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1화.
“루나 씨, 정신 차리세요. 루나!”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루나는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레인은 신성력 결계를 유지해야 해서 루나의 응급처치를 하기 위해 분산시킬 집중력이 없었다.
원래 그들을 쫓고 있었던 비행 타입의 마수 이외에도 다른 마수들이 결계를 빙 둘러싸며 모여들었다. 루나의 허리춤에 있던 무전기를 빼내 무전을 연결하였다.
“여기 3팀의 레인 마리어드 신녀예요. 혹시 들리시나요?”
레인의 다급한 부름에 누군가가 응답했다.
― 3팀? 3팀의 마리어드 신녀님이라고요?
“네, 저와 같은 팀인 루나 씨와 함께 도중에 낙오되었는데 어떡하면 좋죠?”
― 고립되었다고요? 왜 아직도 안전 지역에 도착하지 못하신 건데요? 다른 3번 팀원들은 방금 귀환했는데……!
상대방은 당황한 목소리로 레인의 위치를 물었다. 대략적인 장소를 알려 준 레인은 구출대를 보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무래도 마수 소굴 한가운데에 고립된 것은 자신과 루나뿐인 듯했다. 이렇게나 마수가 많은데 구출대가 온다고 해도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레인과 루나가 있으니 비공정이 상공에서 포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계를 두껍게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기운을 잡아먹었다. 레인은 이렇게까지 전심전력을 다해 신성력 결계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벌써 체력적으로 힘들어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레인은 마수를 한번 보고는 자신의 등 뒤로 쓰러져 있는 루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신은 어떻게 된다 해도 루나는 무사히 보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점점 자신의 정신마저 희미해지려는 찰라 폭음이 들려왔다. 공간이 베이더니 마수들도 함께 무언가에 베였다. 그리고 검은 구체들이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더니 일제히 터졌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폭발에 휘말린 마수들의 핵까지 파괴되었다.
마수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뭐지?”
레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공격이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은 엄연한 마법이었는데 이런 종류의 마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마법을 고작 한 사람이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처음에는 응원군이 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레인의 시야에는 이런 마법을 전개할 만큼 많은 인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의아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부 사라졌다고는 하나 레인의 주변에는 아직 많은 마수가 모여 있었다. 레인의 체력이 점점 한계에 다다랐지만 아직은 신성력 결계를 풀 수 없었다. 레인은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으나 이를 악물고 견뎌 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수에게 퍼붓는 공격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을 향한 공격이 있다면 몸을 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레인 주변에 있던 마수들은 오히려 그들을 버리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그 덕에 잠시 여유가 생긴 레인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며 결계가 흐려졌어도 레인과 루나에게 관심을 두는 마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마수가 몰려가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무언가가 마수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레인이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저 멀리서 자동차의 모터 소리가 울렸다. 응원군이 몰려온 것이었다. 쾅쾅거리는 폭음과 함께 사람들이 합심해서 마수를 몰아내고 있었다. 레인의 시야를 막고 있던 마수들이 하나둘 재가 되어 죽거나 도망가며 여기저기 흩어졌다.
그때, 레인의 얼굴 위로 그늘이 지더니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레인이 얼굴을 들자 붉은 날개가 그녀의 시야 가득 들어왔다. 레인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날개가 뜻하는 것은…….
레인이 그러든 말든 날개의 주인은 착륙이라기보다는 반쯤 추락하는 동작으로 레인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는 몹시도 지쳐 보였으며 얼굴은 땀과 먼지로 엉망이었다. 고작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지 그는 자신의 장검을 바닥에 꽂고는 몸을 기대었다.
“케이드 씨…… 당신…….”
레인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케이드를 바라보았다. 케이드는 레인이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그녀의 몸을 꼼꼼하게 훑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레인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케이드가 설핏 웃었지만 상황은 그들을 그냥 두지 못했다. 레인의 무사를 확인한 케이드의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지더니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케이드의 등 뒤에 달려 있던 날개가 부스스 흩어졌다.
“아…… 정말 꼴사납게…….”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린 케이드의 무릎이 앞으로 풀썩 꺾이는 것을 레인이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이거…… 비밀…….”
레인의 품 안에서 케이드가 축 늘어졌다.
“케이드 씨? 괜찮나요, 케이드 씨? 이보세요!”
케이드의 몸을 받아 든 레인은 깜짝 놀랐다. 신성력 덕분에 타인의 마력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자신에게마저 느껴질 정도로 그의 몸에서 마력 고갈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력 고갈로 죽을 것이 뻔했다.
이런 경우는 응급처치로 누군가가 마력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인은 케이드에게 마력을 나누어 주는 방법을 몰랐다. 그녀는 신성력을 다루는 신녀였지, 마법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떡해…….”
레인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았다.
“여기요!”
케이드의 숨이 점점 약해져 오는 것이 느껴지자 레인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여기요!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목소리와 눈가가 눅눅하게 젖어 왔다.
“누가! 제발!”
레인이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자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금속 감촉이 손에 닿았다. 그녀가 지급 받은 신호탄이었다.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 들었을 뿐 실제로는 써 본 적이 없어서 동작은 어설펐지만 겨우 탄환을 채워 넣고 신호탄을 하늘을 향해 발사했다. 신호탄은 붉은색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 높이까지 올라갔다.
초점 없는 눈으로 그것을 확인한 케이드는 레인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어두운 의식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케이드는 작은 노랫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듣기 좋아 한동안 눈을 감고 그것을 감상하였다. 하지만 이내 노래는 끊겼고 대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들었어요?”
익숙한 사람이었다. 눈꺼풀을 슬며시 들어 올리자 잔뜩 울상인 얼굴을 한 레인이 케이드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레인은 평소에는 하나로 깔끔하게 틀어 올리고 있는 밤갈색 머리카락을 지금은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모양대로 풀어 두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기운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케이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눈을 뜨자마자 한 케이드의 말에 레인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다.
“아니, 정신을 차리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예요?”
“저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케이드의 진지한 얼굴에 레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데르카이드란 걸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네.”
“왜요?”
“알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니까요. 비밀로 해 줘요.”
레인은 데르카이드란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떤 의미로 골치 아파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케이드가 비밀로 하는 이유는 다른 데르카이드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와는 달라 보이는 기색이었다.
비록 계약직 용병인 상황이었지만 텔라인에서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우는 동료들에게조차 비밀이라니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저는 데르카이드인 것치고는 불완전해요. 겨우 마법 그렇게 쓴 거로 마력 고갈이 일어나서 죽을 뻔했잖아요. 날개를 꺼내는 것이 고작이니 평범한 인간에 더 가까운 상태예요.”
그 말을 들은 레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데르카이드이면서 마력이 그 정도밖에 없는 것이 가능한가는 둘째 치고 케이드의 말로 추측을 해 보자면 케이드에게 마석 없이 마법을 쓰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가는 행위라는 뜻이었다. 레인은 그래서 저도 모르게 벌컥 화를 내었다.
“그런데 그런 무리한 마법을 남발했어요?”
마법에 문외한인 레인이 봐도 케이드가 사용한 마법들은 상당한 고위 마법들이었다. 숙련된 마법사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말까 한 거대 술식이었다. 마력 고갈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했다.
케이드는 끙, 하는 신음을 내며 대답했다.
“당신이 죽을 수도 있었잖아요. 후방으로 한 마리도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하지만!”
“구해 줬는데 혼내지 마세요. 그냥 감사 인사만 받을래요.”
케이드의 투정에 레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마도구 과다 사용으로 인한 마력 고갈이라고 둘러대었어요.”
“고마워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제 목숨을 구해 주셔서.”
그제야 케이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루나 씨는 괜찮대요. 비공정으로 수용하자마자 의식을 되찾고 쉬고 있어요.”
“저는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거죠?”
“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꼬박 하루요.”
“아…… 이런. 좀 오래됐네요.”
창밖을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니 비공정의 의무실 한구석에 있는 환자용 침상이었다. 가림 천 너머로 다른 환자들도 있었지만 케이드가 누워 있는 곳은 제일 구석진 곳이었기 때문에 말소리가 서로 넘어오지 않아 각자 조용히 쉴 수 있었다.
“그래서 걱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