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
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금방 구토를 했던 몸처럼 몸에 한기가 돌고 떨림이 찾아오려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미안. 내가 미안해.”
“…….”
“소리 질러서 미안해. 가둬서 미안해. 네게 화내서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아, 아…… 세르베인!”
그때 멜이 내게 소리쳤다.
그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다급히 내 쪽으로 헤엄쳐 왔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곧 알게 되었다.
퍼억!
나는 내 이마를 타고 흐르는 핏줄기를 손으로 훑었다.
뒤를 도니 굵직한 나무막대를 든 채 벌벌 떠는 다핀이 보였다.
내가 그녀를 묶기 위해 사용했던 그물은 원래 자리에 찢긴 채 버려져 있었다.
“안 돼!”
뒤에서 멜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미동 없이 저를 노려보는 내 모습에 다핀은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쳤다.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곧 시야가 하늘을 향했다.
첨벙!
차가운 물이 느껴졌다.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일렁였고 오직 달빛만 보였다.
멜이 바라보던 세상은 이랬구나.
처음으로 본 풍경이지만 아름다웠다. 하지만 물은 이내 붉은 아지랑이로 더럽혀졌다.
그곳에서 나를 꺼내 준 존재는 멜이었다.
“세르베인!”
“허억! 콜록콜록!”
“육지로 올라가……! 물속은 위험해!”
멜이 나를 끌어안은 채 나를 숨 쉬게 했다.
간신히 산소를 만난 폐가 제 기능을 했다.
그는 내게 육지로 올라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힘이 없었다.
차가운 물은 내 심장을 멈추게 할 듯 온몸을 바늘로 찔러 대고 있었다.
“허억, 허억……!”
몽롱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어지러웠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멜이 울고 있었다. 그는 나를 온전히 받쳐 든 채 내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내가 널 올려 줄게. 조금만 힘을 줘.”
멜이 낑낑대며 나를 육지로 올리려 했다.
하지만 흐릿한 시야에서 그럴 리 없는 풍경이 보였다.
세상이 불타고 있었다.
달빛이 뜬 숲에서 볼 수 없을 붉은 풍경이 보였다.
그 불길은 다핀이 넘어트린 작은 등에서 시작돼, 거센 바람을 타고 근처의 나무들로 옮겨 가고 있었다.
“콜록, 콜록!”
호숫가에 검은 연기가 자욱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멜 역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물속에 들어가면 되겠지만 나 때문인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어떡하지……? 세르베인, 저쪽 길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았어. 그러니-.”
나는 끝까지 멜에게 피해만 주는구나.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올려 웃었다.
멜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멜.”
“……세르베인?”
“애쓰지…… 마.”
나 때문에 네가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나는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방치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툭
마지막 힘을 다해 멜을 밀어냈다.
* * *
나는 그것이 나의 끝이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물속에서 눈을 떴다.
그럴 리 없는데 아직 살아 있는 채로.
“살려 주세요! 불이 났어요! 세르베인이 여기 있어요!!”
쉬어 버린 목소리가 물 밖에서 들렸다. 멜의 음성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멜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수면 위로 상체를 드러낸 채 쉬지 않고 소리쳤다.
“제발, 여기로 와요……!”
내가 기억하던 아름다운 미성이 아니었다.
멜의 목소리인 건 분명하지만 그 목소리가 이전과 달리 타버린 재처럼 탁하고, 까끌까끌해져 있었다.
이내 멜이 물속으로 들어오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나는 그가 나를 죽었다고 여기고 포기하길 바라서 눈을 감았다.
참던 숨도 전부 뱉어 버렸다.
물속에 들어온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내 폐 속에는 산소가 남아 있었다.
부르르-.
공기 방울이 다 빠져나간 순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촉.
멜이 내게 입을 맞춰 산소를 공급했다.
그의 몸은 나를 끌어안았고, 그 몸은 놀랍게도 따뜻했다.
거듭 생각해도 그럴 리 없었다.
나는 멜의 체온을 알았다. 그는 인간에 비해 차가운 몸을 가지고 있었다.
제발 나의 가정이 틀렸기를.
나는 망설이다 눈을 떴다. 그러자 나와 입을 맞추고 있는 멜과 눈이 마주쳤다.
멜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하지만 고통을 참는 듯, 혹은 우는 얼굴을 참는 듯 찡그린 모양새였다.
“다행이다.”
마주친 입이 떨어지자 그가 한 말이었다.
물 속이라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얼핏 들어도 잔뜩 쉰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겐 여전히 애달프고 사랑스러운 음성이었다.
멜은 나를 안고 있었다. 분명 불가능한 일일 텐데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얼핏 보기에도 그의 몸은 약한 화상으로 울긋불긋해져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 줘. 곧 사람들이 올 거야.”
그는 내게 온기를 주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열에 약한 제 몸을 일부러 불에 노출시켜 따뜻하게 만든 후 나를 끌어안았던 모양이다.
‘그러지 마.’
나 때문에 널 아프게 하지 마.
그가 내게 준 산소를 헛되게 할 수 없기에 소리 내지 못하고 말했다.
멜은 내 입 모양만으로는 어떤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추워서 그래? 바로 갔다 올-.”
꽉!
나는 수면 위를 향해 헤엄치려는 멜의 손목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가 스스로를 화상 입히는 짓을 하게 둘 수 없었다.
날 포기하지. 어차피 너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나는 죽을 몸이었으니 그냥 내버려 뒀어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네 목소리, 네 몸이 상할 일도 없었을 텐데.
“$#%%%!”
그때 물 밖에서 소란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멜은 퍼뜩 놀라더니 서둘러 나를 끌어안은 채 수면 위를 향해 헤엄쳤다.
“여기요! 여기예요!”
호수 밖은 뜨거웠고, 온통 연기로 가득했다.
멜은 나를 끌어안은 채 쉰 목소리로 연신 사람들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끌어내는 듯, 쇳소리만 남은 소리였다.
“이곳에…… 세르베인이 있어요……!”
“세상에……! 아가씨!! 여기에 세르베인 님이 계시다! 다들 여기로 와!”
사방에 물을 뿌리고 온몸을 젖은 천으로 무장한 사용인들이 달려왔다.
멜은 그들에게 나를 보내 주었다.
“아가씨…… 세상에, 살아 계셨다니……!”
그들은 나를 젖은 천으로 둘러쌌다. 불길을 헤쳐 나갈 준비였다.
나는 멜을 혼자 이곳에 두고 갈 수 없었다.
아직은 호수 속 상황이 괜찮지만, 언제까지 불이 붙은 숲속의 호수가 멀쩡할지 알 수 없다.
또한 멜은 온몸에 약한 화상을 입었고, 목도 손상된 상태였다.
“멜…… 멜을 치료해야 해.”
뜨겁고 건조해 고통스러울 텐데도 멜은 나를 바라보느라 호수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멜도 데리고 와…….”
* * *
쓰러질 때 생각했다. 이제 며칠 후에나 눈을 뜨게 될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나는 몇 시간 후에 바로 깨어났다.
그저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에 불과했다.
“아가씨! 깨어나셨군요. 흑흑…….”
방을 정리하던 하녀들이 나를 보고 달려와 울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일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저희는 아가씨가 죽은 줄만 알았어요. 이렇게 다시…… 다시 뵐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편지 담당이던 다핀이 불을 지르고 아가씨를 상해 입혔다면서요! 감히 어떻게……!”
“언제부턴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굴긴 했어요. 자기는 이제부터 편지만 읽겠다며, 제멋대로 시키는 일도 안 하고 밖으로 나돌아다녔다고요.”
“걱정 마세요, 아가씨. 다핀은 무사히 잡았어요. 곧-.”
달칵.
“세르베인.”
그때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하녀들은 다급히 자리를 비켜 한쪽 벽에 나란히 섰다.
나는 그에게 무심하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버지.”
“…….”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는 더욱 창백하고 피폐해진 안색이었다.
그는 나를 살펴보다 안심한 듯, 혹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에게 나는 배우자가 남긴 숙제였다.
때때로 인간은 해야만 하는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기보다는, 그 과제 자체가 사라지길 바란다.
나는 아버지가 후자의 감정을 느꼈음을 알았다.
그러니 죽었다 살아난 자식과 아버지의 일반적 재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의 싸늘한 조소를 보곤 어떤 말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깨어나서 다행이구나. 몸은 괜찮으냐?”
“예.”
나의 하얀 손을 내려다봤다.
화상 하나 입지 않은 피부는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부 멜 덕분이었다.
그 외에는 나무막대에 맞았던 머리의 고통과 원래 내가 감내하고 있던 고통이었다.
새벽에 호수로 갈 수 있었던 몸 상태는 기적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내 몸은 서서히 열이 오르고 있었다.
“한번 고비를 넘긴 탓인지 정말 괜찮습니다.”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을 말했다.
꽤 잘 연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내용이 비현실적인 탓인지 아버지는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머리에 붕대까지 두르고 할 말은 아니었나.
나는 그 시선을 피할 겸 화제를 돌렸다.
“그 하녀 말인데요.”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