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
“그 애는 인어를 키웠단다. 아주 아름다운 인어라고 했지.”
알츠하이머에 걸린 후, 증조할아버지는 당신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내가 그분과 많이 닮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분은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몸이 약했지만 마음은 아주 여리고 착한 분이라고 했다.
몸이 약한 소녀와 소녀가 사랑한 아름다운 인어의 이야기라.
얼핏 들으면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 애는 인어를 호수에 가뒀단다.”
“……예?”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면 말이지…….
할아버지는 추억을 회상하듯 말씀하셨지만, 그 말을 들은 후에는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하려 해도 이야기가 스릴러였다.
“사용인들이 인어를 못 보게 할 만큼 인어를 아주 아꼈지.”
그거 집착 같은데요…….
“원래는 자기 방 수조에 가뒀었는데 인어를 위해 호수로 옮겨 줄 정도로 마음이 여리고 착했단다.”
집착이다! 완전 집착이야!
그런데 그 외에도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나는 주저하다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런데 인어는 바다, 그러니까 해수에 살고 호수는 담수 아니에요?”
나는 태어나서부터 쭉 바닷가에 살았기 때문에 물고기에 대해 잘 알았다.
해수에 사는 물고기는 담수와 닿으면 쇼크가 온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을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아무튼 그 애는 인어를 호수로 옮겨 줄 정도로 마음이 여리고 착했단다.”
식은땀을 흘리던 할아버지는 결국 내 말을 못 들은 체하셨다.
들을수록 그분은 전혀 마음이 여리고 착한 분이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몇 번 이의를 제기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너무 좋은 분이시네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그 조카분을 굉장히 아끼셨으니까.
할아버지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당시에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인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현재,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 정도 지났다.
나는 지금에서야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증조할아버지의 가족들과 사용인들이 전부 살해당했다는 저택이었다.
살아 계실 적, 당신께서는 두려워서 발조차 디디지 못하시던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후 나는 어떤 남자와 마주쳤다.
‘……사람 맞나?’
처음 본 순간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것이었다.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남자의 흰 피부는 하얀 산호처럼 고상했고, 남색 곱슬머리는 우아했다.
높은 콧대와 깊은 아이홀이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남자의 눈은 하늘처럼 깨끗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야 그쪽이 너무 잘생겨서 쳐다보는 것이지만, 그쪽은 나를 왜 그렇게나 홀린 듯이 바라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계단에서 한 걸음씩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세르베인……?”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증조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인어’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다시 불렀다.
“세르베인……이지?”
확인 사살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가설이 있었다. 제발 아니길 바랐지만, 그 가설이 들어맞을 조짐이 보였다.
“세르베인……? 왜…… 대답을, 안 해?”
……진실로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그도 그럴 게 저 이름은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의 조카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분과 너무 똑같이 생긴 탓에 내가 갖게 된 이름이기도 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남자는 눈가를 붉게 물들인 채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다리가 아니라 꼬리가 있다며. 인어라며…….
아무리 봐도 남자의 저 두 다리는 멀쩡한 사람의 것이었다.
속으로는 울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반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냈다.
발이 저절로 뒷걸음쳤다. 뇌도 지금 입 놀리지 말고 당장 도망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입은 뺀질뺀질하게 혀를 놀렸다.
“하하하, 저, 공작님? 진정하시죠.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살면서 이 정도의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에서 도출될 미래는 하나였다.
생각해 봐. 억지로 호수에 갇혔고 늘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인어가 있었어.
그런데 이제 다리가 생겼네? 그러면 스스로 호수에서 나와, 그렇게 원하던 마이 스윗 홈 바다로 갈 수 있겠지?
근데 뭐야. 다리가 생긴 인어가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여기에 남았다고?
자기를 가둔 사람 이름을 바득바득 부르면서?
이유가 뭐겠냐.
……진짜 모르겠어?
당연히 복수잖아.
* * *
현재 시점으로부터 약 100년 전.
“세르베인. 선물을 가져왔단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내게 선물을 가져왔다. 하나같이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었다.
“애완동물을 기르면 우울감이 사라질지도 모르죠. 그러면 아가씨도 살기 위해 더 노력하실 겁니다.”
언젠가 의사가 건넨 말 한마디가 이 상황을 초래했다.
나는 경멸을 삼키고 애써 무감각한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봤다.
시선을 주자 이내 시종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공작새는 남쪽에서 가져온 희귀종입니다. 보통의 공작새보다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깃털을 가지고 있지요.”
“관심 없어.”
“이 고양이는 서부의 귀족들이 최근에 관심을 가지는 종입니다. 귀여운 용모에 애교가 많습니다. 보통 손톱을 뽑아서 길들-.”
“관심 없어.”
“이것은-.”
“다.”
시종이 아닌 아버지를 바라봤다.
욕을 뱉는 기분으로 한 자, 한 자 짓씹듯이 말했다.
“다, 관심 없으니, 치워.”
“네.”
하인들은 선물들을 방 밖으로 치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저것들은 곧 도축될 것이다.
하지만 한낱 미물 따위. 어차피 곧 죽을 나보다 조금 일찍 죽을 뿐이니 별로 불쌍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차가운 표정에 희미한 짜증이 올라왔다.
그는 사용인들을 탓하며 말했다.
“제대로 된 것들을 공수하라 했는데 종들이 알아듣질 못하는구나.”
‘아니요. 선물을 골라 온 이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키고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버지는 이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세르베인. 푹 쉬어라. 다음에는 더 좋은 것들을 가져오마.”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시체같이 생기 없는 얼굴에 의례적인 미소만 지은 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증스러운 손길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건강했다면 저 손을 쳐버렸을 텐데.
달칵.
다정한 아버지를 흉내 내던 사람이 방에서 나갔다.
그 순간 참고 있던 화가 터져 나왔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피가 스며 나올 정도로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발작적으로 책을 유리창 쪽으로 던져 버렸다.
쨍그랑!
“꺄악!”
밖에서 하녀의 비명이 들렸다.
내 방 밖으로 무언가가 던져지는 것은 익숙했기에 그 소란은 곧 잠잠해졌다.
행동의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누군가의 비명을 듣기 위해 물건들을 내던졌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내가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설령 아주 작은 소리라도.
* * *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강조하건대 어머니‘만’ 사랑했다.
“세르베인.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딸을 만나는 것조차 질투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자주 나를 만나러 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늘 갇혀 있었다. 어머니가 드물게라도 나를 찾아올 수 있었던 건 내가 여섯 살이던 때까지였다.
“엄마가 이제 오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우리 딸을 더 보살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어머니는 내가 열한 살이 되는 해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 딸, 세르베인을 잘 부탁해요.”
후에 사용인을 통해 전해 들은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그때에야 배우자를 끔찍이 여기던 공작은 아내의 유언대로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벌써 4년이 흘렀다.
“내 딸아. 네가 나의 유일한 후계자란다. 그러니 네게 가문의 상징을 주마.”
가증스러운 애정이었다. 사실 그것이 애정인지도 의문이다.
“네가 그녀처럼 빨리 떠날까 봐 걱정되는구나.”
“…….”
“……그녀가 널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그에게 나는 딸이라기보다는, 배우자가 남긴 숙제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배우자를 닮아 몸이 병약한, 혈연관계의 숙제.
몸이 약해 외출조차 하지 못하는 나보다 얼굴빛으로만 보자면 그가 더 생기 없었다.
아버지는 남겨진 숙제, 즉 내가 없었다면 곧장 자살해 어머니를 따라갈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곳에 더 미련이 없었다. 나를 묶어 둘 수 있는 애정이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내 목숨이 다해 내가 사라지길 바랐다.
* * *
“인어란다.”
선물을 가져오는 시기가 짧아졌다.
아버지는 서늘한 안색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선물은 내가 거부하지 못할 거란 확신이 서린 얼굴이었다.
“전설로만 내려오는 인어를 잡은 건 처음이지. 누군가가 알기 전에 널 위해 가져왔단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유리 수조를 바라봤다. 그 수조를 옮기기 위해 여러 명의 장정이 움직였다.
나에게는 처음 보는 크기의 유리 수조였지만, 사실 내 또래의 소년이 들어 있기에 넉넉한 크기는 아니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놀란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어떠니. 이번엔 마음에 드니?”
“……도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죠?”
“바다란다. 우리 저택의 근처엔 바다가 있지.”
몰랐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저택 뒤의 숲에는 가본 적이 있지만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저택 뒤쪽 숲을 지나면 절벽이 나온단다. 그곳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이지. 저것은 그곳에서 왔어.”
‘저것’이라고 지칭을 해도 되는 걸까. 절반이지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시선을 돌려 수조를 바라봤다.
내 또래의 어린 소년, 인어와 눈이 마주쳤다.
인어의 머리칼은 짙은 남색이었다.
곱슬머리의 인어는 덜덜 떨며 구석에 자리 잡은 채 연신 나와 아버지와 시종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새파란 눈동자와 창백하게 빛나는 하얀 피부가 돋보였다.
다리 대신 존재하는 꼬리의 반짝이는 은청색 비늘이 아름답게 움찔거렸다.
“관-”
‘관심 없다.’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방에서 버려지는 생명체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미물은 죽이더라도 인간의 형태를 한 것을 죽게 두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물속인데도 물기 어려 보이는 인어의 눈동자가 내 말을 삼키게 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선물이 마음에 든다니 기쁘구나.”
그것이 내 인어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