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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2/132)

2 화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처럼 했지만 사실 생전 처음 보는 인어에 흥미는 꽤 많았다.

나는 숨을 곳도 없는 연약한 인어를 24시간 내내 바라보았다.

어쩌면 인어에게는 일종의 학대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안녕?”

“…….”

말을 걸었지만 인어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의 말이 통하지 않거나, 인어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가설을 세웠다.

“나는 세르베인이야.”

처음에는 꽤 상냥하게 자기소개를 먼저 했다. 그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다.

내가 인어를 거둔 건 그가 곧바로 죽임당할까 걱정되어서였다.

내 계획은 그를 잠시 데리고 있다가 ‘질렸지만 그동안의 정이 있으니 바다로 보내 줘.’라고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건, 인어는 너무 아름다웠다는 점.

정신을 차리니 나는 미친 사람처럼 그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네 눈동자는 내 어머니와 같은 색이구나.”

겁에 질린 인어는 도망치지 못했다. 그저 내가 하는 말들을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 모습에서 이상한 충족감이 차올랐다.

“넌 이 상황에서도 참 아름답네…….”

하루하루, 나는 인어에게 매료되었다.

다른 사용인들이 인어를 보지 못하게 했고, 아버지에게도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증오하던 아버지였지만 인정하게 되었다. 나 역시, 결국 그의 딸이었다.

기묘한 집착은 피에서 피로 내려오는 것이리라.

내가 시선을 주지 않는 척 연기하면 인어는 조금씩 좁은 수조 안을 헤엄치곤 했다.

많이 움직이지는 못하고 아름다운 꼬리를 살랑살랑 부드럽게 흔들곤 했다.

가느다란 목, 손목, 창백한 흰 피부. 부드럽게 흔들리는 하얀 피부와 달빛을 담은 꼬리.

그 모든 것이 끔찍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말할 수 있지?”

눈이 아닌 인어의 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태껏 말하지 않았지만 왜인지 나는 인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네가 왜 인간과 똑 닮았겠어.”

인어의 가는 목을 졸라서 입을 벌리게 하고 그 안의 성대 기관을 관찰하고 싶었다.

“말해 줘.”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천천히 닫고 침대에서 일어나 수조로 다가갔다.

방금까지 내 손에 있던 책은 인간 해부학과 관련된 것이었고 특히 성대의 구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네가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알아내는 수밖에 없어.”

내가 수조 앞에 서자 인어는 겁에 질려 수조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물결에 의해 예쁜 꼬리지느러미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도망치려는 건지, 유혹하려는 건지 모호한 모습이었다.

사방이 유리로 된 수조였다. 수조 안에는 어떤 조형물조차 없었기에 인어가 숨을 곳 따위는 없었다.

나는 수조에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얇은 유리 한 장만이 인어와 나 사이에 있었다.

“너를 수조 밖으로 꺼내어 폐로 숨 쉬게 할 거야. 네가 그 아름다운 입을 열 때면 네 목 안을 관찰할 수 있겠지.”

인어의 몸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커다란 눈동자가 흔들리며 일렁이는 게 보였다.

물속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붉어진 눈가를 보며 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인어의 눈물도 보석은 아니었구나…….”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유리를 통과할 리 없건만 인어는 흠칫 뒤로 물러났고 나는 천천히 유리 위를 매만졌다.

너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조화로운 눈매를 따라 인어의 눈물을 훔치고, 뺨에서 목까지 손등으로 쓸어 보았다.

궁금했다.

인어의 눈물도 인간의 것처럼 짤까.

너의 피부도 유리처럼 이렇게 매끈할까.

너의 뺨, 손, 팔, 그 모든 것을 이루는 피부 조직도 이렇게 매끄러울까?

백조 날개 같은 너의 손을 볼 때면 네 손과 내 손을 맞닿아보고 싶었다.

생각이 현실이 되기 직전에 인어가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하, 할 수 있어…….”

“…….”

“말……할 수 있어…….”

상상했던 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유리에 반사된 내 얼굴은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가 있었다.

* * *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둬 두고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건 사랑이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써놓았던 일기가 무색했다.

나는 펜을 들고 오늘의 일기, 이제는 인어의 관찰 일기가 되어 버린 최근의 내용을 읽었다.

인어는 한 달째 식사를 하지 않고 있다. 무엇을 먹는지 몰라 물고기를 넣어 줬지만 먹지 않았다.

인어는 목소리가 아주 예뻤다. 그 정도라면 목소리를 아끼던 것도 이해가 가.

이름이 ‘멜’이라고 했다.

조금씩 대답을 하던 인어가 다시 말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비늘을 하나씩 뜯으면 비명이라도 들려주지 않을까?

언제부터 내가 이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나는 아버지보다 더한 사람이었던 걸까.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래서 속으로 마음껏 아버지를 미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떡하지.

나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인어가 힘없이 수조 바닥에 누워 있었다.

파리하게 야윈 안색과 윤기를 잃어버린 비늘이 보였다.

쿵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러다가는 멜도 어머니처럼 병들어서 죽어 버리는 게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침대 밖으로 나와 수조로 달려갔다.

쾅쾅!

“일어나!”

있는 힘껏 수조를 두드리자 멜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아주 잠깐 눈을 떴던 멜은 생기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쾅! 콰앙!!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던 내가 소리치자 사용인들이 놀라 방 안으로 뛰어왔다.

나는 그들이 인어에게 마음을 빼앗길까 봐 수조를 가리는 커튼을 치고는 날카롭게 외쳤다.

“들어오지 마!”

“아, 아가씨…….”

“나가! 나가란 말 안 들려?!”

물건을 집어 던지자 사용인들이 황급히 문을 닫고 나갔다.

촤르륵!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나는 다시 커튼을 열어젖혔다.

갑자기 히스테리를 부린 것만으로 이 연약한 몸은 머리가 몽롱했고 속이 울렁거렸다.

“우욱…… 윽…….”

멜은 내가 발악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공허한 눈빛이었다.

멜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관심이 없었다.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호수.”

그래. 수조가 너무 좁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사람도 아주 좁은 방 안에만 갇혀 있으면 미친다고 들었으니까.

“맞아. 숲 안에는 호수가 있었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와 소풍을 나갔던 숲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호수. 호수로 데려가 줄게.”

호수를 보러 저택을 나갔을 때 어머니는 드물게 그늘 없이 웃고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답을 찾아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웃으며 수조에 붙어 외쳤다.

“널 꺼내 줄게. 호수로 보내 줄게.”

“……여기서 나가게 해주는 거야?”

그때서야 멜이 눈을 떴다.

“응.”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멜의 창백한 얼굴 위로 놀람과 기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조건을 덧붙였다.

“대신 내 말 이젠 무시하지 마.”

“그럴게! 그렇게 할게!”

멜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온 이후로 그 애가 보인 어떤 움직임보다도 처절하고 절박한 몸짓이었다.

그 모습을 조금 불만족스럽게 지켜본 후 나는 하인들을 불러와 말했다.

“수조를 옮겨 줘. 숲으로 갈 거야.”

* * *

몇 년 만에 저택 밖으로 나왔다.

찬 바람을 맞으면 곧장 열이 오르곤 했던 몸이 지금은 멀쩡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하인들을 시켜 수조를 옮기게 했다.

움직이는 수조 안에서 멜은 설레면서도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불안해하지 마.”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멜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나를 어색하게 웃었다.

퍽 비위를 맞추기 위한 웃음이었다.

“응…… 고마워.”

“그래.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자그마치 너를 수조에서 꺼내 주는데.”

그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할 때 하인 중 한 명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아가씨.”

“그래. 잠깐 기다려.”

“네.”

숲속의 호수는 몇 년 전과 변한 점이 없었다.

날씨가 쌀쌀해져 가는데도 주변을 둘러싼 이름 모를 풀들은 깨끗한 물 옆에서 무럭무럭 자라 호수를 장식하고 있었다.

호수는 청명한 물빛을 자랑했다. 작은 물고기들도 여러 마리 보였다.

땅 위로 드러난 모습은 작았지만, 그 안은 수조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넓었다.

멜 역시 수조보다는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여기가 호수야.”

자랑스럽게 멜에게 새로운 집을 소개해 줬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곳이니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으응.”

멜은 잠시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호수로 시선을 빼앗겼다.

“마음에 들어?”

“……어? 응, 당연하지.”

멜은 정신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호수를 바라보는 멜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속 호수 쪽으로 몸을 들이대는 것을 보니 빨리 이 안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멜의 바람대로 해주기로 했다.

나는 하인들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호수 안으로 풀어 줘.”

곧바로 하인들이 힘을 합쳐 수조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수조 속 물이 호수로 떨어졌다.

호수로 들어가기 직전, 멜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쏴아아-.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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