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화 (10/132)

10 화

예상한 결말이긴 했다.

적어도 그 애가 내 머리를 내려치지만 않았다면, 또 실수였다지만 등을 넘어뜨려 불을 내지만 않았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민이 귀족의 것을 탐냈으니 죽을 만도 했지만, 귀족이 용서한다면 죽이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처벌이랄 게 존재할 수 없었다.

“귀족의 것을 탐낸 것도 모자라 상해를 입혔지. 녹시렐 공작가 소유의 숲에 불까지 질렀다. 그 가족까지 전부 처형할 예정-.”

“가족까진 놔두죠.”

멜은 어떻게 반응할까.

사정이 어떻든 간에 다핀이 죽었으니 나를 원망하겠지.

나는 자조하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어린 동생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아마 실질적 가장이었겠죠.”

“…….”

“사고로 죽었다고 말하고 위로금을 챙겨 주세요. 성인이 될 때까진 생활할 수 있도록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내 아버지는 한 손을 들어 하녀를 불렀다. 여전히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말했다.

“의사를 불러와라.”

“네, 공작님.”

“미쳐서 말한 소리가 아닙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사실 과한 친절이었다.

공작가는 사용인의 처우에 대해 철저히 기존 관례를 따르고 있었다.

그중 귀족의 물건을 탐내고, 귀족을 상해 입히고, 재산에 큰 손해를 끼친 자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하녀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내 주십시오.”

내 말에 아버지가 고갯짓을 했고, 하녀들이 전부 방을 나갔다.

달칵.

아버지와 나만 방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멜에게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는데.”

“멜의 입으로 확인한 내용이니 사실 맞습니다. 정도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것이겠죠.”

기준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자주, 그리고 오래 그를 볼수록 홀리는 정도는 심해질 것이다.

굳이 더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상황 판단을 끝냈다.

그는 관자놀이를 살짝 누르더니 말했다.

“이래도 인어를 계속 데리고 있을 것이냐?”

“네. 일단 인어가 호수로 돌아가면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인력을 둬야 합니다. 또한 편지 담당은 일단 남자로 뽑아야겠어요.”

“……네 뜻대로 하거라.”

멜이 남자였기에 여자만 홀렸을 수도 있었다. 나쁘지 않은 가설이니 시험해 볼 가치가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피곤한 얼굴을 한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제 그만 쉬거라.”

“잠시만요, 아버지.”

아버지가 멈춰 섰다.

줄곧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이지만 처리해야 할 상황이 많아 덮어 두었던 일이 있었다.

“멜은 어디에 있죠?”

내 방의 수조가 사라진 것을 보아 멜은 호수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방에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어디에 있는 거지.

아버지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가 그런 얼굴을 하는지 짐작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죠?”

“그것이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아버지가 툭 내뱉듯 말했다.

이미 예상한 내용이지만 확답을 들으니 세상이 푹 꺼지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은 척 연기했다.

“……그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그러니 치료가 필요할 듯해 데려오라 한 것이고요.”

“목소리도 잃었다.”

그 말에는 도저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할 수 없었다.

“평생 소리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더군.”

나 때문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호수로 가지 않았다면, 혹은 다핀이 머리를 내려쳤을 때 즉사했다면, 그때를 놓쳤어도 빠르게 죽었다면 멜은 호수 안에서 안전하게 불을 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 볼까.

사실 알았다. 멜이 겪은 모든 불행의 근원은 나였다.

내가 그를 바다로 보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물었다. 그 설명으로는 여전히 내가 가진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멜이 제 방에 있지 않죠?”

“사용인들이 널 생각해서 그러자고 말하더군. 인어가 조금 더 이전과 비슷해진 뒤에-.”

“당장.”

멜. 애완동물이나 장식품 취급은 이런 걸 말하는 거야.

화가 나서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는 감각을 무시했다.

사실 알았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그런 취급에 분노하는 것뿐이다.

인간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너는 계속 그런 취급을 받겠지.

너는 인간들의 사회에서 평민보다도 낮은 위치, 즉 노예처럼 소유물 취급을 받을 것이다.

나부터 이미 널 감금하고 소유하고 있지 않은가.

내게는 화를 낼 자격이 없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장 멜을 데려오세요.”

멜은 한쪽 뺨에 거즈를 대고 있었다.

그의 상체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아름답던 은청색 꼬리는 빛을 잃고 탁해졌다.

“……널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조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어.”

나는 변명을 하듯 그의 앞에 서서 말했다.

차마 그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숲의 불은 이제 꺼졌대. 하지만 호수로 가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 거야.”

“…….”

“그리고 또…….”

고맙다고 말해야 했다. 멜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를 구하느라 멜은 약하지만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목에 감긴 붕대는 그가 말을 하지 못할 것임을 보여 줬다.

지금쯤 나를 구한 걸 후회하고 있겠지.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 그가 이런 결과를 맞이했음에도 나를 구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용기를 내서 그 얼굴을 바라봤을 때, 멜은 힘없는 얼굴로 웃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괜찮아.’

그 얼굴에는 후회하는 기색은 존재하지 않았다.

끔찍한 기분이 나를 덮쳐 왔다.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해……?”

“…….”

“알아? 평생 말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했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멜은 왜 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그는 알아야 했다. 생명에는 경중이 있다. 이 세상에는 굳이 구할 필요가 없는 목숨도 있다.

“네가 그 하녀를 살리려 할 때 사실 눈치챘어. 넌 일단 목숨이면 다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지. 그런데 말이야…… 인간 세상에는 목숨에 경중이 있단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

흥분한 나의 모습에 멜이 긴장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아주 좁은 수조였다.

그에게는 피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랫것의 목숨이야. 네가 누굴 살릴 처지가 되는 것 같아?!”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나를 구한 존재에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짓인 걸 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그가 나를 구한 걸 후회한다면, 앞으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더한 짓도 할 수 있다.

“인간들이 널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겪었으면서 왜 그렇게 다정하게 구는 건데!”

어느새 나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심한 소리를 그 순진무구한 푸른 눈을 바라보며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제 넌 나를 더 무서워하겠지.

의도한 일이었지만 결과를 마주하기 두려웠다.

그런데 고개를 든 순간, 나는 처음으로 수조 유리에 가까이 붙어 내게 다가온 멜을 보게 되었다.

“세…… 콜록, 콜록!”

“말하지 마!”

멜이 억지로 목소리를 내려다 목을 붙잡으며 수조 바닥에 가라앉았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멜과 시선을 마주했다.

멜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간단한 단어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 아…….”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말을 못 하게 된 멜이 이제 어떻게 살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울음기에 볼품없이 뭉개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네가 억울한 일을 겪으면…… 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네 상황을, 네 의사를 어떻게 전하지?”

“…….”

“언젠가…… 언젠가 네가…….”

멜은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다.

당장 그를 바다로 보내 줄 생각은 없지만, 나는 그와의 이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머지않은 시일 내에.

“너…… 내가 아닌 다른 인간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될까.”

멜에게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텐데 나는 배려심 없이 그딴 가정을 내뱉었다.

멜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조 유리에 반사된 내 얼굴은 눈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때는 말도 못 할 텐데 얼마나 더 지독할 일을 겪게 될까.”

“…….”

“네가 걱정돼서…… 죽을 것만 같아.”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딴 감정 표현 따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를 위한다면 당장 해결책을 생각해야 한다.

눈물을 닦아 내고, 조금 냉정해진 머리로 말했다.

“언젠가 너를…… 바다로 보내 줄 때, 네게 증표를 줄게. 네가 그 누군가에게 붙잡혀도 녹시렐 공작가의 증표를 갖고 있다면 웬만한 인간은 널 해치지 못할 테지.”

그리고 또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내가 너를 떠나기 전에 네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 순간 내 방 한편을 가득 채운 책들이 보였다. 내가 하녀를 통해 편지를 읽게 해주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만약 멜이 글을 안다면, 그렇다면 어떨까?

“네게 글을 가르쳐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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