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243화 (243/257)

외전 22화.

세 번째 외전. 서로의 온기

미레아는 어쩐 일인지 누군가 깨워 주지 않아도 저절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굳이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벌써 일어나자니 손해 본 기분이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꽉 감고 있는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시하려 했지만 그 끈덕진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져 미레아는 나른하게 눈을 깜박이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리스는 그녀의 옆에 모로 누워 손으로 머리통을 받친 자세로 미레아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

그런 아침 인사와 함께 이마에 쪽하고 내려앉는 입술에 미레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그보다 일찍 일어난 아리스의 가벼운 키스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에 슬슬 적응되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찍 눈을 뜨셨을까나.”

방금 일어나서 아직 목이 까슬거리는 미레아와는 달리 아리스는 제법 또렷한 목소리였다.

“몇 시야?”

“6시 반.”

“어, 너무 일찍인데.”

“더 잘래?”

“으음…….”

미레아는 아리스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고 다시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맞닿은 체온이 따듯하여 이불 속에 있으니 한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은 미레아는 이불 위로 눈을 빼꼼 내밀었다. 아리스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누워 미레아를 구경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미레아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응.”

“넌 몇 시에 일어났어?”

“음…… 몇 분 안 됐는데.”

그런 것치고는 얼굴도 멀끔하고 눈에 졸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레아는 아리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결국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더 자지 않고?”

아리스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미레아가 일어나 자신과 놀아 줄 것 같은 기색이자 강아지가 꼬리라도 흔들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미레아는 아리스와 놀아 주는 대신 근래 들어 갖고 있던 의문점을 아리스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너 몇 시에 자서 몇 시에 일어나?”

미레아의 질문에 아리스가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어…… 자는 시간은 그때마다 다르고.”

“그렇다 해도 보통 일찍 자지는 않잖아. 맨날 늦게 자면서.”

“자유직인데 어쩔 수 없잖아.”

아리스는 최근에 라일라에게서 소소한 일감을 받아서 하고 있었다. 하는 일은 주로 마도 기구 테스트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라슈발렌 기술부에서 새로운 마도 기구를 개발하면 그것을 시험 운영을 해 보고 개선점 등을 추려서 보고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밖에도 쿤둘렌과 마법학을 배우고 자신이 빌려준 농경지를 돌아보면서 지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저절로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넌 일감 없을 때도 늦게 자잖아.”

“그야 밤에는 너랑 놀아야 하니까.”

그 말에 농축된 의미에 미레아가 그의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자 아리스가 엄살을 부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아야! 왜? 너는 싫어? 너도 좋아서 했잖아! 같이 즐겨 놓고……! 하려면 밤새 할 수도 있는데 일부러 너 봐줘서 그 정도인 거거든?”

“밉상이야, 정말 밉상이야! 그보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 그럼 언제 일어나는데?”

“일어나는 것도 보통은 대중없는데…….”

아리스가 애매하게 말꼬리를 늘리며 대답하자 미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지금까지 나보다 일찍 잔 적도, 늦게 일어난 적도 없는 거 알고 있어?”

“그랬던가?”

아리스는 종종 보고서의 마감이 밀리면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런데 아리스는 그런 날마저 아침에 미레아보다 일찍 일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침잠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아리스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어도 미레아는 지금까지 아리스가 잠든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예외적으로 딱 한 번. 아리스가 잠든 것 비슷한 상태인 경우는 겪은 적이 있으나 그것은 마수 때문에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던 거지 정상적인 수면 상태는 아니었으니 셈에 넣을 수 없었다.

그는 늘 미레아가 잠드는 것을 봐 주었고 아침에는 먼저 일어나 미레아가 아침 맞이를 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상태로 준비해 놓고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려 주었다. 지금까지 별생각이 없었는데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자니 미레아는 슬슬 그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리스가 충분히 쉬고 있냐는 의문이었다.

“나보다 몇 분 더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어날 시간에 맞춰서 아침 준비해 놓고 기다리잖아. 거기에 시간 남으면 운동까지 하고 들어오고. 그게 아니라 해도 나 깰 때까지 내 자는 얼굴 구경하고 있는 거 다 알아.”

“그런데 그게 왜?”

“대체 몇 시간을 자는 거야?”

미레아의 추궁에 아리스는 대답을 피하려 그랬지만 상대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제도, 아니 오늘 날짜로 새벽 3시 넘어서 잤으니까 오늘은 최대로 잡아도 3시간 반밖에 못 잤다는 소리네. 그런데 나보다 일찍 일어난 기색으로 보아하니 3시간 잔 거면 많이 잔 건가? 너 평소에도 이런 식이야. 요즘 보아하니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새벽 2시나 3시에 자는 것 같은데. 내가 7시에 일어나고 네가 그 전에 일어나 아침 준비하고 운동하고 오면 4시간도 못 잔 거라고, 너.”

미레아가 따박따박 시간 계산을 하자 아리스는 가볍게 앓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계산한 수면 시간으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리 없었기 때문에 미레아는 잔뜩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아리스, 너 그러다 몸 축나.”

“나는 잠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4시간만 자도 괜찮은데…… 보는 대로 건강하잖아.”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면 시간은 그렇지 않잖아. 지금은 괜찮다 해도 그거 수명 당겨서 쓰는 거라고.”

한때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몸을 혹사한 경험이 있는 미레아였기에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원래 그렇게 못 자?”

“아니야, 나 원래는 잘 자는데…….”

“원래는 잘 자는데?”

아리스가 무심코 말한 어감이 석연치 않아 미레아가 그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자 그는 아차 싶었다.

“아니, 잘 자. 적게 자도 깊이 자니까 괜찮아.”

“원래는 잘 자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로 들리는걸?”

“아니, 괜찮다니까.”

“흠…….”

미레아가 팔짱을 끼고 아리스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좋아, 일단 믿겠어.”

“네가 너무 걱정거리가 많은 거야.”

“믿어 주는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오늘 일찍 자고 내일은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같이 일어나자.”

“어…… 그래.”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아리스가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미레아는 그 이후 한 번 더 확답을 받고 나서야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왔다.

* * *

그날 밤, 아리스를 먼저 침대에 눕힌 미레아는 침대 머리맡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리스는 반듯하게 누워 좌불안석인 상태로 미레아에게 선처를 요구했다.

“아니,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잘 잔다면서. 빨리 자.”

“그러지 말고 너도 이리 와서 같이 자.”

아리스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두드리는 것을 보기만 하며 미레아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 자는 거 보고 잘 거야.”

“음…… 그렇게 보고 있으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데.”

“나 없다고 생각하고 자.”

아리스는 다소 초탈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알았어. 그럼 나 잘게.”

“그래.”

그 말에 미레아가 방 불을 끄고 돌아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잘 자.”

“너도.”

아리스가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나며 가슴이 고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평온한 그의 모습에 미레아는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잠드는 건 또 빨리 잠드네?’

하지만 의심스러웠다. 미레아는 일부러 한 시간을 더 앉아서 기다렸다. 슬슬 본인도 졸렸으나 그녀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살금살금 침대 옆자리에 다가갔다. 그리고 아리스의 감은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어 보았다. 상대방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도 미레아는 의심을 쉽사리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을 살금살금 빠져나가 아리스가 작업실로 쓰고 있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 음? 뭐 해, 미레아?

방에 보관 중이던 페니드란이 미레아에게 말을 걸어오자 그녀는 얼른 손가락을 세워 입가에 대었다. 검은 덩달아 은밀한 기분으로 미레아의 말을 들었다.

“너 아리스랑 정신이 연결되어 있으면 상대방의 의식 상태도 알 수 있지?”

― 그렇지?

“그럼 너…… 아리스가 잠들었는지 좀 확인해 봐 봐.”

― 뭐, 그 정도야.

고작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옆방이었기 때문에 굳이 페니드란을 갖고 아리스의 옆자리로 갈 필요도 없었다. 페니드란은 아리스의 기색을 살펴본 후 대답했다.

― 얘 안 자는데?

“뭐?!”

― 정신이 완전히 말똥말똥해.

미레아는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거짓말하고 자는 척을 한다, 이거지…….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미레아는 이를 북북 갈며 페니드란에게 말했다.

“페니드란, 하나만 부탁하자. 아리스 저놈이 밤사이 얼마나 자나 시간 좀 재 줘.”

― 알았어.

흔쾌히 받아들이는 페니드란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미레아는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미레아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치고 옆에 눕는데도 아리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레아는 그 모습이 가증스러워서 볼을 꼬집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일단 내일 아침까지 두고 보자며 심통 난 얼굴로 누운 미레아는 아리스와는 달리 잠드는 것이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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