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화 (13/132)

13 화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천천히 잡았는데, 정곡을 찔린 건지 멜은 내가 문고리를 완전히 돌릴 때까지도 수조를 두드리지 않았다.

분명 돌아보면 너, 울고 있겠지.

마음을 강하게 먹고 문을 연 순간,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르베인.”

믿을 수 없게도 매끄럽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언제 갈라지고 쉬었냐는 듯, 멜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고운 그 상태 그대로였다.

나는 다급히 문을 닫고 뒤돌아 멜을 바라봤다.

사실 며칠 전, 그의 꼬리가 수조에 부딪히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을 때 그의 신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다만 그건 무척 짧았기에, 작은 신음을 그의 예전 목소리로 착각한 것이라 넘겼었다.

하지만 지금 확실해졌다.

그는 그때부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지독한 배신감이 몰려왔다.

그가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그에게 축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튀어나온 말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왜 날 속였어?”

나는 본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멜이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것보다, 그가 왜 나를 속였는지가 신경 쓰였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그런 연기를 한 걸까.

만약 내가 멜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이유로 그랬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도출된 이유는 하나였다.

“조금 더 내 동정을 끌어내면 바다로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 그랬어?”

“그런 거 아니야! 속인 건 미안해. 하지만-.”

멜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제 예전만큼의 가치가 없어서 치우려 했던 거지? 사실 나 말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는, 네게, 왜 나를 속였냐고 물었어.”

그 애원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으려 부러 싸늘하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몸을 끌어안고 그런 이유로 널 호수에 보내려는 게 절대 아니라고 말하며 달래 주고 싶었다.

그런 거 상관없다고, 그냥 네가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이용해 제 뜻대로 회유하려 드는 멜에게 동시에 원망을 느꼈다.

사실 이런 태도를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난…… 나는…….”

멜이 나를 올려다보며 머뭇거렸다.

……그래. 제 입으로 나를 이용하려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지.

나는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그를 더 몰아붙이는 대신 외면하기를 택했다.

“아니. 말해 주지 않아도 돼.”

“아, 아니야! 말할게! 잠깐만 기다려!”

“네게 해코지할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저번에는 호수에 그를 보내 줄 때 함께 갔지만 이번에는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감정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이 몸이 그곳까지 걸어가는 걸 버티지 못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멜을 호수로 보내야 한다.

저 수조가 꼬리를 움직이는 것도 못 할 만큼 좁은 것도 문제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제 그의 앞에서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

실제로 문고리를 쥔 손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몸에 사후경직이 일어나는 것처럼 내 몸의 말단 부위는 종종 굳어 버리곤 했다.

나는 손목의 움직임을 이용해 문고리를 돌리는 대신, 팔 전체로 밀어 누르듯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밖으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멜을 바라봤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그가 계속 두려워할까 봐 걱정됐다.

내가 자신을 어찌할지 잘못 추측하고 불안에 떨까 봐 오해를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었다.

“호수로 보내 주려는 건 널 위해서였어. 네 꼬리가 수조에 부딪힌 탓에 멍이 들고,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

“정말로 넌, 네가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가 너를 버리려 하는 줄 알았어?”

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가 봐도 긍정의 뜻이었다.

그 얼굴에 나는 상처받았으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상처받은 얼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말했잖아. 난 널 장식품이나 애완동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말로 그래서가 아니야! 난-.”

“넌 끝까지 날 믿어 준 적이 없었구나.”

“세르베인!”

달칵.

나는 방문을 닫고, 잠시 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내가 나오자 복도를 지나던 하녀가 나를 발견하곤 다가와 이유를 물었다.

“아가씨? 어쩐 일로 나오셨어요?”

“잠깐…….”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잠시 멈추게 한 후 눈을 감고 문에 등을 기대었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때문에 현기증이 밀려왔다.

“흑, 흐윽…….”

문 너머에서 환청처럼 바닷소리가 들렸다.

너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인어를 호수로 옮길 준비를 해줘.”

정신 차리자. 아직 쓰러져서는 안 된다.

네가 호수로 갈 때까지는 갑자기 쓰러져서 의사를 만나는 일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예, 언제 옮기도록 할까요?”

“오늘 안에.”

“네. 그런데 혹시 아가씨도…….”

하녀는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당연히 멜이 호수로 갈 때 나도 함께 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고 믿으면서도 이전보다 더욱 나의 상태를 염려했다.

즉, 내가 가지 못하게 막고 싶은 것 같았다.

“걱정 마. 나는 가지 않을 거야.”

“아, 네! 저희가 오늘 인어 님을 책임지고 잘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하녀가 밝게 답했다. 나는 피곤한 안색에 겨우 미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흉내 냈다.

여전히 귓가에 그의 울음소리가 선명히 맴돌았다.

하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인지 태연했다.

나만 저 소리를 듣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더는 그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던 하녀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정정할게. 지금 당장 옮겨 줘.”

* * *

그 울음소리가 그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건지 멜이 다급히 외쳤다.

“세르베인!”

얼마나 울었던 걸까. 멜의 눈가와 코끝은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서 내가 다시 밖으로 나갈까 봐, 수조에 붙어 소리치는 모습은 그 말이 진심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그냥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랬어! 너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뿐이야!”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그 다급한 얼굴이 마치 진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멜이 나와 함께 있는 걸 원할 리 없다. 그러니까 이건…….

“원하는 게 뭐야……?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해?”

“세르베인……?”

“결론은 그거잖아. 바다로 보내 달라는 거. 그래서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야?”

나는 수조 유리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마치 멜의 얼굴을 만지듯 그 위로 손등을 쓸었다.

다정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멜은 퍽 상처 입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속아 연연할 수 없는 게, 그의 말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이다.

“나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랬다고? 평생 그 수조에서 지내도 좋다는 말이야?”

“…….”

“멜, 거짓말 좀 성의 있게 해. 네가 그럴 이유가 조금도 없다는 걸 아는데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겠니.”

나는 이만 수조에 가져다 대었던 손을 뗐다.

내가 그 말까지 했을 때 멜은 더 이상 울며 내게 매달리지 않았다.

그는 나를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상처받고, 배신당한 이의 얼굴이었다.

“……너무 그런 눈빛 보내진 마. 나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

아무리 거짓임을 알았어도 이 정도로 그를 몰아붙이는 건 우리 사이의 선을 넘은 것이었을까.

그를 다시 수조로 데려온 후, 나는 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내심 노력했다.

시시때때로 커튼을 친 건 사용인들이 멜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에게 개인 시간을 주기 위함도 있었다.

겨우 언쟁 한 번으로 쉽게 부서질 사이였다.

어차피 남들이 보기에 나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네게도 다를 바 없겠지. 내가 원한다고 해도 우리는 평생 동등해질 수 없는 관계였다.

똑똑.

“들어와.”

마침 멜을 데리고 나가기 위한 하인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내게 기다란 천을 주고, 다시 방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

나는 수조에 붉은 천을 둘렀다. 얇은 천이었기에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이 커다란 수조를 천으로 두르는 건 내가 직접 하기에 꽤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타인이 멜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직접 이 짓을 했다.

나도 알았다. 단단히 미친 짓이었다. 이 정도의 집착은 병이었다.

내가 천을 다 두르기 직전에 멜이 붉어진 눈을 하고서 물었다.

천이 붉었기에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울 것 같은 얼굴이라 말하기에는 멜의 목소리가 너무 담담했다.

“가기 전에 하나만 물을게.”

“그래.”

“왜 그동안 날 만나러 오지 않았어?”

숨이 턱 막혔다.

그가 말하는 게 호수에 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임을 단숨에 알았다.

“……대신 편지를 보냈잖아.”

나는 구차한 변명을 둘러댔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의문이 달라붙었다.

“편지는 왜 한동안 보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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