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61화 (161/257)

161화.

“그런 듯싶습니다. 수도 상공에는 비공정을 함부로 띄우는 것이 불법인데 제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류가의 비공정으로 수도를 위협 중일 것입니다.”

율비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할 생각인 거지? 당당히 전면전으로 나가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질 텐데.”

“밖의 상황을 모르니 답답하군요.”

율비네가 투덜거렸다. 그때, 밖에서 총소리가 난다 싶더니 매캐한 연기가 짙게 깔렸다.

“이런, 최루탄이다!”

둘은 입과 코를 옷으로 틀어막고 창고에서 뛰쳐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으로 최루가스 농도가 옅은 곳으로 꽁지 빠지게 달리는 동안 그들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방도 다 똑같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파울로와 율비네는 이것이 자신들을 잡기 위해 놓은 덫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다른 누군가가 쳐 놓은 연막이었다. 짙은 연기에 서로를 놓치지 않게 둘은 손을 부여잡고 황궁 구조를 꿰고 있는 율비네의 인도하에 장미 정원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분수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죽는 줄 알았네!”

파울로가 한탄하자 율비네가 옆에서 격하게 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원으로 최루가스의 냄새가 넘어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견딜 만했다.

“이 경보가 우리를 잡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밖에서 황궁 내부로 침투한 인원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류가에서 침입한 걸까요?”

율비네의 추측에 파울로는 이마를 짚으며 해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 가능성도 크지만 어쩌면 다른 녀석들일 지도. 나는 신병을 인도하기로 했지만, 아리스는 아니니…….”

파울로는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너라면 황궁으로 침입할 때 어느 루트를 이용할 것 같아?”

“우리가 있던 저 위치에서 연막을 터트린 것이라면…… 아마 이 정원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돌입할 생각인가 봅니다. 저라면 수로로 침입하겠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미로 같은 수로 구조를 모르니 가장 만만한 게 그쪽이지요.”

“좋아, 이동하자.”

파울로가 율비네를 끌고 허둥지둥거리는 황실 근위대를 이리저리 피해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상대방보다 한발 앞서 침입로로 추정되는 곳에 잠복하고 있었다. 과연 몇 분 지나니 황실 근위대로 보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파울로는 혹시 모르니 그들에게 일단 대검부터 들이밀고 보았다. 그러자 상대방 역시 자신의 무기로 견제해 왔다. 순간이었지만 팽팽한 신경전이 오갔다. 그가 견제하자 열은 되어 보이는 다른 인원들이 순식간에 파울로와 율비네를 둘러싸며 무기를 겨누었다.

“파울로?”

그때, 방독면을 쓴 상대방 중 한 명이 그를 알아보며 당황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그게 누구인지는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청 눈에 띄는 빨간 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미레아의 뒤를 따르던 사람 역시 익숙한 목소리였다. 미레아처럼 방독면을 쓰고 있었지만 들고 있는 무기가 도끼인 것을 보니 류진이었다.

“미레아! 진!”

“이런, 율비네. 여기서 무얼 하는 게냐?”

율비네를 알아보고 마이련어로 말을 건 자는 류견우였다. 그들의 등장에 율비네가 화색을 하자 미레아와 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파울로랑 율비네가 왜 여기 있어요?”

“탈옥했지. 그러는 너희야말로 여기로 올 줄은 몰랐다.”

파울로의 태평한 말에 진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견우는 낭패감에 얼굴을 쓸었다. 진이 투덜거렸다.

“아, 이런! 우리 쪽으로 인도하는 거로 처우가 확정된 파울로는 몰라도 율비네를 빼내려고 그쪽으로는 고모님이랑 작은 숙부가 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았지!”

“뭐, 그렇게 됐다.”

파울로가 엄지를 척 올렸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시냐?”

파울로의 말에 류견우가 손을 내밀었다.

“류광준의 장남 류견우입니다. 아리스의 큰 외숙 되는 사람이지요. 여기 다른 사람들은 저희 가문의 사병들입니다.”

“아, 파울로 리마입니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원정대 대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둘이 태평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을 도중에 끊으며 미레아가 물었다.

“그나저나 탈옥했으면 도망가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리스랑 같이 탈출하려고 간 보던 차였지.”

미레아는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심쩍게 물었다.

“고작 둘이 별다른 무기도 없이요?”

“무기는 훔치면 되는 거고.”

그 말에 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파울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미레아에게 물었다.

“그러는 너희 말고 다른 사람들은?”

“류가 사람들 말고 라슈발렌에서 온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뭐?! 여기가 어디라고 이 인원만 끌고 와?”

“그러는 파울로도 지금 율비네랑 둘이 무기라고는 그 대검 하나만 들고 움직이려 그랬잖아요. 게다가 지금 협회에서 휴가 중인 사람이 저밖에 없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율비네가 휘적거리는 미레아의 손을 꽉 붙들며 열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저는 황궁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아리스가 어디 있는지 알기나 해요?”

“아마 황족들을 수용하는 지하 감옥에…….”

율비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는 없는 걸 확인했어. 그래서 이쪽으로 움직인 거고.”

그 말에 율비네가 사색이 되었다.

“거기 없으면 어디 있는 건데요? 설마,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미레아는 율비네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진정시켰다.

“아니, 그건 아닐 거예요. 지하 감옥의 교도관 한 명을 생포해 캐물었더니 아리스가 황궁 안으로 이동했다고 그러더군요.”

“그럼 황궁 안으로 침입해야 하는 건가. 잘되었네. 지하 감옥보단 나을 수는 있으니…….”

파울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레아는 율비네에게 자신이 메고 있던 기관총을 건네주었다.

“말린다 해도 말 안 들을 거죠?”

“뭐, 저야 아리스 옆이라면 항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습니다. 인제 와서 몸 사려 봤자 새삼스럽지요.”

“좋아. 그러면…….”

진이 품에서 와이어 건을 꺼내 발사하더니 4층의 창턱에 앵커를 걸었다.

“우리 왕자님을 구출하러 가 볼까나.”

* * *

아리스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지도 않는 교도관들의 손에 다짜고짜 끌려와서는 손과 발에 묵직한 구속구를 차고 메르티어스를 알현했다. 꼴에 황제 폐하를 알현한답시고 알현실로 끌려온 것에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뭐, 메르티어스라면 지하 감옥을 무서워할 만했다. 그곳에 서린 망령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말이다.

라우노에게 붙잡혀 루아드 황궁으로 끌려온 아리스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일단 라우노가 자신과 페니드란을 노리고 있었단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아리스가 안다면 절대로 협력하지 않을 일이 분명했다.

세피로스에게 라우노가 이 대륙을 마수의 땅으로 만들 생각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고분고분 따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리스는 무슨 일이 되었든 그들이 제안해 오는 것이 있다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바로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라우노와 메르티어스 황제는 바로 아리스의 목이라도 벨 것 같더니만 다른 일행들과 외따로 떨어트려 놓아 그를 감금했다. 황궁에 있는 지하 감옥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일반 죄수를 감금하기 위한 평범한 감옥이었고 하나는 황족들을 감금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리스는 6일 동안 앉지도 눕지도 못한 상태로 반 마력 구속구를 차고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아리스가 자신의 마력으로 그 봉인을 풀려 했지만, 라우노의 마력으로 제작된 그 구속구는 아리스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처음 있는 일인지라 아리스는 속으로 제법 당황했다. 그 덕에 하루 안에 탈옥하겠단 계획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리스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는데 아무런 대비책 없이 그를 대할 리 없었다.

아리스를 끌고 온 그들은 며칠 동안 아리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식수를 주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막아 정신적으로 몰리게 했다. 그것은 제법 효과가 좋아 덕분에 아리스는 지금 죽기 직전까지 피로가 쌓여 있었다.

6일 사이 입술은 다 갈라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피부는 퍼석퍼석해졌다. 다만 청색으로 빛나는 안광만은 지하 감옥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아리스는 퀭한 눈을 숨기면서 5년 만에 본 메르티어스에게 비아냥거렸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보다 수척해진 것을 보니 잘 못 지내셨나 봅니다?”

실제로 메르티어스는 아리스의 기억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눈은 더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워져 있었고 얼굴뼈가 툭툭 도드라졌다. 한때 윤기 좋게 빛나던 은발은 생기로운 색을 잃어 백발이라 해도 될 정도로 변해 있었다. 아리스의 비아냥에 메르티어스의 손이 부들거렸다.

“황제 놀음한 지 고작 7년밖에 안 됐는데 왕관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우셨나요? 난 또 절대로 안 내려놓으려 하기에 관을 쓰고 시시덕거리며 떵떵거리는 게 즐거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요.”

“입을 다물라.”

메르티어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리스에게 엄히 말했다. 하지만 아리스는 입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다른 사람들의 피로 만든 그 권좌가 편할 리 없지.”

“폐하께서는 입을 다물라 했다.”

메르티어스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고 있던 자가 아리스에게 황제의 말을 전하며 일갈했지만, 그는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자기 동생의, 내 아버지의 피마저 밟고 섰는데 잘 지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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