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화 (6/132)

6 화

꿈을 꿨다.

나는 추워하는 멜을 안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꿈속에서는 가능했다.

우리는 설원 위에 있었다.

나는 멜의 구불구불한 밤하늘빛 머리칼에 내린 눈송이들이 마치 별들과 같다고 느꼈다.

“…….”

문득 나는 멈춰 서서 의문을 표했다.

눈송이가 떨어지는 새까만 하늘을 바라봤다.

우리가 향하려던 곳은 어디였을까.

바다일까, 수조일까.

나는 추워하는 너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던 걸까.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실제로 보지도 못했던 바다가 멀리에 보였다.

바로 저택 뒤쪽의 숲을 끝까지 가로지르면 존재할 바다였지만 내게는 그림으로만 봤던 풍경이었다.

멜을 가진 이후, 나는 그 애가 살았었던 바다에 대한 책들을 아주 많이 읽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수조가 있었다.

멜이 내게 왔을 때 담겨 왔던 수조였다. 하지만 수조 속에는 물이 들어 있지 않았다.

멜을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멜.”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건만 멜은 눈을 떠서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네가 없이 나는 살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

나는 멜과 함께 바닷속에 들어갔다. 다만 나는 수조를 거꾸로 엎고, 그 안에 들어가 바닷속에 잠수했다.

바다로 돌아가자 멜은 행복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기 있는 웃음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아름다운 은청색 꼬리가 흔들렸고 멜은 내게서 멀어졌다.

“멜. 이쪽을 봐줘.”

나의 목소리는 멜의 귀에 닿지 않았다.

나는 끝 없는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고 멜은 일렁이는 수면에 가까운 곳에서 헤엄쳤다.

우리는 계속 멀어졌다.

이내 나의 주변은 태양빛조차 들지 못하는 새까만 물로 가득 찼고 그것이 이별이었다.

수조 속 산소는 부족했고, 나를 수면 위로 끌어당겨 줄 존재는 없었다.

차라리 이게 너와 나의 마지막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와 함께 바다에 갈 수 있다니.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이야.”

멀어지는 멜을 시선으로 좇으며 웃었다.

“안 그러니, 멜?”

* * *

눈을 떴을 때 나는 편지를 쥐고 있었다.

구기듯 쥔 탓에 하녀가 이 편지를 가져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안 돼. 아직은 널 보낼 수 없어.”

나는 편지를 새로 썼다.

아직 날씨가 몹시 춥지는 않으니, 그런 말은 다음에 적어도 될 것이다.

그렇게 애써 편지를 써서 건넸지만 하녀가 들고 온 소식은 그대로였다.

“오늘도 답이 없으셨습니다…….”

예상했지만 멜은 내가 많이 미운 모양이었다.

멜은 내 편지를 듣고 답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구차하게 보일 걸 알지만, 꼬치꼬치 하녀에게 멜에 대해 캐물었다.

“멜은 편지를 듣고 어떤 식으로 반응했지? 말은 안 해도…… 표정이나, 그런 거 말이야.”

“인어 님은 제가 편지를 읽을 때 수면 가까이 나오실 뿐, 수면 밖으로는 나오지 않으셔서 잘 못 봤습니다……. 가끔 얼굴을 내밀기도 하시지만 아주 잠깐이라서요.”

“그래…….”

나는 멜의 반응에 대해 잘 알 수 없단 것에 슬퍼해야 할지, 하녀가 멜을 잘 못 봤단 것에 기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편지를 쓸 힘조차 없는 날이 많아졌다.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으면 숨만 겨우 쉴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편지가 없어. 그냥 안부만 살피고 와줘.”

그래서 편지 없이 하녀가 인어의 모습을 보고 내게 안부를 전해 주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가씨, 깨어 계세요? 오늘 인어 님을 뵙고 왔어요.”

하녀는 내 의식이 조금 깨어 있을 때마다 인어의 안부에 대해 말해 주었다.

하지만 내 의식은 자주 깨어 있지 않았기에 드문드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가씨, 인어 님은 잘 계십니다. 언뜻 보기에 상처도 다 회복된 것 같으셨어요.”

“다행이구나. 표정은 어때 보였니?”

“나쁘지 않아 보였어요.”

* * *

매일 멜에게 보냈던 하녀는 어느 날 꽤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내가 편지를 써 보내지 못한 지 일주일이 되어 가는 날이었다.

“아가씨. 오늘은 인어 님이 처음으로 아가씨에 대해 물었어요. 언제 올 것이냐고, 또 편지를 왜 쓰지 않냐고 물었어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덤덤히 물었다.

“……그래?”

“네. 그리고 인어 님이 아가씨의 안부를 묻기에 말씀하신 대로 바쁠 뿐 건강하다고 전해 드렸습니다. 편지는 시간이 없어서 쓰지 못했다고 했어요.”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말해 주고…… 보고 싶다고, 곧 가겠다고 전해 줘.”

“…….”

곧 가겠다는 내 말이 불안했던 탓일까.

하녀는 갑자기 웃음을 거뒀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예의 없는 태도였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들에게는 생계가 달려 있으니까 내가 마음대로 외출할까 봐 불안할 수도 있지.

그동안 나를 위해 일해 준 것이 있어 못 본 척 넘어가 주려 했지만, 그럴 수 없게도 하녀가 목소리를 내었다.

서늘한 안색이었다.

“언제요?”

“뭐?”

“언제 만나러 가실 건데요?”

내가 몸이 아파 신경이 예민해서 시비조로 오해한 걸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녀를 바라봤다.

그 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한동안 가만히 숨만 쉬고 있다 보니 이런 일을 겪는구나.”

나는 과장해서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장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그 애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널 너무 예뻐했지?”

하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냥, 그냥 불안해서 그랬던 거였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뒤늦게 그 애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덜덜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표정 없이 내려다봤다.

“일 그만두고 이 저택에서 나가.”

“아, 아닙니다!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이 잘할게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게는 동생들이 많아요…….”

“나가.”

“아가씨……. 제발요. 제발…….”

나는 내 팔을 살짝 잡은 채 눈물로 점철된 하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음이 약해지려 했다.

하긴, 꽤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이었다.

오늘 이 일이 있기 전까지 그녀는 녹시렐 공작가에서 잘 일해 주었다.

그 예로 이 아이는 지금도 급박한 심정일 텐데 내 팔을 세게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 몸 상태를 배려하는 게 생활화된 탓이었다.

“……봐주는 건 이번뿐이야.”

“네!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이때까지 잘해 왔으니 용서해 주기로 했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내칠 만큼 나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꽤 멍청한 결정이었다.

그런 자비를 베풀기 전에 의도적 기만과 실수를 구분할 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 *

이후에 하녀는 일을 다시 제대로 했다.

공손하다 못해 과도하게 주눅이 들어 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있잖아요, 아가씨. 깨어 계세요……?”

“응.”

“그러시군요…….”

그 모습에 내가 너무 심했나,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동생이 많았다고 했지. 일을 그만두라고 했던 건 너무했던 건가.’

그리 생각할 때 하녀는 계속해서 멜의 소식을 말하고 있었다.

평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오늘 인어 님의 안부를 묻고 왔습니다. 인어 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네.”

* * *

하녀는 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내게 생겼다.

그 애는 꼬박꼬박 멜의 소식을 전하러 왔지만 나는 의식을 차리지 못하곤 했다.

“아가씨. 인어 님이 아가씨의 안부를 묻기에 늘 하던 대로 전해 드렸어요.”

“…….”

“주무세요?”

“얘, 보면 모르겠니? 조용히 하고 나가.”

편지를 담당하던 그 아이가 왔다는 걸 눈치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한 다른 하녀가 그 애를 작게 타박했다.

“너 오늘은 편지도 안 읽는데 주방에 가서 일 좀 도와.”

“…….”

“아가씨가 네게 편지를 읽게 시킨 건 맞지만, 그것만 하라고 하신 건 아니잖아.”

다른 하녀들의 말에도 편지를 담당하던 그 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주눅이 들어서 그런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후 들려오는 말에 그 애가 그냥 무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야……! 너 요즘 정말 이상해. 알아?”

달칵.

하녀들은 씩씩거리다가도 내가 깰까 염려됐는지 더 화를 내지 않고 나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멜 님은.”

가뜩이나 잦은 발열로 청각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 애는 웅얼거리듯 너무 작게 말하는 탓에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조가 너무 평이하고 단조로웠기에, 평소처럼 멜이 잘 지낸다는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멜 님은 오늘도 너무 아름다우셨어요. 아가씨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요?”

* * *

“아가씨가 죽으면 멜 님은 제 것이 될까요?”

“…….”

“그걸 가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 *

“오늘 멜이 자신을 언제 바다로 보내 줄 것이냐고 물었어요.”

“…….”

“아가씨가 죽으면 보내 주겠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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