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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3/132)

3 화

첨벙!

멜이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곧 멜이 수면 위로 올라와 웃으며 내게 고맙다고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 하는 거지?’

하지만 호수에 몸이 닿자마자 멜은 재빠르게 꼬리를 움직여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아이의 나풀거리는 남색 곱슬머리가 흔적도 없이 호수 안으로 사라졌다.

“……멜?”

멍하니 중얼거렸다. 주변의 하인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침착하게 천천히 물었다.

“멜? 뭐 하자는 거야?”

“아가씨! 호수 안으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그런 멍청한 짓 안 하니까 걱정 마.”

나는 하인들의 걱정을 만류하고 천천히 몸을 기울여 호수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일렁이는 표면 아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이 유리만큼이나 투명했기에 별 어려움 없이 멜을 볼 수 있었다.

멜은 정신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새로운 집을 구경하는 모양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

멜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비명을 지를 것 같은 표정을 하더니 더욱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넓은 호수에서 아름답게 헤엄치던 것도 잠시, 멜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끅, 끄윽…… 아아아아악!”

멜이 제 목을 휘어잡으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호수 밖에까지 들리는 처절한 비명에 하인들이 당황하며 물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아가씨?”

“…….”

“아가씨?”

“하하…….”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내가 웃고 있단 것을 눈치챈 하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뻐라. 호수가 바다인 줄 착각했던 거니?”

나는 물속에서 버둥거리는 인어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까지도 사랑스러웠다.

미처 숨기지 못한 속마음이 입 밖으로 작게 흘러나왔다.

“이 호수의 물이 바다와 연결돼 짠맛이 났다면 너를 이곳에 풀어줬을 리가 없잖아.”

“아, 아가씨…… 이대로 둬도 괜찮습니까?”

멜의 비명을 듣자 하인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옆에서 당황했다.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인어한테서 신경 꺼.”

“커억! 컥!”

그 순간, 한참 동안 목을 틀어잡고 고통스러워하던 멜이 힘겹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멜은 덜덜 떨리는 몸으로 상체를 물 밖으로 살짝 내밀었다.

“콜록!! 크흡! 켁!”

그 애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 손 뻗으면 그 애의 피부가 내 손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저런…….”

나는 멜을 보며 곧바로 최대한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멜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은 채 멜에게 물었다.

“멜?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니?”

멜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애는 고통 속에서도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외쳤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도대체 물에 무슨 짓을 한 거- 콜록! 흐윽!!”

물이 아닌 공기 중에서 바로 호흡을 하던 멜이 고통스러워했다.

핏기 없던 얼굴이 계속 기침을 한 탓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학적 충동이 일 만큼 예뻤다.

나는 그 모습을 감상하다가 모르는 척,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물이 민물이라서 놀랐구나?”

“민……물? 그게 뭐야?”

“소금기가 없는 물을 말한단다. 바다와 달리 이 물은 짜지 않거든.”

나는 손가락으로 호숫물을 찍어 인어의 입에 가져다 댔다.

“뭐…… 하는 거-.”

“가만히 있어.”

“읍!”

살짝 벌어진 입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멜의 혀를 건드려 보았다. 말랑하고 차가웠다.

나는 멜이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다물기 전에 손가락을 살짝 빼내 그 애의 치열 역시 살짝 훑어봤다.

가지런하고 조그마한 이들이 하얀 자갈처럼 귀여웠다.

“소금물이랑은 맛부터 다르잖니.”

살짝 웃으며 멜의 뺨을 손등으로 쓰다듬었다.

그때까지도 멜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멜의 피부는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확실히 유리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얼마나 만져 보길 고대했던 감촉이던가.

이 틈을 타 멜의 남색 곱슬머리의 끝부분도 조심스레 매만져 보았다.

“아…… 윽, 흐윽…….”

내 손을 쳐내지도 못한 채, 멜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 멍청하고 착한 인어는 나를 할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슬퍼하고만 있었다.

“……울지 말렴. 바다와 닿을 일은 없지만 훨씬 넓어진 새집이잖아. 익숙해지면 돼.”

“흑…….”

“정 지내지 못할 것 같으면 다시 수조로 들어올래? 네게 익숙할 바닷물로 채워 줄게.”

나의 진심 어린 위로에도 멜은 원망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눈빛만으로 타인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나는 내심 멜이 수조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멜은 우느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보자 삐뚤게 웃음이 나왔다.

“아파도 내 곁보단 여기가 좋아?”

“…….”

“그렇게 아프다고 울더니 나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이게 나은 모양이네. 하하.”

허탈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호수에서 지내겠다고 하는 걸 보면, 담수에서 사는 것이 못 견딜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인사했다.

“매일 올게. 심심해도 참아.”

“……오지 마.”

“내일 봐.”

새집에서 혼자 적응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는 사려 깊으니까.

나는 멜을 혼자 두고 뒤돌아 사용인들과 함께 저택으로 향했다.

“흑…… 흐윽…….”

뒤에서 바닷소리를 닮은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의도적인 외면이었다.

한번 너를 달래 주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휘둘릴지 모르기에.

* * *

‘약속했는데 어떡하지.’

오늘 만나러 가겠다고 했건만 아침에 눈을 뜨니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열이 얼마나 오른 것인지 머릿속에서 뇌가 춤을 추는 것처럼 끔찍한 두통이 밀려왔다.

“으, 하아…….”

어제 찬 바람을 꽤 오래 쐰 탓인 것 같았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흐릿한 시야로 하녀들이 헐레벌떡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는 급히 내 이마 위로 물수건을 올렸고, 누군가는 의사를 부르러 갔다.

멜이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고통을 잊을 만큼 빠져 있었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내 몸은 한심할 정도로 많이 약했다.

“세르베인!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딸의 상태가 나빠진 거지?!”

아버지가 급히 내 방으로 뛰어와 사용인들을 추궁했다.

하인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 때문에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사실…… 어제 아가씨께서 인어를 호수에 풀어 주려 외출을 하셨습니다.”

“뭐라고?”

아버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러자 하인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인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간신히 내뱉은 나의 한마디에 아버지가 급히 나를 돌아봤다.

하인들이 살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인어에게도 잘못이 없어요.’ 그 말도 하고 싶었지만, 의식이 먼저 끊겼다.

내쉬는 숨이 너무 뜨거웠다. 온몸이 지옥에라도 떨어진 듯 뜨겁고 아팠다.

바다가 내게 내린 벌일지도 모른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무려 이틀이 지난 뒤였다.

“아가씨…… 아가씨…….”

내가 깨어난 모습을 본 하녀들이 안심했고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내가 죽는다면 자신들도 위험해질 테니 마음고생이 컸던 모양이다.

“괜히 보내 줬나.”

나는 방 안에 있는 빈 수조를 바라봤다.

눈을 뜨자마자 멜을 볼 수 없다는 건 그 애를 호수로 풀어 준 것을 조금 후회하게 했다.

이틀 동안 쓰러져 있던 탓에 시야는 몽롱했고 소리는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곧바로 침대 밖으로 나왔다.

“윽.”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저앉을 뻔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텨 냈다.

“……나가야 해.”

멜이 나를 기다릴 터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야 한다.

바로 외출 준비를 하려 할 때 하녀들이 다급히 말을 걸었다.

“안 됩니다, 아가씨.”

“잠깐 호수에만 갔다 올게. 옷도 두껍게 입고.”

“안 돼요……. 정말로 안 됩니다, 아가씨.”

하녀들이 불안해하며 나를 거듭 만류했다. 하지만 그들은 말로만 나를 말렸다.

나는 조금만 붙잡아도 휘청이는 연약한 몸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 때문에 하녀들은 내게 손도 가져다 대지 못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발만 구르는 하녀들을 배려해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업혀 갈게. 그러면 되잖아.”

“……다른, 다른 곳으로 가요. 답답하시다면 정원으로 가는 게 어때요?”

하녀 중 한 명이 불안한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올렸다.

이상한 말이었다. 정원은 되는데 숲은 안 된다니.

내 외출을 막으려는 이유가 내 건강 때문만은 아님을 알았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호수에 있는 건 나의 인어뿐이다.

“……내 인어에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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