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9화.
그 말에 레인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케이드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가자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레인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지크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럴 만하니 그런 곳으로 배치되는 것이에요.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항상 생존하시거든요. 텔라인도 아닌데 마수에 대해서도 우리 못지않게 잘 알고 있고, 실력도 출중하시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분처럼 강한 사람은 처음 봤어요. 이런 식으로 임시적인 용병 일을 하실 게 아니라 아예 텔라인에 정식으로 들어오시면 좋을 텐데…….”
지크의 목소리에는 케이드에 대한 걱정이 요만큼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실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케이드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레인은 그런 말로 쉽게 안심이 되지 못하였다. 레인이 자꾸 케이드를 힐끔거리는 것을 본 지크가 물었다.
“케이드 씨와는 가까운 사이세요?”
그 질문에 레인이 대번에 눈을 세모꼴로 뜨며 바로 대답했다.
“네?! 아니요!”
그러더니 질색팔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만 해도 저 사람 때문에 이 고생인데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무슨 일이 있을지 전혀 모르겠네요!”
레인의 노성에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치고는 걱정하는 모양새가 상당히…….
한편 레인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 탓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힐끔거리자 레인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뭐, 아무튼 다들 작전 내용은 내일 아침까지 잘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잘 알겠지만 한 번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발록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를 파했다. 지크가 3번 팀들끼리 좀 친해져 볼 겸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여 레인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도란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이 시끄러웠다. 레인이 돌아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중앙에는 케이드가 있었다.
“앗, 바로 그때! 내 주머니에 있던 마석이 떠오른 거야! 그래서 얼른 마석을 빼내어 마수의 입안으로 처넣어 줬지! 그리고 딱! 그 안에서 마석이 담고 있던 마력을 폭발시켰고, 그 결과가 짜잔! 나는 무사히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이 말이지. 자, 자, 박수 쳐도 좋아.”
케이드의 무용담을 듣고 그 말에 호응하듯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박수를 쳤다. 케이드는 더 해 보라며 사람들을 부추겼고 웃고 떠드는 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레인은 저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원래 저런 사람인가요?”
“케이드 씨요? 유명하죠. 저 사람은 아무 데나 떨어트려 놔도 잘 지낼걸요.”
지크의 말에 레인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저 정도의 친화력이 있으면서 왜 신전에 있을 때는 자신에게만 달라붙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식판을 다 비운 레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케이드가 뒤늦게 그녀를 발견했다.
“레인 신녀님!”
자신을 보고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붕붕 흔드는 통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레인은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식판을 반납하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뭐야, 못 들었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케이드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지크가 한 소리 했다.
“케이드 씨는 그 텐션 좀 어떻게 조절 못 합니까? 누가 봐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잖아요.”
그러면서 혀를 끌끌 차는 지크를 케이드가 뚱하게 바라보았다.
“나야 레인 신녀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다만 너는 레인 신녀님 보필이나 잘해.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네 책임이니까.”
“예이, 예이.”
케이드와 지크는 한 단체에 소속된 관계가 아니다 보니 계급 체계에 속해 있지 않아서 서로에게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뭐, 내가 있는 이상 후방까지 마수가 뚫고 들어갈 일은 없을 테니까.”
케이드가 다소 으스대며 하는 말에 지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러든 말든 케이드는 그 뒤에서 떠벌렸다.
“그러니까, 나만 믿으라고, 나만!”
* * *
쾅!
멀리서 포성이 울렸다. 레인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큰소리가 나 고개를 들어 보니 비공정에서 포문을 열어 발포하고 있었다.
끼에엑-!
기괴한 비명이 공기를 흔들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다급한 소리가 정신없이 퍼졌다.
‘이, 이 거짓말쟁이들!’
레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구역질을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긴장감에 누군가 위를 쥐어짜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위험하지 않을 거라더니!’
토벌 지역 한가운데에서 레인은 파들파들 떨며 전진하고 있었다. 지크가 옆에서 괜찮다며 다독여 주고 있었으나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작전은 어제 설명 들은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닐 것이라는 부연 설명은 없었다. 토벌조가 마수를 몰아내고 그 지역을 사제들이 들어가 신성력 결계를 친다. 말이야 그렇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토벌조가 피 튀기는 싸움을 하여 마수를 몰아내기는 하나 마수의 수가 워낙 많은 탓에 전부 해치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간혹 가다 후방의 호위조 앞에도 마수가 한 마리씩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전진을 해야 하니 방어진만 만들어 유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호위조가 열심히 마수들을 경계하는 사이 사제들은 최대한 빨리 결계를 완성해야 했다.
물론 안전한 것은 맞았다. 호위조의 목숨을 담보로 사제들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오히려 더 긴장하여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신녀님!”
“자, 잠시, 잠시만요! 거의, 다 됐는데……!”
레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신성력 결계를 만들어 내는 동안 지크가 옆에서 발포했다. 가까운 곳에서 마수가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뇌간의 핵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마수는 또 재생하여 달려들 것이니 어서 신성력 결계를 쳐서 마수를 아예 결계 밖으로 쫓아내어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돼, 됐다!”
겨우 결계 하나를 만들어 낸 레인이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았다. 결계를 피해 도망치는 마수를 보며 지크 역시 식은땀을 닦아 내었다. 하지만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 다음 포인트로 가죠!”
다른 팀원이 태세를 정비하여 움직일 준비를 하였으나 레인은 벌써 다리가 풀려 제대로 달릴 힘이 없었다. 하지만 꼴사납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들 노력하는데 자신 때문에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손을 이끄는 지크에게 의지하여 레인은 오토바이 사이드카에 올라탔다. 다음 포인트까지 이동하기 위한 기동력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해당 포인트에 도착한 레인은 아까처럼 신성력 결계를 만들어 내고 다시 지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그렇게 비슷한 일을 다섯 번 정도 거치고 나니 이제는 제법 요령이랄 것도 생겼다. 슬슬 자신감으로 벅차오를 때쯤 오늘 임무가 마무리되었다. 전투조는 몰라도 사제들의 체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한계였다. 사제들이 온종일 신성력 결계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충분한 휴식은 필수였으니 말이다.
비공정으로 탑승하기 전에 세워 둔 임시 작전 본부에서 피해 보고를 하며 인원 체크를 하는 동안 레인은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걷다 대충 나무 둥치 위에 걸터앉았다. 오늘이 고작 1일 차였다. 이 짓을 앞으로 6일은 더 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수통의 물을 꼴깍꼴깍 마시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레인은 물을 마시다 말고 딸꾹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비명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거기 지혈해! 더 꾹 눌러!”
“여기 봐! 정신 차리고 여기 봐 봐!”
“젠장, 약물은 아직이야?! 누가 이 친구에게 모르핀이라도 줘!”
들것에 피로 흠뻑 젖은 사람이 실려 오면서 그 주변으로 의료 인력이 바싹 붙어 의무실로 옮기고 있었다. 그 광경에 레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탱그랑…….
금속이 울리는 소리를 내며 수통이 땅으로 떨어졌다. 자신은 그나마 안전한 후방에 있었다지만 당연하게도 전방은 치열한 접점이 펼쳐졌을 것이고 전날 걱정한 대로 누군가가 죽거나 다쳤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그것을 눈앞에서 바로 보자 손이 떨려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비명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그것이 환자가 숨을 거두어서 침묵한 아니라 모르핀으로 인한 진정 덕분이길 바랐다. 뒤늦게 상황을 보니 부상의 경중은 달라도 의무실은 사람들도 북적북적했다. 레인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커다란 무언가가 자신의 시야를 가리더니 그녀의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 아, 아…… 힘들어 죽는 줄…….”
레인이 슬쩍 시선을 올리자 붉은 머리부터 눈에 들어왔다. 흙투성이가 된 케이드가 산 만한 덩치로 레인의 앞을 전부 가리고 앉아 있었다.
“그쪽은 안 힘들어요? 이런 거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죠?”
케이드는 목 관절을 뚝뚝 꺾으며 레인의 안위를 걱정하며 레인과 가깝게 붙어 앉았다. 레인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저야 다치신 분들에 비하면 그냥 피곤한 정도고…… 그리고 케이드 씨처럼 최전방에 배치된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걱정이었겠어요.”
레인은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의연한 척을 하려 그랬으나 케이드가 그러도록 두지를 않았다.
“그래도 힘들지요?”
그 말에 레인이 케이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려 그래도 덩치가 큰 케이드가 앞을 떡 가로막고 있는 통에 어디를 보아도 그의 몸밖에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다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레인은 그제야 케이드가 자신을 배려해 그녀의 시야를 가린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주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지요?”
케이드의 걱정스러운 따듯한 말에 레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네…… 네, 너무 무서웠고…….”
레인이 코를 훌쩍거리면서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았다.
“마수 같은 것도 처음 봤고……. 사람들은 계속 다치고 그러는데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