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63화 (163/257)

163화.

“뭐……?”

아리스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동료? 누구? 누가 죽었다고?

라우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이걸로 서로 주고받은 것이 공평하니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리스는 미칠 것 같았다.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변인 중 누군가가 죽는 것은 지금까지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익숙하다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리스에게 라우노가 속닥거렸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신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으시던가요?”

“그건 네가 꾸민 일이잖아.”

“황제에게 협력하고는 있지만 제가 꾸민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당신을 도와주었잖습니까.”

“마수를 불러온 게 왜 나를 도운 게 되지?”

“당신은 아직 데르카이드가 무엇인지 모르는군요. 세피로스가 이런 것도 가르쳐 주지 않던가요?”

“알 게 뭐야. 난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은데 굳이 그런 걸 알아야 해?”

그 말에 라우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아리스의 쇠사슬을 위로 들어 올려 그가 앉도록 도와주었다. 아리스는 몸부림을 쳤지만, 라우노의 완력을 이기진 못했다. 라우노는 아리스의 심장 위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했다.

“데르카이드가 특별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당신 몸에 깃든 영소 일부는 용의 영소입니다.”

“용?”

“네, 용.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데르카이드의 영소를 긁어 모으면 한 사람의 영소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용 페이릭이지요. 그에 대해 들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페이릭?”

“네, 모든 용의 시조이자 3,000년 전에 마수를 아공간으로 내쫓아 봉인한 장본인입니다.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처음이겠지만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마수는 100년 전에 처음 나타난 게 아니거든요. 3,000년 전에도 마수는 존재했었고, 그동안은 페이릭의 힘 덕분에 3,000년 동안 마수가 나타나지 않은 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지요. 마수를 아공간에 봉인한 뒤 페이릭의 영소 역시 마수들과 함께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최초의 용, 페이릭에 대한 이야기지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말 끊지 마세요. 이 뒤의 내용이 더 중요하니까.”

라우노는 말을 이었다.

“페이릭이 아공간에 봉인했던 마수들은 3,000년 동안 자체적으로 진화하여 마침내 아공간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100년 전에 일어난 마수 대전의 원인입니다. 마수들의 봉인이 풀리면서 페이릭의 영소 역시 함께 흘러나왔죠. 그리고 바로 그 용의 영소에 마수의 영소가 결합하여 데르카이드의 영소를 만들어 냈습니다.”

“……뭐?”

“간단히 말해 데르카이드란, 최초의 용인 페이릭의 영소에 기생해서 인간의 태를 빌어 태어난 마수예요.”

아리스는 라우노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데르카이드란 마수의 영소를 가진 인간이라고요.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면 제가 방금 말씀드린 부분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라우노는 어깨를 들썩이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데르카이드가 왜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째서 마수가 나타난 시기에 맞춰서 제가 태어났다고 생각하시나요? 데르카이드가 마수의 영소를 갖고 있다면 전부 설명이 되지 않나요? 데르카이드는 마수의 영소를 갖고 있어서 서리 여신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지요. 마수의 출현과 더불어 페이릭의 영소와 결합한 마수의 영소가 흩어졌으니 인간의 몸으로도 태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용의 영소는 인간의 영소와 거의 비슷하니 말입니다.”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는 아리스에게 라우노가 눈썹 끝을 늘어트리며 말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마수는 우리의 형제라고.”

“그게 그런 뜻이었어……?”

“네, 그렇습니다.”

“개소리! 그딴 말을 어떻게 믿어!”

아리스의 반발에 라우노가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제 말이 맞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웃기지 마! 내게 그런 것을 알려 주는 이유가 뭐야? 네 세계 멸망 계획에 동참하라고? 그런 짓을 해서 내가 얻는 게 뭔데?”

“왜 이해를 못 하지요?”

라우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부식 지역 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을 괴롭히던 일은 다신 없을 겁니다. 여신의 신탁을 빌미로 당신을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한 서리 교단에도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 가치는 충분하지 않나요?”

아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네 말을 믿는 것도 아니고 너를 신용하는 것도 아니야.”

라우노는 다른 미끼를 던졌다.

“제 원대한 계획에 가담한다면 서리 여신을 죽일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당신에게 신탁을 내린 그녀가 싫지요? 밉지 않습니까?”

“그딴 게 가능하다고?”

“네. 가능합니다. 우리는 뭐든지 가능하지요. 아시지 않습니까? 데르카이드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래서 로아메나 대륙 전역을 부식 지역으로 만들어 신처럼 군림하시겠다?”

“신이라. 그것도 좋지요.”

라우노가 빙그레 웃으며 아리스의 어깨를 다독였다.

“5년 전에 당신이 클라인을 암흑 지대로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이 자식이…….”

아리스가 안광을 뿜어 대며 라우노를 노려보았다.

“다시는 그럴 일 없을 테니 내게 기대하지 마.”

“글쎄요.”

라우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밖이 조금 소란스럽더니 시종 한 명이 들어왔다. 라우노는 분명 방해하지 말라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그의 등장이 불쾌한 기색이었지만 그가 귀에 대고 속닥거린 말에 표정이 변했다.

그는 시종을 내보내고 싱글거리며 말을 마저 이었다.

“제가 서리 여신을 죽일 수 있게 도와준다고 그랬지요? 당신의 마검이라면 충분히 그럴 힘이 있습니다.”

“내가 호락호락하게 협조할 줄 알아?”

“나는 당신이 말은 그렇게 해도 협력하리라 생각합니다.”

“개소리.”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게 패는 여러 개입니다. 가령…….”

라우노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그들의 머리 위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리스가 몸을 물려 그것을 피하자 잔해와 함께 사람 한 명이 떨어졌다. 아리스는 눈에 익은 붉은 머리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라우노가 떨어진 사람의 뒷덜미를 낚아채 단검을 목에 가져다 대었다.

“인질이라던가.”

“미레아!”

아리스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라우노에게 붙잡힌 미레아는 라우노를 한번 노려보았다가 아리스를 보았다.

“어어, 안녕.”

미레아의 태평스러운 인사에 아리스가 헛웃음을 들이켰다.

“꼴이 이래서 우습긴 하겠지만, 구하러 왔어!”

미레아가 인질로 붙잡힌 사람치고는 해맑게 말했다.

“밖이 좀 소란스럽던데 쥐새끼처럼 천장 위를 살금살금 다니고 있는 것을 제가 모를 줄 알았나요?”

“아하하, 라우노 씨. 우리 이 검은 치우고 대화로 해결하는 건 어때요?”

미레아가 손가락으로 단검을 가리키며 애써 웃었지만, 라우노는 단검을 더 바싹 댈 뿐이었다. 그 바람에 미레아의 목에 붉은 자국이 났다.

아리스는 요 며칠 동안 정신이 희미해졌지만, 그때마다 미레아를 떠올리면 버틸 만했다. 그만큼 보고 싶었다. 조금 전 라우노가 동료 중 한 명이 죽었다고 알려 줬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 역시 미레아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미레아가 잘못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정신 중 일부가 무너졌을 것이었다. 이렇게 보니 무사하다는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갔다가 지금 라우노에게 위협받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아리스가 이성을 잃기 직전에 미레아가 떨어진 천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뛰어내려 라우노를 포위했다. 율비네, 파울로, 진이었다. 라우노는 예상했다는 듯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각자의 무기를 겨누는 세 사람을 향해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고작 네 사람으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상대로.”

하지만 고작 네 사람이 아니었다.

“세렌트!”

미레아의 외침에 그녀의 검집에서 세렌트가 홀로 뽑히더니 라우노의 급소를 노리며 날아왔다. 라우노는 조금 놀란 얼굴로 세렌트의 검 끝을 손으로 막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끼리 팽팽하게 충돌하자 허공에 멈춰 선 세렌트의 검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검?”

그 틈에 미레아는 세렌트에게 미리 심어 놓은 공간 전이 마법을 통해 라우노에게 벗어나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세렌트도 미레아를 따라 움직이더니 그녀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 나 잘했어?

세렌트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미레아에게 물었다.

“응, 아주 잘했어.”

검을 고쳐 잡는 미레아를 보며 라우노가 피식 웃었다.

“마검이 하나 더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네, 제법 당황했어요. 하지만 어리석군요. 고작 이 정도 인원으로 제게 대항한다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네요.”

그들이 대치하며 낸 소음에 황궁 경비원들이 알현실로 들이닥쳤다. 라우노를 포위하고 둘러싼 네 사람을 경비원들이 순식간에 포위했다. 일행들은 이제 라우노뿐만이 아니라 경비원들까지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호락호락 당하고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다들 코 막아!”

그렇게 외친 미레아가 상대방이 대처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연막탄을 터트렸다. 미레아와 파울로가 연막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견제하는 사이 진과 율비네가 게걸음으로 천천히 아리스의 옆으로 접근했다. 둘이 구속구를 풀기 위해 애를 쓰는 사이 아리스가 속닥거렸다.

“다른 인원들은?”

“우리 아버지와 작은 숙부가 함께 오셨는데 사병들과 우리가 지나온 길에 포진하던 경비대들을 상대하고 계셔. 네게 바로 온 인원을 말하는 거면 우리밖에 없어. 아, 그리고 고모님도 함께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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