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화 (5/132)

5 화

“장식품이나 애완동물로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냥 내가 미안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 하는 거,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면서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를 하지 않을 뿐이야.”

“…….”

“난 네게 거짓을 말하지 않아. 그러니 바다로 돌아가는 건 포기해.”

처음에는 혹시 모를 희망에 밝아졌던 멜의 얼굴이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

예전이라면 우는 얼굴도, 실의에 빠진 모습도, 그저 다 예쁘게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 모습이 마음에 아프게 다가왔다.

여기저기에 달고 있는 상처 때문일지도 모른다.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참는 얼굴이 보였다.

그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게 무척이나 사랑스럽다고 순간 느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충동적으로 그 아이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겹치며 말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널 보낼 수가 없어.”

* * *

충동적인 행동이었고, 충동적인 말이었다.

그 순간 멜의 얼굴이 입을 맞추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워서 그랬다.

멜과 헤어져 방으로 돌아온 뒤에 나는 생각에 빠졌다.

마치 홀려서 이성을 잃었다가 다시 제정신이 된 기분이었다.

“사랑?”

말하고 나서야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처음에 인어를 거두었을 때를 기억했다.

그때는 그저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살린 것뿐이었다. 일종의 찝찝함이 다였다.

인어의 존재가 신비하긴 하지만 사실 곧 죽을 인간에게 그딴 건 별로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즉 멜이 희귀하다는 것 자체는 내가 그를 살려 둘 이유가 되지 못했다.

“원래는 바다로 보내 줄 생각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멜은 믿을 리 없겠지만, 처음에 나는 적당히 시간이 지난 후 그를 바다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에 그리 결정했었다.

정은 붙었지만 질렸으니 바다로 보내 달라 말하면 아버지는 내 말대로 해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멜이 인어라서 희귀해 내게 선물을 해준 것일 뿐, 인어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사랑이라서 그랬나? 그래서 널 보내지 못했나?”

정작 그 당사자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했으면서, 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혼자서 되짚었다.

“아니. 아니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그냥,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인 탓이다.

나는 이런 감정의 근원을 알았다.

이건 그저 소유욕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둬 두고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건 사랑이 아니다.

나는 일기에 분명히 적었었다.

즉, 이건 소유욕이지 사랑이 아니다.

터벅터벅.

약을 가지러 간 하녀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침엽수들이 가득한 숲속에 있는 호수에 있을 멜을 떠올렸다.

“다행이지?”

그 당사자는 들을 리 없는데 미친 사람처럼 말을 걸었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이면 널 놓아줘야 하잖아.”

다음에 만나면 정정해 줘야겠다.

널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내 실수였다고.

네 말마따나 너는 애완동물이자 장식품일 뿐이라고 말해야지.

“그러니 나는 네가 상처받아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네 뺨에 난 생채기가 얼마나 아플지 걱정 따위 하지 않을 거야. 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따위도 하지 않을 거야. 네 말대로 너는 그저…….”

이를 악문 탓에 말끝이 뭉그러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짐승의 숨소리처럼 발작성이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안 보내 줄 거야. 절대로, 절대로 못 보내. 그러니까 이건 사랑이 아니야.”

달칵.

“세르베인.”

그때 문이 열리고 하녀가 아닌 아버지가 들어왔다.

하필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그는 하녀들을 문밖에 대기시켰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무표정을 되찾았다.

치켜뜬 눈동자 아래에는 거뭇한 죽음이 드리워있으리라.

“아버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인정한다. 결국 그의 뜻대로 되었다.

“성공하셨네요.”

공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것에 평소라면 비웃음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웃을 힘조차 없었다.

“애완동물을 기르면 우울감이 사라질지도 모르죠. 그러면 아가씨도 살기 위해 더 노력하실 겁니다.”

언젠가 의사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헛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아 버렸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죽기 직전의 순간이 오면 아버지에게 당신은 실패했다고 비웃어 줄 생각이었다.

당신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날 돌보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그러니 절대 어머니는 당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나의 죽음이 기쁘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비굴하고도 볼품없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절대로 내 입에서 나올 리 없다고 단언했던 말이었다.

“살고 싶어요.”

이후에는 원망했다.

힘이 빠져 허탈해진 눈에 다시 독기를 품고 그를 노려봤다.

“왜 내게 인어를 준 거예요?”

“…….”

“그거 때문에 이 빌어먹을, 이 끔찍한 목숨이 계속되길 바라게 됐잖아요!”

나는 손에 고개를 묻고 울어 버렸다.

맹세컨대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과거, 그 어린 날에 혼자 시간을 보내며 당신처럼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설령 이 저주받을 혈연관계로 인해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된다고 해도 이런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어느 것 하나도.

* * *

치료하기 위해 살펴본 내 발은 엉망이었다. 온갖 가시와 돌조각이 박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치료가 끝난 뒤 하녀들은 눈치를 보다가 먼저 방을 나섰다.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인어에겐 손대지 않을 테니 몸이 회복되고 나서 호수로 가거라.”

그는 내가 버릇없이 굴었다는 것에 대해 화를 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반항했을 때 그가 했던 짓들을 떠올리면 납득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럴게요.”

찝찝하면서도 결국 약속했다.

어차피 이런 발로 외출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때까지도 나는 내 몸이 약하지만 조금만 쉬면 호수로 외출하는 것까지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쇠약해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안 돼요, 아가씨. 조금만 더 건강해지면 그때 호수로 가세요.”

“아주 잠깐이면 되는데.”

“절대로 안 돼요. 그날에는 저희 모두 쫓겨나요…….”

처음에는 하녀들과 실랑이를 벌일 체력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하녀의 ‘생계가 달렸다.’라는 말에 그냥 한 걸음 물러나곤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건강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그래. 알겠어.”

그렇게 멜을 만나러 갈 날들을 하루하루를 미뤘다.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기대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은 약해졌고 점점 누워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늘 아팠던 몸이었지만, 이 정도로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 몸이 약하다고, 요절할 것이란 뒷말을 늘 듣고 살았지만 정말로 그럴 것이라 와닿은 적은 처음이었다.

결국, 나는 욕심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나 대신 인어에게 말을 전해 줘.”

글을 읽을 줄 아는 하녀에게 편지를 건넸다.

남에게 편지를 보여 주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책에서 읽기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래도록 소식을 들려주지 않는 건 죄라고 했다.

나는 나의 인어에게 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녀가 당혹스러워하며 내게 물었다.

“제, 제가 아가씨의 편지를 봐도 되나요?”

“어쩔 수 없잖아. 인어는 글을 모를 테니까.”

사실 타인이 내 편지를 보는 것까지는 참을 만했다.

하지만 인어를 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하녀의 눈을 가린 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녀에게는 편지를 읽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무가 있었다.

그녀는 나 대신 인어의 모습을 보고 내게 말해 줘야 했다.

“……아무튼, 인어가 어떻게 지내는지 대신 보고 내게 말해 줘.”

“네, 아가씨.”

그날 이후, 그 하녀는 내 편지를 받아서 인어에게 읽어 주러 가곤 했다. 그리고 인어의 반응을 알려 주었다.

“오늘 멜이 뭐라고 했어?”

“……그.”

“오늘도 무시했어?”

“죄, 죄송하지만 그러셨습니다…….”

“괜찮아. 네가 왜 사과해.”

나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멜이 딱히 아무 답을 하지 않아도 늘 편지를 썼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멜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잘 지내니? 넌 바다에서도 잘 지냈지만 호수가 너무 춥진 않을까 걱정돼.

사실 처음에는 편지를 쓰는 게 어색해 문장이 잘 쓰이지 않았다.

말로도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는데, 글로 쓰려니 매우 난감했다.

하지만 쓰다 보니 곧 익숙해졌다.

시간이 흐르니 익숙해질 뿐일까?

이후에 나는 깊은 속내를 적지 않기 위해 오히려 노력해야 했다.

그 호수가 얼었던 적은 없지만 너무 춥다면 언제라도 말해 줘. 그러면-

그러면 뭐? 바다로 보내 주려고?

그런 거 불가능하잖아.

꽤 스스럼없이 글씨를 써 내려가던 펜이 멈추었다. 손에 마비가 온 것도 아니면서 그랬다.

촤악-!

그 호수가 얼었던 적은 없지만 너무 춥다면 언제라도 말해 줘. 그러면-

나는 애써 적었던 문장을 그어서 지워 버렸다.

하지만 또다시 호수에서 덜덜 떨고 있을 멜이 상상되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멍청하게도 비슷한 문장으로 또다시 같은 말을 적었다.

너무 춥다면 말해 줘. 내가……

너를 보내 줄게.

그 문장을 적은 뒤 나는 힘이 빠져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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