짜 인어라니까.”

……하긴. 못 믿을 만한 이야기긴 했다.

삼촌은 내가 정신이 나간 것인지 걱정하더니 슬쩍 하녀를 살피며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서 차를 따르던 하녀가 답했다.

“아가씨의 말은 사실입니다, 라헨 님. 공작님께서 구해다가 아가씨께 선물하셨습니다.”

“……정말로?”

삼촌은 한동안 얼빠진 얼굴로 내게 인어에 대해 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쾌했을 일이지만 삼촌이기에 인어에 대해 말해 주었다.

삼촌은 흥미로워하며 자신이 타 지역에서 들은 인어에 대한 전설들을 말해 주었다.

“그 지역의 속설에서는 인어가 바다의 신이 되는 존재래.”

“…….”

“반대로 남쪽 지역에서는 마음이 약한 인어가 소금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흥미롭지?”

“……아, 응.”

하나같이 끝이 비극이라 불쾌했지만 원래 삼촌은 조금 눈치가 없었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세르베인, 푹 쉬어.”

삼촌은 내게 인사를 한 후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방에서 나갔다.

시계를 확인하던 것을 보니 아버지와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달그락.

삼촌이 나간 후 나는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팔찌를 받고 기뻐할 멜을 상상해 보고 싶었다.

그동안 하녀들은 익숙하게 불을 끄고 방에서 나갔고, 나는 이르게 잠들 준비를 했다.

눈을 감았다.

망막 위에 덧그려진 그 애는 웃고 있었다.

햇빛이 반사되어 은빛으로 반짝이던 호수의 표면보다도 더 밝고, 아름답게.

* * *

그날 밤, 한참 동안 팔찌를 손에 쥔 채 잠들 수가 없었다.

팔찌 줄에 꿰여 있는 조개껍데기와 소라 껍데기를 한 알 한 알 어루만졌다.

하루라도 빨리 멜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괜한 고집일지 모르지만 사용인을 통해서 주고 싶지 않았다. 직접 주고 싶었다.

바다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니 멜이 좋아해 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사과를 조금 더 잘 받아 주지 않을까?’

비겁한 생각이었지만, 이렇게라도 그와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사실 모든 걸 줄 수 있었다.

이런 싸구려 팔찌가 아니라, 가능하다면 나의 모든 걸 주고 싶었다.

“……네가 바란다면.”

네가 인간이었다면 내가 가진 것들을 원했을 텐데.

내가 가진 것들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이 저택도, 이 지위도, 나의 가문도, 전부 너에게 줬을 텐데.”

하지만 멜이 바라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오직 바다뿐이다.

나는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이 팔찌에 달린 조개와 소라 껍질들이 기원된 푸른 물의 세계였다.

그 순간 내 안의 충동이 날뛰었다.

당장 그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 얼굴이 흐릿해지진 않았지만, 그가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았다. 몸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난 탓일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블미에의 

“조금 더 건강해지면 가세요.”

라는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은 나빠지기만 했다.

어차피 그녀의 눈에 내가 나아 보이는 것도 내 연기일 뿐일 테니까.

“잠깐만, 잠깐만 나갔다 오자.”

그렇게 저택이 조용해지길 기다린 후, 방을 나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나가는 동안 하인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가자마자 들키는 일은 없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있는 아버지의 서재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에서 격앙된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헛소리를 하는 것 같습니까? 분명히 이상했습니다. 수도에 깔린 긴장감을 다들 눈치챘는데 왜 공작님은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멈칫.

저택 밖으로 나가려던 것을 멈추고 대화를 엿들었다.

본능적으로 이 대화를 들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벽에 등을 기댔다.

이윽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긴장감은 인정하지만 라헨, 네가 과한 걱정을 하는 거라고 말하는 거다. 현실적으로 공작가에 칼을 들이댈 수는 없어.”

“왕가에 도전하려는 낌새가 보이는데 그들 눈에 공작가가 높아 보일 것 같습니까?”

“그러니 오히려 공작가는 놔둘 거라는 말이다. 왕가를 치는 것만으로 일이 이미 많으니까. 혼란한 사태에는 조금이라도 귀족들을 포섭하는 게 유리하다. 여태껏 역사가 그랬어.”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선례가 없다고 이후에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녹시렐 가문이 국왕파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들이었다.

제대로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내가 방에서 나와 여기까지 올 동안 사용인들을 만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사용인들이 있는 곳에서 나눌 리 없었다.

아마 그들은 일찍 저들의 침실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나는 조금 더 그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이미 화제는 변해 있었다.

“정 그러면 공작님은 남으시죠. 하지만 세르베인은 보내십시오.”

“무슨 소리지?”

“연약한 아이입니다. 혹시라도 휘말렸다가는 바로…….”

“네 가정대로 설령 녹시렐 가문이 휘말린다고 해도 그 애는 여기서 죽어야 한다. 그게 공작가 후계자의 마지막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 아이가 죽긴 왜-!”

“너도 눈치챘을 텐데.”

낮은 한숨과 함께 건조하고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나의 죽음이 확정되었다는 듯, 오래전에 체념한 목소리였다.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불렀고, 쓸 수 있는 방도는 다 써보았다. 그런데도 변하는 건 없었어. 그 애에게는 이번 달을 넘기는 것도 기적이다.”

“하지만 주치의가 지금 치료하고 있다고-.”

“……그 의사는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을 위해 고용한 것뿐,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해서 데리고 있는 게 아니다.”

“안타깝지만 변하는 건 없다. 어차피 빠르게 끝날 목숨, 공작가의 후계로 명예롭게 죽는 게 그 애에게도 나은 선택이다.”

문 가까이에 기대고 있던 몸이 저절로 뒷걸음쳤다.

충격적이었다. 내 몸이 약하다는 것도, 얼마 안 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달도 넘기지 못할 상태인 줄은 몰랐다.

나의 마지막 정도는 이미 질리도록 상상해 본 일이었다.

이르면…… 3년 후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이상하게도 구체적인 숫자지만 그냥, 그만큼은 더 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멜과 이 겨울을 넘기고 함께 봄을 맞이하는 건 가능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삼촌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작님은 이미 다 포기한 거군요? 부인이 돌아가신 이후로 전부 포기한 거군요. 공작가도, 세르베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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