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234화 (234/257)

외전 13화.

두 번째 외전. 류가의 가족들

“어, 어, 어, 어떡하지?”

미레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아리스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태평하다 못해 오히려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레아를 바라보았다.

“뭐가?”

“나 실수하진 않겠지?”

“무슨 실수?”

“아니, 그러니까 나는 마이련어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는데 그쪽 풍습이 낯설기도 하고…… 너희 식구들에게 실례라도 저지르면 어떡해?”

아리스는 두 눈을 끔벅거리며 좌석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괴었다.

“그런 거라면 네가 실수해 봤자 무슨 실수를 하겠어. 다들 이해해 주실 거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진 누나랑도 별문제 없이 잘 지냈잖아? 다들 비슷해.”

그들이 있는 곳은 마이련으로 향하는 비공정 안이었다. 일전에 아리스의 아버지인 마라피네스 대공의 묘로 성묘하러 갈 때 미레아가 아리스에게 동행해 주겠다고 말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서로의 일이 바빠 오가는 날을 포함해 5일밖에 시간을 내지 못하였어도 모처럼 가는 여행길이었다. 아리스는 정말로 미레아가 자신과 함께 마이련까지 가 주어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도착지까지는 앞으로 30분 정도가 남았다는 안내를 듣고는 미레아는 급격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었다. 따라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아리스의 외가에서 지내기로 한 것은 뒤늦게 생각해 보니 정말로 부담스러웠다. 반면, 아리스는 태평했다.

“너야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어른들 생각은 또 다를 수 있단 말이야.”

“설령 밉보여도 신경 쓰지 마. 난 상관없어.”

“어떻게 신경을 안 쓰니?”

미레아는 아리스의 가족들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출발하기 전에 마이련의 문화를 더 공부하고 왔을 텐데 자신의 게으름을 원망했다.

“아무래도 괜히 왔나…….”

그 말에 아리스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유 때문이면 몰라도 그런 것이라면 괜찮아. 내가 옆에서 알려 줄게.”

“다른 식구들에게 나도 간다고 하니까 뭐라셔?”

“뭐라 하시긴. 좋아하시지.”

“그게 끝이야?”

“응.”

“너랑 무슨 관계인지는…… 아시지?”

“거기엔 율비네가 가 있으니 이미 다 말이 퍼졌을 거야.”

“으아아…… 우리 애는 못 준다면서 쫓아내면 어떡하지?”

미레아의 과대망상에 아리스가 풉 웃었다.

“그러면 내가 연 끊고 살면 그만인 거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리스는 어느새 차갑게 식은 미레아의 손을 가져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우리 식구들보다 네가 우선이니까.”

그 말이 든든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리스가 자신 때문에 식구들과 연을 끊는다거나 하는 일은 그녀도 원치 않았다.

“애초에 우리가 뭐…….”

아리스는 미레아를 안심시키려다 말고 뒷말을 삼켰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것은 결코 미레아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결혼에 대한 것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골백번도 더 청혼하고 남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결혼은 일종의 계약 관계로, 결혼을 함으로써 남편과 아내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계약 조건들이 부부간에 체결될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는 미레아에게 그런 부담감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미레아에게 잘하기만 한다면 굳이 결혼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다. 미레아에게는 사랑만 받으면 되었다. 아니, 그것이 사랑조차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미레아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리스는 미레아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는 그 손을 자신에 볼에 갖다 대 기대었다. 아리스에게 있어서 가족이 소중한 것은 맞았으나 미레아가 제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버려도 상관없었다.

“네가 편한 대로 지내다 오면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은 다 내가 질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미레아는 그제야 희미하게 웃었다.

* * *

한편, 미레아가 비공정 안에서 덜덜 떨고 있는 그 시각.

세진 땅에 있는 류씨 가문의 본가에서는 거의 잔치를 준비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겨울이라 날이 상당히 추웠으나 그것은 류광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주인 류광준은 비록 하는 일은 없었어도 일찌감치 마당에 나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불을 피우고 전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광준은 괜히 사용인들에게 이리저리 참견하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진두지휘하였으나 오히려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작은아들인 류신우가 보다 못해 눈을 흘겨 뜨며 한 소리 했다.

“아버지, 방해되니까 제발 들어가세요.”

“아, 있어 봐라. 귀한 손님이 온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게 생겼나. 그래서 손주 며느리가 몇 시에 온다고? 이제 올 시간 아니냐?”

“아이들이 탄 비공정이 아직 마이련 땅에 착륙할 시간도 아니고요, 공항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려면 또 몇 시간이 걸리고요, 그리고 그 아이는 아직 며느리도 아니고요. 미레아 양은 그러니까…… 천이의 연인일 뿐입니다.”

“그게 예비 손주 며느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다르지요. 요즘 시대는 자유연애를 하는 시대이다 보니 그 아이가 정말로 손주 며느리가 될지는 아직 모르는 겁니다. 김칫국은 적당히 드세요.”

“그래서 예비 붙였잖냐, 예비.”

“그래도요. 벌써 그러면 부담스러워한답니다. 그러다 질려 버려서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에이잉…….”

광준은 미간을 구기며 혀를 쯧쯧 찼다.

“견우 형님과 율비네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지요.”

그때, 장에서 소소하게 필요한 것들을 사 온 은현과 진이 들어오는 것을 본 광준이 그들을 불렀다.

“너희는 미레아와 함께 지냈었지? 미레아 그 아이는 무얼 좋아하느냐? 너무 우리 음식으로만 채우는 거 아닌지 걱정스럽구나.”

“미레아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진의 대답에 광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아이가 내색이나 할 수 있겠나.”

“아버지, 제발 좀 들어가 계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신 사납다고요.”

하지만 광준은 신우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은현과 진을 툇마루에 앉히고는 본격적으로 캐묻기 시작했다. 그들은 앉은 김에 마늘을 다듬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냐?”

“아이가 예쁘고 착해요. 똘똘하고요.”

은현의 대답에 광준이 흡족하단 미소를 지었다.

“둘이 잘 어울리더냐?”

“서로에게 그만한 짝이 없을 정도로요.”

“네 마음에 쏙 든 모양이구나.”

“네, 제가 좋아하는 아이예요.”

은현의 대답은 광준의 기대감을 점점 크게 만들었다.

“날은 언제로 잡는 게 좋을 것 같으냐? 아니지. 아직 약혼도 안 했다니 그것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아버지…… 그러니까 아직 결정 난 게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진은 광준이 아리스와 미레아 앞에서 식부터 올리자는 소리를 할까 걱정되었다. 그 둘이라면 분명 부담스러워할 텐데…….

“어떤 가문의 아가씨라 그랬지?”

“태생이 좀 특이해서 그렇지 집안 자체는 그냥 평범한 집안이에요. 부모님과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8년 전에 식구들이 다 잘못된 바람에…….”

은현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한 말에 광준의 얼굴이 굳었다.

“8년 전이라면 그때 말이냐?”

그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자세히 묻지 않아도 이해한 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요.”

“그런데도 천이가 좋다더냐?”

“그렇다네요.”

“…….”

연신 이것저것 캐묻던 광준이 드디어 침묵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생각보다 더 귀한 손님이셨구나…….”

그는 기운 없는 신음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우가 어제 꿩 잡아 놓은 것이 있다. 푹 고아서 저녁상에 내어라.”

“네.”

은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준은 아직 만나지 못한 미레아가 속없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넓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손자의 옆에 있는 것을 택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그런 사람이 또 나타날까 예측을 해 보자면 상당히 부정적인 대답만 떠올랐다. 이런 사람은 둘도 없었다.

외손자가 데려올 그 아이는 그 누구보다 융성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 * *

아리스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선두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광준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아버지, 여기까지 나와 계셨어요?”

보통 가주가 손주를 맞이할 때는 대문까지는 다른 식솔들을 보냈지 직접 나오지는 않았다. 광준은 상당히 원칙과 예를 중시하며 상하 관계가 명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손수 대문까지 나와 있는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말도 말아라.”

신우가 중얼거리는 것을 끊고는 광준이 아리스를 타박했다.

“예끼. 너는 할애비를 보자마자 인사는커녕 그런 말뿐이냐?”

그 말에 아리스는 더 혼나기 전에 허리를 숙였다.

“평안하셨습니까.”

미레아도 옆에서 아리스를 따라 얼른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미레아 제인스터입니다.”

미레아는 천천히 허리를 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표정들이 밝은 것을 보아하니 아직은 잘하는 것 같아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미레아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 사람에 관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아리스가 데려온 사람이라는 쪽의 궁금증이 더 커 보여서 그게 무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조금 마음을 놓았던 미레아는 광준이 자신의 코앞까지 걸어오자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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